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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스킬융합-173화 (173/200)

#173화 오크 족장.

몰제는 눈을 크게 떴다.

“검강이요?”

오크들조차 검강은 익히기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었다.

몰제는 물론이고 굴란도 익히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익힙니까?”

“일종의 깨달음이 필요한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세상의 흐름을 알고 그 속에 있는 나를 깨달아 검에 의지를 넣는 거죠.”

“네?”

몰제는 그게 뭔 소리냐는 듯 한쪽 눈을 찡그렸다.

전혀 못 알아먹겠단 제스처.

선우영은 좀 더 쉽게 설명할 방법을 찾아봤다.

“그러니까, 마음을 진정하고 자신의 의지를 칼날에 담아 휘두르는 거죠. 뭐라고 할까, 강력한 의념?”

“의념이요?”

몰제는 여전히 못 알아들었다.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얼굴을 했다.

‘아직은 일렀나?’

오러나 육체의 상태는 검강을 사용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몰제는 깨달음이 부족했다.

선우영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념이라, 의념….”

몰제는 숨을 깊게 들이켜고 마음을 진정시켜 검기를 만들었다.

“의념, 의념….”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던 몰제는 검강을 만들기 위해 집중했다.

압축된 오러가 실처럼 되어 칼날을 감싸는 듯싶더니, 이내 팍하고 풀리며 눈 녹듯 사라졌다.

“어렵군요.”

몰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잡힐 것 같은데 묘하게 잡히지 않는, 이 오묘한 감각이 마음속을 까슬까슬하게 했다.

선우영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뭐,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도전하다 보면 될 겁니다.”

“그래 보입니까?”

“원래 깨치는 게 힘들지, 깨치고 나면 실력이 순식간에 상승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몰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영은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럼, 가죠. 족장을 선발하는 대결에 늦으면 안 되잖아요?”

다들 다시 마차에 올랐다.

몰제도 마차에 탔다.

“으랴!!”

테오가 말들한테 채찍질하며 마차를 다시 몰았다.

마차에 탄 몰제는 선우영이 해준 말을 곱씹으며 창밖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강력한 의념. 나를 깨달아 검에 의지를 넣는다.’

몰제는 숨을 길게 내쉬며 마차 의자에 기댔다. 역시나 아리송하고 어려운 이야기다.

달그닥, 달그닥.

말굽이 하염없이 땅바닥을 때리며 마차는 앞으로 나아갔다.

* * *

요크로 향하는 길.

슬슬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은 더 가야 요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겠습니다.”

테오가 마차를 세우며 말했다.

말들은 쉬지 않고 달렸지만, 딱히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없었다.

‘헤스본의 말이 대단하긴 하네.’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테오는 말들한테 먹일 건초와 물을 준비했다.

말들은 건초를 씹었다.

물은 그냥 빨아들이듯 마시는데, 그 모습이 진공청소기를 보는 듯했다.

선우영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말은 저렇게 물을 마시는구나.’

오늘 처음 알았다.

몰제는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모닥불로 쓸 나뭇가지를 찾았다.

타악, 타악.

그는 나뭇가지를 꺾었다.

선우영은 그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뭐 하세요?”

“식사하려면 불을 피워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예?”

몰제는 영문을 모르겠단 듯이 눈을 껌뻑였다.

그러자 정운이 얼른 전투식량을 꺼내어 몰제에게 보여줬다.

“자-! 잘 보세요. 오크 아저씨.”

찌이익.

정운이 포장지를 뜯자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몰제는 입을 턱 벌렸다.

“세상에. 음식이 저절로 데워지다니!? 마법이나 아티팩트로 음식을 만드는 거니?”

몰제는 신기했는지 포장지를 이리저리 살폈다.

정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바로 지구의 과학 기술입니다. 어때요, 대단하죠!!”

가슴까지 앞으로 내밀며 자랑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라 백영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몰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정운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과학이 뭐냐?”

“어, 그러니까. 자연 현상의 이론을…….”

정운은 움찔하며 머뭇머뭇 설명하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과학이 뭐라고 똑 부러지게 설명 못 했다. 정운이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 다음으로 과학이었다.

그러자 조용석이 나섰다.

“각종 실험으로 얻어낸 자연 지식을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이 음식도 과학을 이용해 데우는 거죠.”

