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드워프
선우영은 니아온의 땅으로 동료들을 불렀다.
“주둔지 확보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들어와서 캠프를 세우도록 하죠.”
그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무전기에서 연락이 들려왔다.
곧이어,
드르륵. 드르륵.
탱크가 황무지를 달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노예로 잡혀있었던 드워프들은 그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포가 스스로 움직인다!!”
“내 평생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도대체 저건 뭐야?”
“어떤 원리로 굴러가는 거지?”
기술력이 뛰어난 드워프들.
그들은 마나를 이용한 무기 제작에 능했지만, 기름과 철로 움직이는 무기는 처음 봤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탱크 뒤로 줄지어 걸어오는 헌터들, 무장한 시민군.
트럭도 움직였다.
드워프들은 트럭을 보며 입을 턱 벌렸다.
마석으로 움직이는 건 아닌 듯한데,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모르겠단 반응이었다.
시민군들은 거점확보를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드워프들의 족쇄를 풀어주고.
주변에 판넬을 고정해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전기로 드론을 충전하였다.
주변에 철근과 콘크리트를 이용한 방호벽을 세웠다.
특수 콘크리트라서 공기와 만나는 순간 빠르게 굳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방호벽에 강철판을 박았다.
그럭저럭 쓸만한 방호벽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크레모어와 기관총을 설치했다.
헌터들은 트럭에서 자제를 꺼내 조립식 건물을 빠르게 지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
식량이나 무기 보관 용도를 쓰기 좋았으니까.
사람들이 잠잘 조립식 건물도 지었는데… 난방이 되지 않아 잠잘 때 침낭이 필요했다.
헌터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무기 창고에 소총은 물론이고 열압력탄두까지 집어넣었다.
열압력탄두는 폭발력이 좋아 숨어있는 적을 처치할 때 굉장히 유용한 무기였다.
선우영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헌터들과 시민군을 바라봤다.
“역시, 다들 신속하네.”
“시민군들 출신 대부분이 군대 경험자잖아요. 헌터들도 북한의 영토를 수복할 때, 단련된 경험이 있고요.”
백영희가 다가와 말했다.
북한 영토를 수복할 때, 겪었던 경험 덕분에 다들 자기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노예였던 드워프를 돕기 위한 대민 지원도 진행됐다.
일단 포션으로 몸을 치료하고 음식을 나눠줬다.
소화하기 쉬운 수프와 죽을 먼저 제공했다.
너무 굶어있는 상태라서 갑자기 음식이 들어가면 탈이 날 수 있는 상태였다.
영양부족 상태에서 배탈이라도 나면 그게 더 골치 아프다.
수프와 죽.
소화가 쉬운 음식으로 며칠 동안 몸을 회복시키고.
그다음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해야 했다.
드워프들은 얼른 수프와 죽을 먹었다.
얼마나 굶으며 살았는지 죽과 수프를 단숨에 해치웠다.
“아, 배부르다.”
“오래간만에 실컷 먹었네.”
드워프들은 그리 말하며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얼마나 싹싹 긁어먹었는지, 반질반질해서 설거지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위이이잉.
시민군은 드론을 조종했다.
드론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주변을 탐사해 환경과 지리적 정보를 모아왔다.
“반경 60km까지는 딱히 아무것도 안 보이네.”
드론으로 주변을 촬영하던 시민군이 그리 중얼거렸다.
이 정보를 토대로 지도를 다시 재작성했다.
페일이 지도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 지도보다 직접 측정한 지도가 훨씬 정확했으니까.
정보는 다 모였다.
거점도 확보됐으니, 이젠 군사 회의다.
앞으로의 작전계획.
정보 브리핑.
그걸 위한 자리였다.
드워프들 역시 이 자리에 참석했다.
현지인들의 정보 또한 중요했으니까. 통역은 페일이 맡았다.
기다란 책상과 수많은 의자들.
드워프들은 의자에 앉기 전에 선우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를 풀어주어 고맙소.”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선우영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드워프들은 돌연 페일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은빛 기사단장님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페일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저는 이제 은빛 기사단장이 아닙니다. 이미 기사단은 와해되고 없습니다.”
