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6화 아리스톨 암캐 피학 조교 (1)
경기장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던 아리스톨은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몸을 웅크렸다. 초봄의 날씨 속에서 알몸으로 계속 누워 있다간 그대로 얼어 죽을 판이었다. 해는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관중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 조니가 기다리고 있지…….’
볼 면목 따위는 없었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몸을 질질 끌고 대기실 쪽으로 기어갔다. 얼굴을 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계속 기다리게 할 수만도 없었다.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기에 팔만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속도는 당연히 나지 않았고 피부가 다 쓸리고 까진 탓에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릴 만큼 아팠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을 조니를 생각해 필사적으로 대기실로 향했다
그러나 한참을 기어간 끝에 겨우 대기실에 도착한 아리스톨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걸 보고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왈칵 쏟아 내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나…… 버림받은 거야……?’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그녀가 조니였다고 해도 그럴 것 같았다. 오만 정이 다 떨어졌을 테니 지금까지 먹여 주고 재워 준 것조차 아까워졌을 것이다. 게다가 집에는 자신처럼 끝까지 상황을 재거나 자존심을 부리려 하지 않는 착하고 싹싹한 헤나도 있었으니 더더욱 데려갈 이유가 없었다.
“……흑.”
아리스톨은 대기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눈물을 참았다. 아프고 비참한 것보다 버림받았다는 게 가장 슬펐다.
그렇다고 혼자 대기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노예 도시에서는 혼자 돌아다니는 모든 노예는 줍는 사람의 것이었다. 노예 취급이나 받으면 다행이지 그대로 재미 삼아 죽이고 잡아먹는 것도 직접 눈앞에서 보기까지 했었다.
지금 이 순간 아리스톨을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조니뿐이었다. 함께 있을 때 이미 알고 있는 줄 알았었는데, 이제 보니 전혀 아니었었다. 아리스톨은 텅 빈 대기실에 홀로 남아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정이 떨어졌을까…… 스스로 검투 노예가 되겠다고 잘난 듯이 말해 놓고 1회전에서 탈락했으니…… 아무리 무기 차이가 있었다고 해도 졌을지언정 암캐 꼴을 보였으면 안 되는 건데…….’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조니에게 의존하고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켜 주는 집, 편히 누워 잘 수 있는 침대, 굶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량, 따뜻한 체온, 자상한 애정, 그 모든 것이 조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베풀어 주던 것들이었다. 조니가 없는 지금 아리스톨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기실 바깥조차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게 그녀의 처지였다.
그런 주제에 감정을 주네 마네 하며 쟀던 자신이 우스웠다. 조니가 안아 주고 키스해 줄때마다 두근거리고 떨렸던 주제에 배가 부른지도 몰랐었다. 조니는 모든 것을 다베풀어 주면서도 보상받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았는데, 자신은 소국의 공주라는 이미 아무 가치도 없는 지위 하나 때문에 조니를 아래로 보고 자격을 따지고 있었다.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고 해 놓고 주인을 고르다니, 그야말로 언어도단이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주고 제발 도와 달라고 빌었어도 모자랐던 것을…… 아무리 조니가 편하게 대해 주더라도 나는 내 입장을 잊어선 안 되는 거였는데…….’
만약 자신이 처음 만난 주인이 그렇게 자상하고 착한 조니가 아니라 다른 노예 상인이었다면 첫날 바로 강간당하고 암캐처럼 길러졌을 것이다. 이곳은 노예 도시였으니까. 그런데도 조니가 가여이 여겨 지켜 주고 있던 것도 몰라보고 주네 마네 하면서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 번만 용서해 줘, 조니…… 그럼 전부 고백하고 사죄할 테니까…… 응……?’
주르륵.
이미 다 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샘에서 다시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내 방울방울 맺히더니 샘처럼 솟았다.
조니가 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자상한 주인님의 따뜻한 체온을, 애정 어린 손길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저벅저벅.
그 순간 거짓말처럼 대기실 멀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아리스톨은 눈물 젖은 눈으로 대기실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발자국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또 한 번 눈물을 쏟아 냈다.
“조니……!”
아리스톨은 무릎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딛고 비틀비틀 일어나 조니에게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조니는 그런 아리스톨의 포옹을 잠시 가만히 서서 받다가, 이내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아리스톨을 가볍게 토닥거려 주었다.
“좀 늦었죠?”
“아니, 안 늦었어! 와 준 것만 해도 나는…… 나는…….”
아리스톨은 조니의 가슴에 눈물 젖은 얼굴을 비비다가 조니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런데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혀를 넣어도 멈칫거리기만 할 뿐 평소처럼 다정하게 받아 주지 않았다. 아리스톨은 덜컥했다. 그래서 더 힘껏 껴안으면서 애정을 갈구하듯 조니의 혀를 탐했다.
“조니, 키스해 줘…… 제발…… 쪼옥.”
