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마지막 싸움
시련을 끝낸 선우영.
그는 동료들을 데리고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 장소는 대전이었다.
그곳에 동그란 탁자를 놓고 앉았다.
페일과 몰제, 케이론.
그들은 선우영과 맞은편에 앉았고.
정운, 김철수, 조용석, 백영희는 선우영의 근처에 자리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페일이 물었다.
선우영은 담담한 어투로 의사를 밝혔다.
“빠른 시일 안으로 사이타나와 싸우길 원합니다. 굉장히 큰 성취를 이뤘거든요.”
“성취라고 하시면……?”
페일이 묻자 선우영은 자신 있게 어깨를 폈다.
“시련을 통과하면서 제가 가진 진정한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정말이십니까?!”
페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우영이 지금보다 더 강해졌단 이야기가 아닌가.
실로 놀라웠다.
케이론은 선우영이 보여줬던 무위를 떠올렸다.
“선우영 대장님께서 시련이 끝나자마자 무위를 보여주셨는데, 정말 대단하였습니다.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검술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말에 페일은 눈을 껌뻑였다.
‘하늘이 갈라져?’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자신의 경지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우영은 이야기했다.
“뭐, 녀석과 싸우려면 우리도 방어 전선을 세우는 게 좋겠네요.”
“그럼, 어디서 싸우실 요량이십니까?”
몰제가 질문을 던졌다.
선우영은 팔짱을 끼며 고심하다 결정을 내렸다.
“이곳 온리에서 싸우도록 하죠. 마침 성벽이 있으니 다른 곳에서 싸우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괜히 이동하면서 체력을 뺄 필요는 없습니다.”
이견은 없었다.
솔직히 드래곤의 모습을 한 사이타나를 상대로 어디서 싸우든 딱히 유리한 장소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사이타나가 이곳으로 오길 기다리는 거지.’
선우영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까드득.
불길한 소리가 주변으로 퍼졌다.
“끼에에엑.”
독수리가 불안한 비명을 지르며 날갯짓했고, 빠진 깃털이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까드득.
다시 한번 들리는 불안한 소리.
독수리는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 인물의 잇새 사이로 시뻘건 액체가 고여있었다. 틀림없는 독수리의 피였다.
“끼에에엑!!”
독수리는 재차 비명을 질렀다.
그림자가 드리운 숲에서 누군가 독수리를 산채로 뜯어먹히고 있었다.
실로 끔찍한 장면.
이내 독수리는 덜덜 경련을 일으키더니 축 늘어졌다.
독수리를 사냥해 잡아먹던 존재.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사이타나였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어디서 주워 입었는지 꾀죄죄한 거적때기 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원시인을 연상케 했다.
우적우적.
독수리의 살점을 이빨로 뜯어먹는 사이타나.
놈은 뼈까지 모두 씹어먹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자 독수리 사체를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이런 제기랄!’
사이타나는 분노가 치솟았다.
선우영의 전략에 넘어가 만마전이 사라지고 부하들도 모두 죽었다.
자신이 이뤘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마계의 일인자가 사냥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니, 이딴 굴욕을 맛보게 될 줄이야.’
사이타나는 분노했다.
옷도 이게 뭔가.
거적때기로 간신히 몸을 가리고 있다.
황금으로 만든 갑옷도 없다.
예전엔 좋은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었는데, 지금은… 아니, 어떻게 이딴 꾀죄죄한 걸 입고 다녀야 한다니.
‘용서 못 한다, 선우영!!’
사이타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든 걸 잃어버린 그는 복수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얼마나 화가 치솟는지 모른다.
자다가도 만마전이 부서진 걸 생각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조직 재건은 훗날로 미룬다.’
사이타나는 계획을 세웠다.
마계로 돌아가면 다시 세력을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강제로 게이트를 만들어야 해서 자신의 힘이 약해진다.
힘을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엔 약해진 힘을 단숨에 회복시키는 아티팩트따윈 없다.
사이타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힘을 회복하는 동안 선우영이 힘을 키우면 위험해.’
그러니 조직을 재건하는 것보다 선우영을 먼저 죽여야 했다.
굴욕적인 식사를 끝마친 사이타나는 허공을 날아다녔다.
