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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9화 아리스톨 키스 포상 (2) (10/95)



〈 10화 〉9화 아리스톨 키스 포상 (2)

아리스톨은 문득 한 가지 정도는  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예가 되어 몸과 마음 모두를 더해 헌신할 생각이었지만, 그 안에 감정까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음과 감정은 같은 게 아니다.

싫어하더라도 정성껏 도와줄 수 있는 법이고, 좋아하더라도 마음은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이미 몸과 마음을 다 줬는데 여자로서의 마음까지 준다니, 이래서야 완전히 조니의 것이 되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물론 노예가 되었으니 이미 조니의 것이긴 하지만 그, 그래도 달라! 애, 애…… 애정을 준다니…….’

지금까지는 욕정은 있을지언정 애정이나 연정 같은 감정은 갖고 있지 않았다.

구분하자면 같이 기분 좋아지는 건 바라고 있었지만 평생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할  있었다.

여동생들을 구할 때까지만 노예로 있고자 한 것이고, 구한 이후에는 오벨 왕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리스톨의 목표였다.

하지만 조니에게애정하는 마음을 품고 감정까지 줘 버린다면?

여동생들보다 조니가 우선시되어 평생 노예 도시에 남아 조니를 바라보고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미안하지만 역시 감정까지는 못 주…… 에?’

그 순간 아리스톨은 언제 뒤로 돌았는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조니를 보고 당황했다.

아니, 정확히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조니의 얼굴을 보며 당황했다.

“조, 조니…… 흡.”

쪽…….

혀도 들어오지 않고 단지 입술만 어색하게 비비는 서툰 키스였지만, 아리스톨은 그 안에 담긴 따뜻한 감정이 몸속으로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좋아지는 키스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는 그런 키스.

아리스톨은 전혀 예상외의 키스에 오히려  마음이 두근거림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키스……   봤구나, 조니…… 나만 처음인 게 아니었어…….’

두 사람은 서로를 부드럽게 끌어안은 채 가만히 맞붙어 있는 입술을 통해 서로의 고동과 온기를 확인했다.

두근…… 두근…….

이윽고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아리스톨은 참았던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하아…….”

그러자자기 쪽에서  놓고 쑥스러워하고 있는 조니의 얼굴이 보였다.

“별로셨죠, 공주님? 죄송해요. 처음이다 보니…….”

“아니야…… 두근거리고 좋았어, 조니.”

아리스톨은 배시시 웃으면서 얼굴을 붉혔다.

끈적한 키스였다면 흥분하며 달아오를 수 있었겠지만 서툰 키스는 설레고두근거리게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 주인님이 나를 정말 아끼고 있구나 하는 애정이.

그런 마음은 기분을 좋게 하는 키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내려갈까?”

“네, 공주님. 다음에도  올라와요.”

“응, 그러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고는 손을 마주잡고 전망대를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아리스톨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행복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점심에 다시 나갔다가 돌아온 조니는 한 사람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새로운 노예였다.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쪽.

아리스톨은 미소와 함께 마음을 담은 마중 인사를 하고는 노예 쪽을 봤다.

붉고 긴 머리가 탐스럽게 엉덩이 부근까지 내려오는 노예는  봐도 기질이 사납고 자존심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매끈하면서도 잘 발달된 몸과 여기저기에 남겨진 흉터는 검을 휘두르며 거칠게 살아왔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확실히 검투 노예로는 괜찮아 보이네. 그런데 상당히 오만해 보이는 게 교육을 받아들이는 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겠네.”

 사람은 점심을 먹으면서 새로운 계획을 잡았는데, 그건 바로 당장은 조니가 조교하는 걸 포기하고 검투 노예를 낙찰해 아리스톨이 가르치기로 한 것이었다.

기사로서는 정점에 올라 있던 그녀기에 최상급 검투사로의 교육도 가능했고, 지배자로 자랐기에 아우라가 강하고 타고난 기품도 있었기에 쉽게 다른 노예를 굴복시킬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맞아요, 공주님. 그래도 조교하기 어려운 성격 때문에 경매가가 낮아서 낙찰할  있었던 거예요.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 듣는 성격이었다면 못해도 50스파크는 더 비쌌을걸요?”

“얼마에 낙찰한 건데?”

“65스파크요. 검투 소질이 높은 편이라 더 싸게는 구할  없었어요.”

“남은 돈이 425스파크였으니까…… 그럼 이제 360스파크밖에 안 남았구나. 식비를 빼면 아슬아슬하겠다.”

