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잠재력 개방
루시퍼와 레비아탄.
그들이 데려온 병력은 십만이었다.
압도적인 숫자.
늘어선 병사들은 끝이 안 보였다.
루시퍼가 데려온 병력 중엔 날갯짓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도 있었다.
겉모습은 천사를 닮았다.
날개가 검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게다가 표정도 날카로웠다.
자비심도 없는, 그야말로 죄책감이 없는 괴물 같았다.
루시퍼는 지상에서 엘림 강가를 바라봤다.
“훗, 우습군.”
루시퍼는 피식거렸다.
그가 볼 적에 선우영과 아스모데우스의 병력은 매우 적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겠군.’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적진에서 웬 녀석이 소리쳤다.
“어이, 거기 날개 달린 닭대가리.”
루시퍼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는 자신에게 감히 검을 겨누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나는 군단장 서열 1위 루시퍼, 넌 누구냐!!”
“선우영이다. 이 토벌대의 대장을 맡고 있지.”
루시퍼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녀석이 대장?
선우영은 자세히 관찰하던 루시퍼는 검을 뽑았다.
스르릉.
루시퍼의 명검, 클라우 솔라드.
칼날이 빛을 뿜어냈다.
듀란달, 용광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검이었다.
루시퍼는 선우영을 깔봤다.
물론, 그가 군단장 수준으로 강하다는 건 느껴진다.
송곳처럼 날카롭고 폭발할 듯 억눌러진 기운.
하지만.
‘그래봐야 인간. 나보다 강할 순 없다.’
마몬 같은 떨거지라면 몰라도, 자기라면 선우영에게 당할 리 없다고 여겼다.
선우영은 루시퍼를 도발했다.
“내가 어지간히 무서웠나 보다? 십만이나 병력을 데려온 걸 보면?”
“건방 떨지 마라, 애송이.”
루시퍼는 선우영을 이름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무시하고 있단 표시였다.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설마, 애송이로 불릴 줄은 몰랐다.
그래서 좀 수위가 강한 도발을 날려줬다.
“야, 닭대가리!! 너도 쫄리면 사이타나 배신하고 내 밑으로 들어올래?”
겨우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가 루시퍼의 분노를 자아냈다.
목에 핏줄이 돋은 루시퍼.
녀석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선우영은 우쭐했다.
애송이한테 도발 당한 맛이 어떠냐는 표정이었다.
루시퍼는 목청을 높였다.
“전군 돌격!!”
레비아탄과 루시퍼의 병력이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선우영도 소리쳤다.
“공격!!”
그의 목소리에 전차가 포탄을 쏘았다.
드워프와 박인혁.
그들이 조종하는 로봇이 총을 쏘았다.
콰과광.
강력한 화력이 루시퍼의 군대를 덮쳤다.
스파크를 튕기는 포탄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적들을 맞혀 쓰러뜨리고.
지상에서 강가로 달려드는 녀석들은 강화된 총탄에 맞았다.
총탄도 고압 전류를 뿜어내는지라, 몬스터들이 감전되어 몸을 덜덜 떨다가 죽어버렸다.
아스모데우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선우영 씨. 여태 동안 포탄과 무기를 숨겼던 겁니까? 언제는 포탄이 떨어져서 못 싸운다면서요.”
“아, 어젯밤에 다행히 보급이 됐습니다.”
선우영은 대수롭지 않단 듯이 핑계를 댔다.
루시퍼는 이를 부득 갈았다.
인간들이 만든 무기에 무참히 당하는 부하들을 보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루시퍼는 전차를 째려보았다.
‘강력한 무기로 부족한 병력 숫자를 대신하고 있는 건가.’
적들의 공격 방식을 알겠다.
강력한 원거리 공격으로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쓰러뜨리는 전술.
확실히 까다롭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근접전에 약하단 소리.’
루시퍼는 날개를 펄럭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야할 것 같다.
처음부터 나설 생각은 없었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이게 가장 좋았다.
루시퍼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공기의 장벽이 무너지며 소닉붐이 발생했다.
주변엔 그 충격으로 벼락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시퍼는 고속으로 이동하며, 아군에게 날아드는 포탄을 칼날로 쳐냈다.
전차로 포탄을 쏘던 선우영의 병사.
그는 빠르게 접근하는 루시퍼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공격이 안 통한다.
거기다 하늘에서 일직선으로 내리꽂듯 움직임이 날카로웠다.
“으아아악!!”
병사는 비명을 질렀다.
루시퍼의 빛나는 칼날에 찔려 죽겠구나 싶었던 찰나.
