〈 87화 〉86화 암살 자매 입수 (2)
“어, 언니이!”
팔이 잘려 나가는 통증에 깨어난 위니엘의 언니는 사태를 파악할 필요도 없이 이를 꽉 다물고 신음을 참았다.
“흐으으으으읍……!”
어깨를 생으로 잘라버렸으니 아무리 고도로 단련된 암살자라 해도 못 참을 만큼 아플 것인데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으며 조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야. 대가 엄청 세네. 마음에 들어. 길들이기만 하면 대박이겠어, 하하.”
최소한 몸부림치면서 소리라도 지를 줄 알았던 조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으로 팔이 잘린 통증을 참아 내는 모습에 완전히 신이 났다. 굳이 암살자로서의 실력을보지 않아도 이 정도면 노예 상인 길드 마스터가 보증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절해 있다 깨어나니 팔 한쪽이 잘려 있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 간단해. 네 동생이 거짓말을 하더라고. 되묻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자르고 봤어.”
조니의 태연자약한 소리에 위니엘의 언니는 이를 꽉 다문 상태에서 짓씹듯이 말했다.
“반드시 죽여라. 안 그러면 네가 죽을 테니까.”
“살려 달라는 소리는 안 하고?”
“잡힌 순간부터 살 생각 따윈 없었다. 그냥 죽여. 고문을 하든 사지를 자르든 마음대로 즐기면서.”
“휘유우. 장난 아닌데? 너 혹시 배짱 있는 모습을 보여 줘서 날 반하게 하려는 건 아니지?”
마치 일리아스 같게 왜 이래? 하는 심정의 조니를 본 위니엘의 언니가 통증을 참느라 이를 앙다문 상태에서도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새끼 이거 상또라이였네.”
“하하. 멋져, 멋져. 난 너처럼 그렇게 굴복하지 않는 노예를 길들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더라. 우린 제법 잘 어울리는 사이가 될 것 같아.”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해 준 조니는 다시 위니엘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세 개는 남아 있는데, 이것도 마저 자를까? 아니면 솔직히 털어놓을래?”
“거짓말 안 했어요! 사실대로 말한 거란 말이에요!”
위니엘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애처롭게 말했지만 조니는 묵묵히 다시 도끼를 들 뿐이었다.
그리고 내리쳤다.
퍽.
이번엔 왼쪽 어깨에서 피가 튀고 왼팔이 떨어져 나갔다.
“크으으으으읍……!”
위니엘의 언니의 눈이 부릅떠지고 악다문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팔 두 개를 모두 생으로 잘라 버렸으니 혼절할 만큼의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이내 안색이 편해지며 떨림이 멎었다. 아무리 봐도 통증을 참고 있는 모습 같지는 않았다.
조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레? 안 아픈 척하는 것 같진 않은데…….”
“후우. 통각을 차단했지. 아무리 나라도 팔 두 개를 모두 잘린 건 참기 어려워서 말야.”
“뭐? 그런 짓도 할 수 있단 말야?”
조니의 의학 지식수준은 동종요법을 맹신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통각을 인간이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하면 조교 자체가 불가능하니 알고 모르고의 차원이 아니라 가능할 리가 없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고통을 안 느끼고 있는 듯한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보자 그 믿음이 깨지고 있었다. 또한 동시에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 이거 실수했네.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이렇게 무식하게 잘라 버리는 게 아닌데.”
“고작 팔 두 개 자르는 정도로 내 입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네 취미 생활에 어울려 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훗.”
오히려 팔을 자른 사람보다 팔이 잘린 사람이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진풍경에 조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확실히 내 오산이야. 통각을 차단하기 전에 팔다리를 모두 잘라 버렸어야 했는데 너무 늑장을 부렸어. 나도 참 자만을 다 하고 말이지, 요새 배가 좀 불렀나 봐. 덕분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으니 미리 고맙다고 해 둘게.”
생긋.
조니는 환한 미소를 짓고는 피 묻은 도끼를 내려놓고 지하 감옥을 나가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잔느를 찾아갔다.
“잔느, 새 노예 좀 치료해 줄래?”
잔느는 아예 피투성이가 된 조니의 옷차림을 보고 말문을 잃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당신이 다친 건 아닌 거죠?”
“하하, 걱정해 주는 거야?”
“네.”
잔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조니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껴안아 주고 싶은 소리지만 옷이 이래서 좀 그러네. 이따 밤에 안아 줄게.”
