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혈전의 끝.
쨍그랑.
실드가 깨진 벨페고르.
듀란달이 녀석의 머리로 떨어지는 그 순간.
녀석이 핑거 스냅을 했다.
그러자 놈의 형체가 사라졌다.
순간이동.
몇 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녀석은 이마를 더듬었다.
주름살로 자글자글한 손바닥에 핏물이 흥건히 묻었다.
만약 순간이동이 조금만 늦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감히 내 실드를 깨다니.”
벨페고르는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꽉 깨물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빨갛게 변한 얼굴이 정말 못나 보였다.
선우영은 혀를 찼다.
‘쯧, 조금만 공격이 더 깊었다면….’
저 빌어먹을 대가리를 쪼갰을 텐데, 실로 안타까웠다.
벨페고르는 듀란달을 노려봤다.
‘어떻게 된 거지? 페일이 사용했을 땐, 저 정도 위력은 아니었는데.’
께름칙했다.
너무 께름칙해서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벨페고르는 기름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상념에 들어갔다.
‘뭐지? 왜 일이 이렇게 돌아가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마계의 귀족이자, 사이타나의 군단장.
인간 따윈 상대도 안 된다. 오랜 세월 동안 희롱하며 가지고 놀았던 게 인간이다.
일개 장난감 같은 존재.
벨페고르한테 인간이란 하등한 짐승이었다.
분명 그랬거늘.
저, 선우영이란 놈은 다르다.
까딱 잘못했으며 머리가 쪼개져 죽을 뻔했다.
“그래, 보통 놈이 아니란 걸 인정하지.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
벨페고르는 박수를 쳤다.
다시 생겨난 의자.
녀석은 거기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턱을 괴며 짐짓 거만하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싸우는 일은 없을 거다. 마계 군단장인 내가 인간 따위를 상대로 전력을 다할 순 없으니까.”
녀석은 나태하며 거만했다.
선우영을 내려다보는 벨페고르, 녀석이 얼마나 인간을 깔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선우영은 혀를 찼다.
“쯧. 거, 새끼하고는…. 더럽게 말 많네. 넌 주둥이로 싸우냐?”
선우영이 도발했다.
벨페고르는 감히 자신에게 그딴 망발을 지껄인 인간을 빤히 쳐다봤다. 눈을 큼지막하게 뜬 채로.
놀라움과 경악.
두 가지 감정이 섞인 표정이었다.
“정말 주제를 모르는군. 설명하기도 귀찮으니, 그냥 죽어라.”
벨페고르가 핑거 스냅을 했다.
그러자 허공에 마법진들이 생겼다.
빨강, 노랑, 초록, 보라.
다른 색깔로 총 4개.
마법진들은 마계의 언어와 복잡한 수식어로 빽빽이 적혀있었다.
콰르릉.
곧이어 마법진이 발동했다.
보라색 마법진은 번개를 토해냈다. 빨강은 화염, 노랑은 섬광, 초록은 폭풍.
다양한 속성 공격들이 날아왔다.
선우영은 그 공세들을 빠르게 회피했다.
상상을 초월한 공격이었다.
화염은 폭풍과 섞이며 불기둥처럼 주변을 휩쓸었고, 번개와 섬광은 맞닿은 모든 물체를 부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음속으로 피해도 스칠 지경이었다.
그 모습은 종말.
무자비한 파괴가 활화산을 부수고, 불기둥의 뜨거운 열기가 숨 쉬는 걸 방해했다.
거기다 가스까지 있는 지형이었으니.
대기가 폭발하며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제기랄.”
“어서 피해.”
“저 싸움에 우리가 끼어들 틈은 없어!!”
헌터들은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려 애썼다. 게이트 바깥으로 도망치려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크아아악.”
“으아악.”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 중 일부가 불기둥에 삼켜졌다.
살가죽은 물론이고 뼈까지 통째로 타들어 가 잿가루가 되었다.
도망도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판국이었다.
백영희는 숨을 짧게 가져갔다.
그녀의 시선은 선우영과 벨페고르에 꽂혔다.
그녀는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 인정하고 있었다.
‘난 저 싸움에 큰 도움이 안 돼.’
분하지만.
정말 분해서 손가락이 떨릴 지경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주 작은 빈틈. 그걸 만들어낼 정도는 된다.’
전투의 아주 결정적인 순간.
그 틈을 노려야 한다.
