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시련2
선우영은 아심의 공격을 피했다.
굉장히 매섭다.
화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리고 저주.
그게 선우영에게 고통을 선사했다.
아프다.
빌어먹게 아프다.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고통.
효과를 알고 있는 선우영이기에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확실히 까다롭다.’
고통이 집중력을 흩트려 놓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우영은 혀를 찼다.
‘열기와 한기를 막는 패시브 스킬까지 익혔는데도 화염의 열기가 느껴지다니.’
보통 화력이 아니다.
선우영은 반격을 개시했다.
휘릭.
날아오는 주먹을 옆으로 흘려 넘기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공격 또한 화염을 휘감았다.
공세가 빠르고 직선적이었다.
파괴력을 극대화한 동작은 주먹에 실린 위력을 한층 높여줬다.
부웅.
선우영의 주먹이 크게 허공을 갈랐다.
아심은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했다. 실로 역동적인 동작. 허리의 움직임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공세가 빗나간 선우영.
곧바로 아심의 반격이 들어왔다.
허리를 숙여 자세가 낮아진 녀석이 무게를 실어 발차기를 날렸다.
복부로 날아드는 발차기
선우영은 팔뚝으로 방어하며 뒤로 쭉 밀려났다.
둘의 거리가 크게 벌어졌다.
“후우.”
선우영은 쉽지 않다는 듯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저릿한 팔뚝을 흔들었다.
아심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빠르고 묵직했다.
선우영은 혀를 찼다.
‘강하네.’
자신과 똑같은 전투력을 지녔다고 하더니.
‘내가 이 정도로 강했나?’
상대하기 정말 버겁다.
정면승부를 걸었다간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겠다.
선우영은 머리를 썼다.
‘아심. 확실히 나랑 전투력은 비슷해.’
하지만,
‘스킬을 활용하는 능력 자체는 떨어져 보이는데?’
무작정 돌격해 육탄전을 벌인다.
화염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도 가능한데 말이다.
‘나였다면 원거리 공격으로 상대방의 전투 스타일을 파악하고 근접전을 펼쳤을 거야.’
그 말인즉, 전투력은 비슷해도 활용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있단 소리.
선우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선우영은 황금 가루를 소환했다.
그리고 오러로 갑옷을 만들었다.
화염의 불빛이 황금에 반사되어, 주변을 황홀하게 빛냈다.
마치 태양을 보는 듯했다.
선우영은 황금 가루를 비수로 만들었다.
‘독 공격.’
선우영은 비수를 아심에게 날렸다.
중독시켜 피해를 줄 생각이다.
아심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응수해왔다.
오러로 갑옷을 만들고.
황금 가루를 소환해 비수로 만든 뒤, 독 공격을 감행했다.
오딜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실로 장관이네.’
황금빛으로 빛나는 선우영과 아심.
그 모습은 지상에 두 개의 태양이 강림한 듯했다. 소름 돋을 정도로 강렬한 광경이었다.
샤샤샥.
비수들이 허공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챙챙챙.
아심과 선우영의 비수가 맞부딪혔다.
부딪힌 비수는 서로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아심과 선우영의 비수 공격.
똑같은 전투력을 가져서 그런지, 서로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선우영의 노림수는 이제부터였다.
화르륵.
선우영은 갑자기 전신에서 거대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게 주변 경관을 집어삼켰다.
화염의 크기가 얼마나 크던지 선우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휘익.
거대한 화염을 뚫으며 선우영이 튀어나왔다.
오딜은 그 모습에 턱을 만지작거렸다. 입을 벌리며 상당히 놀랐단 표정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길을 해치고 아심에게 돌격하는 선우영은 두 명이었으니까.
‘분신인가?’
오딜은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아심은 화염을 쏘았다.
화르륵.
선우영의 분신이 당했다.
타격을 입은 분신은 곧바로 폭발했다.
폭발로 팽창하는 공기.
그 여파가 아심을 덮쳤지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제 선우영과 아심.
단둘만 남은 상황.
둘의 주먹이 서로에게 격돌했다.
누가 승리할까.
오딜은 이번이 승부의 기점이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오딜조차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선우영과 아심의 공격이 동시에 서로를 적중했는데……. 공격받은 선우영의 육체가 갑자기 폭발했다.
오딜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저것도 분신?!’
그렇다면 진짜 선우영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심은 당황하지 않고 기계처럼 상황을 살폈다.
그때였다.
아무것도 없는 컴컴한 어둠이 아심의 시야를 가렸다.
환영진.
상대방을 10초 동안 환각에 빠지게 만드는 스킬.
선우영은 투명화를 쓰고 환영진을 사용했다!
아심에게 빈틈이 생겼다.
선우영은 곧바로 투명화를 풀었다.
숨을 길게 들이켜고 황금 가루를 소환해 방패 모양으로 만들었다.
오러가 황금 방패에 모이더니.
콰아앙.
광선을 쏘았다.
아심은 환각에 빠져 광선을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직격당했다.
빛은 모든 걸 지워버렸다.
아심의 육체 또한 광선에 집어삼켜지며,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우.”
선우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투는 끝났다.
이 대결에서 승리한 자는 선우영.
그는 팽팽했던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었다.
‘내 생각대로네.’
아심은 자신과 똑같은 전투력을 지녔지만, 능력 활용 면에서 부족했다.
그 빈틈을 찔러 이길 수 있었다.
짝짝짝.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던 오딜은 박수를 보냈다.
“대단하십니다. 선우영 씨. 이토록 빠르게 시련을 통과한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어요.”
“뭐, 제가 대단하긴 하죠.”
오딜은 나긋한 걸음으로 선우영에게 다가왔다.
