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33화 아리스톨 피어싱 & 전신 타투 (4)
“주, 주인님?”
설마 자신에게 날개를 달려고 하나 싶어 사색이 된 아리스톨이 조니를 바라봤지만 조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냥 가격이나 물어보는 거예요. 할 돈도 없어요.”
“그, 그 말은 돈이 되면 하겠단 소리야?!”
“에이, 당연히 아니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잖아요.”
포이즌이 후후 웃었다.
“에누리 없이 10,000스파크.”
“생각보단 싸네요. 몇만 스파크는 할 줄 알았더니.”
“대부분 재료비고 남는 건 없어. 하지만 이 이상 비싸면 성에 사는 고객들도 구매하기 어려워지거든. 스파크가 아무리 많아도 매일같이 소모해야 하는데 아무리 취향에 맞아도 수만 스파크짜리 노예를 막 사들일 순 없으니까.”
그 자체로 마력 도구이기도 한 스파크는 노예 도시의마법을 유지하는 데도 쓰이고 주변의 안개를 몰아내는 데도 쓰였다. 때문에 수십수백만 스파크를 쌓아 두고 있는 지배자 가문들도 정예병들 몇 명에게나 타천사의 날개를 이식해 주는 게 고작이었다.
“대출받아 사는 저한텐 꿈같은 소리네요.그런데 정말 잘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조니는 아리스톨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새카만 천사의 날개를 단 모습을 상상해 봤다. 금발의 머리에 백금색 발키리 문양, 거기에 검은 날개라니. 정말잘 어울렸다. 솔직히 돈만 있다면 붙여 주고 싶었다.
“저기, 주인님…… 눈이 진심이거든?”
“그냥 상상만 해 본 거예요. 어쨌든포이즌 씨, 나머지 피어싱도 마저 해 주세요.”
“재고는 하나뿐이지만 쉽게 나가는 물건은 아니니까 돈 생기면 바로 와 보라고. 알았지?”
“생각해 볼게요.”
“훌륭한 대답.”
포이즌은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아리스톨의 몸에 손톱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귀에 여섯 개의 구멍을 뚫고 코 바깥쪽과 배꼽에도 하나씩 뚫고는 앙증맞은클리토리스를 손톱 위에 올리고 입술을 핥았다.
“예쁘게 생겼네. 다른 데 가면 아래쪽 살집을 뚫지만 난 클리토리스를 직접 뚫을 수 있지. 살짝 아프지만 그만큼 기분 좋으니까 잘 참으라고.”
푹.
그 말과 동시에 포이즌의 엄지와 검지 손톱이 위아래에서 동시에 클리토리스를 꿰뚫었다.
“하으으읏!”
아리스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론 아파서 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짜릿해서 지르는 달콤한 신음이었다.
“정말 민감한 몸을 가졌구나? 이 언니라면 하루 종일 울면서 더 뚫어 달라고 매달리게 해 줄 수 있는데 어때? 팔릴 생각 있니?”
“어, 없어요! 없거든요?!”
아리스톨은 허리를 부르르 떨면서 눈물을 머금고 도리질 쳤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입에서 신음을 내지르는 걸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감각을 느낀 것이다. 만약 이런 감각이 한두 번의 단발이 아니고 하루 종일 이어진다면…… 아리스톨은 정말 포이즌이 말한 대로 울면서 매달리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포이즌의 말은 농담이나 허세 같은 게 아니라 연륜과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이었다.
“팔러 온 거였다면 바로 샀겠지만 손님으로 온 거니 보내 주지, 후후. 비용은피어싱에 30스파크. 액세서리는 다 합쳐서 95스파크야.”
포이즌은 니플 체인 외에도 다른 액세서리들을 꺼내서 하나씩 귀와 배꼽에 달아 주고 클리토리스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는 금색 링을 끼워 주었다.
“이걸 달면 허리를 흔들 때마다 딸랑거리는 게 아주 귀엽지. 거기 도련님 취향 같은데 어때?”
조니는 아리스톨의 클리토리스에 달린 금색 방울을 보다가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검투 노예라니까요. 그런 걸 달면 신경쓰여서 어떻게 싸우나요.”
“아, 그랬지?”
포이즌은 전혀 모르지 않았다는 투로 장난하듯 그렇게 웃고는 방울 달린 금색 링을 떼고 새로운 링을 끼워 주었다. 물방울 모양의투명한 크리스털이 달린 링이었다.
“브릴리언트 컷으로 깎은 거라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거야.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디자인적으로 아주 예쁘지. 이걸로 하라고.”
