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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48화 잔느 공략 준비 (49/95)



〈 49화 〉48화 잔느 공략 준비

잔느가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릴 때, 구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내려왔다.

“잠깐 멈춰 봐, 조니.”

이제는 노예 신세가 된 일리아스였다. 그녀는 잔느에게도 마법 낙인을 찍으려 하는 조니에게 잠시 멈출 것을 제안했다.

“잠깐 멈춰 봐? 조니?”

조니는 일리아스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그녀가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일리아스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평소의 말투를 고수했다.

“……안 들으면 후회할 정보가 있어. 하지만 내게 그렇게 강압적으로 굴면 나도 말하지 않고 비협조적으로 나갈 거야.”

“그냥 후회하고 널 개처럼 막 부리는 것도 끌리는데? 전직 고위 귀족 출신인 대마법사를 최하층 노예 상인이 가지고 노는 것도 꽤 짜릿할 것 같거든. 발을 핥게 하고 야옹야옹 울게 하고.”

“제발 그러지 마, 조니. 날 제대로 대우해 줘. 그럼 나도 도와줄 테니까. 우린 얼마든지 잘해 나갈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어. 비록 시작은 최악이 돼 버렸지만 과정까지 최악으로 만들진 마. 그럼 나도 힘들어지겠지만 너도 후회하게 될 거야.”

“이야, 요즘 노예는 주인에게  협박도 하네. 근데 내가 후회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난 이미 목적은 초과 달성했어. 네가 끝내 굴복하지 않고 말을 안 듣는다 해도 그냥 평생 지하 감옥에 가둬 놓고 감상만해도 즐거울 거야. 말 잘 듣게 되는 건 그저 보너스지.”

“……간청할게. 제발 날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 줘.”

“그럼 일단  정보부터 말해 봐. 듣고 나서 참작은 해  테니까.”

손해 볼 게 없는 조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짱을 부렸고 결국 아쉬운 일리아스는 먼저 정보를 토해 내는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협박이나 제안도 아쉬운 게 있어야 통하는 거지, 지금처럼 아쉬울  눈곱만큼도 없을 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하아…… 내가 정말 어쩌다 이런 꼴이 됐는지  수가 없네. 정보는 성녀의 자격에 대한 거야. 성녀는 기본적으로 믿고 있는 여신에게 인정을 받아 자격을 부여받기 때문에 그 자격을 잃으면 힘도 사라져. 단순히 눈요기로 삼을 거라면 상관없지만 성녀의 능력을 보존한 채로 노예로 삼을 생각이라면 마법 낙인을 비롯해 정신 마법은 어떤 것도 사용하면  돼.”

“아, 그런 거야? 모르고 있었네.”

“일반노예 상인들은 성녀를 잡아  적이 없었으니까. 고위 귀족이 아니라면 모르는 정보야.”

“좋아, 확실히 모르고 있었으면 후회할 만한 정보인  맞네. 인정해 줄게.”

“그럼 내 대우도…….”

“말 안 했으면 네가 생각하는 최악의 대우를 받았을 거야. 미리 말한 상으로 벌주려고 했던 건 참아 줄게.”

“…….”

일리아스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소리였지만 따지고 들었다가 말을 바꿔 버리면 그녀만 손해였기에  이상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거래가 통한다는 건 알았으니 최소한의 희망은 찾은 셈이었다.

“스파크가 필요하지 않아? 연구 자금 목적으로 받아  게 꽤 있어.”

“얼마나 되는데?”

“30,000스파크 이상.”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그렇게 급하지는 않은데?”

사실 아주 필요했지만 조니는 여전히 배짱을 부렸다. D급 노예 납품 계약을 몇 달 정도 반복하면 벌 수 있는 금액이기도 했지만, 물가가 살인적인 노예 도시에서는 S급 노예라도 하나 조교할라치면 수천 스파크에서 일만 스파크 정도는 우습게 썼다. 중간중간 길이 잘못 들거나 조교가 잘 안 풀리면 30,000스파크라도 다 써 버리게 될 수도 있었다.

