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또다시 배신
하늘로 치솟는 용암.
끝없던 용암의 분출도 이내 마지막을 보였다.
점점 뿜어내는 게 적어지더니, 더 이상 용암은 치솟지 않았다.
대신 지금까지 하늘로 치솟았던 용암이 지상을 뒤덮으며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김철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우, 저긴 왜 저런데. 다행히 이쪽이랑 떨어진 곳에서 저러니 피해는 없지만….”
가까이 있었다면 분명 큰일이 벌어졌을 거다.
“으으, 끔찍해.”
김철수는 용암이 머리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하며 몸서리쳤다.
조용석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용암이 분출된 곳을 바라봤다. 뭔가 이상하단 걸 깨달았다.
‘용암이 저렇게 치솟나?’
자기가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에선 저렇지 않았다.
‘용암이 일직선으로 방출되지 않았어.’
조용석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세히 살폈지만 보여야 할 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산재는 어디 있지?’
용암분출은 반드시 화산재를 동반하거늘.
왜 화산재는 안 보일까.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발견돼야 할 텐데.
‘화산 폭발이 아닌가?’
설마하니, 몬스터나 사이타나가 부린 능력인 걸까?
‘말도 안 돼.’
조용석은 애써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일개 개인이 저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단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조용석을 그리 생각하며 술잔을 바라봤다.
좌우로 흔들리며 파문이 일어난 소주가 참으로 맘에 안 들었다.
벌컥.
조용석은 술잔을 꺾어, 소주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정운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하늘로 솟아오른 용암을 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우와, 어나더의 자연현상은 특이하네.”
저걸 그냥 자연 활동으로만 여겼다.
몰제와 페일.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틀림없다.
저건 사이타나의 브레스다.
“선우영 대장님.”
“잠깐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다른 동료들도 데리고 가서 이야기하죠”
그들은 선우영에게 이야기했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머지 동료들도 데리고 연회를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숲속으로 들어갔다.
페일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입을 뗐다.
“아무래도 사이타나가 본래의 힘을 되찾은 듯합니다.”
“저 용암. 분명 사이타나의 브레스입니다.”
몰제도 동감했다.
김철수는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입을 턱 벌렸다.
“그 용암이 브레스라고요?”
“네.”
“아니, 개인이 그 정도의 힘을 지녔다고요?”
김철수는 믿기지 않아 재차 물었다.
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김철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예상치도 못했다.
그게 사이타나가 일으킨 거였다니.
조용석은 침묵했다.
혹여나 싶었는데 역시였다.
그 용암은 사이타나의 힘이었다.
백영희는 용암을 보고 느낀 기운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시 평범함 용암이 아니었군요. 일반적인 자연현상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고… 무엇보다 느껴지는 기운이 흉흉했습니다.”
정운은 걱정했다.
“S급 게이트 열어서 한동안 힘을 잃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회복되는 거였어요?”
그러자 몰제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힘을 회복시키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거 큰일이 난 거 아녜요?”
정운이 어깨가 축 처졌다.
선우영은 피식거리며 정운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왜 겁나냐?”
“누, 누가 겁낸다고 그러세요!!”
정운은 발끈했다.
선우영은 껄껄 웃었다.
“그래, 남자라면 무섭다고 쫄면 안 되지. 이제야 우리 정운이 같네.”
정운은 일부러 가슴을 폈다.
마치, 겁먹지 않았다고 과장하듯이 말이다.
“그럼요!! 제가 누군데요! 저 정운이에요.”
“하하하, 그 소리 들으니까 마음이 놓이는데? 천군만마가 부럽지 않아.”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더욱 정운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덕분에 분위기가 약간 살아났다.
선우영의 농담 덕분에 가라앉았던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선우영은 손뼉을 쳤다.
“자, 왜들 그렇게 죽을상입니까. 우리가 언제 싸울 때 편하게 싸웠습니까?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이겨왔지. 물론 제가 잘난 덕분도 좀 있었죠.”