“네, 잘 어울리네요. 다른 것들도 전체적으로 다 괜찮고요.”
귀에 단 것은 6개의 구멍을 이용해 서로 얼기설기 얽힌 백금 귀걸이와 백금 체인이었는데 난잡하지 않고 기품 있어 보였다. 또한 배꼽에 박힌 마름모꼴의 금빛 다이아몬드도 아주 멋졌다.
“어…… 다이아몬드?”
조니는 배꼽에 박힌 피어싱을 자세히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포이즌은 후후 웃으며 손톱을 좌우로 까딱까딱 저었다.
“얼마 전에 만들어진 모조 다이아몬드야. 큐빅이라고 부르고 있지. 연금술사와 세공사들이 만들어 낸 건데 원가는 매우 싸지만 결정도나 광채는 다이아몬드랑 거의 비슷해. 앞으로 유행하게 될걸?”
“굉장하네요…… 보석까지 만들어 내다니.”
“천사까지 잡아오는데 보석 만드는게 어렵겠어? 시간과 예산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지.”
“하긴요.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요?”
“두 개만 더 박으면 돼.”
포이즌은 마지막으로 두 개의 핀을 꺼내 조니에게 보여 줬다. 짧고 작은 바늘 끝에 투명한 모래알 크기의 구슬이 달려 있는 핀이었다. 투명하고 빛을 반사시키지 않아 햇빛 아래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이 구슬은 일반적인 햇빛 아래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색 있는 조명 아래서는 그 빛깔로 물들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피어싱은 결코 검투 노예용 피어싱이 아니었다.
“다른 곳들이 워낙 화려해서 코랑 혀는 이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
“딱 좋네요.”
포이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른한 미소를 짓고는 아리스톨의 혀 가운데와 오른쪽 콧방울 바깥쪽에 피어싱을 박아 넣었다.
“이걸로 끝.”
“수고하셨어요.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조니는 125스파크를 내고 아리스톨과 함께 철 장미 샵을 나왔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아리스톨은 바깥으로 나오자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워서 떤 게 아니라 몸 곳곳에 박힌 피어싱들이 움직임 때마다 미세한 자극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움직일 때마다 자극받아…… 으으. 이런 걸 달고 싸워야 한단 말야?”
“다른 검투 노예들도 종종 그러고 나와요. 아마 내일이면 이물감도 거의 안 느껴질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 특히 이…… 가슴이랑 아래에 한 건 정말…….”
아리스톨은 말하기도 민망해서 얼굴을 붉히며 말을 흐렸다. 다 자랄 때까지 씻겨 주는 메이드를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민감한 곳들에 구멍을 내고 액세서리를 달다니. 창부라고 해도 그러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익숙해지고 나면 공주님도 좋아하실지도 몰라요. 보는 사람만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조니가 그렇게 말하면서 맨 아랫줄의 니플 체인을 가볍게 잡아당기자 아리스톨은 헛숨을 들이켰다. 젖꼭지가 잡아당겨지면서 찌르르한 통증과 쾌감을 안겨 줬기 때문이었다.
“하, 하앙. 하, 하지 마, 주인니임. 길거린데…….”
“콜로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침대에서 당겨 드릴까요?”
“…….”
얼굴이 새빨개진 아리스톨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하지 못했다.
“별로세요? 그럼 그냥 키스만…….”
“아, 아냐. 당겨 줘…… 아래도 같이…….”
조니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아리스톨을 보고 몰래 옅은 미소를 지었다. 쾌락에 솔직해진 모습을 보니 이제 슬슬 수확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네. 꼭 이기고 돌아오세요. 그럼 원하시는 대로 당겨 드릴게요.”
“내, 내가 그것 때문에 이기려는 건 아니거든? 나도 당길 수…… 아, 아냐, 아무것도.”
“네네, 알았어요. 그럼 이만 집에 가요. 내일 출전해야 하니까 오늘은 당기지 말고 푹 쉬시고요. 아셨죠?”
“아, 알았다니까.”
4월 20일.
다음 날 아침 조니의 집은 간만에 부산해졌다. 콜로세움에 출전하는 아리스톨 때문이었다. 사실 준비랄 건 미세사슬 비키니를 입는 것뿐이고, 나머진 헤나의 오두방정이 대부분이었다.
“와! 너무 예뻐요, 언니! 헤나도 언니처럼 꾸미고 싶어요!”
“그, 그러니?”
“네! 정말 날개만 달면 천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에헤헤.”
헤나의 순수한 칭찬에 아리스톨이 뺨을 확 붉히고 조니를 힐끔 쳐다봤다. 조니는 어색해하면서 어설프게 웃고 있었다.
