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29화 리즈 마법 노예 전직
조니는 일단 칠흑의 로브를 처리하기 위해 리즈가 있는 판잣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천재 마법사라는 걸 들었을 때부터 준비해 왔고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지금까진 조니 자신이 마법에 대해 감도 못 잡기도 했고 리즈의 충성심도 문제가 됐기에 미뤄 왔지만, 이제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야옹아, 주인님 또 왔어.”
“미야옹~!”
다다다닷!
주인님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리즈가 맹렬하게 달려와 조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어이쿠. 아침에도 봤는데 그새 또 이렇게 보고 싶었어?”
“야옹야옹!”
두 발로 허리를 감고 두 팔로 목을 감아 매달린 리즈는 조니의 입술을 할짝거리는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연신코끼리 비비적거리는 게 완전히 사모하는 서방님을 맞이하는 새색시의 모습이었다.
“우리 야옹이 완전히 응석꾸러기가 다 됐네?”
“야오옹~ 주인님이 이렇게 만드셨잖아요. 계속 보고 싶은 걸 어떡하나요? 후훗. 그런데 옷이 바뀌었네요, 주인님? 웬 로브예요?”
“길 잃은 고양이 하나 주인 주워 주고 받아 왔지. 나한텐 약간 크지만.”
“괜찮아요. 주인님은 뭘 입어도 멋지거든요.”
조니는 눈동자에 하트가 뿅뿅 박힌 리즈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볼수록 귀여운 애완 고양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침대로 간 뒤옆자리에 앉히고 물었다.
“그런데 리즈, 밖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사였었니? 천재 마법사라고는 들었는데.”
“제법 실력 있는 수준은 됐었어요. 고위 마법사에는 살짝못 미치고요.”
“그럼 이 로브를 한번 입어 볼래?”
조니는 칠흑의 로브를 벗어서 리즈에게 건네주었다.
“야옹?”
리즈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잠자코 주인님이 시키는 대로 로브를 입었다. 애초에 벗고 있었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혹시 뭐가 좀 느껴져?”
“뭐가요? 딱히 아무…… 어라? 어어어?”
맵시가 어떻게 나오나만 살펴보던 리즈는 갑자기 느껴지는 감각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 이거 뭐예요, 주인님? 이런 말도 안 되는 아티팩트라니!”
안개의 숲을 벗어나 안개의 국경선에 들어온 뒤로 이상하게 마나가 움직이지 않아 아무런 마법을 못 썼었는데, 이 로브를 입은 순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부근의 마나는 모두 인위적으로 재배치된 상태, 즉 이미 타인의 마법이 시전돼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자연의 마나가 아니라 자신의 마나홀에 담긴 마나를 사용하려고 해도 마법 법칙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어 기존의 마법은 아무것도 사용할 수가 없는 일종의 안티 매직 필드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로브를 입는 순간 경지가 한 단계 늘어났다는 것.
깨는 데 몇 년은 더 걸리리라 생각했던 다음 단계의 벽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깨고 그 위로 올라간 게 아니라 그냥 벽이 사라져 단계가 올라간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벽을 넘지도 않았는데 제가 고위 마법사가 됐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이 로브 누가 만든 건가요?”
놀라서 방방 날뛰는 리즈를 본 조니는 최상의 결과가 나온 것에 매우 만족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확인해 볼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걸 쥐어 볼래?”
조니는 리즈의 손에 2스파크를 얹어 주었다. 리즈는 스파크 동전 두 개를 보다가 무언가를 느끼고 또 깜짝 놀랐다.
“이거 혹시 마법 도군가요? 아니, 마나석?”
“노예 도시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화폐야. 그 상태로 아우스펙스라고말해 봐.”
“……아우스펙스.”
화륵.
보랏빛 화염과 함께 스파크 동전이 증발하더니 마나로 화해 사라졌다. 그리고 아우스펙스가 시전됐다.
마나의 움직임을 느낌과 동시에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리즈는, 이 부근 전체에 시전돼 있는 거대한 마법과 동전으로 시전되는 마법을 보면서 이 말도 안 되는 마법 체계에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독자적인 마법 법칙을 만들어 일대에 적용시켜 놓고, 마나가 함유된 동전만 있으면 약속된 시동어만으로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놓다니…… 이건 발상부터가 말이 안 돼요. 대륙 전체의 마법사가 모여도 이런 건 유지할 수가 없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조니는 희미하게 웃었다. 리즈의 말대로 노예 도시의 대마법사들은 인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존재들까지 합류해 한 축을 유지하고 곳이 바로 노예 도시였다.
“노예 도시의 대마법사들이 매일같이 유지하고 있는 대마법이라고 들었어. 어쨌든 리즈도 마법을 쓸 수 있단 걸 알았으니 다행이네. 그럼 이제 본론인데…….”
조니는 이제밑바닥을 거의 다 드러낸 돈주머니에서 25스파크를 꺼냈다.
이걸 사용하고 나면 당장 오늘이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위험했지만, 조니는 확인하지 않고선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동전을 받고 애드베르토 세르빌리, 라고 말해 볼래?”
마법 브랜드 낙인을 찍는 노예 도시의 최고위 마법. 그 어떤 존재든 굴복시킬 수 있는 사악한 정신 마법.
만약 리즈가 이것조차 시전할 수 있다면…… 조니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리즈가 25스파크를 쥐고 천천히 시동어를 외웠다.
“애드베르토 세르빌리.”
그와 동시에 리즈의 손 위에 팟 하고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나타났고, 조니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욕망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하하…… 하하하…… 우리 리즈 정말 대단한데? 아주 복덩이야……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니?”
“주인님이 기뻐하시니 저도 기분 좋네요, 후훗.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시켜 주세요. 전 주인님이 시키는 건 뭐든 다 할 수 있는 애완 고양이랍니다.”
