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62화 델리아니 이간질 완료 & 젖소 노예 확정
지하 감옥의 고문실로 내려가자 쇠사슬에 결박돼 벽에 매달려 있는 델리아니의 모습이 보였다. 힘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함을 알아서인지 탈출 시도는 안 하고 눈을 감고 최대한 편하게 선 채 체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지낼 만해 보이네?”
“…….”
델리아니는 눈을 뜨고 잠시 조니를 지긋이 노려보기만 했을 뿐 곧바로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눈빛에 담긴 적의는 여전했지만 애드베르토 세르빌리에 저항하느라 대꾸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거센 반항을 기대했던 조니로서는 약간 맥이 빠졌지만 그 정도야 조금만 골려 주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보여 줄 테니 크게 아쉬울 건 없었다. 델리아니에게 가까이 다가간 조니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번에 네가 울린 이후 잔느가 사흘 동안 네 얘기는 한마디도 안 꺼낸 거 알아?”
“…….”
델리아니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지만 호흡이 거칠어진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조니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잔느가 묻기 전에 잘 먹여 주고 있고 건강하다고 매일같이 먼저 말해 줬으니 그런 것이었지만, 묶여 있는 델리아니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이젠 키스를 해도 조금도 거부하지 않아. 오히려 내 목에 팔을 두르거나 하면서 기쁜 듯이 재촉하듯 응해 오지. 기분 좋았냐고 물어보면 선선히 그렇다고도 대답하고. 아, 침대에서 응응, 으응 하면서 신음을 흘리며 날 꼭 끌어안는 게 특히 걸작인데, 믿을 수 있으려나?”
끝까지 대꾸하지 않던 델리아니도 마지막 한마디에는 불길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저주받을 악의 종자. 성녀님을 더럽히다니,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평소라면 절대 믿지 않았겠지만 이미 저번에 잔느의 태도를 통해 반 이상 확신하게 되었기에 마냥 둘러대는 거짓말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정의롭지만 순수하기만 한 잔느라면 이미 악에 물든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리고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버린대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사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이렇게 쇠사슬에 묶여 있는 네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날 풀어 줄 용기가 없어서 벽에 묶어 놓고 조롱만 하는 게 전부니 어쩔 수 없지.”
“응? 혹시 지금 그거 도발이라고 한 거야? 이런, 나 분노하면 되는 건가? 하하!”
조니는 기도 안 차는 귀여운 도발에 어이가 없어 웃음만 터져 나왔다. 같은 사냥꾼을 사냥하고 노예를 뺏어 가기도 하고 잠금장치 따위 달려 있지 않은 판잣집에서 살았던 그를 협박하려면, 스스로 엎드려 머리를 처박고 굴종하고 스스로 다리를 벌려 확실히 노예가 되었음을 보여 준 뒤에 허리 위에서 신음하고 울부짖으며 기뻐하다가 안에 정액을 받으며 절정하며 쓰러진 뒤 이빨로 경동맥이라도 물고 하지 않는 한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애초에 노예 도시에서 이미 노예가 된 여자가 할 수 있는 협박이 그 정도밖에는 없었다.
드레니카처럼 종 자체가 아예 다르고 물려받은 피가 아주 특별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래서 드레니카가 특별한 것이고 이미 한 번 노예 상인을 때려죽였음에도 처분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은 아예 대주교 중 하나를 죽이고 탈주했으니 얘기가 달라졌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고위 귀족이었다면 완전한 복종심을 끌어낼 방법을 강구한 뒤 다시 족쇄를 채웠을 게 분명했다.
“네가 아직 이곳에서 노예를 강제하는 수단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내가 정말 널 순한 양으로 길들여 내 발을 핥게 할 줄 몰라서 이렇게 묶어 두기만 하는 게 아냐. 일리아스를 시켜 모든 명령에 따르게 하는 도미니 딕텀을 걸게 하면 넌 자살하라는 명령에도 따를 거고 여신을 모욕하라는 말에도 따를 거거든.”
“흥. 그렇게 자신 있으면 바로 하지 왜 그냥 두는 거지? 허세는 작작 부려라, 겁쟁이 악마 놈.”
이어지는 델리아니의 조롱에 조니는 피식 웃어 주기만 했다.
“잔느가 그랬거든. 반드시 내 말을 잘 듣게 자기가 직접 조교해 주겠다고. 그러니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이간질하려 해도 소용없다.”