“네. 가능하면 기한 내에 최소한 둘은 조교해서 팔아야 안전해질 거예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새 노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쬐끄만 꾀죄죄한 놈이 날 산 것도 어처구니없는데 집에서 하고 있는 꼬라지는 더 어이없네. 주인은 노예에게 존대를 쓰고 노예는 편하게 말해? 그리고 뭐? 공주님? 넌 노예에게 공주 대접  주려고 사 온 거냐? 그럼 나도 대전사님이라고 불러라. 알겠냐, 이 땅꼬마 자식아?”

“……성격이 좀 이래요.”

“……좀 많이 굴려야겠다. 그래도 기사단에서 이런 아이들 한둘 겪은 것도 아니니까 내가 잘 해 볼게.”

“공주님만 믿고 있을게요.”

“응, 우리 주인님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게.”

깨가 쏟아지는주인과 노예의 대화를 들은  노예, 프리투는 아리스톨 쪽을보고 피식 웃었다.

“기사 출신 공주였나? 그런 호리호리한 몸으로 날 제압할 수나 있겠어? 갑옷보단 드레스가 어울리는 몸매인걸?”

아리스톨은 자신을 비웃고 있는 프리투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이제 성검과 갑옷을 벗고 알몸이  노예 처지였지만, 지닌바 실력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다.

“실력에 자신 있으면 간단하게 겨뤄 볼까? 난 맨손도 자신 있어.”

“하,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 예쁜 몸에 멍 자국  새겨 줘야 정신을 차리시겠어.”

조니는 점점 살벌해지는 두 여자의 대화에 기가 질린 듯 살그머니 뒤로 빠져 구경만 했다. 괜히 근처에 있다가  먼 주먹에 한 대 맞기라도 하면 뼈가 부러질지도 몰랐다.

그리고 거실 중앙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서로 간격을 재면서 대결 자세를 취했다.

아리스톨은 편안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고, 프리투는 야생 짐승 같은 몸놀림으로 아리스톨의 주위를 날렵하게 돌았다.

“생긴 것과 다르게 겁이 많네? 안 올 거야?”

아리스톨의 도발에 프리투가 바닥을 박차며 쪽으로 달려들었다. 말을 하는 순간을 노리고 들어간 재빠른 습격이었다.

하지만 아리스톨은 앞으로 한 걸음 나가며 몸을 돌리는 걸로 배후의 약점을 없애고, 그대로 회전력을 살린 주먹질  방으로 프리투를 날려 버렸다.

“컥!”

“격식 높은 대결은  해 본 티가 풀풀 나는구나. 너 정도라면 한 손만으로도 충분해.”

그렇게 말한 아리스톨은 정말로 한 손은 뒷짐을 지고 오만한 표정으로 프리투를 내려다봤다.

“이, 이년이…….”

프리투는 이를 악물고 아리스톨은 노려봤지만 다시 덤벼들지는 못했다. 그녀 역시 대전사의 자리에 올랐을 정도의 실력은 있었기에 한 번의 겨룸으로 실력 차를 깨달은 것이다.

“더 안 하니?”

“……졌다.”

결국 프리투가패배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리스톨은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코를 들어 올리고는 조니를 향해 돌아보고 생긋 미소 지었다.

“주인님, 교육 얼추 끝났어.”

조니는 땀을 흘리면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하, 하하…… 저한테 그러진 않으실 거죠?”

“에이. 그럴 이유가 없는걸. 우리 주인님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 주고 있는데.”

조니는 왠지 그 말이 협박처럼 들려온다는  부정할 수 없었다.

“아, 앞으로 더 잘하겠습…… 공주님!”

그 순간 패배를 인정한 듯한 태도를 취하던 프리투가 아리스톨의 빈틈을 노리고 처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조니는 달려든 프리투가 아리스톨의 등을 공격하기 직전에 공중에서 무언가에 부딪친 듯 한 바퀴 회전하더니 바닥에 쾅 처박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퍽! 쿵!

“커어어억!”

바닥에 처박혀 배를 부여잡고 신음을 토하고 있는 프리투의 위에는 아리스톨이 손날이 펼쳐져 있었다.

“얼추 끝났다고 했지  끝났다고는 안 했는데 짐승처럼 살아와서 그런지 역시 못 알아듣는구나. 교육은 이제 끝난 거야. 그리고 또 덤벼들면 그때는…….”

아리스톨은 쓰러져 있는 프리투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는 검지와 중지를 모아 목을 가볍게 찔렀다.

“찌를 거야. 죽어도 상관없으면 덤벼.”

“……명심하겠다.”

“말투.”

“…….”

