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2화 아리스톨 입수 (2) (3/95)



〈 3화 〉2화 아리스톨 입수 (2)

아리스톨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와 두 여동생이 개척단에 끼게 된 건 모험가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 그 나라는 여성의 대우가 아주 좋습니다. 공주님들이 대표가 되어 개척단을 이끌어 가면 분명히 공주님들을 높게 쳐드릴 겁니다.

그렇게 말했었다.

“그게…… 그런 뜻이었는가? 그래서 오벨 왕국이 아니라 우리들을 높게 쳐줄 거라고 말했던 거였어. 처음부터 우릴 팔아넘기려고 한 거야.”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 순간이었다.

“조니. 혹시  동생들은 보지 못했나? 하나는 너와 비슷한 또래고 하나는 너보다 약간  많다. 옷차림이 귀하니 눈에 쉽게 띌 것인데.”

“옷차림요?”

조니는 은근슬쩍 아리스톨의 눈을 피했다.

“다른 특징은 없나요? 옷차림만으로는 아무것도…….”

“음. 나와 같은 금발이다. 네 흑발을 보니 이곳엔 금발이 드문 편인 것 같은데, 어떻지?”

“이곳엔 금발을 한 사람이 없어요.  다 금발이라면 확실히 눈에는 잘 띄겠네요. 소문도 확실할 것이고.”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사례는…… 어떻게든 반드시 보답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무슨 문제가 있나?”

“지금 이해를 잘 못 하신 것 같은데, 공주님은 동생들 걱정이나 제게 사례해 줄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 조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스톨을 문가로 데리고 갔다. 별다른 방범 장치도 없는 나무 문은 그녀가 발만 내질러도 쉽게 부술 수 있어 보였다.

조니는 문을 아주 조금만 슬쩍 열고 아리스톨에게 조심스레 손짓을 했다.

“문틈으로 바깥을 봐 보세요. 절대 활짝 열면  돼요.”

아리스톨은 조니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며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바깥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얼굴을 문가로 가져가 문틈을 바라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길가를 걷고 있는 여자들은 전부 옷을 벗고 있었다.

심지어 속옷 한 장 걸치지 못한 채로 팔을 묶이거나 목줄을 매인 채로 거칠어 보이는 남자들에게 끌려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건 숫제 사람이라기보다 짐승 같은 취급이었다.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은 아리스톨은 뒤로 엉덩방아를 찌며 황급히 조니를 올려다봤다.

“저, 저게 무슨 광경이지? 여자들이 왜 전부 벗고 있는 것이냐?”

“말했잖아요. 여긴 노예의 도시라고. 이곳에선 모든 여자가 노예예요. 타국의 공주이든 여왕이든 마법사든 전설적인 영웅이건 간에, 여기로 잡혀오면 모두 노예가 돼요. 공주님은 저 노예 사냥꾼들을 뚫고 안개의 숲을 통과해 탈출하실 수 있을 것 같나요?”

아리스톨은 침대 옆 벽에 세워져 있는 성검과 대충 포개져 있는 자신의 갑옷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피엔드의 피를 머금은 성검은 빛을 잃었고 갑옷은 대부분 깨져 나간 상태였다.

설령 상태가멀쩡하다 해도, 그녀 혼자 수십수백의 남자를 상대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 안개의 숲을 통과하는 건 아예 불가능했고.

“그, 그러면 너는 어찌할 생각이지? 너도 날 노예로 생각하는 것이냐?”

조니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거였으면 발견했을 때 바로 다른 사냥꾼에게 팔아 버렸겠죠. 그냥 그대로 뒀다간 죽을 것 같아서 데려온 것뿐이에요. 마침 밤이었고 제 집이 가장 외곽에 있었던지라 운 좋게 다른 노예 사냥꾼에게 들키지 않고 데려올 수 있었고요. 하지만 보셨다시피…… 밖으로 나가게 해 드리는  제 능력을 벗어나요.”

조니의 말대로 조니는 어린 남자애에 불과했고 노예 사냥꾼 하나라도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살고 있는 집도 오벨 왕국에선 거지도 안 살 법한 허름한 판잣집이었으니 돈이나 권력이 있을 리도 없었고.

“그, 그럼 나는 어찌해야…….”

눈을 떴을 땐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이런 곳인  알았다면 차라리 눈을 뜨지 않는  나았다.

여자는 모두 노예로 삼는 도시라니.

게다가 모두 헐벗은 채로 끌고 다니는 걸 보면 평범한 노예도 아니었다.

성노.

그녀들은 모두 성노가 되어 팔려 가는 것이다.

‘리, 리즈는. 베티는. 그 아이들도 설마 저런 꼴을 당하고 있는 건……?’

아리스톨 자신은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순수하고 착한 소년인 조니를 만나 무사했지만, 리즈와 베티까지 그런 행운이 닿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같았다.

도시 전체가 이런 규칙과 풍습을 지녔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있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당연히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테니까.