선우영은 농담을 던졌다.
김철수는 낄낄 웃으며 받아쳤다.
“하하하. 내가 그걸 까먹었네. 우리 회장님이 어떤 분인데.”
“그러니, 싸우자고요. 싸우기도 전부터 기죽는 건 우리한테 안 어울리잖아요?”
선우영의 말에 모두가 빙긋 웃었다.
얼굴에서 두려움과 공포심이 싹 사라졌다. 다들 투지와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선우영은 만족스럽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기 전부터 겁먹을 필요 없다.
이길 궁리만 해야지.
선우영은 모두와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짰다.
사이타나가 힘을 되찾았다.
선우영의 계획도 차질이 생겼다.
사이타나를 쓰러뜨리는 첫 번째 계획조건.
놈이 S급 게이트를 만드느라 약해진 틈을 노려 쓰러뜨린다.
그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싸울지 고민해보죠. 누구 좋은 의견 있습니까?”
선우영이 모두를 바라봤다.
조용석이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저에게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해보세요.”
“사이타나가 힘을 회복했다면 우리도 작전을 바꿔야 합니다. 빠르게 싸워봤자 이득이 없습니다. 그러니 환경이라도 유리한 곳에서 싸워야 합니다.”
“환경?”
“네. 사이타나는 용암을 쏘는 능력이 있으니, 물에서 싸운다면 우리가 유리할 겁니다.”
선우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 작전이다.
운이 좋아 물속에서 싸우게 된다면 사이타나의 용암 공격은 어느 정도 반감될 수 있을 거다.
그 상태에서 육탄전에 들어가면.
자신과 사이타나.
둘 중 누가 이길까?
‘잘하면 내가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잠재력도 모두 개방된 상태니까.’
육체가 마나를 흡수할 때마다, 오러가 증대된다.
그게 반복되어 오러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였다.
그는 모두에게 작전을 이야기해줬다.
“엘림 강가. 그곳에서 사이타나와 싸워야 승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긴, 그렇네요. 엘림 강가처럼 넓은 곳이 아니면 사이타나와 싸우기 힘들 거예요.”
백영희는 동의했다.
물이 많은 곳에서 싸워야 한다면, 엘림 강가가 딱 제격이었다.
백영희는 이어 한 가지 의견을 냈다.
“사이타나만 문제가 아니에요. 아스모데우스도 조심해야 합니다.”
백영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몰제는 주먹을 움켜쥐며 한마디 거들었다.
“맞습니다. 사이타나가 본래 힘을 되찾았으니, 아스모데우스가 언제 배신할지 모릅니다.”
페일도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배신자가 또 배신하는 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선우영도 동감이었다.
그는 보았다.
사이타나가 본래 힘을 되찾아 용암을 쏘았을 때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을.
겁먹은 얼굴.
후회하는 눈빛.
무언가 결심한 듯 꽉 다문 입술.
‘분명해. 이번 전투에서 아스모데우스는 반드시 배신한다.’
선우영도 그리 예상했다.
어차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동맹이다.
아스모데우스는 신의가 없다.
그러니 분명 사이타나의 편에 붙으려 할 것이다.
‘유심히 살펴야겠군.’
선우영은 그리 다짐했다.
그때, 백영희가 나섰다.
“아스모데우스가 배신하면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선우영 회장님은 사이타나와 싸우는 것에만 집중해주세요.”
“오호,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선우영이 농담을 휙 던지자, 백영희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자신 있게 소리쳤다.
“맡겨 주시죠. 제가 검술만큼은 회장님보다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거든요.”
“하하하, 좋습니다. 아스모데우스는 맡기도록 하죠.”
선우영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천하의 백영희가 저깟 아스모데우스에게 패배하겠나.
잠재력까지 모두 개방된 상태인데.
