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49화 잔느 & 델리아니 이간질 공략 시작
조니는 없던 신앙심이 마구 샘솟는 걸 느끼며 잔느에게 말했다.
“잘 때는 나와 같은 침대를 쓸 것. 스스로 원하기 전엔 덮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제가 당신을 원하는 날이 오기라도 할 것 같나요? 알았어요. 하지만옷은 입고 자겠어요.”
잔느의 말에 조니가 피식 웃었다.
“리즈.”
“야옹!”
리즈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칠흑의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새하얀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입고 있는 것이라곤 작은 방울이 달린 목줄과 엉덩이에 박혀 있는 애널 꼬리뿐이었지만 부끄럼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 고양이 자세를 취하고는 조니의 발에 대고 뺨을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뭘모르나 본데 노예 도시의 모든 노예는 완전히 벗고 있는 게 기본 복장이야. 어디 허락도 없이 옷을 입고 다니려고 해?”
“마, 말도 안 돼요. 그럼 저기 저 두 사람은요?”
당황한 잔느가 아리스톨과 페넬로페를지목했지만, 그녀들은 조니가 명령하기도 전에 알아서 갑옷을 벗었다.
털컹털컹.
밖에서 주워 입은 빛의 기사단 갑옷을 벗자 역시 그 안에는 새하얀 알몸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다만 아리스톨의 경우는 젖꼭지와 클리토리스, 배꼽 등에 피어싱이 되어 있고 전신에 백금색의 타투가 새겨져 있어 잔느의 충격을 곱절로 안겨 줬다.
“세상에…… 어찌 여자의 몸에 저런 짓을…….”
“예쁘지? 성녀의 알몸에도 새기면 얼마나 예쁠지 궁금하지 않아? 특별히천사의 날개를 그려 줄게.”
“시, 싫어요! 절대 할 수 없어요!”
잔느는 기겁을 하며 세차게 도리질을 했지만 조니는 여유롭게 웃을 뿐이었다.알아서 최고의 반응을 보여 주니 굳이 구석으로 몰고 갈 것도 없었다.
“옷 입게 해 줄까?”
“……네.”
“아, 그 전에 너희들은 갑옷 도로 챙겨 입고. 새 노예들 반항하지 못하게 감시 잘하고 있어.”
“네, 주인님.”
아리스톨과 페넬로페에게 도로 갑옷을 입게 한 조니는 다시 잔느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 낮에는 입게 해 줄게. 하지만 잘 때만큼은 벗어.”
싫으면 하루 종일 벗고 다니란 소리였으니 거부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알겠…… 어요.”
“좋아, 여기까지 됐고. 다음은 피어싱과 타투도 하지 말아 달라고?”
“…….”
잔느는 점점 나락에 빠지고있는 기분이었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건 상호 존중들도 포기할 수 없었지만 성기에 액세서리를 하고 전신에 문신을 새긴다는 것 역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하하. 너무 불쌍해 보이니 이건 간단한 걸로 해 줄게. 내가 묻는 말을 무시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않을 것. 이 정도면 어때?”
조니 말대로 간단한 조건이었다. 어차피 성녀 된 몸으로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 잔느였으니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네, 알았어요.”
조니 역시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조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쉽게 넘어간 것이다. 아마 잔느는 노림수를 깨닫게 되면 그냥 피어싱과 전신 타투를 받을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겠지만, 저울질 계산이 간단히 끝나지 않게끔 강도를 서서히 올려갈 생각이었다.
“자, 그럼 다음은 식비를 해결해 보자. 원래 노예 식비는 주인이 해결해 주는 게맞긴 한데, 아가씨는 일단전리품이긴 하지만 스스로 성녀 노예가 되는 건 거부했잖아? 그러니 최소한의 밥값은 해 줘야겠어.”
“말해 보세요.”
“나나 내 노예가 다치면 치료해 줄 것.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노예 도시의 주민들이다 보니 꺼려지기는 했지만 조니를 제외하면 나머진 원치 않게 노예가 된 여자들이니 크게 꺼려지는 건 아니었다. 잔느는 잠시 생각해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저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요.”
당연히 노예 도시에 잔느가 생각하는 밥다운 밥은 없었지만 그건 나중에 먹게 됐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 놓기로 했다.
“대충 이 정도면 기본적인 상호 존중은 됐고. 혹시 뭐 또 존중받고 싶은 거 있어?”
필요한 족쇄들은 적당히 채운 조니는 잔느에게 선택권을 넘겨줬다. 이제부턴 보너스 타임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잔느의 요구가 지나치게 컸다.
