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드디어 떠나다.
선우영의 기자회견 발표.
그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지구와 다른 차원. 그곳에서 몬스터를 보내 우리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그 존재의 이름은 사이타나입니다.”
선우영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놈은 S급 게이트를 만드느라 녀석들은 힘을 많이 소모한 상태입니다. 한동안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던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놈이 힘을 회복하여 다시 게이트를 열기 전에 우리 쪽에서 쳐서 쓰러뜨려야 합니다.”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도무지 믿기 어려웠는지, 콧등으로 내려온 안경을 올리면서 말이다.
“그 말에 신빙성은 어떻게 입증하시겠습니까?”
“페일.”
“네?”
“페일이 바로 그 차원에서 도망친 생존자 중 하나입니다.”
기자들은 멍한 얼굴을 했다.
저 터무니 없는 말을 믿기 힘들단 반응이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발표였으니까.
선우영은 재차 외쳤다.
“저희와 함께 다른 차원으로 갈 사람들을 모집합니다. 현대 병기도 가져갈 생각인지라, 각성자 이외에 분들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단상을 내려왔다.
그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저게 진짜냐.
아니면 가짜냐.
그걸 따지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곧이어.
미국 쪽에서도 발표가 시작됐다.
- 미국 정부, 페일이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걸 공식발표.
저 사실을 페일 개인이 아닌 국가에서 인정했다.
당연히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미국 정부는 본래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지만, S급 게이트 사태 이후 태도를 바꿨다.
미국 정부 수뇌부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 이거 X될 수도 있겠구나.’
너무나 많은 피해를 낳은 S급 게이트 사태 이후, 이거 잘못하면 인류가 망할 수도 있겠다 판단했다.
그러니 선우영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물론 페일도 그랬고.
그는 자신이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사실과 사이타나의 목적에 대해 말했다.
“사이타나는 전 차원의 지배를 원합니다. 저는 다른 차원에서 간신히 도망친 생존자입니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지구도 저희 차원처럼 황폐해질 겁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시끌시끌했다.
[댓글]
골든유저 : 저게 진짜야? 사이타나란 존재가 몬스터를 보내서 지구를 점령하려 한다고?
EM : ……페일이 다른 차원 사람이라고?
맹구 수호자: 이세카이가 실존한다고?! 트럭 치이면 이세카이 가는 게 실화라고??
↳ 코나안 : 이 심각한 상황에 그딴 소리가 나오냐?
뭐,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류였다.
놀라는 분위기.
그리고 때때로 이런 댓글도 달렸다.
[댓글]
브딱이 : …나는 사이타나 잡으러 간다. 게이트 안 열려서 어차피 백수였는데, 공개모집에 지원하러 간다.
포도대마왕 : 나도 지원할 생각이다. 이러다 지구 멸망할까 봐 무섭다. 나라도 나서서 싸워야지.
김골라 : 다들 대단하네.
선우영의 공개모집에 지원하겠단 의사 표명. 저런 것들도 주류를 이뤘다.
S급 게이트 사건.
그 피해로 수많은 헌터들이 죽었다.
놈이 두 번째 S급 게이트를 열기 전에, 공격하러 가는 게 맞았다.
* * *
다음날.
크루그먼 길드의 전화기는 바삐 움직였다.
“네. 크루그먼 길드입니다. 사이타나 토벌 지원자이시군요. 성함과 나이, 소속 국가를 말씀해주십시오.”
“네. 크루그먼 길드입니다. 사이타나 토벌을 위해 기부를 하시겠다고요?”
사이타나를 토벌하겠단 사람들의 손길이 빗발쳤다.
다양한 국적의 헌터들.
심지어 F급들도 참가 의사를 밝혔다.
숫자만 10만 명에 달했다.
서포트 부서 사람들은 지원자들 목록을 작성하느라 바빠졌다.
선우영은 크루그먼 길드 사람들도 전부 데려가지 않고, 지원자의 한에서 데려가겠다 했다.
이에 조용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주 위험한 작전이군요. 몬스터들의 본거지를 공격하겠다니. 하지만 목숨을 걸 가치가 있습니다.”
김철수는 어깨를 딱 폈다.
“이런 위험하고 명예로운 전투에 탱커가 빠지면 안 되죠. 저도 가겠습니다.”
정운은 손을 번쩍 들었다.
“아저씨가 가겠다면 어디든 따라갈 거예요. 제 그림자 능력은 아저씨한테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요!”
백영희는 지긋이 선우영을 바라봤다.
“저도 가겠습니다.”
