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23화 아리스톨 충성심 교육
“좋아, 하지. 단, 투자금이 끊기게 되면 그 순간 처녀의 유지는 없다.당연히 동의하겠지?”
“물론이지요.”
“또한 투자금은 네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야 할 것이며, 현금이 없을 시엔 노예를 한명씩 받아 가겠다. 동의하나?”
“그러세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조니를 보며 혈압이 솟구친 셸리 경은 이참에 철모르는 새파란 노예 상인에게 세상의 쓴맛을 가르쳐 주리라고 다짐했다.
“내기는 성립됐다. 그럼 공증인을 불러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지.”
공증을 해 줄 사람은 신사 클럽 안에도 차고 넘쳤기 때문에 셸리 경은 전원에게 내기의 내용을 말하면서 공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본래 세 명 이상의 귀족만 있으면 효력이 발생하지만 더욱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 현재 클럽에 방문 중인 귀족들의 이름을 모두 빌린 것이었다.
“이것으로 나 신사 클럽 대표 셸리와 너 노예 상인 조니 사이에 계약이 맺어졌음을 선언한다. 네게 주어진 시간은 10일 후부터니 오늘은 500스파크나 내고 돌아가도록.”
“참. 이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설마 그 노예에게 이런 내기가 걸려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겠죠?”
“……다리 벌린 처녀신에 맹세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하지만 조니. 넌 평생 죽을 때까지 500스파크를 바쳐야 할 것이다.”
“내기에서 이기지 못하는 한은 그러지요. 근데 제 생각인데 아마 2,000스파크도 받기 어려우실지도 몰라요. 제가 기술은 없어도 촉은 좀 있거든요.”
“당장…… 떠나라…….”
“네네.”
조니는 뒷머리에 양손을 얹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사 클럽을 나왔다.
“안 그래도 집도 좁은데 S급 창부 교육을 10일에 500스파크 해 주면 남는 장사지. 그것도 처녀도 안 떼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조니는 아리스톨에게 베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주님, 죄송해요…… 오늘 경매에 베티 공주님이 올라왔는데 너무 비싸서 다른 사람이 낙찰하는 걸 두고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 그래……? 베티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아아…….”
아리스톨은 눈앞이 깜깜해지는지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조니는 재빨리 그녀를 받아 안고서 사과를 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낙찰하는 건데…… 정말 죄송해요.”
“아, 아니야, 조니…… 대출금을 갚은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서 베티는 어떤 자에게 넘어간 거야?”
“황소족 구역에서 고위 귀족들을 상대로 하는 클럽이 있어요. 전문 창부를 제공하거나 교환하면서 즐기는 곳인데…… 그곳에서 그만…….”
“화, 황소족 구역?”
이미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를 만나 하룻밤 만에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며 암캐 맹세를 한 아리스톨은 황소족 구역이란 말에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베티가 내 주인님 같은 미노타우르스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고……?’
“미노타우르스가 다스리는 구역인데 그…… 거칠기로는 제일 심하기로 유명해요. 물론 미노타우르스만 있는 건 아니고 인간들도 있기는 하지만 베티 공주님께서 어떤 주인을 만나게 될지는 저도 잘…….”
“아아…… 아…….”
아리스톨은 눈물이 차오르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막을수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만은 면하고자 조니가 낙찰해 주기만을 바랐던 건데 그게 이렇게 간단히 무산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주인님께 부탁을…….’
결코 해선 안 되는 생각까지 들고 있는 그 순간, 조니가 희망의 한마디를 던져 줬다.
“그래도 제가 베티 공주님의 처녀만큼은 지켜 달라고 부탁을 하고 와서, 여성을 다치거나 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다른 일반적인 조교까지는 어쩔수 없겠지만…….”
“그, 그래? 그게 정말이야, 조니?”
“네. 그 대신 매 10일마다 500스파크를 바치기로 해야 했지만요. 지금도 생활이 어려운데 제 임의로 그런 무리한 약속까지 해서 죄송해요, 공주님…… 그래도 전 베티 공주님의 처녀만큼은 지켜 드리고 싶어서…….”
고개를 숙인 조니가 입술을 깨물고 그렇게 말하자 아리스톨은 조니를 와락 끌어안고 미친 듯이 뺨을 비비며 조니에게 감사를 표했다. 적어도 그 가녀리고 여린 몸을 우악스런 황소 자지가 꿰뚫고 가는 것만을 막아 준 것만 해도 조니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고마워, 조니! 정말 고마워! 조니, 아, 아니 주인님이 아니었더라면 나나 베티나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주인님!”
아리스톨은 조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흑흑 흘렸다.
그리고 조니는 처연하게 우는 아리스톨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며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졌다.
“아니에요. 이 정도밖에 못 해 드려서 제가 죄송하지요. 앞으로 최대한 빨리 돈을 모아서 베티 공주님을 구해 볼게요.”
“꼭, 꼭 부탁드릴게요, 주인님…… 그 아이가 망가지면 난, 나는…… 흑…….”
아리스톨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고 조니는 그녀가 눈물을 그치고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꼭 안아 주었다.
한참 후에야 겨우 아리스톨이 눈물을 그치자 조니는 그녀와 헤나를 데리고 침실로 가서 이후의 일정을 상의했다.