한참을 조니에게 매달려 열정적으로 키스한 후에야 조니도 키스를 받아 주기 시작했다. 평소의 다정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리스톨은 그럴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마음이 완전히 떠나간 게 아니라면 아직 기회는 있는 거였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잘하고 노력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조니의 키스는 길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아리스톨을 부드럽게 밀어내었다.
“일단 집으로 가죠.”
“……응.”
아리스톨은 키스를 더 조르는 대신 조니의 가슴 대신 팔로 몸을 옮겨서 꽉 끌어안고 밀착시켰다.
“아, 걷는 건 괜찮으세요? 치료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아리스톨은 냉큼 대답했다.
“괜찮아. 나 잘 걸을 수 있어. 치료도 그냥 집에서 며칠만 쉬면 돼. 신경 쓰지 마.”
“아, 그래요?”
조니도 그 이상 다른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냥 아리스톨을 한 번 쳐다봤을 뿐 곧바로 대기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라가는 아리스톨은 조니의 보폭에 속도를 맞추기가 힘들었지만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따라갔다. 늦어진다고 해서 조니가 속도를 늦춰 줄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보다는 그냥 혼자 성큼성큼 가 버릴 것 같았다.
태도에서 이미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보였으니 빌미를 줘서는 안 됐다. 조니의 곁에 남아 있으려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짐이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 줘야만 했다.
‘걸을 때마다 다리가 찢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따라가야 해. 못 따라가면 고민 중인 조니는 정말 그냥 버리고 갈지도 몰라. 애정이 식지 않도록 내가 잘해야만 해.’
아리스톨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껴지는 무릎의 통증에 울고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꾹 참고 웃는 얼굴로 조니의 팔에몸을 꽉 밀착시키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잘 하고 돌아오셨…… 꺅! 어, 언니?”
집으로 돌아가자 헤나가 아리스톨의 몸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조니는 그냥 가볍게 손을 저어 헤나를 물렸다.
“우리가 얘기 좀 할 게 있거든, 헤나야.”
“아, 아, 네, 주인님. 전 거실에 있을게요.”
헤나는 심상찮은 조니의 태도에 반사적으로 태도를 바로 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리스톨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끼어들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응, 미안. 공주님, 우린 잠깐 얘기 좀 해요.”
“응.”
아리스톨은 헤나에겐 눈도 마주쳐 주지 못하고 조니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조니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이미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침실로 들어온 조니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리스톨은 감히 그 옆에 나란히 앉지 못하고 조니의 앞에 서서 손을 모으고 조니의 말을 기다렸다.
조니가 그 모습을 잠시 삐딱하게 보다 입을 열었다.
“서서 얘기할 거예요?”
“응, 난 서 있을게.”
“……그냥 옆에 와서 앉아요.”
“응.”
아리스톨은 두말하지 않고 조니 말대로 옆에 붙어 앉았다. 그리고 조금 떨리고 무서웠지만 조니의 팔을 슬쩍 안았다. 조니가 뿌리치지 않는 것 같자 아리스톨은 좀 더 파고들며 조니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잘은 몰라도 단순히 콜로세움에서 추태를 보인 것 때문에 이러는 것만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나고 실망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살갑게 굴어서 조니의 마음을 녹이는 것뿐이었다.
“공주님.”
“응.”
“가지고 있던 돈을 다 걸었었어요.”
“……응.”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묻는 주체는 ‘우리’였지만 실상은 ‘너’였다. 아리스톨 너를 이제 어떻게해야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난 조니 뜻대로 할게. 뭐든지 간에.”
아리스톨은 그렇게 대답하며 조니의 옆구리를 좀 더 파고들었다.
“뭐든지요? 그럼 제가 공주님 팔아 버리겠다고 하면요?”
“…….”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아리스톨은 조니의 냉정한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것만큼은 필사적으로 견뎌 냈다. 여기서 꼴사납게 눈물까지 흘리면 조니의 기분만 더 망치는 길이었다.
“하아. 이래 놓고 뭐든지 내 뜻대로 하겠단 거였어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 조니 곁에만 있게 해 줘.”
“그럼 제가 기분이 좀 별로라서 그런데 공주님 때리면서 풀어도 될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잔인한 소리에도 아리스톨은 고개를 끄덕였다. 버림받는 것에 비하면 몇 대 맞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응, 때려. 기분 풀릴 때까지 얼마든지.”
“……좋아요. 그럼 침대 위로 올라가서 벽에 손 짚고 엉덩이 내미세요.”
아리스톨은 조니가 시킨 대로 얌전히 침대 위로 올라가서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침대 위라 그런지 무릎이 덜 아파서 다행이었다.
뒤에 선 조니는 아리스톨의 뒤태를 보며 천천히 허리띠를 풀었다. 아리스톨의 갑옷을 팔고 받은 그 허리띠였다. 짐승 가죽으로 된 허리띠를 쥔 조니는 토너먼트에서 얻어맞은 채찍질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엉덩이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짝!
“흡.”
인정사정없는 휘두르기에 아리스톨이 숨을 들이켜며 입술을 깨물었다. 한 대를 맞았을 뿐인데도 엄청나게 아팠다. 성적인 의미는 눈곱만큼도 담기지 않은 진짜 체벌이었다.