선우영은 그 말에 괜스레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렇게 다들 따라와 주겠다고 하니 든든했다.
“아이고, 내가 진짜….”
“감동했어요?”
백영희가 묻자 선우영은 입꼬리를 올렸다.
“네. 감동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해서 다들 따라와 주는구나 싶어서요.”
“아, 진짜 이런 때에도 농담이야.”
백영희는 피식 웃었다.
선우영도 껄껄 웃으며 믿음직스럽단 눈길로 동료들을 바라봤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함께할 거란 걸.
선우영은 그게 고마웠다.
참으로 감사했다.
‘인복이다. 인복이야. 이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인복이야.’
선우영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니, 회장님. 감사는 무슨!!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주십시오.”
김철수가 그리 말하자 다들 껄껄 웃었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좋습니다. 사이타나 토벌하면 까짓거 코 삐뚤어지게 마셔봅시다.”
김철수는 박수를 딱 쳤다.
“회장님, 약속하신 겁니다. 잊으시면 안 돼요?!”
“사나이 선우영!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습니다.”
선우영은 가슴을 펴며 말했다.
이후.
다른 길드원들도 함께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지원율만 90%를 넘어섰다.
선우영은 박정철에게 연락을 넣었다.
“아, 박정철 씨.”
“네.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다른 차원으로 가려면 여러 준비가 필요한데….”
“무기와 식량, 포션 말씀입니까?”
“네. 눈치채셨어요?”
“그야 아주 기초적인 문제이니까요.”
“그럼 잘 좀 부탁드립니다.”
“기자회견에서 사이타나 토벌을 이야기하셨을 때, 이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정말입니까?”
선우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정철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식품 위주로 준비했습니다. 야채나 고기를 섭취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프로틴과 비타민 영양제도 구매해뒀습니다.”
“오, 그거 잘 됐군요.”
“정제된 물도 구매했습니다. 소비기한이 4년이나 남았으니 충분하겠죠.”
“무기는요?”
“각종 단체에서 무기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현대식 전략 병기는 내일 협상하기로 했습니다.”
“이야, 빠르다. 든든하네요.”
“맡겨 주십시오. 선우영 회장님이 모자라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선우영은 전화 통화를 끊었다.
그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뒷짐을 지었다.
‘준비가 순조롭군.’
S급 게이트 이후, 위기의식을 느껴서 그런지 단합하는 속도가 빨랐다.
선우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사이타나 토벌전.
쉽진 않겠지만,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 * *
페일의 본래 차원.
아나더.
이곳은 사이타나와 놈의 부하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6명의 군단장.
사이타나가 마계의 귀족 중 강력한 자들에게 부여한 칭호였다.
사이타나는 6명의 군단장에게 어나더의 땅을 나눠주며, 실효 지배권을 줬다.
그중에 탐욕을 형상화한 듯한 인물, 마몬이 있었다.
마몬은 금을 좋아했다.
녀석은 황금좌에 앉아 부하들을 부렸다.
“어서 빨리 일해라, 이 쓸모없는 벌레들아!!”
마몬의 부하가 노예들에게 채찍질을 했다.
쫘악!!
쇠구슬과 날카로운 칼조각이 박힌 채찍.
노예들은 비명을 질렀다.
맞을 때마다 살가죽이 찢어지다 못해 근육을 베었다.
쇠구슬은 뼈를 부수는 듯하였다.
노예들은 벌벌 떨며 노예장의 눈치를 봤다.
마몬은 그런 노예들을 보며 황금잔에 담긴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멍청한 드워프 놈들.”
노예의 정체는 드워프.
한때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아나더에서 장인으로 손꼽히던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한낱 노예로 전락했다.
드워프는 호전적인 종족이라 한때 마몬과 끝까지 대치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패배해버렸다.
모든 무기를 빼앗기고.
쇠나 철을 다루기는커녕 광산에서 광물 캐내는 일만 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빵 한 조각과 물 한잔이면 그나마 나았다.
최악의 경우엔,
‘할당량 못 채운 드워프를 산채로 뜯어서 식재료로 사용하니까.’
이 빌어먹을 녀석들은 식인도 강요한다.
같은 동족을 먹게 만든다고!!
얼마나 잔혹한가.
드워프들은 들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차마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호전적이며 호쾌한 종족.
술과 망치를 사랑하던 드워프들의 기상은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마몬은 낄낄 웃었다.
놈은 마계의 귀족으로 드워프처럼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다.
물론 전투력도 뛰어났다.
물욕이 많아 황금에 집착했고, 무기와 도시건설에도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드워프들이 사는 땅을 지배했다.