“조니…… 혹시 금발을  노예가 잡힌  있는지 알아봐 줄  있겠니?”

아리스톨은 슬픈 눈동자로 조니를 바라봤다.

조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밖에 나가서 한번 물어보지요. 하지만 공주님은 절대로 밖에 나오시면 안 돼요. 이곳은 혼자 돌아다니는 여자는 납치해서 팔거나 도망친 노예로 간주해서 그냥 죽이거든요.”

“……알았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한 조니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바깥을 살핀뒤 밖으로 빠져나갔다.

조니가 돌아온 건 해가 어둑어둑 졌을 때였다.

나갔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들어온 조니는 재빨리 문을 꾹 닫고 침대에 앉아 있는 아리스톨에게로 갔다.

“어떻게 됐지? 알아봤나?”

“네.”

조니는 품속에서 작고 동그란 통조림 하나를 꺼내 아리스톨에게 건넸다.

“일단 먹고 얘기하죠. 드세요.”

“고맙구나.”

대답부터 한 아리스톨은 조니가 건넨 통조림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연실색했다.

그 통조림엔 ‘노예용 건사료’라 적혀 있었다.

‘나보고 이런 걸 먹으라고?’

하지만 조니가 품속에서 꺼낸 또 하나의 통조림도 똑같은 거였다. 조니는 노예용 건사료 통조림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뜯어서 익숙한 표정으로 퍼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말없이 먹던 조니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아리스톨을 눈치채고 미미하게 웃었다.

“역시 밖에선 이런 건  먹나 보네요. 여기선 이게 주식이에요. 노예에게 지급하는 기본 식량이기도 하고 저처럼 하루하루 먹고사는 사람들도 이걸 먹어요. 우유나 달걀도 팔긴 하지만 그건 매우 비싸서…….”

그러고 보니 아리스톨은 이곳 노예의 도시가 부를 쌓아 올렸다는 들었지만 지금 조니가 살고 있는 이 판자촌은 오벨 왕국의 거지들보다 못산다는 걸 깨달았다.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 건가?”

“아뇨, 쉬워요. 일자리 자체는.”

그렇게 말한 조니는 통조림을 바닥까지 긁어 먹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노예의 도시에서 남자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노예 사냥꾼과 노예 상인 둘뿐이거든요.”

‘여자는 모두 노예고 남자는 모두 노예 사냥꾼이나 상인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리였다.

“그럼 우유와 달걀은 누가 팔지? 생산은 어떻게 하고? 닭치기나 젖짜기 일은 구할 수 있을  아닌가?”

하지만 아리스톨은 그 말을 묻지 않았어야 했다. 그건 도저히 그녀의 정신으로 받아들일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들도 모두 여자 노예들이 하지요. 영구 수유 시술을 받은 젖소 노예가 우유를 생산하고, 난생 시술을 받은 암탉 노예가 알을 낳고.”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여긴그런 곳이에요. 그보다 공주님, 그거 안 드실 거면 저 먹어도 될까요? 그래 봬도 비싼 거라…….”

“……네가 먹어라. 나는 생각이 없구나.”

아리스톨 역시 배가 몹시 고팠지만 차마 노예용 건사료라 적힌 통조림을 먹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럼 이건 제가 내일 아침으로먹을게요. 근데 이거 말곤 드릴  없는데…….”

“…….”

아리스톨은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조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니. 그럼 너는 무슨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지?”

모든 남자는 노예 사냥꾼이거나 노예 상인이다.

조니 스스로 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조니 역시  중 하나여야 했다.

조니는 멋쩍게 웃으면서 볼을 긁적였다.

“제가 사냥꾼을 할 순 없겠죠? 저도처음엔 노예 상인이 되려고 했어요. 노예 상인 길드에서 기본적인 방법은 가르쳐 주거든요. 하지만 기본 테스트에서부터 전부 탈락하고 나서는 빈집을 털면서 살아오고 있어요. 사냥 나간 사냥꾼들의 집을 터는 건 쉽거든요.”

“…….”

정말 모든 일이 다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도 걸쇠 같은 없었지…… 이곳의 집들은 문을 못 잠그게 되어 있는 건가?”

“네. 사냥꾼들은 매일 집을 비우는데 집에 남아 있던 노예가 문을 잠그고 하는 일들이 많아서요. 문을 부수고 새로 다는 것보단 아예 자물쇠를 포기하는 게 싸게 먹히거든요. 어차피 노예는 도망가 봐야 죽을 뿐이니 제정신인 노예는 도망을 안 가고, 남이 내 노예를 남이 훔쳐 가면 똑같이 훔쳐 가면 되고 하니까 이러나저러나 똑같다면서. 그리고 지금은 그날 잡아온 노예는 그날 팔아 버리기 때문에 집에 노예를 두는 일도 거의 없어요. 아까 끌려가는 노예들 보셨죠? 전부 오늘 잡아와서 옷을 벗기고 팔러 가는 거예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이군, 이곳은…….”