‘저 싸움은 아주 자그마한 빈틈으로 승부가 날 가능성이 크니까.’
그 때문에 백영희는 기다렸다.
틈이 나타나는 그 순간 독수리처럼 날아가 승부를 내기 위해서!
화르륵.
선우영은 운석을 쏘았다.
거대한 운석이 화염을 휘감으며 시꺼먼 연기를 꼬리처럼 달고 다녔다.
벨페고르가 합장했다.
핏물처럼 검붉은 액체가 거대한 운석을 향해 날아갔다.
액체는 이윽고 움찔거리더니.
쫘아악-!!
거대한 그물망처럼 변해 운석을 집어삼켰다.
스걱-!
검붉은 액체는 운석을 베어냈다.
그 절삭력이 얼마나 날카롭던지.
운석의 잘린 부분이 매끈할 정도였다.
벨페고르가 핑거 스냅을 했다.
그러자 검붉은 액체가 선우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앙, 채앵.
선우영은 검강으로 그 공격을 튕겨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손가락.’
벨페고르는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핑거 스냅을 했다.
‘저 핑거 스냅이 능력 사용의 트리거야. 그걸 막아야 해.’
그러면 이길 수 있다.
선우영은 어떻게 싸울지 결심이 섰다.
솔직히 말하겠다.
저쪽이 아직 더 우세하다.
그러니 더욱 강력한 공격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벨페고르는 방어를 포기했다.
실드.
그게 한번 깨지고 난 이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공격을 공격으로 받아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난전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
선우영의 눈빛이 독기로 매섭게 빛났다.
“타하압!!”
선우영은 기합을 지르며 벨페고르에게 돌격했다.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공격력이 높아지는 스킬을 사자심왕과 융합했었다.
또한 시체의 피를 흡수해 부상을 회복하는 스킬도 지녔다.
주변에는 아바돈의 시체가 즐비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이제부터는 근성 싸움이다!!”
그의 작전은 단순하다.
상처 입고 싸워 공격력을 높이고, 위기에 순간에는 시체의 피를 흡수해 상처를 회복한다.
단순명료했다.
그러나 벨페고르를 이기기 위해선, 이 작전 이외에 카드가 없다.
죽던가, 이기던가.
그야말로 근성 싸움이었다.
달려드는 선우영.
벨페고르는 공격을 날렸다.
검붉은 액체가 칼날처럼 그를 향해 날아들었고. 선우영은 회피가 아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스걱-!
그의 다리가 공격에 맞아 찢어졌다.
피가 솟구쳤다.
상처가 제법 깊었다.
찢어진 근육이 쓰라려 눈깔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벨페고르는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상처를 입은 선우영.
벨페고르는 자신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걱-!!
선우영의 검강이 칼날 같은 검붉은 액체를 베어냈다.
튕겨내기만 했던 공격을 말이다.
“이, 무슨…?!”
벨페고르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선우영은 악다구니 쓰듯 이를 악 깨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벨페고르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선우영은 다쳤다.
그런데 그의 공격력이 더욱 상승했다.
‘스킬석의 힘인가?’
벨페고르는 손톱을 깨물며 눈을 부라렸다.
상처를 입힐수록 선우영의 공격력은 강해진다. 자칫 듀란달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칠지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도 없어.’
선우영은 죽이려면 상처를 입혀야 한다.
‘빌어먹을. 귀찮아. 아주 귀찮아.’
벨페고르는 각질이 벗겨질 정도로 정수리를 긁어댔다. 얼마나 벅벅 긁는지 손톱에 피가 묻었다.
짜증이 치솟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귀찮아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벨페고르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의자에서 일어나 싸울 일이 없을 거라 외쳤던 녀석이, 일어났단 말이다!!
놈은 계속 검붉은 액체로 공격했다.
액체는 때때로 채찍처럼.
또는 칼날처럼.
매섭고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였다.
선우영은 계속해서 상처를 입었다. 어깨를 베이고 옆구리를 베였다.
그때마다 그의 공격력이 상승했다.
날아오는 검붉은 액체를 베어내며 더욱 빠르게 벨페고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다 상처가 심하다 싶은 경우엔….
휘이잉.
땅바닥에 널브러진 아바돈의 시체에서 피를 끌어와 치료했다.
아바돈의 핏물이 선우영의 근처로 날아와 상처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찢어진 근육이 미약하지만 아물었다.
