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동맹결성
선우영은 스킬석에 적힌 내용을 읽어봤다.
[기운 폭주]
체내 기운을 폭주시켜 3배 이상 강해진다. 폭주한 기운을 제어하지 못하면 육체가 붕괴한다.
꽤 좋은 스킬이다.
제어에 실패하면 육체가 붕괴하는 패널티가 있지만, 체내 기운을 3배 이상 높여준다.
‘오러 컨트롤이 높으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야.’
다행히 선우영은 오러의 컨트롤을 높여주는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선우영에게는 패널티가 없는 셈이었다.
‘괜찮은 걸 손에 넣었군.’
선우영의 맘에 쏙 들었다.
릴리트는 그를 바라보며 굳은 얼굴로 물었다.
“마음에 드시나요?”
“제법 괜찮네. 이제야 좀 쓸 만한 걸 가져왔어.”
선우영이 스킬석을 주머니에 쓱 넣으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릴리트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이!!’
화가 치솟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무례한 인간은 없었다.
마족들에게 인간은 그저 심심하면 짓밟는 미개한 생명체일 뿐이었는데.
그런데 저리 오만방자하다니.
마음 같아선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
동맹만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텐데.
릴리트의 얼굴에서 살기가 드러났다.
이빨까지 보였다.
주름살까지 잡힌 흉흉한 얼굴은 노골적인 적의가 느껴졌다.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오러를 뿜어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릴리트는 숨 막히는 압박감에 어깨가 짓눌리는 기분을 맛봤다.
속이 뒤틀린다.
격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걸까.
‘이 정도면 아스모데우스 님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릴리트는 고개를 숙였다.
목이 안 움직인다.
책상에 고정된 시야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완전히 압도당했다.
선우영은 씨익 웃으며 오러를 거둬들였다.
“허억, 허억, 허억.”
릴리트는 숨을 몰아쉬며 파르르 떨었다.
선우영은 경고했다.
“뭐, 속으로 날 욕하는 건 괜찮아.”
“…….”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렇잖아?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 욕할 수도 있지. 물론 이해해.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항상 솔직할 수 있겠어.”
“…….”
“하지만 말이야.”
선우영은 목소리로 음산한 살기를 띄웠다.
“하지만,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는 건 아니지. 그건 나랑 싸우겠단 선전포고잖아?”
“죄송합니다.”
“잘하자고. 앞으로 동맹인데. 응? 같은 편끼리 인상 구기고 그러면 쓰나. 안 그래?”
“죄송합니다.”
릴리트는 일단 사과했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자신이 이길 수 없단 사실도 알았다.
괜한 짓거린 오히려 위험했다.
선우영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미안한 거 알면 됐어. 앞으로 잘하면 되지.”
그는 마지막으로 릴리트를 쏘아보며 날카로운 한마디를 던졌다.
“앞으로 잘하자?”
“네.”
릴리트는 앞으로 잘하라는 선우영의 말이 비수처럼 들렸다.
선우영은 고개를 까딱였다.
볼일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릴리트는 창백해진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펄럭.
그녀는 등에 박쥐 날개를 꺼내 아스모데우스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선우영은 챙겼던 스킬석을 흡수했다.
[맹화]와 융합시켰다.
딱히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끼릭.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봤다.
빠르게 날아가는 릴리트가 보였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아스모데우스는 결정적인 순간 반드시 배신한다.
‘그건 틀림없지.’
아주 중요한 순간에 배신할 테니, 신용해선 안 되고.
같이 싸우게 될 경우.
자신이 앞장서서 싸울 필요는 없다.
아스모데우스가 선봉을 맞게 하거나, 아니면 녀석의 병력이 전쟁에서 소모되도록 판을 짜야 한다.
‘앞으로 잔머리 엄청 써야겠네.’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 * *
동맹 체결 이후.
아스모데우스와 선우영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회의를 하기로 약속했다.
엘프들을 지배하는 아스모데우스.
엘프들의 나라였던 온리.
온리와 헤스본의 중간 거점인 나인 강가.
그곳에서 회의를 가졌다.
말로는 회의였지만, 분위기만 놓고 보면 거의 원수를 대하는 듯했다.
양군이 대치하듯 나뉘어 서로를 노려봤다.
대치한 군대 사이로.
간이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였다.
선우영과 아스모데우스가 앞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사하는 아스모데우스.
선우영은 예의상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인사말이 정말 담백했다.
아스모데우스는 그게 맘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서큐버스의 여왕.
이렇게 자신을 대하는 남성은 없었다.
루시퍼 이외에는 말이다.
게다가 동맹을 위해 귀한 스킬석을 강제로 주지 않았나.
그것도 맘에 안 들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선우영이 괘씸했다.
하지만 괜찮다.
그녀에게도 비장의 카드는 존재했으니까.
‘내 매혹 스킬로 노예처럼 부려주지.’
서큐버스 여왕이 가진 최고의 스킬은 [매혹]이다.
그리고 매혹은 시전자 이외에는 누가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매혹을 사용했다.
아스모데우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미묘한 오러의 파동.
쉽게 눈치챌만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선우영을 조종해볼 생각이었다.
그를 조종할 수 있게 된다면 아까운 스킬석을 준 것도 전부 만회할 수 있다.
그에게 싸우라고 시키면 되니까.
하지만 선우영은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매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스모데우스의 분위기가 조금 변했단 건 눈치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스모데우스는 흠칫했다.
‘내 매혹이 통하질 않아?’
선우영은 정신 계열 공격을 막는 스킬을 익혔다.
매혹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그는 아스모데우스에게 고갯짓하며 물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네?”
“너무 빤히 쳐다보시길래요.”
“아, 아닙니다.”