델리아니는 조니의 말을 믿지 않는 척했지만 대답에도 시간이 걸렸고 목소리에도 처음처럼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이미 악마에게 순결을 바치고 악에 물든 이상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에. 또한 여신의 눈물을 빼앗지 않는 조건으로 내건 상호 존중이 바로 잔느가 자신을 조교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하. 그거야 조만간 잔느가 내려와서 채찍을 잡으면 알게 될 테니 내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안 그래?”
“…….”
조니는 델리아니가 입을 다물고 눈을 꾹 감은 것을 보고 입꼬리만 말아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분위기는 잡혔으니 진짜 목적을 꺼낼 차례였다.
“어쨌든 조교는 전적으로 잔느에게 맡길 거지만, 아직 경험이 없는 초심자인 만큼 종류는 정해 줄 필요가 있어서 한 가지 물어보려고 내려왔어. 난 지금 초심자도 쉽게 할 수 있는 조교 두 가지를 생각 중인데 혹시 네가 정말 싫다고 하는 쪽이 있다면 그건 피해 주려고. 아, 물론 유치하게 정말 싫다고 한 걸 고르진 않을 테니 그건 걱정할 거 없고.”
델리아니로서는 그런 말을 한다 한들 당연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물어는 보았다. 어떤 조교를 가하든 저항하고 견뎌 낼 생각이었지만 미리 알아 두면 미리 대비는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젖소 노예와 육변기 노예. 젖소는 노예 도시 비장의 기법으로 영구 수유 수술을 한 뒤 농장에 가둬 놓고 젖만 짜는 노예야. 정말로 일생 동안 젖만 짜이다 죽는 젖소지. 일단 영구 수유 수술을 한 뒤에는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니 참고하고. 그리고 육변기 노예는 말 그대로 육변기 틀에 갇혀 몸뚱이로 똥오줌을 받는 변기가 되는 거야, 하하. 설마하니 등짝 같은 데에 싸 줄 거라 생각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연히 입으로 처리하는 거니 헛된 희망을 품으면 곤란해. 알았지?”
“무, 무슨 그런 끔찍한 짓을…… 나한테 한다고?”
“응. 물론 내가 아니라 잔느가 할 거지만, 하하.”
상상을 초월하는 악마 같은 짓거리에 빛의 기사단장인 델리아니조차 안색이 파리해지고 다리가 비틀거렸다. 그녀가 생각한 조교와 고문은 평범하게 묶어 놓고 가두고 때리고 욕하는 것이었다. 가혹하다 해도 기껏해야 불로 태우거나 날카로운 가시로 찌르거나 하는 정도였지, 사람을 가축 취급 해 평생 젖만 짜는 젖소로 만들거나 똥오줌을 받게 하는 육변기 취급 같은 건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자, 말해 봐. 그래도 잔느를 생각해 더 싫은 쪽은 피해 줄 테니까. 좋아하는 쪽을 고르라는 건 무리겠지만 더 싫은 쪽은 고를 수 있겠지?”
“…….”
하지만 어느 쪽도 고를 수 없는 델리아니는 혼이 반쯤 빠져나갈 것 같은 충격 때문에 입이 덜덜 떨리고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할 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내가 무시당하는 걸 정말 싫어해서 그러는데, 만약 끝까지 대답 안 하면 젖소로 기르면서 죽을 때까지 똥오줌만 먹일 거야. 그것도 네가 싼 똥오줌과 잔느의 것을. 그러니까 기회를 줄 때 하나는 골라라.”
조니의 말이 이어지자 델리아니는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져 악마를 본 것 같은 얼굴로 절망하며 울먹거렸다. 아무리 대가 세고 당당한 그녀라도 그런 꼴을 당하면 하루도 못 버티고 자살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눈앞에 있는 이 악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충성 맹세를 할지도 몰랐다. 지금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속삭이는 머릿속의 사악한 목소리에 저항하느라 넋이 나갈 지경인데, 똥오줌을 받는 젖소까지 돼 버리면 더 이상 버티는 건 그 누구라 해도 불가능했다. 설사 교황님이라 해도 그런 고문을 견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답은?”
“시, 시간을 다오. 어떻게 그런 걸 바로 고르란 말이냐! 크윽!”
“서 있기도 다리 아프니까 1분 주지.”
“그, 그런 어처구니없는…….”
“30초.”
“……!”
말대답 한 번 했다고 바로 절반으로 줄어든 시간에 델리아니는 또다시 절망했다. 눈앞에 있는 인간은 인간도 아니었다. 정말로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
‘젖소와 육변기라니! 그런 선택을 어떻게 30초 만에 하라고!’
