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오크 족장2
아침이 밝았다.
선우영 일행은 아침밥을 먹고 마차에 올랐다.
테오는 채찍을 휘둘러 말의 엉덩이를 때렸다.
“으랴.”
다그닥, 다그닥
말굽이 땅바닥을 때리며 마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몰제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검강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오크 족장을 뽑는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단 확신이 생겼다.
‘한시름 덜었군.’
고민거리가 해결되어가는 기분이라 마음이 차분해졌다.
김철수는 그런 몰제를 지긋이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네?”
“표정이 굉장히 밝아 보이셔서요. 혹시 뭔가 좋은 일이 있나 싶어서 물어봤죠.”
“최근에 한 단계 경지가 상승했거든요.”
“경지요?”
“네. 검강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김철수는 감탄사를 내지르며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검강이라니.
S급 헌터들 중에서도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극히 적다.
“이야,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네요.”
김철수는 손뼉을 짝 마주치더니,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엄지를 보였다.
그 모습이 야구장에서 홈런을 본 40대 아저씨 같았다.
몰제는 껄껄 웃었다.
정운은 부럽단 눈길을 보냈다.
“나도 아직 검강은 하지 못하는데.”
“네가 성공하면 최연소 검강 습득자가 될 거다. 아직 이르니 너무 욕심부리지 마라.”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정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백영희는 조용히 마차에 앉아있었다. 정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있던 그녀는 잠시 어젯밤 일을 곱씹었다.
‘의념. 의지를 칼날에 담는다.’
선우영이 몰제에게 해줬던 조언.
그녀는 그 말뜻을 이해했다.
‘무엇을 베고 싶은지. 어떻게 베고 싶은지 강렬하게 바라면 이뤄지는 경지.’
의지를 담은 염.
그게 검강을 만드는 핵심 요소였다.
‘나도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지. 언제까지고 지금 수준에 머무를 순 없으니까.’
백영희는 그리 다짐했다.
조용석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
번뜩.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을 쳐다봤다.
무언가 기척을 느꼈다.
마차에 있는 모두가 눈치챌 정도로 굉장히 부산스러웠다.
화기애애했던 마차의 공기가 단숨에 무겁게 변했다.
쨍그랑.
곧이어 창문을 깨뜨리고 화살이 날아왔다. 조용석은 화살을 맨손으로 낚아챘다.
유리 파편이 마차 안으로 쏟아지고.
선우영 일행은 눈매가 날카롭게 변하며 무기를 뽑았다.
마차를 운전하던 테오가 소리쳤다.
“적들이다!!”
아주 다급한 목소리로.
김철수가 몸을 강철로 만들어 마차의 문을 열었다.
팅팅팅.
화살이 그의 몸으로 날아왔지만, 강철 육체를 뚫지 못했다.
탱커인 그가 앞장서서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있을 때,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렸다.
페일은 테오에게 다가갔다.
“테오, 괜찮으냐!!”
“괘, 괜찮습니다.”
테오는 말을 더듬으며 말의 고삐를 놓쳤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화살이 창문을 먼저 노렸기 때문에 테오는 회피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다음으로 날아드는 공세를 피해냈다. 그가 앉아있었던 자리는 화살 몇 발이 박혀 있었다.
부우웅.
화살 이외에도 돌멩이도 날아왔다.
몰제는 인상을 찡그렸다.
‘돌멩이?’
적을 공격하는데 돌멩이를 던진다니.
투석병이라도 있는 걸까.
‘투석병은 무기가 부족한 군대가 쓰는 법인데.’
설마 싶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와아!!”
“적들을 죽여라.”
습격한 놈들이 수풀을 해치며 모습이 드러냈다.
초록색 피부.
거대한 덩치.
오크였다.
몰제는 동포들에게 소리쳤다.
“멈춰라. 우리는 적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오크를 돕기 위해서 온 분들이다.”
몰제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함성처럼 주변에 메아리치던 말소리가 모두의 귀를 때렸다.
그들을 습격하던 오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여라. 죽여라!!”
“저기에 몰제가 있다.”
무기를 들고 계속 덤벼들었다.
화살 하나가 몰제를 향해 날아갔다. 그는 검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내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선우영은 몰제에게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이 녀석들 땅굴을 지키는 수비대 같은 건 아니죠?”
