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난전
조용석을 부른 선우영.
그는 잠깐 아스모데우스를 쳐다봤다.
그녀는 전투 지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우영은 슬그머니 주변 눈치를 살피고, 조용석에게 귓속말했다.
“조용석 씨, 혹시 적들에게만 버프를 걸어주실 수 있습니까? 아스모데우스의 병력을 갈아먹어야겠습니다.”
조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리인지 대번에 알아들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언젠가 배신할 게 뻔하니, 틈틈이 그녀의 병력을 고갈시켜야 한단 소리가 아닌가.
조용석이 깃발을 소환했다.
그때였다.
나가 중 하나가 스킬을 사용했다.
“아옳-아옳~!!”
붉은빛이 펴져 나갔다.
빛무리가 주변을 덮치자, 나가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불길하게 시뻘게진 동공.
나가들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속도와 괴력이 상승했다.
틀림없는 버프 효과였다.
조용석은 지금이 기회라고 여겼다.
대놓고 나가들에게 버프를 주면 아스모데우스가 수상쩍게 여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스모데우스 병력에게 미약한 버프를 주고.
나가들에게 강력한 버프를 줘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타앙-!!
조용석은 깃발을 소환해 땅바닥에 꽂았다.
“버프 효과를 드리겠습니다.”
그가 크게 소리쳤다.
황금빛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아스모데우스의 병력은 미약한 버프 효과로 약간 강해졌다.
그리고 강력한 버프를 받은 나가들의 전투력은 급상승했다.
근육이 더욱 강화되고, 온몸에서 뿜어내는 오러가 날카로운 기운을 선보였다.
나가와 아스모데우스 병력이 다시 맞붙었다.
“큭!!”
“이 녀석들, 갑자기 강해졌어.”
“제기랄.”
아스모데우스의 병력이 살짝 밀리기 시작했다.
창을 세워 적들을 꼬챙이로 만들었던 전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조용석의 버프로 강화된 나가들.
놈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창을 날붙이로 전부 쳐냈다.
나가들의 역공이 이어졌다. 삼지창으로 적들을 공격해 아스모데우스의 병사들을 차례차례 죽여나갔다.
비명이 울려 퍼지고.
“끄아악!!”
“으아아악-!!”
땅바닥에 핏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쓰러지는 아스모데우스의 병사들.
시체는 점점 쌓여만 갔다.
나가들의 삼지창 기술이 제법 날렵했다. 칼날이나 창날을 삼지창으로 쉽게 제압하고 허리춤에 찬 단검을 가슴팍에 꽂았다.
아스모데우스의 병력은 점점 밀리나 싶더니, 이제는 상대도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급작스러운 전장의 변화에 아스모데우스는 눈가를 꿈틀거렸다.
‘뭐야?! 내 병사들이 당한다고?’
이상하다.
‘나가가 버프를 사용했다지만, 이렇게 갑자기 전투력이 올라갈 수 있나? 그렇게 대단한 버프를 쓴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
버프를 받으면 강해지는 게 맞다.
문제는 강해져도 너무 비상식적으로 강해졌단 거였다.
아스모데우스는 슬쩍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그녀는 조용석을 의심의 눈초리로 흘겨봤다.
‘설마, 저 녀석이??’
조용석이 나가에게 버프를 걸어주지 않았을까?
‘내 병력에겐 버프를 약하게 걸어주고, 나가에겐 강력한 버프를 걸어줬나!?’
의심이 갔다.
따지고 싶어도 따지지 못했다.
물증이 없으니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선우영이 괜한 트집 잡는다고 화내며, 모른 척 연기할 경우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나가들은 스스로한테 버프를 걸었다.
자신의 판단과 달리 녀석들의 버프가 대단해서 일수도 있다.
아스모데우스는 혀를 찼다.
“쯧.”
뭐가 어찌 되었든.
가능한 피해 없이 이겨야 한다.
그래야, 훗날 선우영을 배신할 때 좀 더 쉽게 그를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
아스모데우스.
그녀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곁에 푸르른 마법진이 생기며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
마법진에서 나오는 기운이 흉악무도했다.