“그럼, 잠재력을 개방해드리겠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긴장을 푸세요.”
“네.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눈을 감았다.
오딜은 그의 정수리에 손을 올리며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선우영은 신기한 감각을 느꼈다.
쩌릿한 느낌.
정수리로부터 어떠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전기가 신경을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 찌릿함이 몸을 자극하며 상쾌함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육체가 강화되는 게 느껴졌다.
닫혀있던 무언가가 열리는 기분.
세포 하나하나가 꿈틀거렸다. 생명이 꿈틀거린단 감각이 이런 것일까.
선우영은 끓어오르는 힘을 느꼈다.
뱃속에서부터 치솟는 기운이 머리까지 치솟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자기 육체가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마나?!’
선우영은 미간이 꿈틀거렸다.
오딜이 그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이제 끝났습니다. 선우영 씨의 잠재력은 모두 개방되었습니다.”
선우영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침을 꿀꺽 삼켰다.
선우영은 주먹을 오므렸다 폈다.
몸이 마나를 흡수하며 체내의 오러를 더욱 강력하게 성장시키고 있었다.
놀랍다.
체내의 오러가 회전하며 점점 커진다.
하나의 생명체 같다.
‘이게 내 잠재력?!’
선우영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오딜은 미소 지었다.
“잠재력을 전부 개방시켜드렸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딜의 말을 끝으로 선우영은 눈앞이 컴컴해지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 * *
텐트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페일과 몰제.
둘은 허리춤에 검을 차고 텐트 밖에서 보초를 섰다. 선우영 일행이 시련을 받고 있으니, 그들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밤하늘이 점점 밝아온다.
껌껌했던 하늘이 점점 파랗게 바뀌며 새벽이 찾아왔다.
곧 있으면 동이 틀 거다.
몰제가 페일에게 말을 걸었다.
“선우영 대장님께서 시련에 통과하셨을까요?”
“우리야 모르죠. 하지만 제가 아는 선우영이란 사람은 실패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페일은 선우영을 믿었다.
몰제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 말을 들으니 제가 괜히 걱정한 기분입니다.”
“오히려 저는 딴 게 걱정입니다.”
“뭐가 말입니까?”
“선우영 대장님이 시련을 받고 계신 지금, 우리가 제일 약한 때가 아닙니까. 이때 아스모데우스가 배신한다면….”
페일은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당장은 협력 중이지만 아스모데우스는 본디 마족. 신의 따윈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존재였다.
몰제는 팔짱을 끼었다.
살짝 고심하던 그는 이내 괜찮을 거라며 위로했다.
“아직은 배신하지 않겠죠. 사이타나가 멀쩡히 있는데…. 지금 배신하면 자기만 불리해질 걸 아스모데우스도 알 겁니다.”
“그렇겠죠?”
“선우영 대장님도 그 정도는 다 예상하고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우리는 거기에 따르면 됩니다.”
몰제는 그리 말했다.
페일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불안한 마음을 추슬렀다.
점점 해가 떠오른다.
곧 모두의 시련이 끝난다.
그리 생각하던 때에.
급작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
쿵쿵쿵.
지축을 흔드는 소리.
몰제와 페일은 엄습하는 불안감과 함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빌어먹을!!”
몰제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페일은 인상을 구겼다.
“하필 이런 때에….”
선우영을 쓰러뜨리기 위해 루시퍼와 레비아탄이 엘림에 도착했다.
십만 군세를 이끌고!
* * *
아스모데우스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전원 전투 준비!!”
그녀의 병사들이 창칼을 손에 쥐고 대열을 맞췄다.
아스모데우스의 병사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몇몇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루시퍼와 레비아탄이 데려온 병력은 무려 십만이다.
엄청난 숫자에 다들 압도되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선우영이 있는 텐트를 바라보았다.
루시퍼가 쳐들어왔는데.
‘왜 선우영은 코빼기도 비치질 않는 거야?’
설마, 또 자기 병력만 싸우게 할 생각인 걸까? 루시퍼의 십만 대군과 싸우려면 힘을 합쳐도 모자란 판국인데?
아스모데우스는 이를 부득 갈았다.
그녀는 선우영이 있는 텐트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텐트로 들어가려는 순간.
페일과 몰제가 팔을 들어 그녀의 진로를 막았다.
“들어갈 수 없다.”
“돌아가라.”
둘의 표정이 실로 날카로웠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경고로 끝나지 않는단 분위기였다.
아스모데우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장 비켜, 안 그러면 죽여버리겠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스르릉.
페일과 몰제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아스모데우스는 마법진을 소환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루시퍼를 앞에 두고 내분이 일어나기 직전.
“아,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텐트 밖으로 선우영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의 몸은 물에 젖은 상태였다.
몰제와 페일이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대장님!!”
“성취가 있으셨습니까?”
선우영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련을 통과했단 표시였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아스모데우스는 선우영을 쏘아붙였다.
“적이 코앞까지 왔는데 무사태평이군요.”
“하하하, 고깝게 여기지 마시고, 강자의 여유로 생각해주십시오.”
“말은 청산유수입니다.”
“뛰어난 실력과 자신감. 그게 제가 가진 최대 장점이거든요.”
선우영은 엄지로 자길 가리켰다.
아스모데우스는 그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십만 대군을 앞에 두고 여유로운 선우영이 맘에 안 들었다.
그녀는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강하시면 이번 전투에서 그 실력을 보여주시죠. 제 눈으로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이번엔 네가 선봉을 맡으라고 부추기는 아스모데우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용광검과 듀란달을 뽑았다.
“좋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제 실력을 전부 보여드리죠.”
선우영이 루시퍼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