“다른 자매들도 저와 같은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불가능하지. 잔느 아가씨는 성녀 자격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우해 주는 거고 저것들은 그냥 도매가로 팔아 버릴 건데. 다른 사람 걱정보다 본인 걱정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어떻게든 안 될까요?”
“스스로 노예가 되길 자처한다면 고려는 해 보지.”
“…….”
“하하, 결국 다른 사람보단 자기 몸이 소중한 거야? 그럼 한 명만 골라 봐. 한 명 정도는 말벗이라도 하라는 의미에서 안 팔고 같이 길러 줄 테니까. 이건 별다른 조건도 안 붙이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취지에서 그냥 들어줄게.”
한 명.
수많은 자매들 중에서 한 명만 고르라는 그 잔인한 말에 잔느는 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눈을 감아야만 했다. 누군가를 고른다는 건 결국 나머지모두를 버린다는 것과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다고 그 한 명마저도 고르지 않는 건 한 명은 구해 줄 수 있음에도 외면하는 것이었으니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모두를 버렸다는 원죄를 안고 가게 되더라도.
잔느는 눈을 감은 채로 떨리는목소리로 말했다.
“델리아니…… 델리아니를 팔지 말아주세요.”
“서, 성녀님…… 저는, 괜찮…… 으니…… 크윽.”
“델리아니? 괘, 괜찮으신가요?”
잔느는 델리아니가 괴로워하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계속, 사악한 목소리가…… 큭.”
“제 목걸이를 드릴게요! 이 목걸이라면……!”
“안 됩니다! 큭! 절대 그 목걸이를, 떼지 마, 마십시오……!”
델리아니는 여신의 눈물을 벗어서 건네주려는 잔느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그 목걸이를 벗으면 잔느 역시 노예 도시의 사악한 마법에 그대로 침식당하게 되니 벗게 해선 안 되었다.
“그 목걸이가 뭔데 그래?”
“이, 이건…….”
조니가 묻자 잔느는 당황하여 말꼬리를 흐렸다. 말해선 안 되는 건데, 방금 전 서로 동의한 상호 존중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묻는 말을 무시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만약 그걸 어긴다면 그녀의 몸에는…….
결국 잔느는 눈을 질끈감고 억지로 겨우겨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악한 존재를…… 막아 주는…… 신기예요…….”
그때 일리아스가 나서며 부연 설명을 해 줬다.
“교황급 아티팩트야. 내 정신 마법도 그대로 무효화됐으니 아마 노예 도시의 모든 마법이안 통할 거야. 팔아도 몇만 스파크는 받을 수 있을걸.”
조니는 그 설명에 대한 칭찬보다 다른 것을 물었다.
“그래? 근데 넌 왜 애드베르토 세르빌리 찍힌 건 똑같은데 그렇게 멀쩡해? 아까 전의 태도를 보면 안 통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효력은 틀림없이 내게도 작용하고 있어. 단지 다른 일반적인 노예들과 달리 고통스럽지 않을 뿐이지. 시끄럽긴 해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 안 물어보면 안 될까?”
조니는 씩 웃었다.
“뭐,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니니 상호 존중이라면 얼마든지. 묻지 않는 데 대한 대가는 네가 알아서 대등하게 맞춰 줄 거라 믿을게. 믿어도 되지?”
“…….”
“어, 안 돼? 표정이 별로다?”
“믿어. 믿어도 돼. 알아서 잘할 테니까.”
일리아스는 뾰족하게 말하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조니가 보기에는 앙탈을 부리는 것 같아서 귀엽기만 할 따름이었다. 마법 낙인을찍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보지 못했을 테니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뭐, 어찌 됐든 꽤나 골치 아픈 아티팩트란 거네. 원래 노예의 것은 모두 주인의 것이니 그것도 내가 회수해야 옳겠지만…….”
굳이 뒷말을 이을 것도 없이 잔느가 먼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어떤 물건인지 들킨 이상 힘으로 뺏으려 들면 막을 수가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가 뭘 하면 빼앗지 않을 건가요?”
조니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글쎄? 난 더 이상 딱히 존중받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떠올려 보세요.”
“와, 강요하는 거야?”
“부디 떠올려 주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해도 더 이상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냥 팔아 버리는 게 더 이득인 것 같은데?”
“이, 이, 악마 같은, 놈……! 성녀님에게 거래를 강요한, 큭…… 걸로도 모자라…… 신성 제국의 3대 신기를, 빼앗겠다니……!”
