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모든 걸 잃어버렸다
드래곤의 모습이 된 사이타나.
선우영은 느꼈다.
압도적인 힘과 위압감을….
‘지금 저놈이랑 싸우면 이기기 힘들 것 같은데.’
뭐, 많은 시간이 흐른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자신의 특성을 활용하면, 언젠가 드래곤의 모습이 된 사이타나를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상당한 세월이 필요할 거야.’
5년?
어쩌면 10년이 될지도 모르지.
아무튼 오래 걸릴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싸우는 건 안 돼.’
선우영이 그리 생각할 때.
사이타나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놈은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녀석의 피부에 검은 화염이 휩싸였다.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
그러나 시전자에게는 어떠한 데미지도 주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사이타나는 선우영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을 상대로 본래 모습을 드러낸 건 굴욕이지만, 지금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훗날 당하게 되는 건 자신일 테니까.
사이타나, 녀석은 선우영을 향해 아래로 돌진했다.
거대한 육체와 절대 꺼지지 않은 불꽃. 이 두 가지가 합친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걸 파괴한다.
‘확실하게 죽여주마-!’
그리 각오한 사이타나.
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제길. 이렇게 죽는 건가.”
“저걸 어떻게 이겨.”
자포자기에 이르러 도망치는 것조차 포기했다.
김철수는 식은땀을 흘렸고.
백영희는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정운과 조용석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했다.
몰제와 페일은 이를 악물었다.
절망적인 상황.
그러나 선우영은 그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후우, 그럼 나중에 또 보자. 사이타나.”
선우영은 눈을 감았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듀란달은 높이 들었다.
정신을 집중한 상태에서.
부우웅.
듀란달을 허공에 휘둘렀다.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고 유연한 궤적.
곧이어 변화가 일어났다.
허공에 거대한 게이트가 생겼다.
사이타나가 지상으로 떨어지려 하는 경로 한가운데에 말이다.
“!!”
사이타나는 눈앞에 게이트가 생긴 걸 봤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상으로 빠르게 하강한 탓에 멈추려고 해도, 가속도가 붙어 계속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사이타나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이내 끝맺지 못하고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슈우웅.
듀란달로 만든 게이트가 닫혔다.
선우영은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사람들은 어벙한 얼굴로 선우영을 바라봤다.
무슨 일을 벌였냐는 표정.
선우영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왜들 그리 쳐다봐요? 게이트를 만들어서 사이타나를 어나더의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을 뿐인데.”
“…….”
“뭐, 그리 자주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말이죠. 행군할 때도 이거 쓰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중요한 순간에 못 쓰겠다 싶더라고요.”
그 말에 사람들이 눈을 껌뻑거렸다.
선우영은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사이타나도 다른 장소로 이동했는데. 계속 싸울 거냐?”
남은 몬스터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크오오-! 우린 항복하지 않는다. 덤벼라, 이 열등한 종족들아!!”
선우영에게 덤벼들었다.
사이타나도 없는 상황이니, 녀석들을 쓰러뜨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선우영 일행은 모든 몬스터를 해치웠다.
* * *
콰과광.
게이트를 통과해 어딘가로 도착한 사이타나.
놈은 몸을 아직도 멈추지 못했다. 거대한 몸뚱이와 검은 화염이 지상을 들이박았다.
그 순간.
사이타나는 보았다.
산산이 부서지며 하늘로 치솟는 황금 조각들을.
어나더에 황금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설마?!’
사이타나는 순간 식겁했다.
게이트를 통과해 도착한 곳은 어나더의 만마전이었다.
콰와아앙.
거대한 몸통과 부딪힌 지상은 모든 게 부서졌다.
황금 도시, 만마전이 사라지고.
검은 화염은 모든 걸 녹이며 주변을 불태웠다.
“으윽!!”
신음성을 흘린 사이타나.
놈은 드래곤의 형태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놈은 부서진 만마전을 둘러봤다.
모든 게 부서졌다.
무엇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시중을 들던 녀석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망했다.
식량은 물론이고.
무기와 거처까지 모조리 없어졌다.
사이타나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단 듯이.
왜 안 그렇겠나.
자신의 5만 병력은 아직 선우영과 싸우고 있을 거고.
자신이 사라졌으니, 전멸했을 거다.
게다가 만마전이 사라졌다.
그동안 비축해둔 식량이며 무기까지 모조리 부서졌다.
비를 피할 거처도 없다.
시중을 들 노예도 전부 죽었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혼자서 해야 한다.
재건도 어렵다.
만마전은 군단장이었던 마몬의 작품이다.
그런데 마몬은 선우영에게 죽어버렸다.
통솔하던 조직이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만 남았다.
식량도 자신이 구하고 밥도 직접 해 먹어야 한다.
선우영이 어디에 있는지, 그 정보를 알기 위해 직접 날아서 확인해야 한다.
좋은 효과가 가진 아티팩트가 전부 부서졌으니, 무기 제작도 해야 하고. 심지어 노예나 병사를 직접 모집해야 한다.
그걸 모두 혼자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우영은 강해지는데 말이다.
“이런 젠장!!”
조직을 재건하는데, 신경 쓰면 선우영이 강해져 버리고.
선우영을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 놈을 찾아다니면 조직을 만들지 못해 뭘 하든 효율이 떨어진다.
효율이 떨어진 만큼 시간은 지체될 테니, 선우영이 강해진단 결과로 이어질 게 뻔했다.
사이타나는 분통이 터졌다.
“크아아악!!”
미치고 팔짱 뛰겠다.
당했다.
선우영에게 당해버렸다.
모든 걸 잃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혼자서 해야 한다.
