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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스킬융합-183화 (183/200)

#183화 시련

시련을 받아야 한단 선우영의 결정.

반대 의견을 내비쳤던 페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반론하지 않았다.

선우영은 몰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련은 어떻게 받는 겁니까?”

“엘림의 물에 몸을 담그고,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 그러면 깊은 수면 상태에 빠지게 되며 동이 틀 때까지 깨어나지 않습니다.”

“동이 틀 때까지 깨어나지 않는다면,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누군가 보초를 서야 할 것 같은데….”

선우영이 누구 하나 콕 짚지 못하고 말을 줄이자, 몰제가 자진했다.

“제가 맡겠습니다.”

“그러면 시련을 받지 못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선우영 대장님 덕분에 본래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시련을 받아도 이 이상은 강해지지 못합니다.”

몰제는 그리 대답했다.

그게 진심이었다.

마음속으로 이미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뒤이어 페일도 보초를 서겠다고 선언했다.

“저도 보초를 서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선우영은 신중하게 판단하란 의미에서 되물었다.

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이미 잠재력을 전부 끌어낸 상태입니다. 시련에 도전해봤자 더 강해지기 힘들 겁니다.”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선우영과 정운, 조용석, 김철수, 백영희.

이렇게 5명이 시련을 받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밤이 되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사그락사그락.

쌀쌀한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밤이 되었다.

하늘에는 노란 반달이 떴다.

선우영은 아직 차오르지 않은 반달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들이켰다.

폐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선우영의 뒤에 있던 텐트.

그곳에서 페일이 걸어 나왔다.

“준비 끝났습니다.”

“네.”

선우영은 텐트로 걸어 들어갔다.

텐트에는 나무로 만든 욕조가 보였다. 그곳에 엘림에서 퍼온 물이 담겨있었다.

선우영은 동료들과 욕조에 들어갔다.

“오오, 긴장되는데요?”

조용석은 주먹을 오므렸다 피며 딱딱한 미소를 보였다.

백영희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는지, 숨을 길게 내쉬며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반면 김철수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는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기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어 더욱 강력한 탱커가 되는 상상만 했으니까.

실패 따윈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정운은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철수 아저씨, 아저씨는 걱정도 안 돼요? 시련에서 탈락할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몰라!!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다면, 자신감 있게 도전하는 놈이 성공한다.”

김철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배짱이 있었다.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김철수다운 대답이었다.

선우영은 몰제를 바라봤다.

“그럼, 시작하죠.”

“네. 모두 눈을 감으세요.”

선우영과 동료들은 눈을 감았다.

몰제는 책을 펴고,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언어.

그것들이 선우영 일행의 귓가에서 이명처럼 웅웅 울려 퍼졌다.

선우영은 살짝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고.

고개를 움찔한 순간.

의식이 흐릿해지며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 * *

“헉!?”

선우영은 의식을 차렸다.

쏴아아아.

강물이 바위를 할퀴듯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등에 배겼다.

손으로 더듬거리자 딱딱한 무언가가 손에 집혔다.

‘뭐지?’

선우영은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바라보았다.

‘강가?!’

그는 눈을 껌뻑거렸다.

몰제가 외치던 주문을 듣고 의식을 잃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텐트가 아니다.

강물이 흐르는 강가 옆에 있었다.

등이 배겼던 이유는 조약돌들 때문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건 강가뿐이다.

게다가 안개가 짙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의식 속에 세계? 듀란달이 날 주인으로 택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인 건가?’

선우영은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듀란달이 만들었던 의식 속 세계에 한 번 다녀와 본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 육체는 텐트 속 나무 욕조에 그대로 있겠지.’

자신의 의식만 이곳에 도착했을 거다.

선우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시련이 시작될 텐데, 눈앞에는 거대한 강가만이 보인다.

그때였다.

안개 사이로 무언가 실루엣이 보였다.

물 위를 누군가 걸어왔다.

선우영은 바짝 경계하고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무기가 없다.

하긴 의식 속 세계에 들어왔는데, 검까지 왔을 리 없었다.

선우영은 다가오는 인물을 바라봤다.

풍기는 분위기가 묘했다.

지팡이를 들고 나긋나긋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백발의 청년.

새하얀 로브를 입은 채 맨발로 강을 걷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마법사가 저런 느낌일까?

“누구냐.”

선우영이 묻자 백발의 청년이 싱긋 웃었다.

이윽고 백발의 청년이 선우영의 앞으로 다가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련을 담당하는 정령 오딜 입니다.”

허리 숙이며 정중히 인사하는 오딜.

선우영은 인사했다.

“선우영입니다. 시련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

“일단 이야기부터 나눠보죠.”

오딜은 느긋했다.

반면 선우영은 조바심이 났다.

“저는 시간이 없습니다. 현재 어나더에 사이타나란 녀석이 침공했는데, 녀석과 전쟁 중입니다.”

“허허허, 참 고생이시군요.”

오딜은 여전히 느긋했다.

선우영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얼른 시련을 시작하죠.”

“아뇨, 그 전에 당신이 시련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자격이요?”

선우영은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오딜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련을 통과하면 모든 잠재력이 개방되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죠.”