“거참…… 원랜 없었는데 네가 그런소리 하는 거 보니까 하나 떠오르네. 이봐, 잔느 아가씨.”
“……네, 말하세요.”
잔느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아가씨가 직접 저 노예를 길들여. 내게 절대 복종하게끔. 그러면 그 목걸이는 뺏지 않을 테니까.”
“말도 안 돼요. 어찌 그런…….”
“싫으면 내놓고.”
“…….”
“이야, 진짜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는데 좋은 아이디어를 내 줘서 고마워, 델리아니. 네 그 희생은 정말 잊지 않을게.”
“이 악마!”
“잔느 아가씨, 대답은?”
“……그냥 목걸이를…….”
잔느가 여신의 눈물을 포기하려는 듯 말하려고 하자 델리아니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만류했다.
“성녀님! 절대안 됩니다! 그 목걸이가, 큭! 악의 도시에 넘어가게 되면 신성 제국은……! 언젠가 신성 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반드시 지켜 내야 합니다!”
“하지만 델리아니, 그랬다가는 제가 당신에게 못 할 짓을 해야만 해요.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고 과연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희망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성녀님! 저는 괜찮습니다! 큭, 저는 얼마든지 괜찮으니 저자의 말대로 하십시오! 저는 견딜 수 있습니다!”
“……정말 괜찮겠어요, 델리아니?”
잔느는 슬픈 표정으로 델리아니를 보며 물었고 델리아니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힘 있게 끄덕였다.
“전 괜찮습니다, 성녀님.”
“……알았어요.”
“하하, 보기 좋은 광경이네.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참 예뻐.”
“이 악마 같은 놈! 크윽! 이런다고 해서 내가 넘어갈 줄 아느냐!”
“잔느 아가씨, 노예 말버릇이 영 아닌데?”
조니는 델리아니를 비웃으면서 잔느에게 턱짓을했다.
“……네. 델리아니, 말이 너무 심해요. 조금 차분하게 하는 게 좋겠어요…….”
“걱정 마십시오, 성녀님. 성녀님은 그렇게 저자의, 큭…… 말에 따르는 척만 하시면 됩니다…… 이 악마……! 빛이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델리아니는 결코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듯 굳건한 모습을 보여 줬지만, 조니는 이 상황이 즐겁기만 했다.
“야, 잔느. 노예 관리 똑바로 못 해? 저렇게 대들 때까지 똑바로 안 가르치고 뭐 했어? 너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교육해 줘야겠어?”
“……델리아니.”
잔느는 더더욱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델리아니를 쳐다봤고, 델리아니도 상황을 파악하고 당황하고 말았다. 단순히 성녀님이 자신을 감독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걸 빌미로 성녀님을 욕되게 하고 괴롭힐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이런 악독한 악마 놈…….”
“아, 진짜 안 되겠네. 야. 교육 똑바로 못 시키면 너부터 쌍년이라고 부른다?”
결국 중간에 낀 잔느의 눈에서만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 욕 한마디 들어 본 적 없이 자란 그녀기도 했지만 델리아니의 말을 들었다가 그녀 때문에 이런 멸시를 받는 게 너무 슬퍼서였다.
‘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델리아니 때문에 내가 왜 원치도 않는 이런 짓을 저런 모욕까지 받아 가면서…… 흑.’
그러나 이미 상호 존중은 맺어졌고, 여신의 눈물을 그냥 주겠다고 해 봐야 델리아니만 자신을 원망할 테니…… 잔느는 델리아니가 원한 대로 그녀를 모욕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똑바로 교육시킬게요…… 델리아니…… 계속 그렇게 함부로 말한다면 저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어요. 노예답게처신을 똑바로 하도록 하세요. 저분은…… 당신의 주인님이세요.”
“서, 성녀님…….”
델리아니는 목소리에 진심이 들어가 있는 잔느의 태도에 한결 더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러던 게 아니었는데 상황이 점점 서로에게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니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 빛의 기사단장과 성녀의 결속력을 보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간질은 별게 아냐. 배려 깊은 이타심에서 상대의 마음만 헤아리지 못하게 하면 이기심이 되어 서로를 갉아먹게 되는 거거든. 계속 그렇게 영원히 서로를 힘들게 하며 믿음을 깨고 의심해라. 둘 다 스스로 내 편이 될 때까지, 하하.’
조니의 눈에는 이미 서로를 완전히 못 믿게 돼서 자신에게 서로를 험담하는 두 여자의 모습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