지금 그녀의 실력은 미래에 검제로 불리게 된 그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지금이라면 아스데우스도 이길 수 있었다.
그렇게 어떻게 싸울지에 대한 작전 회의는 점점 길어져 갔다.
* * *
아스모데우스.
그녀는 자신의 텐트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등에 달린 박쥐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사이타나가 힘을 되찾았으니, 다시 저쪽에 붙어야 하는데.
뭔가 핑곗거리가 없다.
하다못해 놈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선물로 줘서 환심을 사야 하거늘.
‘제기랄. 나한테 그런 물건이 있을 리 없잖아.’
아스모데우스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갑자기 힘을 회복한 사이타나.
‘힘을 회복시키는 아티팩트라도 있었던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배신하는 게 아니었는데.’
난처하게 됐다.
선우영을 배신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으로!!
‘힘을 회복한 사이타나는 곧장 선우영을 죽이러 오겠지.’
분명 사이타나는 선우영을 죽일 때, 자신도 같이 죽일 거다.
그렇다면, 미리 사이타나와 접선해 전투 도중 선우영을 배신하겠다고 말하면?
‘그래도 사이타나에게 죽는다.’
힘을 회복한 사이타나는 선우영을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다.
굳이 자기 도움은 필요 없다.
오히려 배신의 책임을 물어 죽이려 하겠지.
아스모데우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답은 하나야.’
사이타나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선우영을 죽여야 한다.
그의 수급을 바쳐야 한다.
‘내 실력으로 선우영을 이길 순 없어.’
선우영은 강하다.
루시퍼와 레비아탄도 쓰러뜨린 강자다.
정면 대결은 안된다.
그건 바보짓이다.
‘선우영이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해야지.’
아스모데우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음모를 꾸몄다.
‘오늘 밤,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가 끝나고. 선우영이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기습한다.’
아무리 강자라도 잠자고 있을 땐 빈틈투성이다.
그 틈을 노려야 한다.
잠자고 있는 선우영의 가슴에 칼을 꽂아버리겠다.
아스모데우스는 히죽였다.
아리따웠던 얼굴이 도박에 미친 사람처럼 퀭하게 변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더 이상 미녀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녀는 자기 간부를 불렀다.
그들이 자기 주군이 텐트로 집합해 무릎 꿇었다.
그중에는 릴리트도 있었다.
“오늘 밤.”
아스모데우스는 간부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끊어졌단 말을 이었다.
“오늘 밤, 녀석들이 자고 있을 때 시작한다.”
그 말에 간부들은 진중한 얼굴을 했다.
다들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
오늘 밤, 선우영이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습격하겠단 뜻이니까.
간부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느덧 밤이 되었다.
숲속에서 작전 회의했던 선우영 일행은 텐트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의 병력은 술에 취해 진작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선우영은 커다란 텐트를 홀로 쓰며 잠을 청했다.
찌릉 찌릉.
풀벌레 우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아스모데우스와 녀석의 간부들이 조용히 선우영의 텐트로 잠입했다.
그녀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이 칼로 선우영의 가슴팍을 찌를 계획이었다.
‘선우영!!’
아스모데우스는 잠자고 있는 선우영의 앞에 섰다.
그녀는 침을 삼켰다.
동맹을 맺는다고 스킬석도 반강제로 빼앗기고.
전투에서도 자기 병력만 소모됐다.
돌이켜보면 선우영에게 잔뜩 이용당했다. 뭐, 어차피 배신할 계획이라 당해준 것도 있지만….
악감정이 안 생길 순 없었다.
‘죽어라, 선우영!!’
아스모데우스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타압!
선우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아스모데우스는 숨 멎는 공포를 느꼈다.
선우영은 그녀를 노려봤다.
“야.”
“…….”
“배신할 줄은 알았지만, 이런 구닥다리 방식으로 할 줄은 몰랐다?”
“그, 그게…….”
“됐고.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선우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