“하지만, 기사단장님께서 멀쩡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대단한 군대를 이끌고 오셨으니, 정말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드워프들은 그리 말했다.
페일의 얼굴에서 쓴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지구로 도망치기 전, 그는 은빛 기사단장이란 지위를 이용하여 사이타나와 싸웠던 인물이었다.
어나더의 인간 나라, 헤스본.
은빛 기사단은 헤스본의 최강 무력단체였다.
하지만 그런 기사단조차 결국 사이타나에게 패배해버리고 말았다.
씁쓸한 과거였다.
페일은 얼른 옛기억을 털어내고, 회의하자고 이야기했다.
“자, 그럼 회의 시작하죠.”
선우영은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저희는 어나더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현재 상황을 자세히 모릅니다. 현 상황을 요약해주시겠어요?”
드워프 중 하나가 대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이타나가 나타나기 전, 어나더는 드워프, 엘프, 오크, 인간이 각자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서로 충돌이 없었다고 할 순 없으나 나름 평화로웠죠. 그러다 놈이 나타났을 때 국가들은 동맹을 맺었습니다.”
“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황이죠?”
“드워프는 마몬이 지배 중입니다. 인간은 벨제부브, 엘프의 국가 페르온은 아스모데우스가 점거했습니다. 오크는 사이타나와 전투 이후, 자신들의 나라 아라랏을 버리고 숨어버렸습니다. 현재 행방이 묘연합니다. 오크들의 나라였던 아라랏엔 루시퍼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더 심각한 건 엘림을 레비아탄이 지배하고 있단 겁니다.”
페일을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엘림을? 성서에 나오는 그곳 말입니까?”
“네. 창조주, 죠슈아가 강림했다고 전해지는 그곳 말입니다.”
“아니, 그곳을 녀석들이 왜…?!”
“엘림을 더럽혀 우리의 정신을 짓밟겠단 뜻이겠죠. 실제로 엘프, 인간, 드워프는 놈들이 엘림에 본거지를 차리자 한동안 절망했었습니다. 싸울 의지조차 사라졌었죠.”
“신조차 우리를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생각이었군요!!”
페일은 이를 악물었다.
창조주 죠슈아가 강림했다 알려진 엘림. 그곳은 모든 종족들의 신앙심이 집결된 곳이었다.
지구로 치면 예루살렘 같은 곳이었다.
의미가 깊은 곳이라 함부로 건드리면 절대 안 되는 곳이다.
사이타나는 그걸 인지하고, 엘림을 건드렸다. 어나더의 종족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 위해서!!
페일은 침묵했다.
드워프들은 주먹을 꽉 쥐며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선우영은 빠르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뭐, 결국 사이타나를 쓰러뜨리면 엘림도 되찾지 않겠습니까. 희망을 품자고요!!”
페일과 드워프들은 딱딱한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선우영은 작전을 짰다.
“여기가 원래 드워프의 영토였으니, 마몬을 쓰러뜨리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드워프의 나라, 블레셋을 재건해야 합니다. 이건 우리 모든 드워프들의 소망입니다.”
선우영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마몬은 도대체 어떤 녀석입니까?”
콰앙.
드워프들은 책상을 주먹으로 쾅 때렸다. 그들의 손이 떨렸다.
“지독한 놈입니다. 아주 지독하죠. 지옥으로 굴러떨어져 유황불에 고통받아야 할 놈입니다.”
얼마나 분통을 터뜨리던지.
드워프들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동안 당한 게 있으니, 분노가 치솟지 않으면 그게 이상했다.
굶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채찍질에 맞으며 일했으며, 어린아이들까지 노역에 동참 됐다.
그러다 다쳐서 할당량 못 채우면 죽였다.
그 장면을 보며, 드워프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나. 심지어 그 시체를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미친 광경까지 봤는데.
마몬을 향한 드워프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선우영도 그들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게 화나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하지만, 지금은 작전회의 중이야.’
냉정해야 한다.
차분하게 생각하고 작전을 수립해야, 비로소 이길 수 있는 법이다.
선우영은 드워프들한테 이야기했다.