“오호, 그렇군요.”

몰제는 무슨 말인지 알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아티팩트로 음식을 데우고 있는 거군요. 그 과학인가 뭔가 하는 걸 이용해서 말입니다.”

“아니, 뭔가 신기한 능력이나 마나를 이용한 도구는 아닌데….”

“어쨌든, 좋은 아티팩트로군요. 이게 있다면 굳이 모닥불을 피울 필요가 없겠어요.”

“…….”

조용석은 더 이상의 설명을 포기했다.

아무래도 몰제의 머릿속에는 과학이 아티팩트의 무언가로 자리 잡은 모양새였다.

김철수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이고 배고프네.”

그는 전투식량이 데워지길 기다리지 못했는지 비닐봉지를 꺼냈다.

“이걸로 배를 미리 채워야지.”

김철수는 비닐봉지에 즉석밥을 투하하고 고추장을 크게 퍼서 마저 넣었다.

그다음으로 참치 캔을 땄다.

기름까지 몽땅 비닐봉지에 넣었다.

쪼물쪼물.

김철수는 비닐봉지를 점토처럼 움켜쥐었다가 피며 내용물들을 섞었다.

점차 섞여가는 재료들.

몰제는 흥미롭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게 뭡니까?”

“뭐, 정식명칭은 없는데, 저는 고추장 떡밥이라 부릅니다.”

“고추장 떡밥?”

몰제는 그런 음식이 있냐는 듯 신기해했다.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쌀에 시뻘건 무언가와 갈색 무언가를 넣고 섞을 걸로밖에 안 보였으니까.

“그거 맛있습니까?”

몰제가 호기심을 보이자 김철수가 숟가락을 건넸다.

“한번 잡숴봐요. 제법 괜찮습니다.”

몰제는 한 수저 떴다.

숟가락에 담긴 시뻘건 밥을 보며 눈을 반쯤 감았다.

‘도대체 무슨 맛이지?’

그는 입안으로 밥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맛있다.

맛있게 맵다.

도대체 이 맛은 무엇이란 말인가.

밥은 딱딱한 듯한데, 묘한 감칠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기름기도 느껴진다.

게다가 고기? 생선?

하여튼 식욕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씹혔다.

이게 고추장 떡밥?!

“굉장한 맛이군요.”

“하하하, 그렇죠?”

김철수는 몰제의 어깨를 두들겼다.

둘은 금방 고추장 떡밥을 해치우고, 전투식량까지 먹었다.

“오오!!”

몰제는 밥을 먹으며 계속 감탄했다.

조미료로 이뤄진 식문화는 어나더에 흔치 않아서 입이 즐거웠다.

특히나.

“이 고깃덩어리가 참으로 맛있군요. 입이 호강합니다.”

몰제는 자기 주먹만 한 미트볼을 3개나 해치웠다.

몰제는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땅굴에 숨어 살기 시작한 이후, 이런 풍족한 식사는 오래간만이었다.

사실, 그것보다 더 그리웠던 게 있다.

웃음이었다.

사이타나에게 영토를 빼앗긴 이후 이렇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죽을상이었다.

영토를 빼앗겼단 사실, 그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

오크들은 언제나 절망감에 젖어있었다.

처음엔 다시 싸워 복수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다들 투쟁심에 불탔다.

하지만 굶주림과 시간.

열악한 환경.

그것들이 지속되자 다들 투지가 사그라지고 웃음도 없어졌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 채로, 복수심보단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급급해졌다.

그래서 그리웠다.

이렇게 웃으며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말이다.

몰제는 오래간만에 정말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였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식사가 끝났다.

뒷정리는 간단하게 했다.

비닐이나 포장지를 돌돌 말아 마차에 집어넣었다.

이제 슬슬 잠을 자야겠다.

해도 전부 저물어 이젠 빛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침낭을 꺼냈다.

그걸 덮어 추운 밤바람을 막았다.

몰제는 누우며 생각했다.

‘오크 족장을 결정하는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

굴란이 승리하게 둘 순 없다.

복수심을 잃어버리고 사이타나에게 굴복해버린다면, 오크에게 미래는 없다.

‘사이타나에게 사로잡힌 오크는 다른 차원을 침략하는 첨병으로 쓰인다.’