“아닙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땅굴의 위치가 들킬 위험이 있으니, 땅굴 근처에선 교전하지 않습니다.”
“오크들이 먹고 살기 위해 도적질하는 경우는요?”
“도적질하는 거였다면, 제 이름을 외치면서 이 마차를 노리지 않았겠죠.”
오크들은 몰제에게 달려들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달려들며 화살까지 쏴댔다.
딱 봐도 목표물이 누군지 알 정도였다.
선우영은 검술 자세를 잡았다.
‘몰제를 노린 습격. 그렇다면 굴란의 파벌 녀석들이겠군.’
몰제는 함성을 질렀다.
주변을 휩쓰는 어마어마한 소리.
분노로 일그러진 그 목소리는 고막을 흔들어 터뜨릴 것만 같았다.
“크아아악!!”
몰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굴에 잡힌 주름.
자글자글한 주름과 이빨을 드러내며 쏟아내는 분노는 강렬한 야성마저 느끼게 했다.
몰제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굴란 녀석!! 용서 못 해.’
그의 칼날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어마어마한 빛무리를 쏟아냈다.
검강이었다.
“!!”
“저건 설마?!”
오크들은 검강을 보고 움찔했다.
몰제는 백영희에게 배운 보법을 활용하며 적들을 베었다.
그 움직임이 실로 묵직했다.
일검에 오크 다섯을 베었으며 전부 하체와 상체를 분리시켰다.
“커헉!”
“으아악.”
비명이 난무하고 핏물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검강이 무자비하게 오크들을 썰며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했다.
때로는 적들의 무기와 함께 육체를 썰어버렸다.
튀어 오르는 핏물이 몰제의 얼굴을 붉게 더럽혔다.
멀리서 화살을 쏘던 오크들에게 단숨에 다가가 머리를 좌우로 쪼개버렸다.
흘러내리는 뇌수와 핏물.
비릿한 피 냄새.
그렇게 습격자들을 대부분 처리했다.
몰제는 마지막 한 놈을 바라봤다. 이 녀석을 죽이면 모두 정리한다.
마지막 남은 오크는 악다구니를 쓰며 덤벼들었다.
그때 선우영이 소리쳤다.
“한 놈은 살려두세요. 나중에 굴란이 암살자를 보냈단 증인으로 써먹기 좋게요.”
몰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쪼개려던 동작을 바꾸었다.
상체를 한 바퀴 돌려 검강으로 적의 무기를 베어내고, 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놈은 상체가 위로 들썩였다.
그러더니 이내 쓴물을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져 기절했다.
몰제는 딱 한 명 남은 오크를 째려보았다.
분노가 아직도 부글부글 끓어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하지만 선우영의 말이 옳았기에 그 분노를 꾸역꾸역 참았다.
증인이 필요했다.
굴란이 벌인 비겁한 짓거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말이다.
선우영은 기절한 오크의 팔다리를 부러뜨렸다.
움직이지 못하게 밧줄로 묶어봤자 오러를 쓰는 오크한텐 아무 구속도 안 된다.
차라리 이렇게 뼈를 부러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야지.
“크흑!!”
어마어마한 통증에 기절했던 오크가 정신을 차렸다.
놈은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더니, 이를 악물며 몰제에게 눈을 부라렸다.
“죽여라.”
선우영이 놈의 앞에 섰다.
“거, 성질머리 급하긴. 뭘 죽여라야. 죽여라는.”
“고문해봐야 소용없다.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다.”
“고문이라….”
선우영은 놈의 눈앞에서 양반다리로 앉았다.
어차피 이 녀석은 다리와 팔이 부러져 움직이지 못한다. 설사 덤벼도 손가락 하나로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하자. 내 이름은 선우영이다.”
“…….”
놈은 묵묵부답이었다.
대화할 맘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자 몰제가 다가와 놈의 이름을 가르쳐줬다.
“놈의 이름은 수우. 이제 고작 17살 된 어린 오크입니다.”
수우는 콧방귀를 꼈다.
“흥, 아주 나불나불 떠들어대는군.”
불만이 많아 보였다.
몰제는 으르렁거리며 수우에게 화냈다.
“뭘 잘했다고!! 도대체 뭘 잘했다고 감히 빈정거리지? 누가 동포를 죽이라고 가르쳤나? 뚫린 입이 있으면 어서 말해봐-!!”
