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73화 일리아스 앙탈 조교 (2)
“정녕 그것으로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응. 어차피 노예 조교는 다른 노예들한테 시키면 되니 넌 딱히 할 일도 없거든. 아니면 왜, 집에서 노예 모아서 전쟁놀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 정도라면 허락해 줄 수도 있고.”
“……그럼 소녀에게는 주인님을 사랑하고 주인님께 사랑을 갈구하는 정도의 의지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옵니까?”
“어. 내가 시킬 거거든. 내가 받고 싶을 때만.”
“…….”
미네르바의 마음속에서 왕의 그림자가 더욱 커졌다. 더 많이 보고 싶어졌다.
‘전하, 전하는 좋은 주인이셨음을 소녀가 이제야 진정으로 깨달았나이다…… 전하의 곁을 도망친 이 어리석은암퇘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인간들의 격언이 신에게도 통용될 줄은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마저도 미처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젠 분명히 알았다. 인간이든 여신이든 집 나가면 고생이었다.
그리고 이젠 이곳이 새로운 집이었으니 종래에는 이 집을 나가게 되어도 고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왕께 가야 하는데 가는 길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네르바에게도 최후의 보루는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이 새 주인님은 지혜는 갖췄을지언정 기술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왕께 이미 완벽하게 조교된 이 썩어 빠진 암퇘지를 이제 와 다시 조교하는 것은 무리일 터였다.
그나마 처녀를 바치지 못했기에 삽입 섹스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 봐야 둘뿐이었다. 암퇘지의 몸뚱이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이미 완전하게 조교받은 이상 삽입 섹스 두 가지로 극상의 쾌락을 안겨 준다 한들 왕의 그림자를 지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럼 이제 테크닉 쪽을 살펴볼까. 어디 한번 얼마나 배웠는지 봉사해 봐. 펠라치오부터.”
때문에 미네르바는 새 주인님의 명령에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서며 봉사를 시작했다.
“소녀가 배운 것을 모두 보여 드리겠나이다.”
미네르바는 왕께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새 주인님의 작고 볼품없는 것을 입에 품었다. 크기와 굵기, 단단함 모두 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설령 이런 것으로는 처녀를 잃더라도 빠져들게 되는 일 따윈 불가능했다.
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테크닉을 동원해 물고 빨고 핥고깊숙이 집어넣으며 세 번 사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소녀의 입 봉사에 만족하셨사온지요?”
“잘하네. 확실히 끝까지 다 배웠어. 그럼 이제 애무.”
“맡겨만 주시옵소서.”
미네르바는 혀와 손, 가슴을 이용해 새 주인님의 전신 성감대를 애무하고 자극했다. 경험이 적은지 왕에 비하면 참을성이 없었고 흥분시키기도 쉬웠다. 특히 항문을 혀로 애무하며 한 번 깊숙이 찔러 넣은 것만으로 또다시 사정하는 것을 봤을 땐 육체적 기술에 있어서는 분명히 그녀가 압도적으로 위에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결코 함락당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 후로도 손시중이나 파이즈리, 매도, 숭배, 자학, 피학, 유혹, 자위, 노출, 목욕 봉사 등 왕께 조교받은 모든 테크닉을 선보였다. 단계별로 하나씩 다 시연하는 데에만 이틀의 시간이 걸렸을 정도였다.
“대충 견적이 보이네. 삽입만 제외하고 왕이 가르칠 수 있는 건 전부 완벽하게 가르쳐 놨구만?”
“물론이옵니다. 소녀는 그분으로 인해 진정한 암퇘지로 거듭날 수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그녀의 새 주인님,조니는피식 웃었다.
“과연 그럴까? 보아하니 왕 혼자서 가르친 티가 풀풀 나는데 뭘 진정한 암퇘지야?”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삽입 섹스가 두 개밖에 없는 줄 알아? 이곳 노예 도시에는 말야, 다른 노예 상인의 조교를 무상으로 도와주는 착한 친구들이 수없이 많다고. 두 구멍, 세 구멍 섹스에 환상의 다섯 명도 있고 수많은 군중의 사정을 얼굴로 받는껌샷(gumshot : 붓카케)도 안 돼 있고 삽입 섹스를 못 했으니 수간도 못 배워 놓고 뭘 진정한 암퇘지라고 자신만만해하는 거야?”
