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군단장의 등장.
헌터들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물체.
산맥이라 생각했던 것은 날개였으며, 머리와 하반신은 산양을 닮아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상체는 사람이었다.
바포메트였다.
쿵쿵쿵.
바포메트가 땅을 걸을 때마다 산천지가 진동했다.
눈치 없이 녀석의 근처에 있던 아바돈들은 놈의 발바닥에 채여 바닥을 뒹굴었다.
헌터들은 전의를 잃었다.
아바돈도 커다랬는데, 저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다.
머리가 구름에 닿는다.
“젠장. 저런 걸 어떻게 이겨.”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거야.”
헌터들은 경악하며 싸움을 포기한 듯 바포메트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선우영이 모두에게 외쳤다.
“포기하지 마!!”
그는 허공으로 떠올라 바포메트를 노려봤다.
그래. 이 녀석은 강하다.
입에서 화염 뿜어내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상대방을 찍어누른다.
하지만 약점도 존재한다.
너무 거대한 나머지 움직임이 굼뜨고 느리다.
게다가 방어력도 낮은 편이고.
날개는 날아다니는 용도보다 몸을 방어하는 식으로 사용한다.
바포메트를 향해 선우영이 돌격했다.
부우웅.
놈이 거대한 손을 휘둘렀다. 구름을 가르며 날아오는 손바닥은 태산을 연상케 했다.
그 거대함이 주는 위압감.
그러나 선우영은 그 위압감에 압도되지 않았다.
몸을 회전하며.
스걱-!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바포메트의 손가락을 전부 절단시켰다.
그다음.
녀석의 손등을 타고 올라가며 검강으로 상처를 입혔다.
어마어마한 양의 핏물이 치솟아 폭포수처럼 흘렀다.
검붉은 핏물이 선우영의 갑옷을 덧칠하지도 못한 채, 증발하였다.
바포메트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안 그래도 살가죽이 찢어져 뼈대가 드러났는데, 선우영의 갑옷이 뿜어내는 열기가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선우영은 바포메트의 상처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찢어진 녀석의 근육이….
‘꿈틀거리면서 다시 붙으려 하고 있어.’
상식을 초월한 회복 능력.
눈동자를 돌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잘랐던 바포메트의 손가락이 재생하고 있다.
‘미래에선 이 녀석을 잡는 데 꽤 애를 먹었다고 했지.’
재생 능력이 뛰어나고 괴력이 막강했으니까. 그 탓에 잡는데 수많은 헌터들의 희생이 따랐다.
하지만 선우영은 녀석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몸통과 머리를 분리시키면 재생 효과가 사라져 죽는다.’
선우영은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타닷.
선우영은 놈을 향해 달려갔다.
바포메트가 그를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퍼어어엉.
녀석의 입에서 거대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주홍빛을 띠는 화염.
어마어마한 열기가 선우영을 덮치려는 찰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느새, 바포메트의 등 뒤로 돌아간 선우영.
그는 투명화를 사용한 상태였다.
텔레포트로 공격을 피하고.
손을 모아 새로이 얻은 스킬을 발동시켰다.
[환영진]을 말이다.
본래라면 환영진은 원형의 진을 만들어 낸다.
그 특징 때문에 밖에서 환영진의 경계를 알 수 있단 약점이 있지만, 선우영의 환영진은 특별했다.
투명화와 융합한 덕분에 진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범위인지 몬스터들은 모른다.
그리고 10초가 지났다.
선우영은 환영진을 발동시켰다.
바포메트.
아바돈.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환영진의 효과로 환각에 시달렸다.
헌터가 아닌 허공에 주먹질을 날렸다.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는 녀석까지 나왔다.
선우영은 이 틈을 노렸다.
그는 바포메트의 뒷목으로 이동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타아압!!”
그는 기합을 지르며 녀석의 목을 난도질했다.