수우는 입을 다시 꾹 다물었다.
선우영은 몰제에게 그만하라고 눈짓을 줬다.
몰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찢어 죽여버리겠단 눈빛으로 수우를 쳐다볼 뿐이었다.
선우영은 수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조잘조잘 시끄럽군. 전사답게! 깔끔한 죽음을 요구한다!!”
“거참 죽는 거 좋아하네.”
“흥, 오크에 대해 네가 뭘 알겠느냐.”
“글쎄다. 솔직히 잘 모르지. 내가 살던 세계에서 오크는 사람을 습격하는 몬스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
“물론 오크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다만, 사이타나에게 붙잡혀 첨병으로 쓰인 오크들을 봤단 소리지.”
수우는 고개를 획 돌렸다.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선우영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이타나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오크들은 명예조차 없는 침략의 첨병으로만 쓰이겠지.”
“…….”
“죄 없는 민간인을 죽이고 싶나? 여자와 아이를 죽는 게 오크들의 명예인가?”
“닥쳐!!”
수우가 발끈했다.
녀석은 치기 어린 눈빛으로 선우영의 얼굴을 흘겨봤다.
제법 성깔 있어 보이는 표정이다.
선우영은 끊어졌던 말을 이었다.
“너야말로 조용히 해. 똥오줌 구분 못 하고 날뛰지 말고.”
“뭐야!!”
“쫄쫄 굶은 오크들이 밥 달라고 사이타나한테 가면, 걔가 반겨준단 보장이 있냐? 사이타나가 누구냐? 지배욕이 어마어마해서 이곳저곳 침략하는 녀석인데.”
“그, 그건….”
수우는 순간 말을 더듬거렸다.
선우영은 회심의 한마디를 푹 찔렀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이타나의 밑으로 들어가서 대접받으려면 그만큼 쓸모가 있어야 하잖아?”
“…….”
“무기도 변변치 않아. 음식도 없어. 빈털터리에 가지고 있는 건 몸뚱이뿐인데, 사이타나가 자선사업가냐? 뭘 믿고 걔가 잘해 줄 거라 믿냐.”
“…….”
“오히려 쓸모없는 오크들은 죽이고 전사 오크만 데려다 이용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그, 그거는….”
수우는 움찔했다.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굶주림에 지친 오크들은 배만 채울 수 있다면 뭐든 할 생각이었다.
수우는 이를 악물었다.
“너는 배고프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
“어. 나는 몰라.”
선우영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러며 조용석에게 눈짓을 줬다.
눈치가 빨랐던 조용석이 얼른 마차로 달려가 음식을 가져왔다.
미트볼과 밥.
비스킷.
마지막으로 커피를 가져왔다.
선우영은 수우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수우는 침을 질질 흘렸다.
놈의 시선이 음식에 꽂혀있었다.
선우영은 비스킷을 먹고 잠시 끊어졌던 대화를 마저 했다.
“난 배고픈 게 뭔지 모른다. 그야 먹을 게 엄청나게 많으니까. 내가 맘만 먹으면 오크들 전부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수우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음식에 완전히 꽂혔다.
선우영은 포크로 미트볼을 찍어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수우의 시선이 왼쪽으로 갔다.
미티볼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자 녀석의 시선이 쫓아왔다.
“허이구.”
선우영은 어처구니가 없단 표정을 지으며 미트볼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걸 본 수우는 침을 삼켰다.
선우영은 넌지시 물었다.
“너도 먹고 싶냐?”
“주, 줄 수 있냐?”
“공손히 말하면 줄게.”
“한 입만 주실 수 있습니까.”
“증인이 되겠다 약속하면 줄 수도 있지.”
“…….”
“참고로 나는 군단장 3명을 쓰러뜨렸다. 블레셋과 헤스본도 탈환했지. 무기와 곡창지대를 동시에 얻었으니 사이타나와 싸울 원동력이 충분하다.”
수우는 그 말에 잠시 흔들렸다.
선우영은 선택을 강요했다.
“결정해. 우리와 함께 싸워 위대한 전사가 될지. 아니면 전사의 자긍심을 버리고 사이타나 밑으로 들어가 이용당하다 하찮게 죽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