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바리케이드
아스모데우스를 쓰러뜨린 선우영 일행.
그는 죽은 몬스터의 시체를 모두 화장했다.
전투를 치른 참이라 다들 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사이타나가 곧 진격해올 거다.
쉴 시간은 없다.
녀석과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일단 다시 엘림 강가로 돌아가 그곳을 야영지로 삼았다.
문제는 레비아탄의 시체였다.
그걸 해체하는 게 어려우니, 엘림 강가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던 게 아닌가.
“아이고, 이거 치우는 것도 일이겠네.”
김철수는 거대한 레비아탄의 시체를 보며 어깨를 빙빙 돌렸다.
그때, 박인혁이 아이디어를 냈다.
“레비아탄의 비늘과 뼈는 단단해요. 이걸 이용해 바리케이드라도 치는 게 어떻습니까?”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조용석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찬성표를 던졌다.
레비아탄의 비늘과 뼈는 단단하니 바리케이드로 사용하면 제법 쏠쏠하게 쓸 수 있을 거다.
뭐, 문제는….
“벌써부터 살점에 벌레가 꼬였네.”
정운은 레비아탄의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와 벌레를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얼마나 심각하던지.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이걸 직접 만져서 옮겨야 한다고요?”
정운은 눈가가 찌푸려졌다.
어지간히도 싫었나 보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왜? 싫어?”
“그, 좀 더럽기는 한데…. 그림자 사용하면 직접 안 만지고 치울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정운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선우영은 정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장난쳤다.
나름의 애정 표현이었다.
선우영은 레비아탄의 시체에 다가갔다.
비늘과 뼈.
이것들로 좋은 바리케이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위생이다.
벌레가 득실거리는 시체를 옆에 두고 싸웠다간 병에 걸릴 수 있다.
비늘과 뼈는 사용하되, 근육이나 살점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정운의 그림자로 레비아탄의 시체를 엘림 강가에서 건져냈다.
벌레가 꼬인 시체.
화르륵.
선우영은 불꽃을 쏘았다.
일단 시체에 달라붙어 있는 벌레들부터 모조리 소각시켰다.
동시에 살이 익어가는 냄새가 주변으로 풀풀 풍겼다.
이것도 악취가 심했다.
썩은 내와 탄내가 동시에 맡아졌다.
“윽!!”
김철수는 코를 집게손가락으로 막았다.
고약한 냄새다.
그렇게 벌레들을 다 죽인 다음.
정운이 다시 그림자를 이용해 남은 살점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리한 살점은 다시 불로 완전히 태워 없앴다.
남은 건 비늘과 뼈.
이걸로 바리케이드를 칠 준비가 끝났다.
박인혁과 드워프들은 안타까운 듯 탄식을 내질렀다.
“아-!! 무기 만들기 좋은 재료인데.”
“안타깝군. 사이타나가 쳐들어오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걸로 좋은 무기를 많이 만들었을 텐데.”
그들의 눈에는 비늘과 뼈가 보물처럼 보였다.
그럴 만했다.
저걸로 명검 아틸라를 만들지 않았던가.
그들은 아틸라를 처음 만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푸르른 칼날.
파도치는 바다처럼 아름다운 물결무늬가 들어간 칼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진짜 걸작이다.
레비아탄의 뼈와 비늘이 있다면 몇 자루 더 만들 수 있겠지만.
사이타나가 쳐들어오기 전에 무기를 완성하진 못할 거다. 그러니 이렇게 바리케이드를 치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조용석과 김철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자, 그러면 바리케이드를 쳐볼까요? 이제 내가 힘을 쓸 차례가 됐네.”
“같이 하죠.”
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려고 하자, 선우영이 잠시 만류했다.
“잠깐만요.”
“회장님, 왜 그러세요?”
김철수는 고개를 돌려 선우영을 바라봤다.
선우영은 자기 의사를 밝혔다.
“바리케이드를 좀 더 전략적으로 설치하고 싶습니다.”
김철수와 조용석은 서로를 바라봤다.
