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마지막 시련
선우영과 동맹을 맺은 엘프.
일단, 선우영은 동료들에게 케이론을 소개해줬다.
“케이론입니다.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케이론의 말투가 굉장히 정중해졌다.
선우영을 대장으로 모시겠단 뜻이기도 했고, 각기 다른 세력을 존중한단 의미이기도 했다.
인사는 가볍게 끝냈다.
“사이타나가 언제든 이곳으로 올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세계수로 가서 용광검에 정령을 깃들게 하고 싶습니다.”
선우영이 다급히 요청하자 케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케이론.
선우영은 그를 따라 세계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성의 바로 뒤에 위치해 있었다.
“이게 세계수.”
멀리서 봤을 때도 커다랗다고 느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게 몇 미터야?’
웬만한 빌딩보다 크지 않을까 싶다.
케이론은 선우영을 바라봤다.
“세계수를 마주 보고 앉아주세요. 양손에 용광검을 든 상태로요.”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세계수의 앞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그리고 용광검을 허리춤에서 뽑아 마치 누구에게 하사받듯 손잡이와 칼날을 양 손바닥에 얹었다.
“그럼, 이제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케이론은 주문을 외웠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선우영의 귓가를 맴돌았다.
독특한 감각이 몸을 감쌌다.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세계수의 거대한 이파리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이슬처럼 떨어져 칼날에 닿았다.
그러자 칼날이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빛무리가 선우영의 동공을 때리며, 그의 시야를 새하얗게 멀게 만들었다.
“…….”
선우영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고.
그렇게 시련이 시작되었다.
* * *
눈이 새하얗게 멀어버린 선우영.
“크윽!”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시야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앞의 세계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풍경이 보였다.
숲이 아니다.
안개가 잔뜩 낀 돌산.
그 너머로 뜨는 태양이 보였다.
선우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듀란달이 심상을 만든 세계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입니다.”
뒤를 돌아보자 웬 노인이 있었다.
백발의 성성한 노년의 인물.
상당한 학식이 있는지 옆구리에는 책을 끼고 있었다.
수도승 같은 수수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으나, 그의 눈빛은 지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선우영은 그가 범상치 않단 걸 알아봤다.
“……정령? 혹시 정령이십니까?”
선우영이 조심스레 묻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렇습니다. 내 이름은 엠피도클래스. 이 검의 깃들고자 하는 정령입니다.”
선우영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엠피도클래스께서 용광검에 깃들면 어떤 능력이 생기나요?”
“허허허, 그게 벌써 궁금하십니까?”
“네. 지금 사이타나와 전쟁 중이라, 어떤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엠피도클래스는 수염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 주인을 택하는 일인지라. 그대가 과연 주인으로 모실만한 사람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게 시련입니까?”
“하하하, 아닙니다. 인품을 보고 어떠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죠. 시련받아도 될지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갔다.
하긴, 모실 주인을 정하는 건데, 엠피도클래스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엠피도클래스는 질문을 던졌다.
“사이타나와 전쟁 중이라 정령이 깃든 검이 필요하다 하셨죠?”
“네.”
“전쟁에서 승리하면 어쩌실 겁니까?”
“아너더를 떠나 지구로 돌아갈 겁니다.”
“어나더를 지킨 보상은 받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사이타나를 해치우면 어나더를 직접 지배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럴 생각 없습니다.”
선우영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는 자기 생각을 피력했다.
“보상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그럼, 무얼 위해 싸우십니까?”
“보상이란 무언갈 해냈을 때 따라오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을 하려 했는가. 어떤 비전이 있는가입니다.”
“허허허, 흥미롭군요.”
엠피도클래스는 호기심에 눈이 반짝였다.
보상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 말이 굉장히 재미있게 다가왔다.
평범한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좇다 인생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부차적으로 생각한다니.
그러기에 궁금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어떤 비전이 있으시길래 사이타나와 싸우십니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 합니다.”
“좀 더 나은 세상?”
“네. 최소한 몬스터 때문에 사람들이 겁에 질리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니까요.”
“허허허.”
엠피도클래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옳은 말이다.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
엠피도클래스는 결정을 내렸다.
“정말 정의로우시군요. 좋습니다. 모실만한 분이라 생각하고 이제부터 시련에 들어가겠습니다.”
엠피도클래스는 그리 말했다.
선우영은 그에게 물었다.
“어떤 시련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엠피도클래스는 옆구리에 끼웠던 책을 펼쳤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그저, 저와 싸워 이기면 그걸로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엠피도클래스는 마법진을 사용하여 공격 태세를 갖췄다.
뭉쳐지는 마나.
파괴적인 기운이 한곳으로 모였다.
선우영은 그 기운을 느끼고 얼른 오러를 끌어올려 전신을 보호했다.
저거, 맞았다간 큰일이 나게 생겼다.
어떻게든 회피해야 했다.
엠피도클래스는 파괴적인 기운이 서린 마법을 쏘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 * *
콰과광.
폭발음이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크윽!!”
선우영은 허공으로 뛰며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엠피도클래스의 공격은 엄청났다.
선우영은 숨을 헐떡였다.
‘무진장 강하잖아.’
선우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전투력만 따지면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 위였다.
