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블레셋 재건2
블레셋에 도착한 군대.
선우영은 페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나더에는 전화기 같은 물건이 있나요? 성안에 있는 녀석들이 다른 군단장한테 연락을 보내면, 우리가 어나더에 도착했단 사실을 적들이 알아차릴 텐데요?”
“어나더엔 그런 물건이 없습니다. 대신 전서구를 쓰죠.”
“전서구만 잡으면 문제없겠군요.”
선우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주위에 보이는 성벽을 바라봤다.
시커멓다.
온통 검은색으로 된 성.
광택이 좋아 햇볕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특이하게 생겼네.’
자신은 모르는 무언가로 만들어진 듯했다.
이제 이곳을 무너뜨리면 됐다.
“저 성벽이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저 성벽은 블랙 아이언이라 불립니다. 미약하지만 실드를 만드는 기능이 있죠.”
“실드라면, 방어막이요?”
“네. 다른 성보다 좀 더 무너뜨리기 힘든 성이라 보시면 될 겁니다.”
“되게 희한한 성이네요. 실드가 자동으로 생성되는 성벽이라니.”
“뭐,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페일은 그리 말하며 뒤로 도열해있는 탱크를 바라봤다.
분명 블랙 아이언은 대단한 성이다.
방어력이 높다.
하지만 지구의 과학기술과 드워프 기술력이 합쳐진 무기들은 그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선우영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럼, 우리 쪽 공격을 얼마나 버틸지 한번 구경해보죠.”
드르륵.
탱크들이 포구를 성벽에 겨누었다.
퍼어엉.
스파크를 일으키며 날아가는 포탄.
그런데 포탄은 성벽에 도달하기 전에 무언가에 부딪힌 듯 폭발했다.
블랙 아이언이 만든 실드였다.
보기엔 투명했는데, 포탄에 맞은 부분이 일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색 방어벽.
포탄에 맞았던 부분이 다시 투명하게 변했다.
퍼어엉.
탱크들이 다시 포탄을 쏘았다.
이번엔 연발이었다.
실드는 연달아 날아오는 포탄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실드가 사라진 블랙 아이언.
이때부터는 그냥 철로 만들어진 성벽에 불과했다.
“돌격!!”
선우영이 소리쳤다.
김철수가 온몸을 강철로 만들고, 성벽을 전신으로 들이박았다.
퍼억-!!
그러자 블랙 아이언에 구멍이 생겼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
김철수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귀청이 떨어질 만큼 소리를 질렀다.
“가자!!”
그는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김철수는 맨주먹으로 앞길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의 안면을 납작하게 만들어줬다.
“성벽에 구멍이 생겼다.”
“저기로 진입해!!”
헌터들과 무장한 사람들이 성벽에 생긴 구멍으로 돌격해 내부에 진입했다.
조용석은 깃발을 만들었다.
아군의 육체에 버프를 걸어 전투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오오, 버프 들어왔다.”
“힘이 넘친다.”
“몬스터들을 죽여라!!”
사람들은 잔뜩 고양된 표정으로 몬스터들과 싸워나갔다.
몸에 힘이 넘치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다.
조용석은 오러로 투창을 만들었다.
몬스터들은 버프를 걸어주는 그를 노렸지만, 조용석은 투창을 던져 안전하게 원거리 교전을 이어나갔다.
근거리 교전을 피했다.
적들이 다가올 틈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케엑.”
“켁!!”
몬스터들은 단말마를 흘렸다.
조용석에게 달려들었지만, 근처에 가보기도 전에 투창에 찔려 고슴도치처럼 변해버렸다.
주변에 몬스터 시체가 즐비했다.
선우영은 눈대중으로 몬스터의 숫자를 세어봤다.
‘대충 1,200마리 정도?’
마몬이 병력 대부분을 데리고 선우영과 싸우려 했기 때문에, 성에 남은 몬스터는 노예를 감독하는 녀석들밖에 없었다.
푸드덕.
블레셋의 성에서 여러 마리 새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선우영은 황금 비수를 만들었다.
피휴웅.