드래곤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말이다.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면, 선우영에게 쉽게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날 발견하게 되면, 녀석은 또 도망치겠지.’
그러니 은밀하게 잡아 죽여야 했다.
사이타나는 선우영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동 흔적이 남아있군.’
선우영은 많은 병력을 데리고 굉장히 급하게 이동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흔적 지울 시간이 없었다.
사이타나는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 이동하는데.
‘잠깐, 이 경로는 온리로 가는 방향 같은데?’
사이타나는 히죽였다.
‘그래, 아스모데우스가 죽었으니, 온리를 자기 구역으로 만들었구나. 선우영.’
사이타나는 더욱 속력을 내었다.
드디어 선우영과 다시 맞붙을 수 있다.
이번엔 게이트로 이동시키는 작전에 휘말리지 않게 조심할 생각이다.
‘그것만 조심하면 되지. 내가 녀석한테 패배할 일은 없으니까.’
곧이어 온리에 있는 세계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이타나는 이빨을 드러냈다.
광기 가득한 웃음을 보이며, 흉흉한 살기를 거칠게 드러냈다.
* * *
“사이타나가 나타났다!!”
“전투태세!”
“빨리빨리 움직여, 시간이 없다고-!”
온리의 성벽에 보초를 서고 있던 엘프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이타나가 온다.
선우영의 병력은 서둘러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총을 가진 사람들이 성벽에 서고.
탱크는 세계수가 있는 언덕으로 가서 고지대에서 포탄을 쏠 수 있는 각도를 확보했다.
헌터들은 성문 앞에서 서서 나가 싸울 준비를 끝냈다.
사이타나는 언성을 높였다.
“선우영-!!”
분노로 들끓는 목소리가 사납게 메아리쳤다.
엘프들은 귀를 손으로 막았다.
“크흑!!”
사이타나의 목소리가 얼마나 커다랗던지,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선우영의 병력은 바짝 긴장했다.
사이타나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화르륵.
인간의 모습이던 사이타나.
놈의 육신이 불꽃에 휩싸이며 덩치를 키우더니, 순식간에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다.
핏물처럼 비늘이 시뻘건 드래곤.
사이타나가 선우영의 이름을 연신 불러대며 분노를 토해냈다.
붉게 충혈된 사이타나의 눈.
놈의 분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선우영은 성벽으로 올라갔다.
“오냐, 사이타나 나는 여기 있다!”
그 또한 목청을 높여 놈을 도발하였다.
사이타나가 포효를 질렀다.
“크롸롸롸.”
동시에 목구멍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화르륵.
놈이 용암을 일직선으로 방사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열기였다.
성벽에 있던 병력들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위로 젖혔다.
시뻘건 용암이 성벽보다 더 높이 치솟으며 다가오는데, 흡사 쓰나미를 보는 듯했다.
병사들은 닭살이 돋았다.
더러는 울상이 되어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걸 어떻게 피하란 말인가.
저 자체로 이미 대재앙인데 말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이 굳었다. 다들 싸워야 한단 생각을 잃어버린 채 눈앞의 광경에 경악했다.
그때였다.
스르릉.
선우영이 용광검과 듀란달을 뽑았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용암이 뿜어내는 열기가 폐를 뜨겁게 달궜다.
부우웅.
그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누구도 상상치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성난 파도처럼 성벽을 덮칠 듯 다가오던 용암이 눈앞에서 점점 굳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열기가 사라졌다.
주변에 연기가 가득했다.
용암은 시커먼 색으로 변하며 딱딱하게 굳어, 매섭게 다가오던 추진력을 잃었다.
병사들은 눈을 껌뻑거렸다.
용암이 순식간에 바위로 변해 멈추자 말문이 막혔다.
백영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용암을 단숨에 멈추다니, 이런 능력이 선우영에게 있었나 싶었다.
정운은 놀라 눈을 연신 깜빡였다.
선우영이 뭔가 했단 걸 알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몰랐다.
‘이상하다. 아저씨가 스킬 융합으로 저런 능력을 터득하셨나? 하지만 어떻게 하신 거지? 지금까지 저런 능력을 안 보여주셨는데?’
정운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김철수는 손뼉을 쳤다.
“여, 역시 우리 회장님이야!! 저런 용암은 아무렇지 않게 멈추다니. 다들 봐요. 진짜 대단하지 않습니까?”
