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일주일간 휴가
선우영은 병상에서 일어났다.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의사는 그의 상태를 진찰하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습니다.”
“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우영 회장님의 몸이 튼튼한 덕분이죠. 솔직히 처음 입원하셨을 땐 어떡해야 하나 고심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빠르게 회복하셔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미소 지었다.
그는 선우영에게 인사하고 간호사와 함께 병실을 빠져나왔다.
선우영은 환자복을 벗었다.
엄마랑 아빠가 어제 가져오셨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부모님이 보였다. 동료들도 있었고.
“퇴원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건강하셔서 다행이에요.”
“아저씨! 퇴원하셨어도 혹시 모르니까 푹 쉬세요.”
정운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선우영은 껄껄 웃었다.
“그래. 며칠간은 푹 쉴 생각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는 정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백영희는 선우영을 보며 슬며시 웃음을 보였다. 다크서클이 있는 걸 보면, 입원 내내 걱정하느라 잠도 못 잤던 것 같다.
선우영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병간호하느라 수고 많았어.”
“응.”
백영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표정만 보면 ‘얘가 여자친구였어?’라고 놀란 얼굴이다.
뭐, 정운은 이미 알고 있었고.
김철수와 조용석은 눈치채고 있었으니 별 반응 없었다.
“자, 그러면 갑시다.”
선우영은 그리 말하며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
회전문을 나서자 기자들이 보였다.
“선우영 회장님, S급 게이트를 닫은 영웅이 되셨는데, 소감 한번 말씀해주시죠.”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되십니까?”
“함께 S급 게이트 토벌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번 토벌에서 많은 S급 헌터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 말을 마친 선우영은 곧바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대는 아버지께서 잡으셨다. 괜찮다고 했는데, 방금 퇴원한 사람이 운전하는 거 아니라며 기어코 운전석에 앉으셨다.
선우영은 일주일 정도 푹 쉴 생각이었다.
그 전에….
선우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네, 박정철입니다. 회장님.”
“제가 없는 동안 길드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저 없다고 다들 농땡이 피우는 건 아니죠?”
선우영은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박정철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화한 건 다름이 아니라, S급 게이트에서 사망한 헌터들 때문에 했습니다.”
“위로금 문제입니까?”
“네. 돈으로 뭐든 위로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가족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니까요.”
“신경 써서 처리하겠습니다.”
선우영은 통화를 끊었다.
부르릉.
차량이 도로를 달렸다.
그러다 빨간 신호에 걸려 잠깐 멈췄다.
선우영의 아버지는 멈춘 김에 라디오를 틀었다. 운전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라, 반사적으로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 게이트 사태 종료!! 요즘 이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죠? S급 게이트를 닫고 난 이후, 게이트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우영은 팔짱을 꼈다.
역시나!!
미래처럼 S급 게이트 이후,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게이트 사태가 종료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잠깐 게이트 등장이 멈췄을 뿐이라 주장했다.
선우영은 손가락으로 팔뚝을 툭툭 두들겼다.
‘사이타나의 회복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아직 게이트 사태가 끝난 건 아니야.’
이게 진실이다.
거기다 다음번에도 S급 게이트가 나타날지 모른다.
어쩌면.
‘벨페고르보다 더 강한 녀석이 나타날지 모르지.’
뭐, 급할 건 없다.
아주 오랫동안 게이트는 나타나지 않으니까.
‘며칠 간은 푹 쉬자.’
그 이후로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나날들이 반복될 테니까.
선우영은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과 동료들도 함께였다.
다들 병간호하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장 뷔페를 불렀다.
그러자 금방 음식들이 배달되었다.
중식, 양식, 일식, 한식.
종류별로 다 시켰다.
김철수는 손을 싹싹 비비며 군침을 흘렸다.
“와, 맛있겠다.”
선우영은 각자의 잔에 와인을 따라줬다.
물론 정운은 오렌지 쥬스!
미성년자이니 절대 술을 먹일 수 없었다.
선우영은 식사를 즐겼다.
자신의 퇴원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맘껏 먹었다.
“와, 이거 와인 끝내주네.”
오래간만에 먹는 술은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얼큰한 육개장도 좋고.
