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8화 아리스톨 키스 포상 (1) (9/95)



〈 9화 〉8화 아리스톨 키스 포상 (1)

4월 10일.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가 점심에 돌아온 조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주님, 아무래도 방향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조교할 수 있을 만한 수준 낮은 노예가 너무 안 보이네요.”

조니가 하도 의기소침해 있자 아리스톨은 걱정스런 표정으로입을 열었다.

“찾는 게 그렇게 어려워? 어떤 노예를 찾는 건데?”

“말로 설명하기는좀 애매한데요. 기본 지식이 좀 필요한 거라서요.”

“그럼 하나씩 알려 주면 되잖아. 어차피 나도 조니를 도와줘야 하는 입장이니까 잘 알고 있는 편이 더 도움이 될  있고.”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조니와 아리스톨은 주방으로 가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집을 잡긴 했지만 책상 같은 건 따로 없었기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만한 장소가 식탁뿐이었다.

“우선 노예의 종류에는 9개가 있어요. 각각 메이드, 간호사, 비서, 마법약사, 조수, 검투사, 예술가, 펫, 정부 노예예요. 모두 노예 상인이 직접 기술을 가르치고 조교해서 특화시켜야 하는데, 제 경우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보니…… 실질적으로 제가 키울 수 있는 노예는 메이드와 펫, 정부뿐이에요.”

아리스톨은 조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왕국에선  쓰는 단어들인데 무슨 의미야?”

“메이드는 음…… 하녀나 시녀고요, 펫은 애완동물이라는 뜻이에요…… 대부분 고양이나 개처럼 길들여서 납품하지요. 정부는 섹스를 잘하는 애인 정도로 보시면 되고요.”

“메이드는 우리 왕국에서도 흔하니까 이해하겠는데 펫이나 정부는…… 정말 상상도 못 해 봤네. 어떻게 사람을 애완동물로 길들일  있다는 거지?”

조니는 민망한지 시선을 피하면서 뺨을 긁적거렸다.

“그냥 뭐, 동물 귀랑 꼬리 좀 꽂아 주고 목줄 채우고팔다리 구속해서 네발로 걷게 하고 개밥그릇에 밥 주다 보면…… 시간이문제일 뿐 언젠가는 그렇게 된대요…….”

“……조니도 여자를 그렇게 길들일 수 있는 거야?”

“아뇨, 그게…… 그대로 그냥 동물 복장 입히고 밥만 개밥그릇에 주면 되는 거라…… 근데 또 어른들 말로는 동물 취급을 좋아하는 노예도꽤 많다고도 하고…….”

아리스톨은 기가 막혀서 입만 뻐끔거릴  무슨 말을꺼내질 못했다.

“……진짜 이곳은 아직도 상상을 초월하는 게 많이 남았구나. 어쨌든 정부 노예는 나도 알겠다. 지금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하는 것들을 토대로 가르칠 생각인 거지?”

“네. 근데 이참에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공주님이 너, 너무 잘하셔서…… 제가 가르칠 때 도움이 될지는…….”

조니의 칭찬 아닌 칭찬에 아리스톨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나도 이런 거 다 처, 처음인데…….”

속으로는 이미 스스로를 암캐 취급하며 달아오르는 아리스톨이었지만 그런 말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주인님과 노예 사이래도 감출 부분은 감춰야 했다. 만약 그런 속마음을 들키면 아리스톨은 머리가 펑 터질지도 몰랐다.

게다가 어제 오후 새로 갖게 된 속마음은 특히나 더.

‘들키면 주, 죽어 버릴 거야.’

조니는 그런 아리스톨의 속마음은 모르고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게, 아무래도 전혀 모르고 거부감 있는 노예들도 많을 텐데, 계속 너무 적극적으로 응해 주시니까요…… 무, 물론 전 기쁘고 기분 좋지만…… 그게, 교육적으로는 좀…….”

한마디로 아리스톨이 너무 음란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아리스톨은 조니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찔리는 구석이 있는 한 사람과 마냥 쑥스럽고 부끄럽기만 한 한 사람은 둘  얼굴이 벌게져서 푹 숙인 채  죽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서투르고 어색하게 해야 하는 걸까?”