채앵.
누군가가 내리꽂히던 놈의 칼날을 막았다.
루시퍼의 돌격이 멈췄다.
녀석은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자신의 칼날을 막아낸 사람을 쳐다봤다.
“어이, 닭대가리. 한판 붙자.”
루시퍼의 일격을 막아낸 사람. 그건 다름 아닌 선우영이었다.
채앵.
선우영은 루시퍼를 밀어냈다.
둘의 거리가 멀어졌다.
루시퍼는 떨리는 칼날에 시선을 옮겼다.
진동이 손잡이를 타고 손목으로 전해진다. 굉장히 묵직한 떨림이었다.
‘힘이 상당하군.’
속도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겨우 딱 한 번 공세를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실력을 가늠하기엔 충분했다.
‘그래, 군단장 3명을 쓰러뜨릴 정도는 되는군.’
루시퍼는 선우영을 비아냥거렸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뛸만한 수준은 되는구나. 그래봤자 천둥벌거숭이 정도지만.”
루시퍼는 스킬을 사용했다.
놈이 위압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선우영은 순간 전신이 짓눌리는 경험을 맛보았다.
“이건?!”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감각.
틀림없다.
‘압력을 이용하는 기술인가?!’
선우영은 단숨에 루시퍼의 기술을 간파했다.
압력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스킬. 이걸 이용해 자신을 해치우려 한단 걸 깨달았다.
루시퍼는 피식 웃었다.
“인간치고는 제법이었다. 겨우 한 번이었지만, 내 일격을 막아내다니. 하지만 거기까지다.”
놈은 검을 높이 들었다.
오러가 맺히며 새하얗게 빛나는 클라우 솔라드.
퍼져나가는 빛처럼 순식간에 오러가 몸집을 불렸다.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죽어라. 애송이!!”
부웅.
루시퍼가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칼날에 맺힌 오러가 선우영을 향해 날아갔다.
그 크기가 어찌나 거대하던지, 마치 해일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위기의 순간.
선우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히죽였다.
그도 스킬을 사용했다.
오러로 갑옷을 만들었다.
화염과 검강을 합쳐 태양처럼 빛나는 칼날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태양.
꽈아악.
선우영은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루시퍼가 쏜 오러를 단칼에 베어 냈다.
허공에서 부서지듯 사라진 루시퍼의 오러.
놈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킬로 움직임을 봉쇄했는데 선우영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인다.
설사 군단장이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했을 텐데.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
그걸 이기고 자신의 공격을 상쇄시키다니.
뻐엉.
선우영이 허공을 활보하여 루시퍼를 향해 날아갔다.
소닉붐을 터트리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루시퍼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선우영의 칼날이 놈을 향해 휘둘러졌다.
타앙.
루시퍼는 그 공격을 클라우 솔라드로 막아냈다.
선우영은 검술을 펼쳤다.
듀란달과 용광검.
두 명검이 부드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을 그리며 루시퍼를 압박했다.
루시퍼는 클라우 솔라드로 반격했다.
놈의 검술은 실로 묵직했다.
날카로움도 묻어났다.
우직할 정도로 기초가 닦인 검술.
변칙적인 맛은 없지만.
그걸 대체하고도 남을 파괴력이 검술에서 엿보였다.
하지만 선우영은 유연함으로 공세를 흘리고, 날카로운 반격으로 루시퍼를 압박해나갔다.
스걱.
그리하여 루시퍼의 팔뚝에 상처를 내놓았다.
“큭!!”
신음하는 루시퍼.
놈은 뒤로 이동하여 선우영과 거리를 벌렸다.
선우영은 비웃음을 날렸다.
“이봐, 설마 그게 전력은 아니겠지? 군단장 서열 1위라며?”
“…….”
루시퍼는 침묵했다.
놈의 눈동자에서 흉악한 살기가 퍼져 나왔다.
인정하겠다.
선우영이 강하단 사실을!
그렇기에 결단이 섰다.
‘전력을 다해 싸워주마. 군단장 최강자의 힘을 막아내 보아라.’
그의 모습이 변화했다.
머리에 뿔이 자라나고, 몸에 알 수 없는 문신이 생겨났다.
순식간에 오러가 증폭되었다.
주변으로 돌풍이 휘몰아쳐 바위가 부서지고, 강물이 바람에 휩쓸려 범람했다.
무시무시한 존재감.
타락 천사 같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지금은 오로지 악마.
그걸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선우영은 바짝 긴장했다.
이토록 분위기가 확 바뀔 줄은 몰랐다.
루시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순식간에 증폭되기 시작했다.