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지만, 이내 통쾌하단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조용석이 맞장구쳤다.
“암, 그렇죠. 선우영 회장님이 계신데 우리가 무서울 게 뭡니까!”
조용석의 말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병사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싸워볼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싸우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선우영 대장님이 계시잖아.”
“우리가 이길지도 모르겠는데.”
이러한 말이 수군수군 들렸다.
아주 작게 말이다.
그들의 마음에 용기가 번져나가듯이.
이윽고 병사들은 점점 사기가 치솟더니, 무기를 높이 들었다.
수군거렸던 말소리가 우렁차게 변했다.
고무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고,
“싸우자!!”
“우린 이길 수 있다!”
“선우영 만세.”
수군거렸던 말소리는 이제 함성이 되었다.
선우영은 씨익 웃었다.
“내가 있으니, 다들 걱정하지 말고 싸워요. 제가 누굽니까? 패배를 모르는 사나이, 선우영 아닙니까!”
선우영의 말이 방점을 찍었다.
병사들은 그의 이름을 연신 불렀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용기가 들어섰다.
성벽을 넘어선 높이로 싸늘하게 굳어버린 용암은 이윽고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리는 굳은 용암 사이로 햇볕이 쏟아져 모두를 비추었다.
희망을 밝히듯이 말이다.
병사들은 축 처졌던 어깨를 딱 피고 사이타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사이타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약한 놈들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변하는 건 없지.”
놈은 대수롭지 않단 표정을 지었다.
선우영은 용광검의 능력을 발동했다.
사이타나의 기억을 읽어냈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 선우영의 머릿속을 영화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걸 보고 웃는 사이타나.
파괴하고 죽이는 일에 쾌감을 느껴 눈이 돌아간 놈의 얼굴.
투항한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능욕하는 모습까지.
실로 끔찍하였다.
선우영은 성벽 밖으로 발을 내디뎌 지상에 착지했다.
성 밖으로 나와 당당히 사이타나를 바라보는 선우영.
그는 놈에게 소리쳤다.
“얌마, 짐승 새끼!”
“…….”
순간 사이타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놈은 으르렁거렸다.
“감히 버러지 같은 인간 주제에, 무어라 지껄인 거냐.”
사이타나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비늘로 이뤄진 피부가 주름지며 증오심으로 파르르 떨렸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그럼 짐승 새끼를 짐승 새끼라고 부르지, 뭐라고 하냐? 솔직히 네놈이 짐승 새끼보다 더 역겨운데.”
그가 도발에 사이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이빨을 내세우며 선우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선우영은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
용광검의 능력.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으로 놈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있었으니까.
선우영은 뒤로 휙 뛰었다.
공세를 피해낸 그가 사이타나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이 새끼가, 이젠 날 버러지라고 부르려 하네?”
“이 버러지가!!”
거친 말을 내뱉던 사이타나가 순간 움찔했다.
선우영은 자신이 할 말을 미리 알고 있었다. 마치 생각을 읽어내듯 말이다.
선우영은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내가 웬만하면 진짜 죽이기 전에 항복하겠냐고 한 번쯤은 물어보거든?”
선우영은 사이타나를 향해 소리쳤다.
“근데, 기억을 읽어보니까. 너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더라?”
선우영은 이를 부득 갈았다.
놈은 지배욕과 권력에 미친 녀석이었다.
거기서 끝이었다면 차라리 낫다.
약자가 고통받는 걸 보며 쾌감을 느끼고, 그 상황을 즐기는 쓰레기였다.
그걸 참을 수 없어 했다.
더러운 욕구 때문에 힘을 갈구해 마계 일인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도저히 해선 안 될 짓거리를 해왔다.
이 녀석을 절대 살려둬선 안 된단 신념이 생겨날 정도였다.
사이타나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단 듯이 행동하는 선우영이 우스워 콧방귀를 뀌었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선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검에 정령이 깃들어서 남의 기억을 엿볼 수 있게 됐거든. 기억을 보게 되니까, 너에 대해서 아주 잘 알겠어.”
선우영은 사이타나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의 눈빛에서 싸늘함 풍겼다.
“너는 살려두면 안 될 세계의 해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