조니는 리즈를 다정하게 안아 주면서 은근하게 속삭였다.
“응. 그럴 거야. 일단…… 아기 고양이부터 만들어 줄래?”
“엄마야~”
리즈는 즐거워하는 미소와 함께 앙탈을 부리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온몸으로 조니에게 매달리며 기쁘게 호응했다. 그곳은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어 애무는 필요하지 않았다.
“저 요즘 너무 행복해요, 주인님.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야옹!”
“알았으니까 허벅지 힘 꽉!”
“야옹!”
사정없이 몰아치면서 일단 한 발을 그대로 안에 낸 조니는 로브를 벗겨 버리고 뒤집어 고양이 자세로 뒤에서 또 한 발, 애널 꼬리를 사정없이 쑤실 때 조이는 것으로 또 한 발을 내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 널브러진 리즈를 보며 의기양양해했다.
“우리 야옹이, 벌써 지친 거야? 이래 가지고 아기 고양이 만들 수 있겠어?”
“주, 주인님이 너무 강하단 말예요오…… 야오옹.”
“체력 좀 길러 줘야지 안 되겠네. 우리 야옹이, 조만간 주인님이랑 산책 가자꾸나.”
조니의 말에 숨을 색색 고르던 리즈의 호흡이 흠칫 멎었다. 평범한 산책이 아니었다. 야옹이라 부를 때는 고양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목줄…… 매고요?”
하지만 거부감이 있어서 숨이 막힌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흘러넘칠 대로 흘러넘친 꿀물이 다시 소중한 곳에서 스며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목줄을 잡힌 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완 고양이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달아오른 것이다.
돌이킬 수 없기에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달콤함.
“꼭 데려가 주세요, 야옹…….”
눈을 감은 채 쓰러져 있는 리즈의 입가에는 어느새 달콤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기대해도 좋을 거야.”
잠시 여운을 즐긴 조니는 대금업자의 집으로 향했다. 리즈가 노예 도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애드베르토 세르빌리를 시전할 수 있게 된 이상 돈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언제라도 쓸 수 있게끔 연습을 시켜야 했다.
“오우, 왔나? 스파크가 필요한가 보지?”
“네. 1,000스파크 대출해 갈게요.”
“화통해서 마음에 드는 친구라니까. 상환금은 1,250스파크고 기한은 30일이야.”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조니는다시 판잣집으로 간 다음에 총 1,027스파크 중에서 250스파크를 떼어 리즈에게 주면서 당부했다.
“총 10번을 시전할 수 있는 양이야. 애드베르토 세르빌리는 머릿속에 연상한 도형이 마법진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걸로 최대한 작게 그릴 수 있게 연습하렴.”
“얼마나요?”
조니는엄지손가락 정도 크기인 스파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이 정도.”
“상당히 작네요. 크기가 작아질수록 마력이 적게 담겨서 효과는 좀 약해질 수 있는데 괜찮으세요?”
기본적으로 한 손을 좍 편 정도가 표준 사이즈였기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압축시키면 그 효과가 상당히 반감될 것은 자명했다. 만에 하나 효과가 너무 약해진 나머지 낙인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니에게는 효력보다 크기가 더 중요했다. 아니, 크기를 작게 함으로써 오히려 더 효과를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럴 만한 곳에 찍을 것이었기 때문에.
“괜찮아. 크기가 가장 중요하거든.절대 이 동전보다 커서는 안 돼. 그리고 도형의 모양은 윤곽선만 그린 하트와 그 하트를 아래서 위로 꿰뚫은 화살. 색깔은 빨강에 가까운 분홍색이면 적당하고. 할 수 있겠니?”
“주인님이 명령하신 건데 당연히 해내야죠.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리즈의 자신감 있는 대답에 조니는 미소를 지었다.
다시노예 도시로 들어간 조니는 세르빌라 퀸트의 부티크로 가서 옷을 한 벌 샀다. 미세사슬 비키니로 검투 노예들이 입는 옷이었다. 천을 사용하지 않고 거미줄 같은 미세사슬만 사용한 이 비키니는 옷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신 액세서리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런 복장이었다.
신체를 가리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고 오직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미세사슬로 여전사의 분위기만을 낼 수 있게 된 이 옷은 입고 있는 노예가 싸우는 성노예임을 부각시켜 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실제로 비키니 라인을 그리는 미세사슬도 방어력은 전무하고 오직 공격을 당했을 때 어떻게 끊어져야 더 시선을 끌지에 맞춰 디자인되어 있었다.
“암캐에겐 이런 게 잘 어울리지.”
사냥꾼들을 위한 갑옷이나 전문 검투 노예들을 위한 전신 갑옷도 있었지만 조니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 걸 입혀 줘 봐야 버릇만 나빠질 뿐이고 오히려 1회전은 최대한 만신창이가 돼서 통과하는 게 조니의 계획이었다. 아니, 죽지만 않는다면 떨어지는 게 더 나았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테니까.
그를 위해서 1회전 때는 일부러 무기도 안 사 줄 생각이었다.
“알몸으로 두들겨 맞고 비참하게 바닥을 굴러 봐야 세상 무서운 줄 알지 않겠어?”
물론 맨손 전투에도 능한 검투 노예가 있고 아리스톨이 그랬지만, 조니는 그 사실을 이미 확인한 뒤였다. 그러니 이제는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 위해 제법 신경 써서 고른 검투 노예를 버리기까지 한 대가를 받아 낼 때였다.
“출전 전날에 전신 문신에 피어싱까지 하고 나서도 제대로 싸우는지 한번 보자고, 암캐 공주.”
조니의 입꼬리가 즐거운 듯이 말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