“나의 힘을 보여주마.”
아스모데우스가 생성한 마법진에서 화염이 일직선으로 방사되었다.
거대한 화염.
뜨거운 불길이 수천 갈래로 나뉘더니 뱀의 형상을 하였다.
참으로 신기한 장면이었다.
마법진에서 불로 이뤄진 뱀이 수천 마리 튀어나온 듯한 광경.
화염으로 이뤄진 수천 마리의 뱀이 나가들을 향해 이빨을 내보였다.
쏴아악.
불로 이뤄진 뱀들이 나가를 물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피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불로 이뤄진 뱀들에게 물리자 상처에서 강렬한 불꽃이 치솟았다.
나가들이 불타기 시작했다.
“아악!!”
“옳옳!!”
나가들은 기묘한 비명을 지르며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시커멓게 그을린 시체.
탄내가 주변에 진동했고,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매운 연기가 전장을 뒤덮었다.
아스모데우스가 나서자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선우영은 그녀의 전투력을 살폈다.
‘아스모데우스가 전력을 다해 싸우진 않았을 거야. 나가는 그녀에 비해 약한 상대이니까.’
하지만 대략적인 전투방식은 알 수 있다.
‘나가와 싸우는 데 불을 사용했어. 그건 화염 속성 마법에 자신 있단 뜻인가? 원거리 전투를 즐기는 듯하고….’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근접전을 피하는 모습. 전투 스타일만 놓고 보면 벨패고르와 비슷하군.’
다른 점이 있다면 벨패고르는 핑거 스냅을 해야 했지만, 아스모데우스는 그러지 않고 마법을 발동시켰단 점이었다.
마법 실력만 놓고 보면 그녀가 벨페고르보다 한 수 우위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해 보이진 않는군.’
선우영은 그리 판단했다.
허공으로 치솟았던 아스모데우스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전투는 끝났다.
그녀는 자신의 병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기랄.’
분통이 터졌다.
자신의 병력이 예상보다 피해를 많이 입었다.
‘나가를 상대로 사망자까지 나오다니!! 부상자도 생각 이상으로 많아.’
아스모데우스는 울컥했다.
사이타나를 쓰러뜨리고 지쳐버린 선우영 일행을 공격해 죽이는 게 최종 목표다.
최후의 순간에 배신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병력 손해가 생각 이상으로 나와버리면 배신할 때 지장이 생길 수 있는데, 곤란하군.’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자꾸만 일진이 사납다.
등쌀에 소름이 돋는 이 기분은 뭘까.
‘예감이 안 좋단 말이지.’
아스모데우스는 묘하게 들끓는 불안감에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선우영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스모데우스 님, 정말 대단한 활약상을 펼치셨습니다. 특히나 병사들의 용맹함은 박수가 절로 나오더군요.”
선우영은 손뼉을 쳤다.
아스모데우스는 저 소리가 비아냥으로 들렸다.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너희 피해 심각하다? 고작 그것밖에 안 돼?
아스모데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런지 자꾸만 말을 다르게 해석하는 기분이었다.
선우영은 계속 손뼉을 쳤다.
“앞으로도 오늘 같은 용맹함을 보여주십시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분명 칭찬이다.
하지만 아스모데우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칭찬 맞겠지? 자꾸만 비아냥거리는 걸로 들린단 말이야. 이젠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려.’
아스모데우스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선우영에게 한 가지 부탁했다.
“부상병을 치료하게 포션을….”
“안타깝지만 저희가 쓸 물량의 포션 밖에 없습니다. 전쟁통이라 포션이 워낙 귀해서 구하지 못했거든요.”
선우영은 거짓말했다.
이미 지구에서 가져온 포션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맘만 먹으면 자신의 병력은 물론이거니와, 아스모데우스의 병력도 전부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아스모데우스의 병력을 치료해줄 필요는 없지.’
그게 선우영의 판단이다.
어차피 배신할 생각으로 가득한 아스모데우스가 아닌가.
‘내가 미쳤냐, 왜 도와?’