“더욱 열심히 일해라. 죽을 때까지 일해라. 일하다 죽어라.”
마몬이 소리쳤다.
“모든 차원에 만마전을 세울 때까지 일해라!! 만마전이여, 영원하라!!”
만마전.
마계의 수도를 뜻한다.
마몬은 모든 차원에 만마전과 똑같은 도시를 짓는 게 목표였다.
그건 자랑이었다.
마계의 족속들이 모든 차원을 지배했단 증표.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검은 태양의 도시!! 위대한 마족들이 모든 걸 지배했단 상징.
그리고 만마전 건설은 마몬이 언제나 도맡았다.
마몬은 황금잔에 담긴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드워프들이 캐내는 광석을 바라봤다.
“반드시 지구에도 만마전을 건설하겠다.”
그리 다짐한 순간.
슈우웅.
머릿속에서 소음이 들렸다.
“이건 설마?!”
마몬은 흠칫 놀라더니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그 순간.
놈이 보던 풍경이 바뀌었다.
광산이 아니다.
황금으로 이뤄진 도시.
마몬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드워프들의 땅을 지배하던 그가 다른 곳으로 강제 이동했다.
‘누군가 날 이곳으로 소환했다?’
틀림없다.
이 정도 힘을 가진 분은 마계의 진정한 지배자, 사이타나 님뿐이다.
거기다 지금 보이는 장소.
자신이 어나더에 만든 만마전이다. 그중에서도 사이타나가 머무는 궁전!
‘왜 날 이곳에 부르셨지? 그것도 소환까지 써서 급하게?’
마몬은 흠칫했다.
‘설마?!’
마몬은 들고 있던 황금잔을 콱 움켜쥐어 우그러뜨렸다.
‘설마, 지구로 쳐들어간 벨페고르가 당한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단장 개개인의 무력은 가히 최강이다.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마몬은 고개를 숙였다.
‘벨페고르는 군단장 서열 최하위’
그는 피식거렸다.
‘벨페고르, 멍청한 녀석~! 방심하다 인간에게 죽었나 보군.’
마몬은 그리 생각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자기도 왔어?”
남성의 마음을 간질이는 목소리.
마몬은 뒤를 돌아보았다.
“서큐버스 여왕도 이곳에 불려오다니.”
아스모데우스.
서큐버스의 여왕으로 보통 서큐버스와 다르게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이지만, 머리에 뿔이 났고 등에는 박쥐 날개가 달렸다.
우걱, 우걱.
저쪽에는 벨제부브.
뚱뚱한 거구의 남성.
키는 2m 정도.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노란 진액이 피부에서 흘러나온다.
주변엔 파리가 날아다녔다.
녀석은 계속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사람의 시체였다.
놈은 그걸 시도 때도 없이 먹었다.
녀석은 말도 하지 않았다.
게걸스러운 먹성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더러운 녀석.”
마몬은 벨제부브를 욕했다.
우걱우걱 사람의 시체를 씹어먹던 벨제부브가 마몬을 노려봤다.
둘의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때였다.
타앙.
누군가 칼날로 황금 바닥을 찍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소란 피우지 마라. 곧 사이타나 님께서 등장하실 거다.”
군단장 서열 1위.
사이타나 뒤이은 마계의 실력자.
루시퍼였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였으며, 등에는 검은 날개를 가졌다.
겉보기엔 천사처럼 생겼다.
그를 보자 아스모데우스가 싱긋 웃으며 다가갔다.
“어머, 우리 자기. 늠름도 하셔라. 어때? 오늘 우리 재미있는 시간 보내보는 게?”
아스모데우스가 루시퍼의 뺨을 쓰다듬으려 하자.
쏴아악.
시퍼런 물줄기가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크윽!!”
아스모데우스는 물줄기에 맞고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녀의 고운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레비아탄!!”
“남의 남자에게 손대는 헤픈 계집년이….”
피부가 비늘로 뒤덮인 여성.
흡사 신화 속 인어처럼 생긴 존재가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봤다.
루시퍼는 레비아탄을 쳐다봤다.
“내가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스걱-!
루시퍼는 레비아탄의 어깨를 단숨에 베었다.
얼마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레비아탄은 상처를 입었지만.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게 루시퍼의 명령이었으니까.
레비아탄은 루시퍼에게 순종적이었다.
그 순간.
“고개를 조아려라.”
군단장들을 짓누르는 끔찍한 기운이 만마전으로 퍼져나갔다.
어마어마한 격의 차이.
군단장들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사이타나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