“네. 그런데요?”

“제 역할은 그 잠재력을 깨워줘도 되는지 판단하는 겁니다. 선한 사람의 잠재력은 일깨워도 되지만, 악한 자의 잠재력을 깨워줬다간….”

“세상에 큰 혼란을 초래하겠죠.”

“네.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딜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반대편 손에 쥐었다.

선우영은 그의 말에 동감했다.

악당이 시련을 통과해 힘을 얻었다간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나.

‘군단장이나 사이타나는 시련을 받지도 못하겠군.’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시련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니.

어떻게 하겠단 뜻일까?

선우영은 오딜을 빤히 쳐다봤다.

오딜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련을 받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선우영은 이게 선문답이란 걸 알아챘다.

오딜은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올바르게 대답하지 못하면 시련을 못 받게 하겠단 의미였다.

선우영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른 차원을 지배하려는 사이타나를 무찌르기 위해서입니다. 녀석 때문에 너무 많은 생명이 죽었습니다.”

“그렇군요.”

오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휙 던졌다.

“그럼, 묻겠습니다. 사이타나를 쓰러뜨려 당신이 얻는 이득이 뭡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 힘든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죠?”

“내가 원하는 거라….”

선우영은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 뒤, 피식 웃었다.

고심할 필요도 없다.

그는 또박또박한 어투로 대답했다.

“이득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죠.”

“비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게 제 목표입니다.”

“돈과 사람들의 인정에는 관심 없습니까?”

“돈과 사람들의 인정. 그건 비전을 이루고 난 다음 주어지는 보상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죠. 게다가 보상을 바라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오딜은 흥미롭단 표정으로 선우영을 바라봤다.

마치 이런 인간은 오래간만이란 듯이 말이다.

“그럼, 선우영 씨. 당신에게 중요한 게 뭡니까?”

“내 일생에 무엇을 이루었는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호오, 돈과 인정을 쫓는 게 아니라 비전을 쫓아야 한다?”

“네. 그게 제 삶입니다.”

오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올바른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목표가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탐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뤄야 할 비전을 위해 행동하는 건 신념이지. 올곧은 신념!’

오딜은 선우영을 인정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악을 무찌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악인을 쓰러뜨리고 권력과 돈을 탐해 또 다른 악인으로 타락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오딜은 그런 사람을 싫어했다.

악을 무찌르고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게 아닌 더 강력한 악인이 탄생할 뿐이니까.

선우영은 권력과 돈을 탐하지 않았다.

정의를 바로 세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

신념을 지녔고.

그 신념을 위해 싸운다.

‘영웅의 자질을 지닌 사람이다. 실로 대단한 인간이야.’

오딜은 선우영에게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당신을 인정하겠습니다. 시련을 받을 수 있게 돕겠습니다.”

오딜은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그의 인정을 받은 선우영.

첨벙.

오딜은 지팡이의 끝부분을 강물에 담갔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수면에 물방울이 일어나더니, 점점 물이 위로 솟구쳤다.

물은 점차 형태를 갖춰갔다.

그 모습이 사람과 흡사했다.

사람을 연상시키는 그것은 점차 더욱 세밀하게 형태를 갖춰갔다.

선우영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저게 뭐야?!’

강물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무언가는 이윽고 완전한 모습을 갖췄다.

선우영은 손가락으로 물이 빚어낸 사람을 가리켰다.

“저건, 나?”

물로 만들어낸 사람.

그 모습은 선우영과 완전 판박이였다.

오딜은 물로 만들어낸 가짜 선우영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법. 그건 형상화된 내면의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겁니다.”

선우영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오딜 씨.”

“네.”

“내면의 자신과 싸워 이긴다고 하셨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형상화된 내면의 자신이…… 혹시 저랑 똑같은 능력을 지녔나요?”

“당연하죠.”

오딜은 고작 궁금하게 그거였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영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자신과 똑같은 힘을 지닌 존재와 싸워 이겨야 한다니.

선우영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형상화된 내면의 자신을 뭐라고 부르면 되나요?”

“정식 명칭은 아심입니다.”

선우영은 아심을 바라보았다.

뚜벅뚜벅.

아심이 뭍으로 올라와 선우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동자.

공허한 표정.

마치 인형처럼 감정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화르륵.

선우영이 가진 스킬을 사용할 순 있었다.

“하아, 이거 참.”

선우영은 골치 아프단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땅바닥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똑같이 화염을 만들었다.

상대는 자신의 아심.

똑같은 전투력을 지녔으니, 누가 이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무기도 없으니 맨손 싸움이 되겠군.’

선우영이 그리 생각한 순간.

아심이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맹수처럼 위압감을 뽐냈고, 소닉붐을 터뜨리며 충격파를 사방에 퍼트렸다.

녀석은 화염을 휘감은 주먹을 휘둘렀다.

선우영은 재빠르게 뒤로 뛰었다.

‘큭, 빠르다!! 이렇게 빠른 상대는 태어나 처음인데?!’

긴장감이 팍팍 솟구쳤다.

오딜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싸움을 관람했다.

이 싸움에서 과연 선우영은 아심을 이길 수 있을까?

이긴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길까?

오딜조차 무어라 예측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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