필요하기도 하고 있으면 편한 건 분명하지만 무언가 대가를 줘 가면서까지 받아야만 하는  아닌 금액이었다. 자릿수가 하나 더 많다면 또 모를까.

“그냥 준다면 받아 줄게.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되고. 근데 난  사실을 평생 기억할 거야.”

“……그냥 줄게. 필요한 데 써.”

괜히 먼저 말을 꺼냈던 일리아스는 본전도 못 찾고 30,000스파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내놓을 때까지 고문을 하겠다는 게 낫지 기억하겠다고 하니 피를 말리면서 괴롭힐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 참 착하구나, 일리아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말 잘 들으면 나도 어느 정도 사정은 봐줄 수 있어.”

“…….”

협조적인 게 아니라 말을 잘 듣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일리아스는 그런 부분을 지적하며 정정해 달라고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런 표현을 들을지언정 최소한의 대우를 받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어차피 마법 낙인이 찍힌 이상 곁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스파크가 아무리 많아 봐야 무의미했다.

‘마법 몇  쓸  있는 양만 남겨 놓고  줘야지. 방심만 하면 뭔가 수를  수도…….’

“참, 왕창 주면서  주는 척해 놓고 비자금 챙겨 놓는  아니겠지? 만약 나중에 몰래 마법으로 수작부리다 들키게 되면 차라리 안 주는 것보다 못한 대우를 받게 될 거야. 아, 자존심 하나는 노예 도시 최고인 일리아스니까 그런 저열한 짓은 안 하려나?”

“…….”

“우리 일리아스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 괜히 의심해서 미안해.   믿고 있어.”

“……다줄게.”

그녀의 대쪽 같은 성격에 그런 소릴 듣고도 스파크를 남겨 놓는 수작을 부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었고 거짓말을  본 적도 없는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그 성격 때문에 특수조를 맞아 위험에 빠졌고 결국 노예 낙인까지 찍히게 됐지만, 그래도 일리아스는 아직 그런 자신의 성격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이 그녀와 다른 사람을 구별시켜 주는 유일한 고유성이었다. 한 번이라도 삽입을 하면  이상 처녀가 아니게 되듯이 한 번이라도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그녀는 일리아스가 아니게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미 난생처음으로 협상도 시도하고 충분히 아쉬운 소리를 한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마지노선이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그대로 성노예가 취급을 받게 되느니 최소한의 협상으로 자존심만큼은 지켜야 했다.

“역시 일리아스라니까. 하도 고지식해서 삥땅도 못 쳐요. 나 같으면 100스파크라도 남겨 놓겠다.”

“나 고지식한 거 아니거든?”

발끈한 일리아스가 바로 반박했지만 돌아온 건 더욱 기분아 나빠지는 긍정이었다.

“그래그래, 너 안 고지식해. 아주 유연한 성격이야. 깜빡 잊어서 미안해?”

“…….”

일리아스는 그냥 입술을 꾹 다물고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다짐해 버렸다. 그리고 속으로 최대한의 반항을 했다.

‘나쁜 놈.’

“하하. 그런 표정도 지을  아는구나. 생각보다 귀엽네, 귀족 아가씨는.”

조니는 새침한 듯 토라진 일리아스의 얼굴을 보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아닌  아니라 정말로 평소의 고지식한 성격과 대쪽 같은 모습을 볼 때 상상도 못 한 표정이었다. 살살 풀어 줄 듯 말 듯 하면서 데리고 놀다 보면 놀리는 맛이 쏠쏠할  같았다.

‘일단 일리아스는 이 정도로 하고, 성녀가 문제네.’

살면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였으니 이대로 성녀의 자격을 없애 버리고 싶지 않았다. 정확한 능력은 모르지만 일단 치료 능력에 있어서는 견줄 자가 없다고 하는 게 성녀였으니까.

앞으로 콜로세움의 토너먼트를 비롯해 노예들이 다칠 일이 많은 조니로서는 엄청난 비용 절감과 함께 명성을 알리는 상징성이 되어   있었다.

“이봐, 성녀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돼?”

“……잔느예요.”