저게 무슨 소리인지 너는 알겠냐는 눈짓을 주고받고 다시 선우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말입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선우영은 강가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차근차근 밝혔다.
“배수의 진을 칩시다.”
“네?”
김철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배수의 진이라니.
스스로 도망칠 곳을 없애고, 결사 항전할 때 쓰는 방식이 아닌가.
강물을 뒤에 두고 적과 싸워 아군 병사들이 도망가지 못 하도록 만드는 전술인데….
김철수는 의아했다.
배수의 진이 쓸모없다고 느껴졌다.
아니, 보통 배수의 진은 신병들이 싸우지 않고 도망칠 가능성이 있을 때 쓰지 않나.
그런데 이곳에 모인 인물들을 봐라.
다들 싸우겠다며 자진해서 모였고, 지금까지 도망가는 사람 없이 싸워왔다.
게다가 사기도 충만하다.
그런 상황인데 배수의 진이 무슨 의미일까.
도망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로 이뤄진 병력인데 말이다.
김철수는 이런 의문을 조심스레 물었다.
“배수의 진은 병사들이 도망갈까 봐 쓰는 전술 아닙니까? 저희 병력은 싸우겠단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아무도 도망가지 않을 텐데요?”
“아아, 그게 아닙니다.”
김철수는 혹여나 엄청난 작전이 있을까 싶어서 경청했다.
선우영은 설명에 들어갔다.
“정면에 단단한 방어벽이 있으면, 사이타나가 어디로 공격하겠습니까?”
“음….”
김철수는 대답하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잘 모르겠다.
그때, 백영희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했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물을 이용하겠죠.”
“네. 맞습니다.”
김철수는 자세히 설명해달란 눈빛으로 백영희를 바라봤다.
그녀는 간단히 이야기해줬다.
“사이타나는 용암을 만들어 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니 강물에서 싸우는 게 유리하죠.”
“……아-!!”
김철수는 그제야 이해되어 손뼉을 쳤다.
그는 선우영을 향해 엄지를 보였다.
“정면에 단단한 바리케이드가 있으니, 사이타나가 배를 타고 강물로 내려와 공격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스레 물 위에서 전투가 이뤄지니, 사이타나의 용암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겁니다.”
선우영은 김철수가 하려던 마지막 말을 이었다.
김철수는 감동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의 두뇌가 참으로 대단하다 여겼다.
이때, 정운이 물었다.
“아저씨, 만약에 사이타나가 강가가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들어오려고 하면 어떻게요?”
“바리케이드 부수려면 시간이 걸릴 거고. 그 틈에 원거리 공격으로 피해를 주면 되지. 뭐, 좀 불리하다 싶으면…….”
선우영은 강물을 엄지로 가리켰다.
“진짜 불리하다 싶으면 강물에 배를 띄워서 도망가면 되고.”
“오-!!”
정운은 눈을 반짝였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근데 아저씨. 배는 어디에 있어요.”
선우영은 눈을 껌뻑거리며 정운이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네 그림자로 배를 만들어 강물에 띄우면 되잖아.”
“아, 그렇구나.”
정운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설명 듣는데 열중한 나머지 자기 능력을 활용한단 생각을 까먹었다.
선우영의 작전은 흠이 없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자, 그러면 빨리 바리케이드치고 밥이나 먹죠. 슬슬 점심도 되어가는데.”
그들은 바리케이드는 치는 작업에 나섰다.
뼈와 비늘만 남았지만, 워낙 덩치가 커다랬던 레비아탄은 비늘과 뼈가 아주 무거웠고,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내기 딱 좋았다.
그렇게 모든 작업이 끝나고.
선우영 일행은 점심을 먹었다.
언제 전투가 시작될지 모르니, 식사는 가능한 가볍게 때웠다.
물론, 대식가 김철수는 투덜거렸지만.
선우영은 동쪽을 자꾸만 주시했다.
용암이 하늘로 치솟았던 방향.
사이타나가 자신을 향해 진군하고 있을 거다.
