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72화 미네르바 절망 조교 (2)
미네르바는 이제라도 눈앞의 노예 상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불가능해진 일이었다. 동굴에서부터 따라온 수인이 척 보기에도 매우 강했기 때문에 전투의 신성을 잃어버린 지금은 상대할 수가 없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성녀인 척을 하며 다른 수단을 강구했어야 했는데, 완전히 글러 버렸다.
“얼씨구. 얘 눈빛 좀 봐. 라이코스 씨만 없었으면 도망이라도 쳐 볼 생각이었나 보네?”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단지 느슨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강인한 수인 전사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옵니다.”
“하하. 라이코스 씨, 여신이 칭찬해 주는데요?”
“야, 이미 조교 다 된 암퇘지에게 칭찬받아 봐야 기쁘지도 않다. 그나저나 10,000스파크나 내고 살 땐 나도 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조니만 완전 이득 봤네? 발랄라이카가 알면 배 아파 하겠어. 조만간한턱 쏴라, 자식.”
“얘 조교 끝나는 대로 그럴게요. 여신은 처음이라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지만요.”
“뭐, 그래도 밖으로 소문 안 퍼지게 관리 잘하고. 혹여나 들키더라도 알지? 우린 모르는 일이다.”
“물론이죠.”
왕이 알게 되더라도 전쟁의 신성을 손에 넣지 못한 이상 밀수꾼들의 접선지를 없애러 병력을 보내는 건 불가능했지만 조니나 라이코스로서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그런 걸 아는 것은 지배 가문들의 대귀족들뿐이었다.
라이코스의 호위 덕에 별 탈 없이 집에 돌아온 조니는 밀주나 한잔 걸치라고 10스파크를 건네주고 미네르바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헤나가 제일 먼저 배시시 미소 지으며 조니를 반겨 준 뒤 키스를 했다.
“와, 그런데 굉장히 예쁜 노예를 데리고 오셨네요? 아까 데리고 오신 노예들은 페넬로페 언니하고 리즈 언니가 잘 가르치고 있어요. 아, 낙인 찍어야 하니까 불러올까요? 아니면 일리아스 언니?”
“아니, 괜찮아. 낙인은 안 찍을 거거든.”
성녀의 몸에 여신의 정신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잔느와 마찬가지로 정신 마법이나 마법 낙인은 찍지 않을 생각이었다. 또한 조교돼 있는 정신 상태를 봐도 왕 역시 애드베르토 세르빌리는 찍지 않은 게 확실했다.
미네르바를 침실로 데리고 간 조니는 전체적인 상태를 자세하게 체크해 보기 위해 일단 몸을 만져 봤다. 물론 그냥 만지는 것이 아니라 성감은 어떤지, 거부 반응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매우 진하고 음란한 터치였다.
그리고 시작부터 반응이 왔다.
“아, 좋사옵니다. 그대로 더 만져 주소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주 솔직한 암퇘지로군.”
“몸을 달라졌지만 느끼고 즐길 줄은 여전히 아옵니다. 또한 주인이 만져 주시는데 기뻐하는 것은 암퇘지의 당연한 도리이니 부디 사양치 말아 주소서. 소녀, 비록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왕이시오나 현재의 실소유주가 주인이시라는 건 인지하고 있사옵니다.”
“주인 말고 주인님이라고 해.”
“알겠사옵니다, 주인님.”
“그런데 말투는 원래 그런 거야? 상당히 고풍스럽네.”
“왕께서 이리 하라 명하셨사옵니다. 말투나 성격 등은 말씀만 하시면 얼마든지 주인님의 취향에 따르도록 할 터이니 언제든지 하명만 하소서.”
“흠, 그래? 다부진 딸로 해 봐.”
일전의 딸 고양이 플레이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조니가 무심코 그런 주문을 내렸다. 그러자 미네르바가 명랑한 목소리로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빠, 오늘도할 거야? 샤워하고 올까?”
“…….”
“근데 나 설거지 남았는데 설거지부터 하고 오면 안 될까? 설거지하면서 뒤로 하는 건 너무 부끄럽단 말야.”
“……잘하네.”
“칭찬 감사하옵니다, 주인님.”
“그럼 육욕에 빠진 며느리도 해 봐.”
미네르바의 뺨이 순식간에 복숭앗빛으로 물들며 안타까운 한숨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그날부터 자꾸 아버님이 떠올라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늠름한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몸이 달아올라서…… 아아…… 아버님, 미워요…… 절 이렇게 만드셔 놓고 아무 짓도 하지 않으시다니…….”
“……그것도 그만해도 되겠다.”
그 후에는 참하고 조신한 메이드나 명랑하고 순진무구한 무희, 콧대 높은 의사 선생님, 심지어 형부에게 당하고 눈을 뜨게 된 처제 등 최대한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조합해서 시켜 봤지만 무엇 하나 소화해 내지 못하는 게 없었다. 표정이 어찌나 다채롭고 목소리는 또 어찌 그리 다양한지 한두 달 조교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렇게 연기하는 상태로 노래를 부르게 해도 완벽했다.
“연기나 가창력은 완벽하네. 그대로 중앙 극장이나 오페라에 세워도 되겠어.”
“너무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주인님.”
“그럼 왕이 시킨 거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말투랑 성격은 뭐야?”
“왕이 바라시는 것이 곧 제 바람이오니 현재의 말투와 성격이 가장 마음에 드옵니다.”
“필히 바꿔야겠군.”