벨페고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저런 스킬까지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이래서는 죽지 않는…… 그러나 상처 입을수록 강해지는 괴물과 싸우는 기분이다.
선우영이 녀석을 향해 악바리를 보였다.
“말했지, 이 빌어먹을 놈아!! 지금부터는 근성 싸움이라고!!”
“큭!!”
벨페고르는 뒤로 물러났다.
극심한 고통을 정신력으로 버텨내며 싸우는 선우영.
온몸에 과부하가 걸린 느낌이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엔도르핀이 전신을 헤집으며 고통을 이겨내라고 계속 진통 효과를 줬다.
몸이 수축하는 느낌이다.
어떻게든 출혈량을 줄이기 위해 근육이 알아서 꽉 쪼이는 기분이 들었다.
“크오오-!!”
선우영은 기합을 내지르며 강제로 몸을 움직였다.
본래라면 쓰러졌어야 할 육체가 스킬의 효과 덕분에 강제로 말을 들었다.
벨페고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런 미친놈.”
그의 눈에는 선우영이 애초에 죽길 각오하고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점점 둘의 간격이 가까워졌다.
벨페고르는 ‘순간이동’을 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핑거 스냅을 하려던 순간.
그 찰나의 때에!!
콰르릉.
지상에서 번개가 치솟았다.
그 번개를 이끄는 사람은 백영희.
그녀의 검이 전기를 휘감으며 재빠르게 벨페고르를 향해 움직였다.
콰르릉.
백영희의 검이 벨페고르의 손가락을 베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한 백영희.
벨페고르의 손가락을 절단시키지 못했지만, 상처를 내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막아냈다.
벨페고르의 핑거 스냅을 말이다.
“크윽!!”
벨페고르는 눈앞이 황망해졌다.
여기서, 어떻게….
‘어떻게 저 여자가 튀어나와!!’
별거 없다고 생각해 무시했던 인간 중 하나. 벨페고르한텐 고작 그딴 존재였다.
그런 존재에게 허를 찔렸다.
선우영은 화염과 함께 폭발적인 돌격을 선보였고.
벨페고르의 앞까지 당도했다.
“크아아악!!”
“크오오오!!”
둘은 기합성을 내지르며 마지막 공격을 작렬시켰다.
벨페고르는 선우영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휘릭.
선우영은 몸을 회전시켜 공격을 피하고 놈의 머리를 절단시켰다. 잘린 머리가 거칠게 허공을 돌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촤아아악.
벨페고르의 몸통.
머리를 잃은 몸통이 피를 쏟아냈다.
선우영의 승리였다.
“…….”
선우영은 눈앞이 흐릿했다.
벨페고르를 쓰러뜨리기 위해 상처 입은 몸을 강제로 움직였다.
그 부작용이 한꺼번에 터졌다.
“푸훕.”
그는 피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숨이, 빌어먹을!! 숨이 안 쉬어진다.
피가 목구멍에 걸린 느낌이다.
지상으로 추락하는 선우영. 그는 강제로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미처 토해내지 못한 핏물을 뱉어냈다.
숨이 쉬어진다.
‘아….’
정신이 흐려진다.
눈앞이 캄캄하게 변해간다.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처럼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긴장이 풀린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 * *
“크으윽.”
선우영은 신음성과 함께 눈을 떴다.
그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여긴?”
병원이었다.
자신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육체.
그리고 저쪽 선반에는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었다.
뉴스 앵커의 말이 들려왔다.
“S급 게이트를 닫은 지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선우영 헌터는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선우영은 이마에 손바닥을 댔다.
일주일이나 기절했다니.
다행히 S급 게이트는 닫은 모양새다.
드르륵.
그때 문을 열고 동료들이 등장했다.
“선우영 회장님!!”
백영희가 가장 먼저 그의 품에 달려들었다.
선우영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까 봐, 내가 얼마나….”
그녀는 흐느꼈다.
선우영은 백영희의 등을 토닥였다.
정운은 눈물을 터뜨렸다.
“흐어어엉.”
선우영이 의식을 회복하자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조용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철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벽을 짚으며 섰다.
다들 그를 걱정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
선우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병원 벽에 기대어 있는 듀란달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제 겨우 시작이야.’
이제야, 사이타나의 군단장 하나를 없앴을 뿐이다.
아직 쓰러뜨려야 할 적은 많다.
‘사이타나,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지구 침공하니까, 재미있었냐?’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이제부턴 우리가 네놈의 목을 치러 침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