‘힘을 되찾았으니까.’
아마 거칠 게 없다고 여기겠지.
최후의 전투가 될 수 있다.
‘마음 다잡고. 최선을 다해 싸워야지.’
선우영은 그리 다짐했다.
* * *
사이타나는 군세를 이끌고 엘림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선우영과 담판을 지을 거다.
이미 척후를 보내 그가 엘림 강가에서 진을 치고 있단 정보를 입수했다.
‘거기가 네놈이 고른 묫자리냐?’
사이타나는 피식거렸다.
본래 힘을 되찾은 지금이라면 선우영 따윈 금방 죽여버릴 자신이 있었다.
사지를 찢어버릴 요량이다.
물론, 자신에게 반기를 든 어나더의 종족들도 함께 없애겠다.
‘항복하는 녀석들은 노예로 봉사하게 만들어야겠군.’
그리고 새로운 군단장을 뽑아 지구 침략에 써먹어야겠다.
사이타나는 엘림 강가의 전투에서 이기고 난 후에 어떻게 할지 정하느라 머릿속이 바빠졌다.
선우영을 이긴다는 건 당연지사로 여겼다.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행군하자, 드디어 엘림 강가에 도착했다.
적군을 바라보던 사이타나.
놈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터졌다.
“바리케이드??”
이 상황에 방어벽이 될만한 걸 만들어놨다.
더욱이 웃긴 건 그 재료였다.
사이타나는 바리케이드를 보고 머릿속에서 레비아탄이 떠올랐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군단장의 시체를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치다니.
실소를 터뜨리던 사이타나.
놈은 잠깐 멈칫거리고 자기가 본 게 맞나 싶은 얼굴로 바리케이드를 보더니, 이번엔 웃음소리를 높였다.
“하하하,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다니.”
사이타나는 그리 말하며 현재 보이는 지형을 살펴보았다.
적군의 진세가 참으로 이상하다.
뒤에 강을 두고 앞으로는 바리케이드를 쳤다.
‘불리하면 강물을 이용해 도망칠 생각인가?’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사이타나는 끌끌끌 거리며 턱을 문질렀다.
참으로 재미있다.
흥미롭다.
‘저 진세는…… 감히 건방지게 나와 지략대결이라도 해보자는 건가?’
사이타나는 여흥 거리가 생겨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자기가 나서면 무조건 이긴다. 아주 간단하게 말이다.
그런데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나.
너무 압도적이니까.
사이타나가 원하는 건 간단했다.
‘나와 지략 대결해보겠다? 귀엽게도 재롱을 부리는구나. 좋다. 압도적으로 이기기 전에 가볍게 놀아주마.’
사이타나는 선우영과 지략대결을 해보고 싶었다. 군단장을 모두 쓰러뜨린 녀석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나저나 아스모데우스가 안 보이는군.’
사이타나는 팔짱을 끼었다.
자신을 배신했던 아스모데우스.
그녀가 안 보인다.
이것도 무슨 전략 중 하나일까?
‘그럴 리 없지.’
아스모데우스의 성품을 알고 있는 사이타나.
놈은 모든 상황을 추론했다.
‘내가 힘을 되찾자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해 선우영을 배신하고 도망쳤겠지.’
아스모데우스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사이타나는 진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저길 공격할까 고심해봤는데.
3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공격하는 방식.
이때, 바리케이드를 부수는 게 느리면 많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배를 타고 강가에서 공격하는 것.
바리케이드가 없으니 쉽게 싸울 수 있지만, 자신이 나설 경우 용암 공격이 반감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강과 바리케이드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
이거였다.
병력을 나눠 배를 타고 강가에서 공격함과 동시에 바리케이드에 달려드는 것이다.
사이타나는 씨익 웃었다.
‘그래. 세 번째가 재미있겠군.’
좋은 기회다.
전방위적인 공격으로, 적장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니까.
이것도 흥미로운 여흥 거리가 아닌가.
사이타나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병력을 둘로 나눠, 강가와 바리케이드를 동시에 공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