“게이트를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이 정도는 아니라는데, 여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자물쇠가 없는 판잣집들뿐이라 저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도 어떻게 통조림 한두 개씩은 훔칠 수 있는 거예요. 저한텐 다행이죠, 뭐.”

조니의 말을 들은 아리스톨은 이곳이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곳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있었다.

그리고 조니가 헛기침을 두 번 하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는데요…… 금발 머리를 한 여자 두 명. 어제 도시 안으로 팔려 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 구나. 결국은…… 벌써 그렇게…….”

아리스톨의 두 눈엔 벌써 노예가 되어 남자 밑에서 울부짖는 두 여동생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조니가 그녀의 생각을 부정했다.

“값을 제법  받았대요. 그러면 경매로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있을 거예요.”

“경매?”

아리스톨은 황급히 고개를 들고 조니를 쳐다봤다.

“네. 사냥꾼들이 잡아온 노예는 노예 상인 길드나 노예 경매장으로 넘기는데, 노예 경매는 매일 열리지만 수량을 정해서 팔거든요. 때문에 특색 있거나 기호층이 많은 노예의 경우는 잘 꾸민 다음에 천천히 내보내요. 뭐, 그래 봐야 며칠 정도뿐이긴 하지만요…….”

“며칠…… 그럼 경매가 준비될 때까지 돈을 모은 다음에 내 동생들을 그…… 구, 구입할 수도 있다는 건가?”

“네.”

“그, 그럼 내 동생들을 구입해 다오! 은혜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조니는 아리스톨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무리예요. 사냥꾼  들어 보니까 금발 노예 하나를 넘기면서 40스파크나 받았다네요. 그럼 낙찰가는 최소한 150스파크 정도일 거고, 높아지면 200스파크 가까이  수도 있어요. 근데  노예용 통조림 하나 살 돈이 없는데 이 통조림이 얼만  아세요?”

“……얼마지?”

“10개에 6스파크요. 200스파크면  혼자 반년은 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요.”

“어, 엄청난 액수군…….”

조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로서는 아리스톨을 구해 주고 먹을 것을 챙겨 주는 것만 해도 힘겨운일이었다. 통조림  개를 훔치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이제는 한 번에 2개씩은 훔쳐야 했으니 말이다.

“그럼 방법이 전혀 없는 건가?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가능성만 있다면 그 어떤 방법도 좋으니 알려 다오. 내 검과 갑옷을 팔아도 좋다.”

“……여긴 중고 판매라는 개념이 없어요. 상점에서 판매하는  무조건 신품이고, 중고는 주운 사람이쓰거나…… 떨어트리게 한 사람이 쓰거나, 둘 중 하나라서요.”

“정말 들을수록 기가 막힌 곳이군…….”

“근데 공주님…… 검에 체액이 많이 묻어 있던데 혹시 피엔드를 잡으면서 오신 건가요?”

조니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아리스톨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수십을 베어 넘겼지. 대부분  키보다 조금  정도였다. 마법을 쓰는 놈은 없었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았지. 내 검이 성검이라 처음엔 수월하게 베어 넘겼지만, 빛을 잃은 이후부턴 하나도 힘겨웠다.”

그녀의 말에 조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조니는 들뜬 기색으로 아리스톨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외쳤다.

“그럼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저, 정말인가? 그게 무엇이지?”

“콜로세움! 도시 안의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토너먼트는 승자에게 명예를 안겨 주는데 한 달에 한 번 챔피언이 되면 큰돈과 자유를 얻을  있어요!”

“그게 사실인가? 나도 참가할 수 있는 건가?”

아리스톨 역시 흥분해서 벌떡 일어났다.

검술이라면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이곳의 수준이 어떨지는 몰라도 일대일로 싸운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네, 당연히 참가할  있어요. 특별한 자격은 없거든요. 다만  가지……있기는 한데.”

“그게 뭐지? 동생의 자유를 살  있다면 무슨 대가라도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조니는 흥분에  아리스톨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노예…… 여야 해요. 토너먼트는 검투 노예들이 참가하는 경기거든요.”

아리스톨은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예라고? 내가 먼저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고?’

이 도시의 노예는 평범한 노예가아니라 헐벗은 나체가 되어 남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가축만도 못한 존재임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검투 노예라고 불린다 해도 그런 기본 대우나 사정은 똑같을 터.

아무리  여동생을 구하기 위한 일이라 해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설령 스스로 검투 노예가 된다고 해도 콜로세움에서 우승할 때까지 두 여동생이 무사할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야…… 이게 고민할 일이던가? 리즈와 베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내가 지켰어야 하는데 내가 놓치지 않았던가.’

아리스톨은 수많은 잡념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가능성이 있다면 무조건 잡아야만 했다.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면  여동생은 성노가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테니까.

결정을 내린 아리스톨은 전에 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조니를 응시했다.

그리고 말했다.

“조니. 내가 너의 검투 노예가 되겠다. 날 콜로세움으로 데려가 다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