“네…… 어색하게 여겨서 약간 억지로 한다거나 하기 싫어해 주시면 저한텐 더 도움이 될  같아요. 무, 물론 기분 좋게 해 주시는 건 따로…… 해 주시면…….”

“……응.”

“……가, 감사해요.”

“…….”

“…….”

어색하게 말이 끊어지자 아리스톨은 고개를 숙인 채로 손부채를 파닥파닥 부치면서 열을 식혔다.

“그, 그럼 메이드 노예는 어떻게 가르칠 거야? 그것도 집안일 능숙해야 하는 전문 직업인데.”

“아, 그건 의외로 간단해요. 그냥 청소랑 요리만   알면 되는 노예라 그날그날 집 청소랑 요리만 시키면서 익숙해지게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찾고 있는 노예도 메이드 노예예요. 다만 제가 강압적으로 굴복시킬 수가 없으니까 고분고분한 성격을 골라야 해서 어려운 거지만요.”

“우리 성에서처럼 전문적인 수준을요구하는  아니구나. 그냥 단순히 집안일 시키는 하녀 같은 거네.”

“네, 맞아요. 노예 상인들은 대부분 노예를 조교해야 해서 바쁘기 때문에 집안일에 시간과 체력을 뺏기면 그만큼 손해거든요.”

“음…… 조교라는 게 정확히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대일 교습 같은 거라고 보면 되는 느낌인가 보구나. 그러면 확실히 집안일 정도는 대신 해 줄 사람이 있는  편하겠네.”

“네. 그래서 아예 전문적으로 노예 상인의 업무 일환을 돕고집안일도 총괄하는 노예도 있어요. 조수 노예라고, 간단하게 말하면 집안일과 노예 관리를 총괄하는 노예예요. 청소, 요리는 물론이고지식만 있다면 마법약 제조도 돕고 가계부도 관리하고 노예도 가르치면서 주인이 필요로  땐 시중도 들고요.대부분은 오랫동안 조교해서 다양한 기술과 헌신적인 성향을 갖추게 된 믿을 수 있는 노예를 팔지 않고 조수로 쓰지요. 제가 공주님께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던 것도 이 조수 역할이었어요.”

“그렇구나…… 하지만 나는 검술 말고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가능할까?”

“청소는 지금처럼 저랑 나눠 하면서 익히시면 돼요. 요리는 생활비가 넉넉해지면 부탁드릴 거고요. 가계부 정리는 어차피 우린 따로 쓰는 것도 없으니까 적당히 입출금 내역만 기록하면 되고, 그 외에는 지금처럼 그…… 알람시계나 그런 걸로 제게 경험시켜 주시면서 제가 다른 노예를 조교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으, 으응…… 그럴게…….”

“……가, 감사합니다, 공주님.”

아리스톨은 손부채를 파닥파닥하며 딴청을 부렸다.

“이상하게 오늘 날이 더운 것 같네. 조니는 안 더워?”

“저, 저도 좀 덥네요…… 아하하.”

조니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딴청을 부리는 아리스톨을 보다가 불쑥 물었다.

“공주님. 밖에 나가서 공기라도 쐬실래요?”

그 말에 아리스톨이 깜짝 놀랐다.

“응? 그게 가능해?”

지금까지 조니가 계속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고 실제로 안개의 국경선에서 치안이 좋지 않은 것도 확인했기 때문에 나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 박혀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조니는 미소를 지으며 아리스톨의 손을 잡아끌었다.

“노예 혼자 다니면 당연히 안 되지만 주인이 데리고 다니는 건 괜찮아요. 적어도 도시 안에서 주인이랑 함께 있을 때 해코지당할 염려는  하셔도 돼요.”

“아, 그렇구나. 그럼 부탁  할게, 주인님.”

아리스톨은 조니의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니가 아리스톨을데리고 간 곳은 그들이 살고 있는 하우스 타워 옥상의 전망대였다. 노예 도시는 철저히 노예에 초점을 맞춘 계획도시기 때문에위험한 곳도 많고 가 볼 만한 곳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하우스 타워의 옥상에는 잠깐 숨을 돌리고 기분 전환을할 수 있는전망대가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톨은 별로 걷을 수도 없고 수 있는 광경도 한정적인 나들이임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고 바람이 불어오는  느낄 수 있는 만큼 답답한 마음이 많이 가셨던 것이다.