“좋아, 잔느 아가씨. 난 성녀를 노예로 두고 싶은데 아가씨는 내 노예가 되어 줄 생각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조니의 태연한 질문에 잔느는 기가 차서 코웃음을 쳤다. 아니라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해도 말도  되는 소리였다. 이곳이 신성 제국이었다면 농담으로 건넨 말이라고 했어도 그대로 끌려가 이단 심문을 받게 됐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홀딱 벗겨서 강간하는 건?”

“무, 무슨 그런 파렴치한 소리를…….”

“노예 도시에 쳐들어왔으면 잡혔을  그런 꼴을 당하게 되는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설마 곱게 포로 대우 받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

솔직히 말하면 잡힌다는 생각을 아예 한 적이 없었다. 싸우다 죽어 순교하게 되는 거라면 모를까 열에 아홉은 복귀하여 신성 제국으로 돌아간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었다.

“여튼 난 성녀 노예가 되어 줄 생각이 없다면 그냥 강간해서 성노리개로 삼을 생각인데, 괜찮겠어?”

“……그냥 죽여 주세요.”

“에이, 내가 왜. 상품에 손대면 장사 못 하지.”

“…….”

“고민이 많은 얼굴인데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자살은 성전에서 금하고 있었기에 생각조차 할  없는 잔느는 일단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 보기라도 하는 수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얘기해 보세요.”

“서로 상호 존중을 하는 거야. 나는 아가씨를 존중해 주고, 아가씨는 나를 존중해 주고. 일단 강간부터 예로 들어 볼까? 난 당장이라도 성녀를 강간해 보는 호사를 누려 보고 싶은데, 잔느 아가씨가 싫다면 하지 않을게. 하지만 내가 잔느 아가씨를 존중해 주는 만큼 나도 존중받아야 되겠지?”

알기 쉬운 소리였다. 결국은 하나씩 주고받자는 것이었다.

악의 도시 바티칸에 사는 인간이고 당장 달리아니를 노예로 삼은 데다가 강간이란 소리를 서슴지 않고 내뱉으니 좋은 사람인 건 아니었지만, 거래도 아니고 서로 간에 영역을 정해 침범하지 말자는 말이었으니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거래라면 절대로 응하지 않겠지만 존중해 주고 존중받는 거니까…… 이건 에티켓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해석한 잔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당신은 제가 어떻게 존중해 주길 원하죠?”

“강간하고 싶은 걸 자제하는 거니까 그만큼의 존중은 받아야지. 내가 키스하는 걸 거부하지 마. 최소한 그 정도는 받아 줘야 하지 않겠어?”

“키, 키스라니…….”

“강간하는  참는 건데 그 정도도  받아 주겠다고? 그럼 그냥 강간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대가였다. 잔느는 눈을 질끈 감고 조니의 제안을 수락했다.

“아…… 알겠어요.”

“좋아. 그럼 두 번째. 성녀라는  대한 존중으로 지하 감옥에도 가두지 않고 고문도 안 할게. 잔느 아가씨는 날 어떻게 존중해 줄래?”

“…….”

그리고 잔느도 이제야 겨우 깨달을  있었다.  상호 존중은 어떤 의미로 노예의 족쇄보다 더한 족쇄라는 것을…….

‘차라리 강간당하고 성녀의 자격을 잃는  나은 선택 아닐까?’

한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스스로 빛을저버리고 나락의 길로 빠져들 순 없었기에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여신께 선택받은 딸로서 결코 선택해선 안  길이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여신을 섬기며 자비와 구원을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성녀가 걸어야 할 길이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든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치명적인 유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끝까지 성녀로 남아 기필코 델리아니와 자매들을 데리고 신성 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잔느는 당당하게 조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는 것을 먼저 말하세요. 도에 지나치지 않는다면 다 들어줄 테니까. 그게 당신이 바라는 것 아닌가요?”

그 빛나는 위풍당당한 태도에 조니조차 깜짝 놀라고 말 정도였다.

‘이렇게 쉽게 넘어오다니?’

어째서 여신들이 어린양을  걱정하고 보살펴 주는지  것 같았다. 이것들은 악의 유혹에 치명적일 정도로 약해 빠졌다.

‘여신님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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