“저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그 거짓말 믿어도 돼?”
“제가 이래 봬도 거짓말은 안 하는 주의예요, 공주님…….”
두 사람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자 헤나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끼어들었다.
“두 사람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냐,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공주님이 쑥스러워서 저러시는 거야.”
“아, 아냐, 아무것도.”
“헤에…… 그렇구나아…….”
헤나는 전혀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지만 크게 따져 물을 생각까진 없는 듯 다시 헤실헤실 웃으면서 아리스톨의 주위를 맴돌았다.
“언니, 꼭 지금 바로 나가야 해요? 헤나랑 재미있는 놀이…… 한 번 안 하고 가실래요?”
그러면서 문양이 그려진곳들과 피어싱한 곳들을 은근한 손길로 쓰다듬자 아리스톨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이미 헤나와 몇 시간이고 끈적한 애무를 즐겼던 사이인지라 그 손길에 담긴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또한 남자의 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말랑말랑함이나 부드러움은 색다른 느낌이 있었다.
“미안해. 일찍 가서오전 경기들 구경하면서 대비하려고 해서…….”
“언니, 애정이 식었어요? 헤나는 슬퍼요…….”
“아, 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다녀와서 언니가 꼭 기분 좋게 해 줄게!”
아리스톨이 다급하게 헤나를 껴안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헤나는 상심한 얼굴을 펴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아리스톨은 헤나의 볼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키스를 했다.
“어, 언니, 하고 싶지 않으면서, 억지로, 하지 마요.”
“아냐, 그렇지 않아, 쪽…… 쪼옥…… 언니가 헤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쪼옥…….”
“아앙…… 정…… 말?”
“응…… 쪽, 쪼옥…….”
키스가 길어짐에 따라 헤나의 얼굴도 풀리고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두 여자는 곧 동시에 꿀물을 흘리며 서로의 몸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선 채로 시작된 애무는 곧 무릎을 꿇은 채로, 그 후엔 옆으로 누운 채로 이어지다가 결국 69로 뒤집어지고 서로의 혀를 꿀단지 속으로 밀어 넣어 달콤한 꿀물을 빨아 마실 때까지 이어졌다.
“어, 언니, 아앙! 나 가요……!”
“조, 조금만, 헤나야! 언니도 곧…… 곧……! 하아앙!”
서로의 얼굴에 꿀물을 쏟아 낸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면서 상대의 꿀물을 남김없이 다 마셔 주었다. 그런 후 자세를 바로 해 마주 보며 진한 키스를 또 한 번 나누고서야 애정 행위가 끝났다.
멀뚱히 서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본 조니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열기가 가라앉은 후에야 뚱하게 한마디 했다.
“이제 나가도 돼요?”
“……응.”
아리스톨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지 못하고 죄인처럼 조니를 따라 집을 나섰다.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기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레이디에게 키스받고 손수건을 받는다던데.”
“……미안.”
“아니에요. 여자끼리 부둥켜안을 수도 있는 거죠. 노예 도시에는 그런 커플 많아요. 전 이해해요.”
“……잘못했어요, 주인님.”
“어, 공주님, 뭐 잘못하신 거 있으셨어요? 전 아무것도 못 봤는데…….”
“……정말 죄송해요, 주인님. 뭐든지 다 할 테니까…… 화 풀어 줘요, 네?”
아리스톨이 애교까지 부리면서 조니의 팔을 잡아끌자 조니가 그제야 뒤를 보고 아리스톨을 쳐다봤다.
“진짜 뭐든지 다 할 거예요?”
“……네, 주인님.”
“그럼 반드시이기고 와요. 그럼 용서해 줄게요.”
아리스톨은 그 말에 고개를 치켜들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조니를 위해서 반드시 이기고 올게!”
“네. 그거면 돼요.”
그제야 조니는 미소를 지으며 아리스톨의 손을 잡고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화이트 타운에 있는 콜로세움은 5일에 한 번씩 열리는데 5일 단위에는 포니걸 경주가 열리고 10일 단위에는 검투 대회 토너먼트가 열렸다. 오늘은 20일이니 토너먼트가 열리는 날, 조니는 아리스톨을 오후 마지막 경기로 출전 등록시킨 후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많이 참고하고 대비하시라고 마지막 경기로 등록했어요. 점심 먹은 뒤 두세 경기는 더 보고 대기실로 가면 될 거예요.”
“응, 알았어.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조니.”