미네르바에게서 왕의 색깔을 모조리 지워 버릴 생각이었기에 조니는 왕이 시킨 것은 모조리 없애거나 자신의 색깔로 덧칠할 생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를 안 들었구나. 아테나일 때 조교받기 전 본래의 성격과 말투는 어땠지?”
“혹여 주인님께서 기분 상하실까 두렵사옵니다만…….”
“괜찮으니까 해 봐.”
“알겠사옵니다. 주인님께서 명하신다면.”
그리 대답한 미네르바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는 완전히 일변해 있어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드높은 천상에서 하계의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고고한 시선.
“…….”
“…….”
“…….”
“…….”
“말은 안 하냐?”
“…….”
“그래, 알 만하다…… 그만해.”
“죄송하옵니다…….”
눈빛도 고고한 데다 말까지 안 하니 인간 따위랑은 말을 섞지 않겠다는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왕이 굳이 말투와 성격을 바꿔 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 말고 다른 여신들도 다 그런 성격인 건 아니지?”
“아니옵니다. 단지 소녀가 쓸모도 없는 암퇘지 주제에 제 분수도 모르고 오만할 뿐이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그래도 여기가 무슨 황궁도 아닌데 그런 말투는 됐고, 편하면서도 개성 있는 말투로 바꿔. 다른 노예들이랑 구분될 만한 정도로만.”
“그럴까? 쥔님, 쥔님, 이 정도면 되겠어?”
“…….”
“죄, 죄송하옵니다…….”
“너 왕 밑에 있을 때 뭐 했냐?”
“과일 쟁반이었사옵니다…….”
“후우…….”
지혜의 신성을 지녔다는 여신이 왜 정신머리가 이따위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니 자신이 왕이었어도 그냥장식으로 세워 뒀을지도 몰랐다. 이 정도 눈치면 아무리 다재다능해도 뭘 시켜 먹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아니, 이건 어쩌면 하계의 인간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천상의 지혜인 걸까? 사로잡혀서 노예가 된 이유를 지금 하나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됐다. 내가 뭐 너 하나 부려서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하는 것도 아니니 별로 상관없겠지. 아무튼 말투는 일단 됐고, 왕이 널 자유롭게 풀어 준다면 뭘 하고 싶은지 여신으로서 말해 봐.”
조니의 말에 미네르바의 눈이 커졌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왕에 대한 복종심 때문에 아까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에둘러 설명했던 거잖아. 그러니까 왕이 이제 그만 가라고 하고자유가 된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연기해 보라는 거지. 이래 주면 제약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냐?”
“맞사옵니다. 주인님의 말씀이 실로 맞사옵니다. 그렇게 명령해 주신다면 아무리 암퇘지가 된 소녀라도 제대로 말할 수 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굴복한 복종심 때문에 그런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지만 현재의 실소유자가 그런 명령을 내리는 순간 제약이 풀리게 되었다. 이것은 도망가려 하는 게 아니라 왕이 놓아준 상황에 대한 연기이기 때문이었다.
“왕께서 자유로이 풀어 주신다면 분리된 여신의 육체를 되찾아 합일한 뒤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것이옵니다. 그리고 다른 여신들과 연합하여 이 바티칸에 대한 총공격을…….”
거기까지 말했을 때 조니가 눈을 딱 감고 손을 휘저었다.
“어, 됐어. 거기까지. 들을 필요가 없네, 그냥. 뭐가 어쩌고 어째?”
조니는 이 노예 도시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이곳에서 성공하여 어여쁜 노예들을 잔뜩 데리고 고위 귀족이 되어 떵떵거리고 사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뭐? 다른 여신들을 데리고 총공격을 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자, 내가 너에게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설계해 줄게.”
“그게 무엇이옵니까?”
미네르바는 불길한 심정이 되어 그렇게 물었고 조니는 해맑게 웃었다.
“영원히 나만을 위해 헌신하며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천상에 돌아가고 총공격을 감행하고 그런 건 다 잊어. 머릿속에서 아주 그냥 지워 버려. 혹시 친구들이 그러자고 해도 말리는 거야. 알았어?”
“마음속에 품고 있지도 말라는 말씀이시옵니까?”
“어. 넌육체를 되찾고 자유가 되어도 내 밑에 있는 게 네 인생 최대의 목적이고 행복인 거야. 설령 조교가 풀려 제정신을 찾더라도 나만 바라보고 생각하게끔 네 머릿속을 스스로 개조해.”
“……소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주인님의 명령에는 따를 수가 없사옵니다.”
미네르바는 따를 수 없다고 말했지만 조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은 왕에게 종속돼 있는 이상 당연한 소리였고, 왕에 대한 그림자를 앞으로 지워 갈 생각이었으니 그 이후에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심어 두면될 일이었다.
“왕에 대한 그림자는 모조리 지워 줄게. 왕을 완전히 잊게 된다면 가능하겠지?”
“그때에는 가능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주인님이시여, 소녀를 좀 더 쓸모 있게 쓰시려면 최소한의 자유 의지는 허락해 주심이…….”
조니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자유 의지 같은 건 없어도 돼. 여신 노예라면 가지고만 있어도 컬렉션이 되니까. 그냥 따먹고 싶을 때 따먹고 발이나 핥게 하고 그럴 거라니까? 내가 뭐 널 갖게 됐다고 해서 전쟁 일으키고 그럴 사람으로 보여? 나 소박하고 평화로운 사람이야.”
“…….”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왕에 대한 복종심이 사라지는 순간, 넌 그냥 해바라기가 되어 나만 바라보면 돼. 생각? 그런 걸 해서 뭐 해? 칼로리 아깝게.”
“…….”
미네르바는 절망했다. 그녀의 새로운 주인님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