“네, 알았어요.”
한층 더 적극적인 모습이 참 기특했지만 안아 줄 수가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참. 근데 혹시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어?”
“……죽일 거예요?”
“음~ 두어 번 정도? 상당히 대가 세서 그 정도는 죽어 봐야 할 것 같아서.”
노예 도시의 메디컬 센터도 죽지만 않았다면 못 고치는 증상이 없었지만 아예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한계가 있었다.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어야 하고 피를 너무 많이 않았어야 하는 등 무조건적으로 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성녀인 잔느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여신의 은총을 받은 성녀의 신성력은 죽어서 혼백이 떠난 몸까지도 부활시키는 게 가능했으니까.
물론 그만한 신성력을 지닌 성녀가 거의 없기는 했지만 잔느는 신성 제국 역사상 최고의 성녀였고, 교황급 지팡이 아티팩트인 성광의 지팡이를 갖고 있었기에 조니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지팡이의 힘을 빌리면 세번까지는 살릴 수 있을거예요. 하지만 연달아 세 번을 살리면 한두 달은 신성력을 아예 쓰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어쩌면 반년 이상 못 쓸 수도 있고요. 부활의 권능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거든요.”
“우리 잔느에게 부담 주면 안 되지. 두 번까지는 죽였으면 싶었는데 어쩔 수 없네. 한 번만 죽일 테니 부활시켜 줘.”
“……꼭 필요한 일인가요?”
상호 존중도 있긴 하지만 조니의 부탁이라면 웬만해선 들어주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교를 위해 고문하다 일부러 죽인 걸 부활시키라는 건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니도 아무 생각 없이 잔느를 찾은 건 아니었다.
“꼭 필요해. 여신을 위한 일이거든.”
“여신…… 님이요?”
“응. 노예 도시 어딘가에 어떤 여신이 잡혀 있다는 정보를 얻었어. 구해 주고 싶어서 그럴 능력이 있는 노예를 입수했는데, 조교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두어 번쯤 죽이고 되살려서 기 좀 죽이려고 했지.”
“죽이세요. 몇 번을 죽이더라도 반드시 살려 낼게요. 제 생명력을 쏟아부어서라도.”
잔느는 역시 자신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음에 기뻐하며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조니는 이곳 악의 도시 바티칸에 물든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니는 잔느의 그런 마음을 읽고 미소만 지었다.
“난 그래도 얼굴도 본 적 없는 여신보다 잔느가 더 소중해. 목숨을 걸진 말아 줘.”
“조니…….”
조니의 따뜻한 말에 감동받은 잔느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간질거리면서 따뜻한 것으로 가득 차오르는 느낌에조니의 품에 꽉 안기고 싶었다.
그래서 조니의 전신이 피로 흠뻑 젖어있는 것도 상관치 않고 한 걸음 다가가 두 손으로 등을 꼭 끌어안았다. 피비린내가 진하게 났지만 순교자의 성혈같이 느껴졌다.
“세 번까지는 괜찮아요. 성광의 지팡이가 있으니 큰 부담을 없을 거예요.”
“무리하지 마, 잔느. 두 번은 넘기지 않을 테니까.”
“네, 조니…….”
잔느는 그 이상 보채는 대신 두 눈을 올려 조니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쪽…….
서로의 입술이 짧게 부딪치고, 잔느는 가슴속에 기분 좋은 따뜻함이 번짐과 동시에 안타까움 또한 생기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이제는 이런 짧은 입맞춤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직 어떻게 될지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부분도 있었다.
……아직은.
“……지팡이 챙겨 올게요.”
“응. 천천히 다녀와.”
“빨리 올게요.”
잔느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성광의 지팡이를 가지러 노예 방으로 향했고 조니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처녀를 가져가겠다고 해도 거부하지 못하리란 게 훤히 보였다. 아니, 그보단 거부하지 않으리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었다.
잔느 역시 무의식적으로 조금으로 바라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열매가 열리면 수확해 주는 게 주인의 도리겠지, 하하.’
성녀의 처녀를 접수하는 그날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잠시 후 잔느와 함께 지하 감옥으로 내려온 조니는 위니엘의 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팔다리 붙이는 건 몇 번 정도 할 수 있을까?”
이제 조니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다 해 주고 싶은 잔느는 다부지게 대답했다.
“얼마든지자르세요.”
아예 목을 쳐도 도로 붙이고 숨결을 이어 줄 것인데 팔다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가 괜히 성녀가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