“제기랄.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언제 사이타나가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지체할 시간도 없는데.”
선우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엠피도클래스가 그걸 들었던 모양새다.
“급한 마음은 이해가 되오만, 그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군요.”
“중요한 것이요?”
선우영인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엠피도클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능력.”
“네?”
“잠재력을 깨우쳤지만. 그걸 다루는 능력이 떨어지십니다, 그려.”
“제 능력이요?”
선우영은 눈을 껌뻑였다.
엠피도클래스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선우영 님의 능력은 스킬을 융합하는 능력이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잠재력을 개방하자 마나를 흡수해 오러를 강화시켰고.”
“그랬죠.”
“스킬 융합과 잠재력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걸 깨달으십시오.”
“연관성이요?”
선문답 같은 이야기에 선우영은 아리송했다.
잠재력과 스킬 융합.
그 두 가지가 연관성이 있다면….
‘혹시 내 잠재력은 스킬 융합 능력에서 비롯된 건가?’
선우영은 여기까지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어쨌단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엠피도클래스는 빙긋 웃으며 단서를 줬다.
“스킬석이 어떻게 생기는 줄 압니까?”
“네. 마나가 돌에서 오랫동안 깃들면서 생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돌에 농축된 마나가 신비로운 효과를 주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
“그렇다면, 결국 스킬이란 마나가 이뤄낸 기적이란 뜻이고. 선우영 님의 잠재력은 마나를 흡수해 오러를 강화시키는 능력이니….”
“아!!”
선우영은 그제야 깨달았단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기 잠재력이라는 게?
스킬 융합의 진짜 능력은?
‘그랬구나!’
깨달음을 얻은 선우영은 순간 전율이 흘렀다.
만약, 자신이 상상한 게 맞는다면.
홀로 사이타나를 무찌르는 게 가능했다.
“허허허, 깨달음을 얻으신 모양이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엠피도클래스는 껄껄 웃었다.
선우영은 고개를 숙였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련 중에 어째서 이런 걸 알려주시는지….”
선우영은 궁금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가르쳐 준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엠피도클래스는 허허롭게 하늘을 바라보며 잿빛 수염을 아래로 쓸어내렸다.
“사이타나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네. 맞습니다. 다른 차원을 침공해 민간인을 죽이고, 지배하려는 나쁜 놈이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나쁘지만….”
엠피도클래스는 다시 선우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강제로 차원을 찢고 게이트를 만드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죠. 순리를 따르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순리요?”
“차원을 이동하는 능력은 자연과 동화된 존재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걸 강제로 하면 차원 간 균열이 생겨 세상이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정령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만이 가능하단 의미로군요.”
“허허, 참 영특하십니다, 그려. 단숨에 이해하실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엠프도클래스는 빙긋 웃었다.
그러며 마저 이야기했다.
“뭐, 설명은 이쯤하고. 슬슬 시련을 끝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엠피도클래스가 파멸적인 광선을 만들었다.
이전보다 훨씬 거대한 빛무리.
당연하게도 그 안에 서린 파괴력은 이전보다 몇 배는 거대했다.
그러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이 세상은 저의 심상을 표현한 세계이지만, 마나가 존재합니다.”
참고하란 듯이 내뱉은 말.
피휴웅.
엠피도클래스가 광선을 쏘았다.
선우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는 자신의 스킬 융합을. 아니, 스킬 융합의 진정한 능력을 사용했다.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고.
자신의 오러와 융합시켰다.
그러자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이 달라졌다.
세상 만물이 느껴졌다.
소위 ‘도가’에서 말하는 자연과 하나가 된 경지.
물아일체.
그 경지에 도달했다.
선우영이 가진 스킬 융합.
거기서 파생된 잠재력은 자연의 힘을 받아들여 융합하는 것.
그 방대한 기운이 선우영의 내부를 확장 시켰다.
“…….”
선우영의 몸에서 후광이 빛났다.
그 빛은 엠피도클래스가 만들어낸 세계를 흔적도 없이 가루로 만들기 시작했다.
엠피도클래스가 쏜 광선도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엠피도클래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선우영이 능력의 본질을 깨우쳤으니, 이제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선우영에게 소리쳤다.
“아, 참고로 제 능력은 타인의 생각과 기억을 잃는 능력입니다. 사이타나와 싸울 때, 녀석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 수 있겠죠.”
엠피도클래스는 선우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이것을 끝으로 모든 시련이 끝났다.
엠피도클래스가 만든 세상이 붕괴되어 사라지고, 동시에 현실 속 선우영이 정신을 차렸다.
케이론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되셨나요? 시련을 극복하고 용광검에 정령이 깃들게 하셨나요?”
선우영은 용광검을 바라보았다.
흑색 칼날에 은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선우영은 씨익 웃었다.
“네, 시련을 통과하고 정령이 용광검에 깃들게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사이타나와의 최종 결전만이 남았죠.”
선우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용광검을 하늘에 휘둘렀다.
허허로운 궤적.
딱히 굉장함이 느껴지지 않는, 언뜻 수수하다 싶은 일격.
케이론은 대단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하늘을 바라보고.
놀라 입을 턱 벌렸다.
선우영이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하늘이 갈라지듯 구름이 기묘한 형상을 하였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생겼는지, 구름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