“일단 좀 진정하시죠. 마몬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냉정히 싸워야 이길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드워프들은 숨을 길게 내쉬며 감정을 다스렸다.
그들은 마몬에 대한 정보를 전부 이야기했다.
“녀석은 무기는 망치입니다.”
“머리에 뿔이 났으며, 황금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노란 눈깔을 가졌습니다.”
“용암을 만들어 싸웁니다. 또한 녀석의 군대는 강합니다. 갑옷과 검의 제작 기술은 어나더의 어떤 종족보다 대단합니다.”
선우영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마몬은 벨페고르와 같은 군단장이다.
절대 쉬운 싸움이 되지 않을 거다. 거기다 군대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S급 게이트와 다르게 환경이 발목 잡지 않는단 거야.’
S급 게이트를 닫을 땐, 사람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어쩔 수 없이 헌터들끼리만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환경 자체는 지구와 비슷하다.
군대와 현대식 무기를 100% 활용할 수 있다. 보조적 역할로 쓸만할 거다.
선우영이 그러한 생각에 잠긴 순간, 드워프들이 독특한 제안을 던졌다.
“저희가 여러분들 무기를 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기요?”
선우영이 되묻자 드워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이나 방패 같은 무기가 아니라, 굉장히 독특한 무기를 사용하시던데요? 움직이는 대포라던가….”
“아! 전차요?”
“네, 네. 전차인가 뭔가 하는 그거요. 우리 드워프 기술과 합쳐지면 꽤 괜찮은 무기가 나올 듯싶습니다.”
선우영은 그 말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흥미롭지 않은가.
현대식 무기와 드워프의 기술이 합쳐진다?
상상도 안 해봤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요. 한번 해보세요.”
선우영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한 드워프가 손을 들었다.
선우영은 그에게 손짓했다.
“그러려면 광물이 필요합니다.”
“흠, 그렇겠군요.”
“또한 페일 님께서 계속 이렇게 통역을 해주셨다간 전쟁에서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기 힘듭니다. 해서 제안합니다.”
“뭔가요?”
“이 근처에 선조들께서 파놓은 광산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 있는 광물을 이용하면 전쟁 무기를 강화하는 건 물론이고, 각 종족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하는 아티팩트… 그러니까, 번역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선우영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드워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영은 손뼉을 치고, 드워프를 가리켰다.
“어서 빨리 갑시다. 그 광산에!!”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 광산에는 강력한 수호자가 있습니다.”
“수호자?”
“네.”
드워프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이어 설명했다.
“선조님들께서 광산에 무언가를 봉인해뒀는데, 그걸 지킬 수호자를 만드셨습니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요.”
“쉽게 말해, 그 광산을 사용하려면 수호자를 쓰러뜨려라?”
“맞습니다.”
“드워프는 못 들어갑니까?”
“말씀드렸잖습니까.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요.”
“다른 광산은요?”
“다른 광산도 하나 있는데. 마몬이 직접 지배하는 곳이라 쓸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선우영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드워프들한테 질문을 던졌다.
“마몬도 가디언 때문에 그곳 광산을 사용하지 못한 겁니까?”
“아뇨. 이 광산에 대한 사실은 드워프 왕가의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선우영이 혹시나 왕가의 핏줄이냐 묻는 눈길을 던졌다.
제안을 던졌던 드워프는 손사래를 쳤다.
“저는 국왕 전하의 수발을 드는 신하였습니다. 드워프 폐하께서 시아타나에게 돌아가시기 전 이 사실을 측근들에게 알리셨습니다.”
“…….”
“언젠가 이것이 희망의 불씨가 될 것이니, 반드시 명심해두라 말씀하셨죠.”
말하던 드워프는 눈가가 붉어졌다.
돌아가신 폐하를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그 광산이 희망의 불씨가 된다고 하셨지만, 사실 믿지 않았다. 누가 사이타나와 다시 싸우겠나 싶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세상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이타나와 싸우겠다고!
선우영은 그 드워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광산은 이번 전쟁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선우영의 위로.
드워프는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페일은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광산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곳입니다.”
드워프는 한 광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곳이 드워프 왕가의 비밀 광산, 수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