천하의 사이타나가 비를 피할 거처조차 없는 신세가 될 줄이야.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사이타나는 분노에 휩싸여 흰자가 시뻘게졌다.
퍼져나가는 살기가 흉흉했다.
그게 다 부서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만마전을 공허하게 떠돌았다.
* * *
선우영은 주변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전멸시켰다.
“하여튼 이놈들은 귀찮게 항복을 안 해요.”
그는 시체가 된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러며 동쪽을 바라봤다.
만마전이 있는 곳을.
거대한 진동과 폭발을 그쪽에서 느꼈다.
틀림없다.
‘만마전이 부서졌겠지?’
공격을 멈추지 못한 사이타나가 만마전을 부셨을 거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자기 손으로 만마전을 부숴버린 사이타나의 표정이 궁금했다.
‘엄청 분노하고 있겠지?’
그걸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선우영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자자, 전투 끝났으니 얼른 빨리 이동하죠.”
선우영이 소리쳤다.
휴식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재정비를 위해서라도 줬을 거다.
하지만 사이타나가 복수한다고 당장 날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피해야 한다.
‘게이트를 이용해 함정에 빠뜨리는 건 한 번밖에 안 통할 테니까.’
사이타나는 바보가 아니다.
‘한번 당한 수법을 두 번 당해주진 않겠지.’
그러면 궁지에 몰리는 건 자신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놈과 싸울 정도로 강해져야 했다.
‘그럼, 어디로 갈까나.’
선우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이타나를 피해 몸을 피할 곳이 있지 않을까?
그리 고심하고 있는데.
몰제가 그에게 다가왔다.
“선우영 대장님.”
“네. 말씀하세요.”
“온리로 가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온리?”
“네. 아스모데우스가 지배하던 곳인데, 그곳에 엘프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저희 군에 편입시켜보는 건 어떻습니까?”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종족들은 모두 해방했는데, 엘프들은 아직 해방해주지 못했다.
“그럼 온리로 갑시다.”
“네.”
“대신 강제로 입대가 아닌 지원자만 받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병력을 이끌고 이동했다.
사람들에게 온리로 간다고 전달하고, 그곳에서 쉴 테니 조금만 견디라고 이야기해줬다.
행군을 하던 중.
“온리는 어떤 곳이려나.”
선우영의 혼잣말을 페일이 들었다.
그가 선우영에게 다가왔다.
“온리는 굉장히 흥미로운 지역입니다.”
“엘프들 때문인가요?”
“엘프들은 약초를 기르고 포션을 제작하는데 가장 뛰어난 기술을 지녔습니다.”
“그거참 기대되는군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온리에 있었죠.”
선우영은 호기심이 생겼다.
페일이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듯한데.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까? 온리에?”
“네. 듀란달에 정령이 깃들게 한 곳이 바로 온리거든요.”
“네?”
선우영은 놀라 되물었다.
페일이 빙긋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온리에는 세계수란 거대한 나무가 있습니다. 듀란달은 그곳에 두고 의식을 치러 정령이 깃들게 했죠.”
“그거 굉장한데요?”
“원래였다면 정령의 시련을 통과하고, 듀란달에 정령이 깃들게 했어야 했는데…….”
“그런데요?”
“운이 좋아서 듀란달에 호기심을 가진 정령이 시련 없이 깃들었죠.”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페일은 동시에 고생 많았단 듯이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시련 없이 듀란달에 정령이 깃드는 바람에……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주인이 없는 상태이니,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도 정령의 결정에 따라 만들어졌고요.”
페일은 쓴웃음을 띄었다.
선우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다 자신의 용광검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듀란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랬었지?’
용광검에 정령이 깃들 수 있다고. 그 정도 수준의 명검이라고.
만약 용광검에 정령이 깃든다면.
그럼, 듀란달처럼 뭔가 특수한 능력이 생기는 걸까?
‘어떤 능력이 생길까?’
가슴이 뛰었다.
전투에 도움 되는 능력이 생긴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막, 뭐든지 자르는 능력… 이런 능력이라던가.’
그러면 사이타나를 단숨에 동강 내 죽일 수 있을 거다.
선우영은 기대되었다.
부디 용광검에 좋은 능력이 생기길 바랐다.
* * *
온리.
거대한 세계수가 있는 장소.
그곳에 있던 엘프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아스모데우스가 자리를 비우자, 이때다 싶어 무기를 탈취했다.
엘프들은 화살과 마법을 쏘며 싸웠다. 몬스터들은 반란을 막지도 못했다.
아스모데우스가 싸울 수 있는 대부분의 병력을 데리고 나갔으니까.
남은 몬스터들은 속수무책으로 엘프에게 당했다.
“으아아악!!”
몬스터들의 비명이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피휴우웅.
화살이 날아가 몬스터의 가슴팍에 박혔다.
주변에 피가 낭자했다.
몬스터 시체가 주변을 굴러다녔다.
엘프들은 소리쳤다.
“자유를 위하여!!”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한 서린 외침이 주변에 메아리쳤다.
이번에야말로 자유를 쟁취하겠다. 빌어먹을 몬스터들한테 지배당하지 않겠다.
그런 이야기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몬스터들이 뒤로 물러나다 성벽에서 떨어져 죽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온리를 되찾았다!!”
엘프들이 활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엘프들의 뒤로 거대한 세계수가 보였다.
그때 한 엘프가 소리쳤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온리의 독립을 선포하고, 우리 것을 되찾읍시다.”
“근데, 소문 들었습니까? 다른 차원에서 사이타나를 무찌르겠다며 찾아와 싸우고 있다는데요?”
“헹, 그럼 뭐합니까? 아스모데우스랑 동맹을 맺었다면서요? 우리는 구해주지도 않았는데, 놈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엘프들은 묘한 반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