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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화 〉83화 미네르바 불공정 맹세 조교 (2) (84/95)



〈 84화 〉83화 미네르바 불공정 맹세 조교 (2)

물론 정말로 미네르바의 신성을 빼앗아 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미네르바의 가치는 여신일 때 성립되는 것이었으니까. 또한 여신의 육체를 되찾아 다시 전쟁의 여신 아테나로 승격했을 때야말로 진정한 노예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니 지혜의 신성을 가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그런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 조니는 단지 미네르바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기 위해서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입만 다물고 있어도 되는데 손도 대지 않는다고 않겠다고 하니 나야 고맙지, 뭐. 설마 여신의 입으로 맹세해 놓고 그냥  본 소리였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시, 신성을 지닌 존재는 언약을 어길 수 없사옵니다만…… 설마 진정으로 아프로디테의 성녀를 제게 던지실 것이옵니까?”

“응. 손만 대게 하면 지혜의 신성이 내 것이 되는데 안 할 리가 없잖아?”

“…….”

미네르바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빠져나갈 방도가 없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넙죽 엎드렸다.

“소녀가 무얼 하면 용서해 주시겠나이까? 무엇이든 하명만 하시옵소서…….”

“용서는 왜? 넌 잘못한 거 없어. 잘못은 지금부터 내가 저지를 거지.”

“……지키지 못할 맹세를 함부로 입에 담은 죄를 저질렀나이다. 하해와 같은 은혜로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소녀, 주인님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나이다.”

“그래? 정말 뭐든지 다  거야?”

조니의 진지한 물음에 미네르바는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무얼 요구할지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전하를 잊고 진정으로 새 주인님을 따르라고 할 터. 결코 따를 수 없는 명령이지만 따르지 않아 지혜의 신성을 뺏긴다면 그땐 정말 전하께서 받아 주실 리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래도 신성을 지니고있으니 전하께서 다시 찾아 주실거라 생각하는 수밖에…….’

왕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반드시 도로 찾아 주실 거라 믿고 지금은 이 새 주인님을 따르는  최선이었다.

“따르겠사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미네르바가 조니를 너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알았어. 용서해 줄게. 대신 지혜의 신성을 내게 줘.”

“…….”

“어, 왜 얼굴이 사기당한 표정이야?”

쿵쿵쿵!

미네르바는 그냥 이마를 마룻바닥에 쿵쿵 찧으며 큰 목소리로 빌었다. 다른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녀의 생각이 짧았나이다!”

“야, 밑에 있는 젖소 놀라겠다. 우유 떨어지면 네가 짤 거야?”

……쿵쿵.

움찔한 미네르바는 잠시 생각하다 이전보다는 작게 이마를 찧었다. 시끄럽다고 안 하자니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왕이 아니라, 조니였다.

조니……  한 가지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자아냈다.

“응? 왜 갑자기 성의가 줄어들었지? 한소리 했다고 빈정 상해서 그런 거야?”

“……소녀를 죽여 주시옵소서. 전부 다 소녀가 잘못했나이다…….”

“와…… 이젠 아예 입만 놀리네. 입만 뻥끗하면 모든 일이 그냥 가화만사성이지?”

“…….”

“뭐야. 이젠 입도 뻥끗 안 해? 다시 생각해 보니 잘못한 것 같지가 않아? 아니면 나랑은 말도 섞지 못하겠다는 거야?

“…….”

미네르바는 울고 싶었다.  밴시 계집이 앙탈 부리다 울부짖는 걸 볼  통쾌하기까지 했는데, 이젠 그녀의 심정을  수 있었다.

억하심정.

  주인님은 듣는 이로 하여금 억하심정을 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가 지닌 지혜의 신성이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설령 말을 하지 않든 간에 모든 결과가 똑같다는  알려 주었기에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억하심정만 생길 따름…….

하지만 계속 아무 말도 안 했다간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리란 건 명백했기에미네르바는 머리를 더욱 깊숙이 조아리며 그저 빌고 또 빌었다.

“이 멍청한 계집이 어떻게 해야 지혜의 신성을 지킬 수 있는지 알려 주시옵소서. 하해와 같은 은혜로 알려만 주신다면 평생 각골난망하여 잊지 않겠나이다…….”

조니는 그저 웃으며 자상하게 대답했다.

“니가 따져 물으면 내가 곧이곧대로 알려 줘야 하는 사람이야? 아주 그냥 상전 나셨네?”

“…….”

“이야, 이젠 내가 묻고 말 걸어도 그냥 무시하는 거야? 내가 주인인  맞냐?”

“……맞사옵니다.”

“그럼 왕한테도 이랬어? 왕만 주인이고 난 주인 대우 못 하겠다는 거지?”

미네르바는 울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그저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절대 아니옵니다. 화가 나신 만큼 이 암퇘지를 매도하고 채찍질하시옵소서. 왕께서는 그리하셨으니 주인님께서도 그리하시면 될 것이옵니다.”

“내가 왕이냐?”

“…….”

“야. 아무리왕이 그립고 보고 싶어도 나한테 왕 흉내를 내라고 하면 안 되지. 그러다가 나중엔 아예 부채질하라고 하겠다?”

“아니…… 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왕처럼 하라매?”

“……흑. 흐흑.”

미네르바는 결국 설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조니는 일리아스와는 달리 미네르바의 눈물을 봐주지 않았다. 일리아스는 앙탈 부리는  귀엽기라도 하지 단순히 찔찔 짜는 건 사양이었다.

“울어? 울면 니가 나한테 잘못한 게 눈물에 씻겨 사라지나? 아니면 노예 생활이 끝나나?”

“…….”

“와, 힘든  괴로운 척은 다 하더니 눈물도  흘리네. 살 만한가 봐?”

“…….”

미네르바는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고 싶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 단지 말  마디 들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피가 말리는데, 이런 나날이 계속 이어지면 살아도 산  아닐 터였다.

한낱 지혜로는 어떻게 타파할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궁구하여 이치를 빨리 깨닫고 지식을 조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정도로는 이 주인님의 머릿속을 따라갈 수 없었다.

지혜도 근본이 되는 지식이 있어야 발휘할  있는 법인데, 아예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화법을 구사하니 예지와 전지가 아닌 이상 상대할 수 있을 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는 정말 죽는 것만 못할 터이니……  주인님이 바라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 새 주인님의 마음이 동하게 했던 것이!

미네르바는 그 실낱같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볼을 복숭앗빛으로 안타깝게 물들이면서.

“……사랑해요, 아버님. 남편보다 더…….”

“…….”

 주인님의 속옷 앞섶이 무서운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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