사실 어제 낮에 집을 구하러 화이트 타운에 들렀을 때도 거리를 둘러볼 수 있었지만 발가벗고 있는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구경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 눈치 걱정 없이 옥상에서 노예 도시의 풍경을 둘러보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빈부 격차가 눈에 보이긴 해도 전체적으로 부유하긴 하구나. 건축이나기술 수준도 나쁘지 않아 보여. 우아하지는 않아도 세련되어 보이는 부분이 특히 많네.”

“실용적인 도시니까요. 여기선 안 보이지만 저 중앙의 화이트 타운에서는 반대쪽 게이트의 너머도 볼 수 있는데, 그쪽엔 바다가 있어요. 배를 통해서 중개 무역으로 부를 쌓고 있어요.”

“바다…… 여기가 대륙의 서쪽 끝인 거구나. 그런데 바다 너머에도 또 다른 대륙이나 나라가 있는 거야?”

조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저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이국적인 신비로움을 갖춘 대륙이 세 개가 있대요. 그쪽에서 노예를 공수해 오기도 하고 팔기도 하나봐요.”

“그렇구나. 우리 왕국도 그런 교역을 위해서 개척단을 꾸린 거였는데…….”

아리스톨은 다시  번 자신의 처지와 신세를 자각하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조니는 그저 잡고 있는 손을 쥐어 주는 걸로 위안을 대신했고 그녀는 금세 생기를 되찾고 생긋 웃었다.

“정말 고마워요, 주인님. 우리 조니 주인님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니까.”

“아니에요, 공주님. 적어도 500스파크만이라도 있는 처지였다면  공주님을 낙찰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텐데 제가 너무 죄송할 따름이지요. 좀 더 열심히 살았어야 하는데…….”

“자학은 뚝. 앞으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열심히 모으면 되지. 동생들도 구하고 돈도 많이 모으면 다른 수가 보이지 않을까?”

아리스톨의 말에 조니가 침음을 흘리다 말했다.

“음…… 사실 너무 먼 미래라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귀족이 되어 화이트 타운에 입성하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귀족? 노예 상인도 귀족이 수 있는 거야?”

“네. 양질의 노예를 공급해 제 노예 브랜드의 명성을 높이면 각 지역의 지배자들을 알현하고 기사 작위를 받을  있어요.  후에 명성을 더 높여 지배자들 하나의 추천을 받으면 귀족이 돼서 화이트 타운으로 갈 수 있고요. 저도 귀족들의 권한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단 바다를 통해 외국과도 무역을 하고 있으니까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 중이었어요.”

“아…… 노예를 팔아 귀족이 될 수 있다니, 정말이지 노예 도시다운 행정이네. 그럼 조니도 귀족을 목표로 하는 거니?”

아리스톨의 질문에 조니는 한숨을내쉬며 어깨를 풀썩 늘어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년이 걸릴지, 평생 가도 할  있을지도 잘 몰라요. 그만큼 노예 상인의 명성을 퍼트리는 게 쉽지 않거든요.”

조니는 손가락을  후 제자리에서  바퀴 돌며 노예 도시의 사방을 가리켰다.

“보세요.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남자는 열에 아홉 이상이 노예 상인이에요. 나머지 일 할도 안 되는 극소수는 다 귀족이거나, 젊었을  노예 상인으로 부를 쌓고 은퇴한 유력가고요. 경쟁이 엄청난데 제가 수 있을까요? 적어도 노예 상인 길드에서 기본 교육만이라도 이수했어야 D급 노예라도 조교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너무 멍청하고 나약해서…….”

조니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자책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아리스톨이 다가와서 조니를 부드럽게 껴안은 것이었다.

“아무것도못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혼자가 아니니까 서로 힘내서 노력하자. 알겠지요, 주인님?”

쪽.

아리스톨은 조니의 머리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다시 그를  껴안았다.

원래대로라면 판자촌에서 가난하더라도 자유롭게 살았을 조니가 자신 때문에 이렇게 노력하고 또 괴로워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줘서라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지만, 이미 줄  있는 다 준 상태기에 그저 미안하기만  뿐이었다.

‘……아니야. 한 가지는 더 줄 수 있는 걸지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