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아스모데우스의 죽음
아스모데우스는 비명을 질렀다.
절단된 왼팔.
화끈한 고통이 어지러울 정도로 육신을 괴롭혀댔다.
아프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상처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덩어리져서 떨어졌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다.
부상이 심각했다.
평범한 사람이나 몬스터였다면 진작에 죽었겠지만, 군단장급 실력자였기에 아직 버틸 순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했다.
이대로라면 죽어버릴 거다.
‘그럴 순 없어! 이대로 죽어버릴 순 없다고!!’
치료.
어떻게든 치료해야 한다.
부우웅.
칼날이 다시 한번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녀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빌어먹을!!’
칼날이 턱선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서큐버스 여왕인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이보다 굴욕적인 순간이 있을까.
아스모데우스는 숨을 헐떡거렸다.
부상으로 죽을 것 같은데.
백영희는 자비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시야가 흐릿해졌다. 출혈이 심각하다.
일단 지혈부터 해야 한다.
고통을 반감시켜줄 순 있어도 상처를 치료하는 마법 따윈 없다.
‘포션.’
왼쪽 주머니에 챙겨둔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해야 하거늘.
그 틈을 백영희가 줄 리 만무했다.
“많이 약하구나.”
백영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아스모데우스를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우위라는 것처럼.
백영희는 잠재력을 모두 개방한 상태라 허공을 뛰어다닐 수 있었다.
공중전도 자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자기 간부들에게 눈짓을 줬다.
포션으로 치료할 틈을 만들기 위해 너희가 나서라는 의미였다.
간부들이 나선다 해도 백영희를 이길 수 있겠나.
사실상, 자기 치료할 틈을 벌기 위해 간부들한테 죽으라고 명령한 거지.
간부들은 주춤했다.
죽을 걸 뻔히 아는데 싸우라고?
그들도 무서웠다.
그 순간, 릴리트가 겁도 없이 선두로 나서서 백영희에게 맞섰다.
그녀도 죽을 걸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충심을 발휘해 백영희에게 달려들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상처를 치료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릴리트가 나서자 나머지 간부들도 따르듯 같이 움직였다.
도망쳐도 죽을 것 같고, 싸워도 죽을 것 같으니… 최소한 발악이라도 해보자 판단했다.
녀석들이 한꺼번에 백영희를 향해 마법을 쏘았다.
하지만 적중하는 일은 없었다.
콰르릉.
녀석들의 시야에서 백영희가 사라졌다.
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곧이어 보이는 건, 빠르게 회전하는 세상.
찾아오는 어둠.
눈앞이 껌껌해졌다.
백영희는 음속을 돌파한 속도로 마법 공격을 피하고 릴리트와 간부들을 목을 베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소닉붐이 일어났다.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목과 몸통이 분리된 릴리트와 간부들은 충격파에 휘말리며 튕겨 나가듯 지상으로 떨어졌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스모데우스의 치료가 끝났다.
포션을 상처에 붇는 데 성공했다.
절단된 팔이 도로 자라진 않았지만, 상처에서 더 이상 핏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새살이 자라나 상처를 감쌌다.
외팔이가 된 아스모데우스.
그래도 마법을 쓰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미간을 찌푸려 주름을 잡았다.
“감히 내 팔을 자르다니.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백영희는 대꾸도 안 했다.
마치 지나가던 개가 짖는 걸 본 사람처럼 무심하였다.
아스모데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백영희한테까지 무시당했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이 녀석이!!”
아스모데우스는 악을 지르며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진을 소환하였다.
5개를 겹친 마법진, 그 파괴력은 산맥을 일격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마나 소모가 극심해서 문제였지.
“넌 이걸로 끝이다.”
아스모데우스가 그리 말하며 마법진을 백영희에게 겨냥하려던 순간.
콰르릉.
번개 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백영희가 순식간에 아스모데우스의 눈앞에 도달했다.
푸욱.
칼날이 살가죽을 가르고 들어가는 소리가 아스모데우스의 귓가를 음산하게 맴돌았다.
콰드득.
백영희는 상처를 후벼파듯 칼날을 돌렸다.
“컥!!”
피를 울컥 토하는 아스모데우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칼날이 가슴팍을 뚫고 들어간 게 보였다.
심장이 당했다.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컴컴해지는 눈앞.
백영희는 죽어가는 아스모데우스에게 충고해줬다.
“난 고속으로 움직일 수 있다. 게다가 근육이나 오러의 움직임도 읽을 수 있지.”
“…….”
“네가 마법으로 어떤 공격을 할지 다 알고 있고. 언제든 회피할 기동력을 가졌는데. 그걸 맞아줄 거로 생각했나? 이렇게 공격하기 전에 미리 죽이면 되는데 말이야.”
“…….”
백영희는 아스모데우스의 가슴팍에서 칼날을 뺐다.
상처에서 핏물이 뿜어졌다.
칼날은 검붉은 핏물로 덧칠되어 본래의 아리따웠던 검신을 볼 수 없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백영희는 그녀의 시체를 빤히 바라봤다.
오러는 물론이고 근육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볼 수 있었던 그녀는 아스모데우스의 심장이 멈춘 걸 확인했다.
‘확실하게 죽었다.’
그리 생각한 백영희는 칼날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내고, 검집에 칼을 집어넣었다.
승부는 백영희의 승리였다.
싸움이 시작된 지 고작 1분도 안 된 시간이었다.
지상에서 그걸 바라본 선우영.
그는 옅은 웃음을 보였다.
백영희가 이겼다.
어디 하나 상처 입은 곳 없이 말이다.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백영희의 전투력은 이미 군단장 수준에 이르렀다.
선우영은 적군을 바라봤다.