여신을 다른 남자들과 돌려 먹다니, 왕은 물론이거니와 미네르바로서도 가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하지만 노예 도시에서는 엄연한 기본 소양들에 지나지 않았다. 윤간 플레이를 요구하는 구매자도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물론 나도 판매용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것들까지 가르치겠지만 해바라기는 나만 바라보면 되니까 다른 남자들은 동원하지 않을 거야. 또한 그러는 편이 왕의 그림자를 지우는 데도 나을 테고.”
미네르바는 슬슬 또다시 불안해지기시작했다. 이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지혜로운 새 주인님이 또 어떤 말도 안 되는 지혜를 동원해 자신을 농락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지혜가 타락하면 이런 모습이 되는 걸까? 그야말로 타락한 지혜의 신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하면 소녀를 어찌 길들이실 생각이시온지…….”
“너는 물론이고 왕조차 상상도 못 했던 걸로 조교할 거야. 지금까지 노예 도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조교법으로. 여긴 어떻게 된 게 새 조교법이 나오지 않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니까. 편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새 주인님은 입꼬리에 미소를 단 채 침실을 나갔고 혼자 남은 미네르바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 같아 몸서리를 쳤다. 정체불명의 대적을 맞이하여 대패한 뒤 전리품 신세가 된 패잔병처럼 능욕당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집에서 나가야만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하…….’
미네르바는 이제 울고 싶었다.
침실을 나온 조니는 지하실로 향했다. 새로운 조교법을 만들고 시연해 줄 숙련된 조수가 그곳에 있었다.
아마도 노예 도시에도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조수가.
“요 며칠 얼굴 보기가 힘들던데 뭘 하고 있던 거야?”
“……남이사 뭘 하든 말든. 귀찮게 하지 말아 줄래?”
일리아스는 조니를 쳐다보지도 않고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일전의 길거리 앙탈 섹스 조교 이후 앙큼한 내숭녀가 돼 버린 일리아스는 지붕이 무너져라 하루 종일 운 뒤에 지하실에 있는 연구실에 처박혀 식사 때를 제외하곤 두문불출했다.
자괴감에 빠진 게 아니라 무언가 연구에 골몰한 게 보여서 놔두긴 했는데 간만에 또 이렇게 톡 쏘아붙여 주니 어여쁘게만 보였다. 역시 일리아스는 앙탈을 부려야 제 맛이었다.
“어휴. 너 자꾸 그렇게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 주면 나 또 흥분한다? 아, 흥분시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가? 미안해. 알아주지 못해서. 지금이라도 우리 자기 마음 알아주고 안아 줄게. 그럼 화 푸는 거지?”
“아니거든?! 일부러 이러는 것도 아니고 안기고 싶은 것도 아니라고! 제발 그놈의 밑도 끝도 없는 비약 좀 그만해, 이 나쁜 놈아!”
그놈의 비약 때문에 오만 꼴을 다 당해야 했던 일리아스는 그날이 또 생각나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빽 질렀다.
하지만 조니에겐 마냥 귀엽기만 했다.
“자기라고 부른 건 부정을 안 하네?”
“……그러면 또 노예 취급 받고 싶은 거냐고 할 거면서 놀릴 거잖아.”
이제 와서 부정하고 지금까지 겪은 수모를 없는 것으로 돌릴 바엔 그냥 인정하고 마는 게 낫다고생각하는 일리아스였다. 그리고 사실 그게 지금까지 일리아스가 한 처신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잘한 일이기도 했다.
“그야 당연하지. 난 자상한주인님이니까. 근데 전에 내가 호칭을 뭐라고 가르쳐 줬었더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우리 자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
“어, 기억 안 나? 설마 노예 취급이 좋은 건데 직접 말하긴 부끄러워서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둘러댄 거였어? 아, 이거 참. 내 눈치가 이렇게 바닥이라니까. 미안해. 지금이라도 당장…….”
“사랑하는자기야, 그러지 말아 줄래?”
“응? 너무 빨라서 잘 못 들었네. 혀 꼬지 말고 또박또박 한 글자씩 다시 말해 봐.”