그걸 고속으로 날려 새를 잡았다.
그는 시체가 된 새를 주워 발에 묶인 조그마한 통을 열어봤다.
거기엔 서신이 있었다.
선우영이 어나더에 도착했다는 서신이 말이다.
그는 오러로 목청을 강화했다.
“성에서 나오는 새들은 모조리 죽이세요. 무슨 수를 써서든!!”
그가 지시를 내렸다.
“맡겨주세요.”
정운은 그림자를 조종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서구를 모조리 처치했다.
허공으로 떠오른 그림자가 문어발처럼 변해 새를 잡아 터뜨렸다.
정운은 성의 꼭대기 층을 바라봤다.
저쪽에서 새들이 자꾸 밖으로 날아간다.
틀림없다.
성의 꼭대기 층에서 전서구를 날리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거기서 새들이 날아가지.
정운은 단숨에 뛰어올라 성의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그곳에 몬스터들이 보였다.
새장에 갇힌 전서구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스걱-!!
정운은 몬스터들을 단숨에 해치웠다.
그림자로 녀석들의 목을 베었다.
덕분에 더 이상 전서구가 성 밖으로 날아오르지 않았다.
“이걸로 걱정할 필요 없겠네.”
정운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영은 성벽에 생긴 구멍을 통해 내부로 들어갔다.
성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특이하네.’
성벽 안에는 광산이 있었다.
지하를 파고 내려가는 광산 입구가 보였다.
‘드워프들이 저쪽에 있는 건가.’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몬스터들이 드워프 노예들을 인질로 쓸지 모른다.
그들의 신병 확보가 중요했다.
그때였다.
백영희가 칼을 뽑고 광산으로 달려갔다.
칼날에 스파크가 튀었다.
그녀는 쏜살같은 속도를 선보였다.
그 모습은 한 줄기 번개 같았다.
콰르릉.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있던 몬스터들.
느닷없이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스걱-!
고개조차 돌려보지 못한 채, 녀석들의 목이 절단되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녀석들의 얼굴. 목과 분리된 몸통이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광산에 있던 몬스터들이 모두 죽었다.
그곳에서 강제 노역하던 드워프들은 백영희를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누, 누구십니까?”
드워프 중 한 명이 용기 내어 그녀에게 물었다.
“당황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을 구조하러 왔습니다.”
그녀는 그리 외쳤다.
드워프들은 연거푸 눈을 껌뻑거리다, 순식간에 제정신이 든 사람처럼 곡괭이를 버리고 광산을 탈출했다.
전황은 선우영의 쪽으로 기울었다.
몬스터들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성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선우영은 성 밖으로 뛰어나와 허공으로 치솟았다.
‘놈들을 살려 보낼 순 없지.’
저 녀석들이 다른 군단장이 있는 곳으로 달아나, 자기가 이곳에 왔단 정보를 흘리면 일이 귀찮게 될 거다.
‘그러니 여기서 전부 해치워야지.’
화르륵.
허공에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었다.
마치 태양처럼 말이다.
열기를 곳곳으로 보내 몬스터들한테 온몸을 난도질당하는 고통을 선사하고, 황금 가루로 비수를 만들어 쏘았다.
피휴웅.
허공을 벌침처럼 매섭게 쏘다니는 비수가 몬스터들의 뇌간을 뚫고 다녔다.
“컥”
“켁”
철퍼덕
몬스터들은 머리에 구멍이 생긴 채 죽어 나갔다.
주변엔 시체가 가득했다.
선우영은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전부 쓰러뜨렸다.
땅바닥에 픽픽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몬스터들은 검붉은 핏물을 상처에서 쏟아냈다.
더 이상 남은 녀석은 없었다.
“좋았어. 이걸로 블레셋을 탈환했군.”
선우영은 화염을 꺼뜨리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첫 번째 목표였던 블레셋이 탈환된 순간이었다.
* * *
블레셋을 탈환한 선우영 일행.
그들은 이곳으로 물자를 가져와 드워프들한테 나눠줬다.
음식이며, 자제를 가득 실은 트럭 수십 대가 성안으로 들어왔다.