아스모데우스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자 살자 싸우고 있었다.
몇몇은 자신이 만든 화염의 저주 효과로 인해 싸우지도 못하고 고통에 발버둥 쳤다.
선우영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오러로 목청을 강화하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들으라-!!”
쩌렁쩌렁한 소리가 전장에 메아리쳤다.
위압감을 뿜어내는 목소리에 싸우던 몬스터들과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선우영은 이어 소리쳤다.
“아스모데우스는 죽었다. 항복하는 몬스터는 살려주겠다. 하지만 계속 싸우겠다면 내가 직접 몰살시켜주마!!”
마지막 한마디에서 살이 에이는 살기가 느껴졌다.
몬스터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거짓말!!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려고 아스모데우스 님이 죽었단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어!”
“난 절대 못 믿어. 인간 따위가 하는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몬스터들은 더욱 분노를 불태웠다.
선우영은 증거를 보여줬다.
시체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진 아스모데우스의 목을 효수하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보아라! 아스모데우스의 목이다. 녀석은 죽었다.”
그의 손에는 아스모데우스의 머리가 들려있었다. 너무나 확실한 증거였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하등한 인간 놈들에게 항복할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
“처음부터 인간들과 손잡는 게 맘에 안 들었어!!”
몬스터들은 악을 질렀다.
놈들은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갔다.
선우영은 손에 쥔 아스모데우스의 목을 한번 휙 쳐다보더니,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는 어리석은 몬스터들에게 시선을 줬다.
살 수 있는 기회를 줬거늘.
그걸 버리고 죽는 길을 선택했다.
도대체 몬스터는, 마족이라는 녀석들은 왜 저렇게 다른 종족을 깔보고 차별할까.
게다가 배신을 밥 먹듯 한다.
신의조차 없다.
이런 놈들은 정말이지 처음이다.
어쩔 수 없다.
전부 죽이는 수밖에.
‘매번 전투가 섬멸전으로 끝나네.’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황금 가루를 만들어내고 독침 공격에 나섰다.
독을 뿜어내는 비수.
그게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죽여버렸다.
비수가 녀석들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독으로 죽을 시간조차 없었다.
이미 몸통에 바람구멍이 생겨 죽어버렸으니까.
압도적인 무위였다.
“커헉.”
“으어억.”
들리는 건 몬스터들의 비명.
이걸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벌처럼 매섭게 날아다니는 비수가 적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한 가운데를 선우영이 걸어 다녔다.
“이 망할 자식!!”
몬스터 하나가 그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비수에 머리가 뚫려 죽었다.
그렇게 모든 전투가 끝났다.
선우영 병력의 압도적인 승리.
아스모데우스의 병력은 살아남은 녀석이 없었다.
죄다 시체가 되었다.
선우영의 병사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감동이 서려 있었다.
압도적인 힘.
그 힘으로 순식간에 전투를 종결시켰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모두가 존경심을 내보이는 건 당연한 상황이었다.
선우영은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가 이겼다!! 배신자를 무찔렀다!”
그 말에 호응하듯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번쩍 들었다.
“우와아아!!”
“선우영 대장님 만세!”
“우리가 또 이겼다.”
연이은 연승.
심지어 배신을 당했는데도 이겼다.
사기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이 기세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선우영은 동쪽을 바라봤다.
만마전.
그곳에 있는 사이타나.
이제 녀석과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사이타나.
힘을 회복한 놈은 만마전의 황금 옥좌에 앉아있지 않았다.
이제 직접 나서서 싸울 생각이다.
“실로 간만이군.”
자신이 나서서 싸우는 상황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마계의 일인자가 된 이후.
놈은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압도적인 강함.
그 힘에 굴복한 녀석들은 도전할 엄두도 못 냈다.
루시퍼처럼 절대 충성을 맹세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아스모데우스처럼 배신을 계획하며 언제일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는 녀석도 있었다.
사이타나는 황금 갑옷을 입었다.
루비 보석이 박힌 검.
붉은 망토.
전부 다른 차원에서 빼앗아 온 아티팩트들이었다.
사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이런 아티팩트들 따윈 쓸모없다.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는 지금도 그랬다. 사이타나는 굳이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적들을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함에도 이 아티팩트들을 챙기는 이유?
간단했다.
자신이 이렇게 많은 차원을 정복했단 걸 보이기 위함이었다.
자만심.
사이타나는 적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정복자란 사실을!
사이타나는 만마전에 모인 자신의 병력을 보았다.
총합 5만.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직접 뽑은 병력이었기 때문에 다른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력했다.
녀석들도 다양한 아티팩트로 무장했다.
치유 효과를 지닌 창.
반드시 명중하는 화살.
적을 얼려버리는 검.
지니고 있는 무기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병력들은 만마전에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가마가 있었다.
황금으로 만든 가마.
그걸 끄는 인물들은 오크 노예였다.
오크 노예들은 얼굴이 핼쑥했다. 지독한 노예 생활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도망친단 생각조차 못 했다.
자아가 완전히 무너져내린 듯한 얼굴은 생기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사이타나는 황금 가마에 올랐다.
“출정!!”
놈이 소리치자 오크 노예들이 가마를 끌었다.
사이타나는 왕처럼 가마에 앉아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병사들이 황금 가마의 뒤를 쫓았다.
사이타나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엘림 강가.
그곳을 말이다.
‘지구에서 넘어온 병력.’
예상 밖의 활약상을 펼치며 군단장들을 쓰러뜨렸다만.
‘내가 나선 이상 그것도 끝이지.’
놈은 지구에서 온 사람들이 절규하고 비명 지르는 상상을 하며 히죽였다.
마지막 전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