선우영은 온갖 변명을 둘러대서라도 거절할 요량이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젠 더 이상 아쉬운 소리 하지 말자 다짐했다.
‘자꾸만 말려드는 기분이야.’
그녀는 자기 병력이 가져온 포션으로 부상자를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하다못해 선우영이 가진 포션을 소모 시켜 훗날 배신할 때, 조금이라도 이점을 가져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였다.
* * *
온리를 정찰하러 갔던 몰렉.
놈은 아스모데우스가 배신했단 사실을 사이타나와 루시퍼에게 알렸다.
사이타나는 분노를 터뜨렸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이!! 군단장의 지위까지 줬거늘, 이런 식으로 배신하다니!! 거기다 날 치겠다고 고작 인간과 동맹을 맺어?!”
크게 화를 내던 사이타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한편 이 소식은 군단장 서열 1위 루시퍼에게도 들어갔다.
레비아탄과 작전회의를 하고 있던 루시퍼.
그의 반응은 단순했다.
찌이익-!!
보고서를 사정없이 찢어 바닥에 버렸다.
그러고는 웃었다.
“멍청한 녀석.”
아스모데우스가 사이타나를 제치고 마계의 일인자가 되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을 유혹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인간과 손을 잡다니. 타락했구나, 아스모데우스.”
루시퍼는 그리 중얼거렸다.
물론 방심할 생각은 없다.
선우영은 군단장 3명을 쓰러뜨린 강자이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이긴다.’
사이타나까지 나서서 전투에 참가할 필요는 없다.
‘나와 레비아탄만으로 충분하다.’
루시퍼는 그리 여겼다.
곧이어 또 다른 소식도 날아들었다.
“루시퍼 님, 루시퍼 님!!”
수하 하나가 급하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루시퍼는 날카로운 눈으로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냐.”
“엘림 쪽으로 적들이 진격했습니다. 나가들이 방어했으나 결국 패했다고 합니다.”
“엘림으로??”
루시퍼는 책상에 올려진 지도를 보았다.
‘적들이 엘림을 향했다.’
무슨 생각으로 거길 공격하려는지 알겠다.
루시퍼는 레비아탄을 바라봤다.
레비아탄은 수중전에 매우 뛰어난 전투력을 보인다.
게다가,
‘지금은 마법으로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 되었을 뿐. 실제는 거대한 바다뱀이지.’
전투력도 엄청나다.
비늘이 단단하여 쉽게 벨 수 없고, 입에서 파괴적인 위력의 광선을 쏜다.
공격력과 방어력.
둘 다 갖춘 군단장이 레비아탄이었다.
특히나 비늘이 물에 젖으면 한층 더 단단해지고, 물속에서 쏘는 파괴광선의 위력이 한 단계 강해진다.
선우영 일행은 엘림을 먼저 점령해 가능한 한 수중전을 피할 생각이었다.
루시퍼는 뚫어지라 지도를 바라봤다.
‘아스모데우스가 인간과 손잡더니, 온갖 정보들을 다 발설했나 보군.’
뭐, 상관없다.
상대가 수중전을 피해도 자신이 공중전을 펼치면 전부 이길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적들과 싸우기 위해 병력을 소집한 상태다.
그것도, 적들과 싸우기 위해 전선과 가장 가까운 곳에 모인 상황이었다.
펄럭.
막사를 나온 루시퍼.
그는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보았다.
오른쪽으로 가면 헤스본이다.
헤스본을 공격하여 곡창지대를 되찾는 게 본래 작전이었다.
하다못해 쑥대밭으로 만들어 식량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할 생각이었는데.
‘적들이 엘림으로 향하고 있다라.’
루시퍼는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쪽은 엘림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적의 본대가 엘림으로 향한 사이 헤스본을 공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적들을 일망타진할 좋은 기회다.’
루시퍼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모여있는 병력을 향해 소리쳤다.
“전군!!”
척척척.
오와 열을 맞추어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 루시퍼의 말에 허리를 꼿꼿이 폈다.
루시퍼는 외쳤다.
“우리는 엘림으로 향한다-!!”
루시퍼의 목소리가 주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놈은 선우영과의 전면전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