“현재 남은 자금은 100스파크도 안 돼요. 아까 클럽에다 500스파크를 내고 왔거든요. 그리고 이제 이걸로 우리 생활비를 쓰면서 10일 후에는 최소 500스파크 이상을 모아 둬야 하는데,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대한 아껴 쓸 수밖에 없어요. 웬만하면 식사라도 신선 식품 통조림으로 바꿔 드리고 싶지만 그건 개당 1스파크나 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더 참아야 해요.”
“응…… 난 괜찮아요, 주인님. 오히려 주인님이라도 맛있고 신선한 걸먹어야 하는데 나랑 내 동생 때문에…… 미안해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공주님. 우리 함께 잘해 나가면 되잖아요.”
조니가 손을 잡아 주면서 미소를 짓자 아리스톨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미약하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응. 우리 함께 잘해 나가요, 주인님…….”
“우움, 여기서 또 내가 걸림돌이 되네요. 헤나 안 주워 주셨으면 식비라도 좀 아낄 수 있는데…….”
“헤나는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넌 우리 동생이잖니. 오빠랑 언니가 동생을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야.”
“에헤헤…… 울 주인님 너무 좋아해요. 언니도 좋아하고요.”
“헤나야…….”
“헤나는 특히 건강 때문에라도 노예용 건사료 통조림만 먹는 건 좋지 않지만, 조금만 더 참아 주렴. 베티 공주님만 구하고 나면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당분간만 참아 줄 수 있겠니?”
“아이, 왜 그런 걸 묻고 그래요. 주인님이 해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노예인데요. 전 뭐든 다 좋아요.”
“그래도 정말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노예니까 그렇지. 다른 노예랑 우리 헤나가 어디 같아?”
“에헤헤…….”
헤나는 쑥스러우면서도 행복해하는 미소를 얼굴에 짓고 조니에게 찰싹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조니는 그런 헤나를 부드럽게 다독여 주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편하게 있고 언니 오빠라고 호칭해도 되지만, 새 노예를 데려올 때는 노예가 보고 최대한 빨리 배우고 적응할 수 있게 노예 행세를 해 줬으면 해요. 이젠 노예가 또 도망가면 정말 답이 없기도 하고, 하루라도 빨리 조교해서 팔아야 베티 공주님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특히 공주님은 마음 상하시고 힘드시겠지만 도와주셨으면 해요.”
“아…… 응, 그럴게요, 주인님. 생각해 보니 지금까진 나도 너무 주인님을 막 대해서 기존 노예들이 주인님을 만만하게 봤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우리끼리 있을 때는 이전처럼 편하게 하세요, 공주님. 대신 새 노예가 들어왔을 때만 부탁드릴게요. 저 같은 놈에게 존대 쓰고 고개 숙이려면 힘드시겠지만…….”
“으응, 으응, 아냐. 내가 잘해야지. 스스로 검투 노예가 되겠다고 하고 게이트에서 그…… 그런 일까지 겪어 놓고 조니가 너무 편하게 대해 주니까 내가 또 주제를 잊고 있었어. 미안해. 앞으론 다신 잊지 말고 처신에 맞게 행동할게.”
“그, 그렇게까지 말하실 필요까지는…….”
조니가 미안해하자 아리스톨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이건 분명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조교 연습도 잘 못 도와주는데 말투랑 행동이라도 본분에 맞게 해야지. 이젠 조니가 하지 말래도 다른 노예 앞에선 철저히 주인님으로 모실 테니까 그렇게 알아.”
“……공주님.”
“이건 오빠가 받아 주세요. 그래야 언니도 편하죠…… 에헤헤, 지금은 우리끼리만이니까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응, 그건 당연하지. 얼마든지 어리광부리고 기대도 돼. 다만 헤나도 다른 노예 앞에선 조금 주의해 주고. 알았지?”
“당연하죠, 오빠. 내가 우리 오빠 동생인데 그런 거 하나 어련히 못 하겠어요? 에헤헤.”
아리스톨과의 잠깐의 불화 때문에 줄곧 주인님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빠라고 부르고 싶었던 헤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조니에게 매달렸다.
조니와 아리스톨은 그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또 다녀올게요.”
“아, 저기.”
점심을 먹은 후 조니가 또 외출하려고 하자 아리스톨이 조니의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네? 왜요, 공주님?”
“아, 혹시 리즈 소식은 없나 해서…….”
그 말에 조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리스톨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공주님. 리즈 공주님은 경매장에 안 올라오셔서…….”
“으응, 아냐. 나중에라도 올라오면 알려 줘. 낙찰은 당연히 못 하겠지만…… 혹시 베티처럼만이라도 또 도와줄 수 있을까? 사정이 훨씬 더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너무 내 욕심만 부려서 미안해.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
아리스톨이 미안해하면서도 그렇게 말하자 조니는 한참 동안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리즈 공주님이 어떤 주인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문제라서…… 정도 장담은 못 드리겠지만요.”
“생각해 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워. 너무 힘든부탁만 해서 또 미안하고.”
“아니에요. 당연히 제가 도와드려야죠. 그럼 또 다녀올게요. 헤나도 이따 보자꾸나.”
“네, 잘 다녀오세요, 오빠! 쪽!”
“잘 다녀와요, 주인님. 쪽.”
조니는 두 사람의 마중 인사를 받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가 내뱉은 뒤, 돈주머니를 짤랑거리며 화이트 타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식료품점이 그곳에 있었다.
“이제 또 우리 야옹이 우유 줄 시간이네. 아, 기대된다.”
그런 조니의 얼굴에는 행복에 젖은 미소가 한껏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