그리고 처음 한 대는 시험 삼아 해 본 것이라고 말하는 듯 쉬지 않고 허리띠가 엉덩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 무자비한 체벌에 엉덩이가 새빨개지고 셀 수 없이많은 허리띠 자국이 새겨졌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부가 터져 피가 흐르는 곳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고통을 잘 참고 인내심이 강한 아리스톨이라 해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맞기 전만 해도 또 꼴사납게 벌을 받으며 꿀물을 흘려 대는게 아닐까 걱정했던 게 어리석었을 정도로 고통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파요?”
“아, 아파…… 너무 아파…….”
“근데 어쩌죠? 난 더 때려야겠는데.”
“흑.”
그 냉혹한 말에 아리스톨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화끈거리는 정도를 넘어서 피부가 너덜거려질 정도로 때려 놓고 더 때린다고 하니 설움을 북받쳐 올랐다. 토너먼트에서 져서 큰 손해를 입혔고 못 볼 꼴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맞기 싫어요?”
“……아냐. 원하는 만큼 때려…… 흑.”
아리스톨은 그래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고 조니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기에 울먹이면서 그렇게 대답했지만, 조니는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더 세게 허리띠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 번 내리칠 때마다 피부가뜯겨지고 피가 튀었다.
급기야 허리띠가 내리쳐질 때도 피부를 강타하는 짝 소리가 아니라 질척거리는 피가 튀는 촥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악! 아악!”
“아프죠?”
“아파! 아파!”
“더 맞아야 해요.”
“아악! 악! 그, 그만! 그만해 줘! 너무 아팟!”
아리스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침대 위로 무너져 내렸다. 엉덩이가 다 터져 나가고 혼절할 것 같았다. 이대로 더 맞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리띠는 완전히 피에 절어 핏물이 뚝뚝 떨어진 지 오래였고 침대와 벽은 온 사방에 피가 튀어 있었다.
하지만 조니는 쓰러진 아리스톨을 향해 여전히 허리띠를 휘둘렀다.
“아아아악!”
아리스톨은 주먹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침대 시트를 세게 움켜쥐면서 최후의 통증을 견뎌 냈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머릿속이 찢어지는 것같았다.
“너, 너무햇…… 나도 지고 싶어서 진 게 아닌데…… 흐흑…… 흑…….”
아리스톨은 설움과 원망에 울먹거리면서 조니에게 토로했다.
“나도 노력했는데…… 흑, 노력했단 말야…… 그런데 이렇게까지…… 흑.”
그러자 뒤에서 조니의 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난 지금 그깟 토너먼트 한 번 졌다고 이러는 게 아니거든요?”
“에?”
“물론 돈 잃은 것도 기분이 안 좋긴 하죠. 당장 내일부터 뭐 먹을지도 걱정이니까.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거 저도 봐서잘 알아요.”
“그, 그럼 왜……?”
“경기 끝나고 대기실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웬 황소족 노예 상인 하나가 대기실 앞에서 서성이는 게 보이더라고요.”
“……!”
아리스톨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에 아픈 것도 잊고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그리고 그 예상은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대기실 앞에 서 있는 폼이 심상찮아서 잠깐 다른 사람 기다리는 것처럼 주변에서 얼쩡거렸어요. 그랬더니 재미있는 소릴 중얼거리는 게 들리더라고요. 뭐라고 했더라?”
조니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감히 내 암캐에게 무기도 안 주고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 혹시 공주님은 아시겠어요?”
“…….”
아리스톨은 덜덜 떨리는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려 조니를 쳐다봤다. 조니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아리스톨은 조니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볼 수 있었던 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희끗한 허리띠뿐이었다.
짝!
뺨에 인정사정없는 허리띠를 얻어맞은 아리스톨은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지며 아픈 것도 모르고 입가를 씰룩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들켰구나…… 결국 들킨 거야…… 아하핫.’
이미 들켰을 줄 알았다면 벌을 주기 전에 미리 무릎 꿇고 고백하고 빌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버렸다. 오히려 아프고 억울하다고 소리 지르고 원망해 버렸다.
주인님을 배신한 암캐 주제에 뭐 잘났다고 원망이나 하다니. 아리스톨은 이제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맞아 죽게 되려나? 아니면 창녀처럼 굴려진 뒤 버림받을까? 아하하…….’
한없이 깊고 어두운 절망적인 상황에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아리스톨은, 다음 순간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깨닫고 얼굴이 굳었다.
……꿀쩍.
그녀의 깊은 곳에서는 꿀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어? 어……?’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조니 역시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조니의 입꼬리에 비틀린 미소가 지어졌다.
“암캐 같은 년.”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리스톨의 허벅지 사이에서 꿀물이 봇물 터지듯이 흘러넘쳤다. 한 줄기 핏자국과 함께 붉게 달아오른 뺨에는 참을 수 없이 달콤한 배덕적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아……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