얼마나 치욕스러운가.

원한 관계도 없는 다른 세상의 사람을…… 더러운 야욕에 물든 사이타나를 위해 죽여야 한다.

그게 옳은가?

‘사이타나의 밑으로 들어가면 굶주림을 피하겠지.’

하지만 긍지 높은 전사는 모두 사라질 거다.

게다가 노예 취급당할 건 자명하고, 심하면 오늘 기분이 안 좋단 이유로 오크 하나를 잡아다 고문해 죽일지 모른다.

‘사이타나라면 분명 그럴 거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이타나의 밑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그건 당장 굶주림을 피하겠다고 오크의 미래를 파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돌아가신 전 족장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 사이타나는 위험하다. 권력과 지배에 대한 욕망이 너무 많다. 놈은 아군도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쓸 놈이다. 절대 녀석의 밑으로 들어가지 마라. 놈을 쓰러뜨려라.

몰제는 잠자리를 뒤척였다.

‘전대 족장님 말씀이 옳다. 절대로 사이타나의 밑으로 들어갈 순 없지.’

투지를 불태워 싸워야 한다.

하지만,

‘몇몇 오크들은 싸움에 지쳐버렸다.’

희망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단 자그마한 무언가라도 존재하면 오크들은 다시 투쟁심을 불태울 거다.

‘이들이 있다면 가능할 거야.’

몰제는 선우영 일행을 바라보았다.

다른 차원에서 원군이 왔다.

그걸 알게 되면 오크들은 다시 일어나 싸우려 할 거다.

‘이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보석 같군.’

몰제는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이 보석을 계속 빛나게 하려면 반드시 족장이 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족장을 선발하는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

그는 침낭에서 일어났다.

검을 들고 잠깐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부웅,

검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무예를 연마하는 몰제.

백영희가 가르쳐준 방식으로 무술을 조금씩 고쳐나갔다. 특히나 보법이 많이 바뀌었다.

‘이 보법도 대단하군.’

보폭의 사소한 변화만으로 휘두르는 맛이 달라졌다.

칼날이 쭉쭉 뻗어나간다.

이게 도끼라면 더욱더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할 거다.

“후우.”

몰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정도면 백영희가 보여준 보법을 참고해 큰 성취를 이뤘다.

‘이제는 검강.’

몰제는 정신을 집중했다.

선우영이 말해줬던 구결을 떠올렸다.

‘검에 의지를 담는다. 강력한 의념으로 검강을 만든다.’

몰제는 정신을 집중했지만.

스우웅.

검강은 만들어지는 듯하다 계속해서 사라지길 반복했다.

실패를 반복하자 몰제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땅바닥에 꽂고 팔짱을 끼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건 뭘까?

왜 실패할까.

오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하는데.

‘설마 의념이 부족한가?’

아니면 집중력?

고심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제야 뭐가 부족한지 알겠네.”

흠칫 놀란 몰제.

그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선우영이 있었다. 그가 나무에 기대어 자신을 바라봤다.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침낭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가셨을 때부터요.”

“처음부터 보셨군요.”

그런데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니. 몰제는 다시금 선우영의 강함에 감탄했다.

“그래서 제가 뭐가 부족하다는 겁니까?”

“집중력. 정확히는 구체적인 의념.”

“네?”

“오러를 압축해 검강을 만들겠다고 생각만 하니까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얼 하고 싶은가?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그걸 생각하고 명심하여 마음을 갈무리한 뒤에, 검을 휘둘러 보세요.”

몰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간절하고 강하게 바랬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오크를 위해 싸우는 것.’

그걸 위해 해야 할 건 단 하나.

‘사이타나를 죽인다.’

몰제는 검을 높이 들어 내려치기 자세를 잡았다.

뭔가 느낌이 다르다.

오러가 압축되어 칼날을 휘감는 느낌.

본능적으로 해냈다.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처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흐름이 느껴진다.

자신의 오러가 이토록 세세하게 느껴진다니.

몰제는 사이타나를 상상했다.

거대한 붉은 용.

눈앞에 녀석의 실루엣이 아른거리던 순간.

‘검을 내려친다.’

몰제가 검을 아래로 휘둘렀고.

어마어마한 돌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의 칼날은 눈부신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검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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