“20초 남았다.”
“크으으윽!”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여신의 곁으로 가지 못하더라도 자살해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할 방법조차 없었다. 혀를 깨무는 정도로는 설사 반으로 잘린다 해도 피가 좀 흐르다 멎을 뿐이지 죽게 되는 정도로 출혈이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10초.”
“크아아아악! 젖소! 젖소를 택하겠다!”
끝끝내 델리아니는 젖소 노예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똥오줌을 받아먹는 육변기보다는 차라리 가축 취급을 받는 것이 나았다.
델리아니의 선택에 조니는 빙긋이 웃었다.
“좋아. 육변기 확정이다.
“……?! 그게 무슨 소리냐! 젖소를 선택했지 않느냐!”
델리아니의 악 받힌 비명 같은 고함에도 조니는 웃기만 했다.
“싫어하는 쪽을 고르랬잖아? 그건 피해 준다고. 젖소를 골랐으니 육변기를 시켜 준다는데 왜, 내가 거짓말한 거야? 난 분명 말한 대로 지켰을 뿐인데?”
조니의 설명에 델리아니는 눈이 사방으로 흔들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좋아하는 쪽은 못 고르겠지만 싫어하는 쪽은 고를 수 있지 않겠냐면서.
“자, 잠깐! 내가 잘못 말했다! 난 젖소 노예가 되겠다고 말한 거였어! 유, 육변기 쪽이 훨씬 더 싫다!”
“아, 그래?”
“그렇다! 그러니 제발……!”
델리아니가 반쯤 발광하듯 몸부림치며 눈물을 흘렸지만 조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만 했다.
“근데 내가 왜 스스로 한 말을 번복해 가면서 네 실수를 받아 줘야 하지? 나만 입 가벼운 놈 되는 건데. 나한테 이득 될 게 없잖아?”
“워, 원하는 걸 말하라! 내가 뭘 해야 되지? 뭘 하면 번복해 줄 것이냐!”
처녀를 바치래도 당장 다리를 벌릴 것처럼 필사적인 델리아니를 본 조니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얘는 이래서는 안 됐다. 절대 마음을 굽히지 않고 저항심을 가진 채 독초처럼, 가시처럼 반항해야 했다. 그래야 관상하는 재미가 있고 기르는 맛이 있는 노예지 시든 야채처럼 순해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반항심을 부추겼다. 하는 김에 덤으로 이간질도.
“뭐, 좋아. 기분은 나쁘지만 급하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거니 특별히 용서해 주도록 하지. 대신 한 가지만 지켜.”
“지, 지키겠다!”
“내 앞에서 잔느를 욕하지 마. 잔느가 널 직접 조교하겠다고 해서 젖소 노예로 전락했다고 감히 내 앞에서 욕하면 이 용서는 없는 거야. 잔느는 감히 너 같은 냄새나는 노예가 욕할 수 없는 내 여자다. 알았어?”
“아, 알았다. 절대 네 앞에서 성녀님을 욕하지 않겠다. 그것만 지키면 되는 거냐?”
“그래. 수술은 이따 외출할 때 같이 데리고나가서 해 주도록 하지. 내일부터 나 마실 우유 짜게 할 거니까 맛있게 만들어 달라고, 하하!”
그 말을 끝으로 조니는 손을 흔들면서 고문실을 나갔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델리아니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눈물 흘리다가, 조니와 잔느를 생각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개 같은 악마 놈! 내가 널 먹이려고 젖소가 되겠다고 한 줄 아느냐? 육변기를 택할 수 없어서 그런 것뿐이다! 쇠사슬만 풀리면 당장 쳐 죽여 버릴 놈! 그리고 잔느, 악마 새끼한테 몸을 얼마나 팔았길래 저렇게도 챙겨 준단 말이냐! 여신께 선택을 받은 딸 주제에 악마에게 다리를 벌리고 몸을 팔다니! 개만도 못한 년! 평생 악마의 비호나 받을 지옥의 창녀 같은 년! 너 같은 년을 지키기 위해 내가 이 정벌전에 끼어들게 되다니!’
어떻게 유혹했기에 자기 앞에서 욕하는 꼴을 못 본다는 말까지 나온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 사악한 악마 종자 ‘눈앞’에서만 하지 말라는 약속이었다. 둘만 있을 때는 해당되지 않는.
델리아니는 그 사실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주지시키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시커멓게 악의로 물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