“……아, 제발. 왜 이렇게 날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건데? 해 달라는 거 다 해 줬잖아? 내가 진짜 열불 터져서 죽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겠어?”
“하아…… 넌 내가 네 애교에 심장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지금 이러는 거지? 좀만 더 하면 성공하겠다. 계속해 봐.”
“…….”
일리아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미친 듯이 도리질을 치면서 콧김을 뿜어냈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저놈처럼 말이 안 통하는 놈은 정말 처음이었다. 아니,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안 통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들으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니 더 답이 없었다.
“……사…… 사랑하는…… 자기야…….”
조니가 심장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그냥 여러 번 들려주기엔 부끄러운 나머지 일부러 말꼬리를 흐려서 다시 말할 상황을 연출하다니. 그거 너무 반칙이다, 자기야. 그냥 차라리 와서 내 옷을 벗겨. 나한테 벗기게 하지 말고.”
“……사랑하는 자기야, 내가 진짜 미친 척하고 칼부림하기 전에 거기까지만 해 주지 않겠어?”
결국 일리아스의 목소리에 살기가 뚝뚝 묻어났다.
그러나 조니는 미소만 지은 채 일리아스의 볼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췄다. 그러고 나서 허리를 끌어안고 정면에서 똑바로 눈을 쳐다보며 그윽하게 말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 그렇게 앙칼지게 표현하는 거야? 나랑 결혼하고 싶었으면그냥 고백을 하지, 자기도 꼭 그렇게 날 흥분시킨다니까? 아, 이젠 앙탈 부려서 흥분시키지 않으면 자기도 기분이 안 나는 거야? 미안해, 진작 알아주지 못해서.”
“…….”
일리아스는 이 순간 자기 입을 찢어 버려야 할지 조니의 입을 찢어 버려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이 정도로 뻔뻔하니 화를 낼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화내는 것마저 귀엽다며 숨넘어갈 것 같다고 놈한테 화내 봐야 자기만 애교 부리는 꼴이었다.
“하아. 그래서, 용건이 뭐야?”
“부탁 좀 할 게 있어서. 뭐 하나 만들 게 있거든.”
“야,이젠 나보고 아티팩트라도 제조하라고?”
아티팩트가 가내수공업으로 찍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쉽게 말을 꺼내는 걸 보니또 화가 나려 했다. 하지만 크게 화내 봐야 돌아올 말은 뻔한 걸 잘 알기에, 이번엔 목소리도 높이지 않고 최대한 어휘도 신경 써서 골라서 했다.
그러나 조니에겐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야? 어, 이거 혹시 자기가 나랑 그렇게 허물없이 말할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걸 시사하는 건가? 그럼 난 자기 말고 여보라고 말하면 돼?”
“……자기야, 나보고 아티팩트라도 제조하라는 거세요?”
“어이구, 우리자기 당황하니 귀엽네.거세요가 아니라 거예요라고 해야지? 우리 애기 아직 말도 못 뗐어요? 우쭈쭈?”
“야 이……!”
일리아스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소리를 빽 지르려다가, 필사적인 인내심으로 겨우겨우 참아 내었다. 지금 여기서 소리를 질렀다간 돌아올 수 없는스틱스의 강을 건너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왜 그리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느냐는 표정이야? 아…… 혹시 아기 만들고 싶다는 걸 그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였어? 미안. 미처 말 못 뗀 애기 흉내 낸 거라는 걸 알아봐 주지 못해서. 알았어. 지금 당장 만들자.”
“아니거든?! 아니거든요?!”
그러나 조니는 입가에 미소를 실실 띠운 채 일리아스의 빨간 드레스를 휙 들추고있었다. 아니, 이미 박고 있었다.
퍽퍽퍽퍽.
결국 눈물이 팽 돈 일리아스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당연히 대답은 뻔했다. 조니는 이제야 좀 말이 통한다는 듯이 기쁘게 웃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미친 놈이다. 근데 너도 나한테 미치게 해 줄게. 지금 바로 곧.”
퍽퍽퍽퍽퍽!
“으아앙!”
결국 일리아스는 눈물과 정액으로 한껏 범벅이 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