“아니에요. 사실 10스파크짜리 단검이라도 사 드려야 하는데…… 맨손으로 출전하는 게 배당을 높이기 좋다 보니 첫 경기만은 이해 좀 해 주세요. 남은 돈 다 걸 거라서 이기기만 하면 꽤 큰돈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식사도 더 맛있는 걸로 바꾸도록 할게요.”
“응, 우리의 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길게!”
“공주님만 믿어요.”
쪽.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짧은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은 이제 막 시작된 토너먼트 관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사단 내에서의 대련이나 마상 시합은 여러 차례 나가 봤던 아리스톨도 검투 대회는 처음이었기에 다소 긴장하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첫 경기가시작되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흥미가 식어 버리고 말았다.
“수준이…… 참 낮네.”
“아하하…… 1회전은 대부분 B급 검투사니까요. 여기서라도 이기고 올라가야 가능성이 좀 있다 생각하고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해요. 정말 맨손으로도 할 만해 보이죠?”
“응. 다이 정도 수준이라면 백이면 백 내가 다 이길 거야.”
들고 나온 무기도 단검과 나무 몽둥이였고 갑옷은 아예 착용하지도 않았다. 한 명은 그나마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미세사슬 비키니라도 입고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그냥 알몸이었으니 지켜볼 것도 없었다.
“사실 토너먼트는 챔피언을 만들기 위해서 열리는 것과 다름없고, 챔피언이 된 후에야 특별 경기에 참가하게 돼요. 챔피언끼리 붙는다든지 다수와 싸운다든지 피엔드 성체와 싸운다든지 하거든요. 진정한 레전드가 되어 이름을 떨치려면 그런 특별 경기에서 최소 서너 번은 이겨야 해요.”
“그렇구나…… 갈 길이 머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닥친 1회전 경기는 정말 맥이 빠질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두 번째 경기나 세 번째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무기도 대부분 단검인 건 마찬가지고 아니어 봤자 부엌칼 정도였다. 갑옷은 중간에 한 명이 가죽 장갑을 끼고 나온 게 전부 다였다. 들고 나오는 무기 수준이 죄다 단검이니 칼날을 막고 공격하라고 끼워 준 듯했다.
“간단하게 이기겠다. 점심 먹고 잠깐 몸만 풀면 될 것 같아.”
“그럼 미리 나가서 먹고 올까요?”
“응. 조금 일찍 먹고 확실히 소화시켜두는 게 움직이는 데 편해.”
조니와 아리스톨은네 번째 경기를 보다 말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었다. 물론 집에서 싸 들고 온 노예용 건사료 통조림이었다.
“이것도 오늘까지만 먹었으면 좋겠네요.”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 줄게.”
“네, 공주님. 공주님만 믿을게요.”
그리고 마침내 오후의 마지막 전 경기.
대기실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앉아 정신을 집중하던 아리스톨은 이름을 호명하는 것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자유를 사기 위한 첫 걸음이구나. 관중들의 시선을 끌수록 좋다고 했으니까 최대한 화려한 모습을 보여 줘야지.”
아리스톨은 마음을 다잡고 쇠창살이 달린 대기실 문을 통과해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섰다.
“자, 오늘의 마지막 경기입니다! 좌측! 뱀족 구역에서 나온 아리스톨! 오오, 굉장히 화려하게 치장돼 있는 노예입니다! 노예 도시의 신사분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심지어 맨손 출전! 새로운 챔피언을 예고하는 자신감일까요? 발키리를 떠올리게 하는 백금의 검투사, 아리스톨입니다!”
- 우와아아아아아!
아리스톨은 자신을 소개해 주는 멘트에 맞춰 경기장 가운데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사방에 모인 수천수만의 노예 상인과 귀족들이 열광적으로 소리칠 때는 턱을 치켜들고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바로 오벨 왕국의 제일 기사 아리스톨이었다.
‘최고의 기사가 어떤 수준인지 똑바로 보여 주겠어.’
그리고 반대 측의 쇠창살이 올라가며 상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측 입장합니다! 화이트 타운에서 나온 신드라! 오, 이런! 오늘은 챔피언을 예고하는 검투사가 둘이나 되는군요! 당당하게 갖춰 입은 전신 무장! 누가 주인인지 몰라도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과연 화이트 타운에서 내밀 만한 와일드카드! 표독한 암표범을 닮은 흑발의 검투사, 신드라입니다!”
- 우와아아아아아아!
“경기 시작!”
짝!
그리고 아리스톨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고개가 좌측으로 홱 돌아갔다. 오른쪽 뺨에서는 무엇에 맞았는지 피가 한 줄기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채찍?”
신드라의 양손에는 채찍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