“오오, 감사합니다.”
“축복받으실 겁니다.”
드워프들은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페일은 가장 지극 정성으로 드워프들을 살폈다. 먹지 못해 바짝 마른 몸은 둘째치고, 몬스터들한테 채찍질 당하느라 당한 부상이 심각했다.
일단 포션으로 몸부터 치료시켰다.
그다음 밥을 먹였다.
드워프들은 오래간만에 먹는 푸짐한 식사에 그릇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먹었다.
식사는 수프와 죽으로 만들었다.
많은 굶은 상태라 쉽게 소화되는 음식을 먹여야지, 지금 상태에선 웬만한 음식은 배탈로 이어질 수 있다.
영양상태가 안 좋은데, 여기에 배탈까지 겹치면 설상가상인 상황이 된다.
그 점을 유념해야 했다.
물론, 수프와 죽은 다양한 채소와 고기가 곱게 갈아져 있었다.
영양가는 충분했다.
선우영 일행은 블레셋에 최소한의 병력을 남겨두기로 했다.
이곳을 지킬 병력이 필요했다.
여기에도 광산이 있으니 무기 제조에 큰 도움이 될 거다.
페일은 식사하는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다행히 다들 잘 먹네.’
그리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떤 청년이 시야에 들어왔다.
생김새가 눈에 익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얼굴의 특징이 있다고 해야 할까?
페일은 그 청년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중얼거렸다.
“블릿 왕자님?”
그가 살펴보던 청년이 고개를 돌렸다.
페일은 청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자 확신이 들었다.
“블릿 왕자님!!”
“페일 경. 안녕하셨습니까.”
블릿은 시선을 피하며 어깨를 잔뜩 좁혔다.
굉장히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페일은 블릿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왕실 예법으로 인사했다.
“적법한 블레셋의 주인인….”
“됐습니다. 어차피 왕실은 망한 지 오랩니다.”
블릿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자기가 입은 상의 밑단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존감이 엄청나게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페일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감격한 목소리를 냈다.
“블릿 왕자님, 생존해 계셨습니까? 드워프 왕가 사람들은 전부 전사하신 줄 알았습니다.”
“아버님과 형님들은 전쟁터에서 돌아가셨죠. 어머님은 몬스터한테 처형당하셨고요.”
“…….”
“그 당시 어리고 아무 힘도 없던 저는 처형을 면했습니다. 아니, 드워프들한테 모욕감을 주기 위해 이용됐다고 봐야죠.”
블릿은 자기 처지가 한심했다.
드워프들은 본래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노예로 길들이는 방법이 필요했다.
마몬은 블릿을 이용하였다.
드워프의 상징성인 왕가 인물을 모욕하여 드워프들의 기를 죽여놨다.
모든 드워프가 블릿의 안 좋은 모습을 보았다.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
절하며 시키는 건 모든 하겠단 태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행동을 보였다.
그때는 청년이 아니라 어린아이였다. 힘도 없는 아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기개와 지조가 뭔지도 몰랐다.
그 결과, 블릿은 왕자에서 일개 노예가 됐다.
차라리 모두의 앞에서 의연하게 죽었다면, 드워프들이 불같이 들고 일어나 최후의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릿은 그러지 않았다.
생존을 택했다.
덕분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상징성을 가진 왕가 사람이 아닌 꼬질꼬질한 옷을 입은 노예로 전락했다.
블릿은 자기 모습을 페일에게 보이는 게 창피했다.
페일을 봐라.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지원군을 데려왔다.
게다가 근사한 검을 허리춤에 차고, 늠름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신과 딴판이었다.
블릿은 부끄러움이 확 치솟아 얼굴이 시뻘게졌다. 도무지 시선을 마주칠 용기도 안 났다.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때, 페일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던졌다.
“곧 군사 회의가 시작될 텐데, 왕자님께서도 얼른 참석하시죠.”
“아, 그게. 저는….”
“시간이 없습니다.”
페일이 재촉하자 블릿은 거절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군사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블레셋의 왕자 신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