부드러운 갈비찜도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그래서요, 제가 막 몬스터들을 이렇게 해치웠어요!!”
“어머, 정말이니?”
정운은 선우영의 부모님 옆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펼쳤다.
김철수는 뭐….
평소처럼 음식을 먹느라 바빴다.
조용석은 술맛을 즐기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백영희는 선우영의 옆에 앉아 음식을 접시에 놓아줬다. 하나같이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 뿐이었다.
‘이렇게 챙겨주다니. 내가 여자 복은 타고났다니까?’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그의 부모님은 슬쩍슬쩍 백영희를 바라봤다.
아들의 여자친구.
관심이 가지 않으려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주책을 떨었다.
“어머어머, 참 우리 아들하고 잘 어울린다. 둘이 어떻게 만났어?”
“에이, 엄마. 뭘 그런 걸 물어요.”
선우영이 쑥스러워하자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이셨다.
“궁금하잖니. 어쩌면….”
어머니는 마지막 말을 줄였지만 속으로 며느릿감이라고 여겼다.
선우영이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했을 때, 온갖 수발을 다 들며 지극정성으로 병간호했으니까.
“허허허, 우리 아들 잘 부탁해요.”
심지어 아버지마저도 백영희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선우영은 손사래를 쳤다.
“아, 진짜. 오늘따라 왜 이래요. 부담스러워하잖아요.”
“하도 맘에 들어서 그런다. 네가 언제 집구석에 여자친구 데려왔었던 적 있었냐.”
“아, 진짜!!”
선우영은 팔짝 뛰었다.
뭐, 분위기는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 * *
어느덧 6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휴가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선우영은 하루 남은 휴가를 마저 즐겼다.
오늘은 백영희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 사귀고 나서 여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못 해봤다.
엄청 바빴으니까.
‘그러니, 한껏 달달한 시간 보내야지. 이것저것 해봐야겠다.’
선우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치장했다.
뭐, 머리 좀 만졌다.
젤로 만지작거려 볼륨이 풍성해 보이게 만들었다.
끼이익.
옷장을 열어 어울릴만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검은색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
깔끔한 스타일이다.
롤렉스를 손목에 차고 향수를 가볍게 두 번 뿌렸다.
“뭐, 이 정도 꾸미면 되겠지?”
선우영은 전신 거울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봤다.
잘생겼다.
‘이야, 이렇게 꾸미면 연예인 뺨친다니까.’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백영희에게 선물로 줄 목걸이가 담긴 케이스를 챙겼다.
1,300만 원짜리였다.
레스토랑에서 깜짝 선물로 줄 생각이다.
‘분명 좋아하겠지?’
선우영은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절로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약속 시간이 됐다.
선우영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백영희를 기다렸다.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안 보이네.’
선우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와이셔츠를 살짝 당겼다.
뒤를 돌아보니 백영희가 있었다.
흰색 브라우스에 베이지 치마.
굉장히 화사한 복장이었다.
머리는 끝에 웨이브를 줘서 귀여움이 강조됐다.
선우영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음….”
“왜? 또 장난치려고?”
백영희가 묻자.
선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이, 장난이라니.”
“그럼?”
“너무 예뻐서, 예쁘단 말로 칭찬하기엔 너무 아깝단 말이야. 어떤 단어로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고민했을 뿐이야.”
“좋아. 괜찮은 대답이었어.”
백영희는 키득키득 웃으며 농담으로 되받아쳤다.
선우영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럼 가실까요, 레이디?”
백영희는 그와 팔짱을 꼈다.
이제 봄이 다가왔다.
둘은 공원에 핀 벚꽃을 보며 길을 걸었다.
벚꽃 축제에 놀러 왔다.
봄바람에 분홍빛 꽃잎과 산뜻한 꽃향기가 풍겨온다.
선우영은 그녀와 사진을 찍었다.
꼭 끌어안고 꽃들을 배경으로!!
그 모습은 영락없는 커플.
선우영은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헉, 자기야 큰일 났다.”
“어? 왜?”
“자기가 너무 예뻐서 배경으로 찍은 꽃이 못생겨 보인다. 어떡하지?”