프리투는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는 인정했지만 마지막 자존심까지는 아직 내려 두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아리스톨도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 줄  있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악에 받혀서라도 반발하는 게 프리투 같은 강골이었다.

“좋아. 지금은 이 정도로 하자.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교육에는 성의껏 따라와야 해. 알겠니?”

“……노력하지.”

“그럼 일어나. 바로 시작할 거니까.”

“…….”

프리투는 아직 통증이 상당한지 배를 어루만지며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아리스톨의 말에는 따랐다.

조니는 몸이 굳은 채로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아리스톨의 미소가 다시  번 그를 향하자 침을 꼴깍 삼키고 시선을 피했다.

“전 그냥 나가서 일 봐도…… 괜찮을겠죠?”

“응, 다녀와. 이 아이는 내가  가르치고 있을게.”

“공주님만 믿을게요. 그, 그럼 부탁드려요.”

조니는 이번에는 마중 인사도 포기하고 후다닥 집 밖으로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 * *

4월 11일.

사방이 컴컴하고 조용한 가운데 두 사람의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려오자, 프리투는  시간 동안 감고 있었던 눈을 조용히 떴다.

그리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아무런 소리나 진동도 내지 않고 야생 고양이처럼 바닥을 이동해 현관으로 향했다.

‘젠장, 젠장! 내가 이런 굴욕을 당하다니!’

대전사라고 해도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자신보다 강한 주인이라면 고개를 숙이고 처지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주인이란 것은 꾀죄죄한 여드름 땅꼬마에 무능력한 꼬맹이였고 노예란 것은 오히려 주인대신 나서서 자신을 훈계했다.

차라리 강한 기사인 여자 쪽이 주인이라면 불만은 있을지언정 묵묵히 따르겠는데, 주인 쪽은 명백히 무능한 땅꼬마. 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을 수가 없었다.

‘강한 노예 하나를 두고 있다고 날 굴복시킬 수 있을  알았다면 오산이야!’

프리투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시간을 들여 문을 열고는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운이 없어 잡혀왔지만 들어올 때 본 게이트 정도는 충분히 넘을  있어. 이대로 빠져나가면 충분히 부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프리투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생각하며 노예 도시의 뱀족 구역 주택가, 개미언덕의 골목을 빠르게 질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벽으로 막혀 있는  보고황급히 걸음을 멈췄다.

아니, 멈추려고 했다.

우직.

“커…… 커억?”

벽에서 두꺼운 팔이 뻗어 나와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벽이라 생각했던 검은 그림자는 벽이 아니라 거대한 체구의 누군가였다. 키는 그녀의 두 배가 넘었고 체구는 네다섯배는 족히 되는 거대한 존재.

프리투는 목을 조르는 두 손가락을 어떻게든 풀어내려 발버둥을 쳤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크훅…… 이 밤중에 어딜 가던 거지?”

그때 노린내가 나는 거친 숨결과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꽂혔다.

“아, 아…… 시, 심부름을…… 심부름을…….”

프리투는 덜덜 떨리는 눈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애쓰며 그렇게 둘러댔지만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두 손가락으로 목을 쥐고 그녀를 들어 올리고 있는  존재는 그녀의 몸을 공중에서 손가락만으로  바퀴 돌리면서 전신을 훑었다.

“크후욱…… 브랜드 낙인도 안 찍힌 노예가 주인도 없이 심부름이라.”

그제야 말투에 섞인 감정을 읽은 프리투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존재는 처음부터 물어보는 게 아니었음을.

“사, 살려 주세요. 다시는 도망치지 않고 명령에 따를게요. 평생 주인님으로 모실 테니 제발 목숨만…… 잘못했어요, 흑…….”

“도망친 노예는 줍는 사람이 임자니 그건 당연한 거고. 크훅…… 그보단  지금 배가고픈데.”

“아…… 아…….”

너무나 뒤늦은 후회였지만 그래도 프리투는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했다.

이곳은 노예 도시.

노예에게 주어진 유일한 권리와 의무는 주인님의 명령에 완전 복종하는 것.

그 유일한 권리와 의무를 저버린 자신은 이제 노예도 아니게 되고 만 것이었다.

“그, 그러시면…… 마…… 맛있게…… 부디 맛있게…… 드셔 주세요…… 고기로밖에 쓸모없는 이 노예 고기를…… 맛있게…… 흐윽.”

프리투는 마지막까지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존재의 마음을 돌려 보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때가 좋질 않았다.

“크훅…… 크훅…… 쿡쿡쿡쿡…… 배가  고팠으면 길러 볼 만했겠지만 지금은 배가 고프군. 네 청대로 맛있게 먹어 주지, 크훅…….”

프리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희망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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