‘역시 그냥저냥 만만한 놈은 아니군.’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모습이 변화한 루시퍼는 팔뚝에 생긴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회복 능력도 생긴 모양이다.
여러모로 까다롭다.
선우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루시퍼는 선우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상을 내려다보아라.”
선우영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딱딱해졌다.
전선이 밀리고 밀려, 강가 근처로 적들이 진입했다.
아스모데우스가 마법으로 십만 대군을 공격했지만 소용없었다.
워낙 숫자가 많았으니까.
찰방, 찰방.
물속에서 전투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군단장 레비아탄이 엘림의 강가에 몸을 담갔다.
피부가 비늘로 덮여있던 그녀.
레비아탄이 물속에 깊이 잠수하자 변화가 시작되었다.
신체가 길어지고 동공이 뱀처럼 좁고 수직으로 변화했다.
몸이 점점 거대해져 갔다.
쏴아아아.
엘림 강가.
그곳에서 거대한 뱀으로 변신한 레비아탄.
얼마나 거대하던지.
산맥보다 더 거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레비아탄은 거대한 몸뚱이를 수면 위로 올리며 아스모데우스를 바라봤다.
빌어먹을 배신자를 말이다.
아스모데우스는 흠칫했다.
레비아탄의 군단장 서열은 무려 2위다.
아스모데우스가 이길 수 없다.
그녀는 서열 5위였으니까.
군단장의 서열은 전투력에 비례했다. 2위와 5위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아스모데우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선우영 일행을 배신하고, 사실은 녀석들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연기를 펼친 거라고 사이타나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까?
‘그딴 게 통할 리 없잖아.’
사이타나가 그 말을 믿어줄 리 없다.
‘그럼, 도망칠까?’
지금 당장이야 살 수는 있겠지만, 세력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면 제기할 수 없다.
싸운다.
싸워서 이긴다.
그것 빼고는 방도가 없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최후의 발악을 하듯 마법진을 소환했다.
페일과 몰제가 레비아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강으로 공격했지만.
소용없었다
검강의 위력으론 레비아탄의 단단한 비늘을 부수는 건 어려웠다.
까앙.
오히려 날아드는 레비아탄의 이빨을 검강으로 막느라 바빴다.
“제기랄.”
“뭐가 저리 단단해.”
몰제와 페일은 이를 악물었다.
레비아탄이 입을 쩌억 벌렸다. 커다란 입속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틀림없는 광선 공격.
위기의 순간.
누군가 레비아탄을 향해 뛰어들었다.
반짝이는 강철 육체.
콰아아앙.
레비아탄의 입에서 발사된 광선.
그걸 맨몸으로 돌진해 방어한 강철 육체의 사나이.
“크오오옷!!”
사내는 그 광선을 하늘로 궤적을 바꿨다.
온전히 막아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강철 육체의 사나이.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우렁차게 소리쳤다.
“덤벼라, 이 자식들아-!!”
레비아탄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김철수였다.
곧이어 어디선가 깃발이 날아들었다.
깃발은 한 개가 아니었다.
5개가 한꺼번에 하늘에서 뚝 떨어져 땅바닥에 박혔다.
깃발은 노란빛을 사방에 퍼뜨렸다.
몰제와 페일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깃발에서 퍼져나온 노란 빛이 육체를 강화시켰다.
그것도 5개의 빛이 어우러지며 버프가 5번 중첩됐다.
“버프 효과는 괜찮은가요?”
모습을 드러낸 조용석.
그는 한층 더 성장한 오러를 뿜어냈다.
적들은 그가 만들어낸 디버프 효과에 약해졌다. 그 효과도 5번 중첩됐다.
그게 끝이 아니다.
디버프는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효과가 붙었다.
루시퍼와 레비아탄의 병사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피를 토하는 녀석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르륵.
갑자기 지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쫘악 깔렸다.
그곳에서 시커먼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그림자로 빚어진 존재들이었다.
루시퍼와 레비아탄의 병사들이 그림자로 만들어진 녀석들을 공격했지만, 하등 소용없었다. 육신이 잘려도 금세 상처가 아물고, 절단된 신체가 도로 붙었다.
무적의 군단이나 다름없었다.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그림자의 끝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하하하, 다들 많이 기다렸죠!!”
큰소리치는 소년, 정운.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한 여성이 쌍검을 들고 레비아탄을 노려봤다.
콰르릉.
번개와 하나가 된 검강을 사용하면서.
그녀의 정체는 백영희.
미래의 검제라 불리게 되는 여성이 잠재력을 모두 개방하여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