“아, 진짜!! 오늘 왜 그래.”
백영희는 주책이라는 듯이 팔뚝을 살짝 때렸다.
둘은 꽃을 실컷 구경하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거기서 분위기 있게 식사했다.
스테이크를 썰고.
와인도 마셨다.
바깥에 뷰도 굉장히 좋았다.
피휴웅.
펑펑.
깜깜 하늘에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와, 근사하다.”
백영희는 포크를 내려놓고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선우영은 슬쩍 목걸이가 담긴 케이스를 식탁에 놓으며,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를 바라봤다.
“이게 뭐야?”
백영희는 목걸이가 담긴 케이스를 열었다.
깜짝 이벤트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케이스를 열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백영희는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오늘 이런 선물을 받을 줄 몰랐으니까.
선우영의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줬다.
“역시, 잘 어울리네.”
“이런 선물 받아도 되나. 부담스러운데.”
“훗. 자기야, 지난번에도 말했지. PS웨펀 대표의 자금력을 무시하지 말라니까?”
선우영은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음이 포근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여자와 좋은 것들만 했으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쁜 것들도 보고.
시답잖은 농담으로 키득키득 웃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불가능할 거다.
이제는 사이타나를 없애기 위해 준비해야 하니까.
선우영은 더욱 백영희를 끌어안았다.
“자기야. 사랑해.”
“나도.”
둘은 가볍게 입맞춤을 나눴다.
* * *
드디어 선우영의 휴가가 끝났다.
그는 업무에 복귀했다.
인터넷 뉴스로 현재 돌아가는 판국을 살펴봤다.
“역시 이렇게 되나?”
게이트가 장기간 등장하지 않는 세상이 되자, 수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석 값은 폭등하고.
정부는 혼란을 막기 위해 최선이다.
헌터들은 일자리를 잃어 사실상 실직자가 되어갔다.
그러다 보니 등급 낮은 헌터들이 범죄를 저질러 돈을 갈취했단 뉴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혼란이네.’
그리 생각했는데.
정부는 헌터들의 범죄를 막아야 한다며 스킬석 판매를 금지했다.
범죄자 헌터들이 더 강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이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네. 이 꼬락서니를 또 보게 될 줄이야.”
선우영은 허파에서 바람이 후 불어져 나왔다.
삐리릭. 삐리릭.
그의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페일.
“여보세요.”
“선우영 씨. 휴가는 즐겁게 즐기셨습니까?”
“네. 이제 슬슬 일해야죠.”
“그럼….”
“사이타나. 듀란달. 게이트의 탄생. 끝나지 않은 위협. 모든 걸 발표할 생각입니다.”
“드디어 시작이군요.”
“뭐, 쉽지는 않을 겁니다. 자금은 풍족하게 있지만, 식량과 무기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가능하다면 현대식 무기도 챙겨갈 요량입니다.”
“그거 기대되는군요.”
“네. 그러니까 텔레비전 방송 사수하세요. 제가 중대 발표할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페일과 선우영은 전화를 끊었다.
선우영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정철에게 중대 발표가 있으니 기자회견을 열어달라 부탁했다.
세계랭킹 1위의 기자회견.
이 혼란스러운 정국에 펼쳐지다 보니,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모였다.
선우영은 강단에 섰다.
그는 마이크를 조정한 뒤,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기자회견 자리에 모여주신 기자님들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제가 기자회견을 열은 이유는, 중대 발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숨까지 죽여가며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노트북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마저 잠잠해졌다.
선우영은 입꼬리를 올렸다.
“최근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일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언제고 다시 게이트가 열릴 수 있겠죠. 그렇기에 저는 게이트 너머의 세계로 가서 게이트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거할 생각입니다.”
기자들은 당황하여 질문할 생각조차 못 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선우영은 재차 이야기했다.
“다시 말합니다. 저는 게이트 너머의 세계로 가서 게이트 사태의 원인을 제거할 생각입니다. 따라오실 분은 크루그먼 길드로 연락을 주십시오.”
게이트 너머의 세계로 가서 발생 원인을 제거한다.
단순명쾌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 기자회견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