아스모데우스는 그리 말하며 매혹을 더욱 강하게 사용했다.
그 파동이 강렬해졌다.
하지만 선우영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았다.
무덤덤했다.
‘어, 어째서?!’
아스모데우스는 손가락이 꿈틀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매혹이 통하지 않는다고?’
스킬석을 빼앗긴 것도.
선우영이 보였던 무례도.
그를 매혹으로 조종하면 전부 되갚아줄 수 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
‘결국 주도권 싸움을 해야겠군.’
아스모데우스는 그리 생각했다.
누가 동맹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느냐로 싸우게 될 것이다.
선우영은 이야기를 꺼냈다.
“정보를 알려주시죠.”
“네?”
아스모데우스가 되묻자 선우영이 턱을 괴었다.
“정보가 있어야, 어떻게 싸울지 정할 것 아닙니까. 정보를 말씀해주셔야죠.”
“알겠습니다.”
선우영의 주장을 일리가 있었다.
정보가 없으면 싸움에서 불리하니까.
하지만 아스모데우스는 주도권 싸움에서 자신이 뒤처지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건네주기 시작했다.
루시퍼가 가진 군단의 특징이나 레비아탄의 상황.
만마전의 위치.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우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그다지 큰 정보는 없군.’
끽해봐야 루시퍼의 군대가 공중전에 능통하고.
레비아탄은 수중전에서 강하다 정도?
사이타나가 벨페고르를 지구에 보내느라 약해졌단 정보는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선우영은 그녀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왜 사이타나는 지구를 노립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왜요?”
“원래 다양한 차원을 침공하는 녀석이었으니까요. 딱 어느 차원에 집중해 공격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역대 마계 일인자들은 원래 다른 차원을 지배한단 것에 집착했죠.”
“그렇습니까?”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사이타나는 지구에 집착하기 시작하더군요.”
선우영은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사이타나가 지구에 집착했다니?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선우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본래라면 S급 게이트가 더 늦게 나타났어야 했는데, 엄청나게 단축되었지.’
선우영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말이다.
‘뭔가 있는 건가?’
S급 게이트를 만드는 건 사이타나한테도 꽤 부담되는 일이다.
그걸 앞당겨 시도할 만큼, 지구에 원하는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사이타나는 모든 차원을 지배하길 원하잖아.’
그런데 지구에 집착했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우영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비약의 비약을 거듭하여 생각하던 와중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랐다.
설마, 지구에 다른 차원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게이트로 다른 차원에 가는 건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 없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아니겠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너무 생각에 잠긴 나머지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다.
그는 그리 생각했다.
* * *
어나더의 만마전.
사이타나는 왕좌에 앉아 서류 하나를 읽어봤다.
루시퍼가 보낸 보고서였다.
무기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식량 조달에 차질이 생겼단 이야기가 주류였다.
또한 마몬과 벨제부브의 연락이 두절 됐단 소식도 전했다.
‘지구의 병력이 벌써 쳐들어왔나!’
사이타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며 시뻘건 핏줄이 목에 돋아났다.
지구의 병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덕분에 군단장이 두 명이나 더 죽는 사태에 직면했다.
루시퍼는 전쟁을 위해 병력을 소집하고, 다른 군단장들을 소집했지만 아스모데우스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이타나의 눈빛이 주홍빛으로 빛났다.
‘아스모데우스는 왜 군단장 소집에 응하지 않았지? 설마 녀석도 지구 놈들한테 당한 건가?’
사이타나는 손바닥에서 불꽃을 일으켜 보고서를 태웠다.
시커먼 재가 허공을 펄펄 날아다녔다.
‘아스모데우스까지 당했다면 내 예상보다 지구 녀석들이 훨씬 강하단 얘기가 되겠군.’
아니면,
‘아스모데우스가 배신을 때렸거나.’
사이타나도 알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가 마계 일인자가 되고 싶어 한단 걸.
야망이 굉장한 여자였다.
그걸 실현할 실력이 없어서 그랬지.
‘온리에 병사를 보내 한번 살펴봐야겠군.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려면 말이야.’
사이타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는 수하에게 온리를 정찰하란 명령을 내렸다.
“온리를 정찰해라. 아스모데우스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봐라.”
“넵, 알겠습니다.”
수하는 그리 말하며 온리로 떠났다.
사이타나는 왕좌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지구.’
그곳은 반드시 점령해야 한다.
모든 차원에는 반드시 마나가 존재한다.
그런데 지구는 아니다.
마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차원은 처음이다.
자신이 게이트를 만들어 침공하지 않았다면, 어나더의 마나가 지구의 대기에 녹아들며 자연히 마나가 생성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때문에 사이타나는 지구를 얕봤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몬스터를 약한 녀석들부터 찔끔찔끔 보냈다.
페일이 지구로 갔단 것만 빼면 딱히 신경 쓸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이타나는 지구에 엄청난 아이템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을 침공하여 알아낸 사실.
사이타나는 끼고 있던 반지를 돌렸다. 다른 차원을 공격해 얻어낸 아티팩트였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듀란달처럼 대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아티팩트도 있지만, 그건 검이 주인을 선택하는 신물이다.
검에 깃든 자아의 동의가 없으면 능력을 발동하지 않는다.
소유자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 대가 없이, 검에 깃든 자아의 동의가 없어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아티팩트의 존재를 알아냈다.
사이타나가 지구에 집착하게 된 이유.
그건….
본래 미래보다 빨리 그 아티팩트가 지구에 있단 걸 알아냈기 때문이다.
‘지구! 반드시 점령하겠다.’
거기만 점령한다면 굳이 S급 게이트를 만들어 힘이 쇠약해질 필요 없이, 자신이 직접 차원을 넘나들며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