바포메트가 워낙 거대해 한 번에 목이 잘리지 않았다. 여러 차례 난도질하여 잘라야 했다.
몸부림치는 바포메트.
아팠다.
빠른 회복력을 자랑하는 녀석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상처가 재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우영이 흡수한 스킬 중 하나인 출혈에는 일시적으로 상처 치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이윽고.
그는 바포메트의 목을 베었다.
잘린 녀석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치솟은 핏물이 지상으로 떨어져 용암을 식히는 기상천외한 광경도 벌어졌다.
앞으로 넘어지는 바포메트.
“어서 피해!!”
“빨리 뛰어. 이러다 깔린다.”
덩치가 너무나 컸던 바포메트는 넘어지는 것조차 피해를 만들어냈다.
아바돈들이 녀석의 시체에 깔리고.
헌터들도 깔린 뻔했지만.
스르륵.
뇌검으로 속도가 빨라진 백영희.
그림자를 사용해 한꺼번에 여러 명을 붙잡아 구출하는 정운.
음속으로 움직여 사람들을 구출하는 세계랭킹 2위 페일.
그들의 활약으로 위기에 빠질뻔한 헌터들을 구해냈다.
바포메트가 자빠지며 수백 마리의 아바돈들이 깔려 죽었고.
쿠우웅.
어마어마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헌터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저 거대한 바포메트가 쓰러졌다, 선우영 덕분에 말이다.
“우와아아!!”
“선우영이 놈을 쓰러뜨렸다!”
“남은 몬스터들도 쓰러뜨리자.”
헌터들은 기세가 높아졌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 목청이 높아졌다.
하지만 페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녀석은 군단장이 아니야.”
“모두 적을 상대할 준비를 하세요!”
선우영 외치며 화산이 있는 쪽을 노려봤다. 그의 얼굴에선 기뻐하는 모습이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듯 비장한 눈빛을 했다.
콰아아악!!
갑자기 거세게 폭발하는 용암.
용암이 일직선으로 계속 치솟으며 구름을 뚫었다.
화산재가 주변을 뒤덮고.
유황 가스로 인해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다.
“커헉.”
“도대체 이게 무슨….”
헌터들은 신음성을 흘렸다.
폭주하듯 솟아오른 용암은 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느긋한 발걸음.
희끗희끗한 머리와 구부정한 허리. 도대체 얼마나 안 감은 건지 머리가 기름으로 엉겨 붙다 못해 이곳저곳으로 뻗쳤다.
피부는 주름이 잔뜩 잡혔다.
찢어지고 허름한 옷은 누더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도 모르겠다. 눈빛은 흐릿한 게 의욕이 없어 보였다.
그자의 머리에는 산양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벨페고르.
이번 S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이자, 사이타나의 군단장 중 하나.
녀석은 뺨을 벅벅 긁었다.
얼마나 자르지 않은 건지 기다란 손톱으로 피부를 긁는데, 각질이 우수수 떨어졌다.
끔찍하게 더러운 꼬락서니였다.
녀석은 헌터들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입을 열었다.
“아, 귀찮군. 서 있는 것도 귀찮아.”
놈이 박수를 치자 의자가 생겼다.
벨페고르는 의자에 앉은 채 턱을 괴었다. 만사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선우영과 페일.
둘은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싸운 몬스터들은 저 녀석의 부하.
벨페고르의 강함은 차원이 다르다.
헌터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벨페고르를 보며 주춤했다.
“저건 또 뭐야?”
“몬스터?”
“혹시 저게 진짜 보스인가?”
“그럼 우린 여태 일반 몬스터 상대로 이렇게 쩔쩔맸다는 거야?”
헌터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벨페고르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쩝쩝거렸다.
녀석이 손바닥을 펼쳤다.
허공에 마법진이 생기더니.
찌이잉.
광선이 튀어나왔다.
그 빛이 헌터들의 사지를 잘라내고 땅바닥을 갈랐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헌터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갈라진 땅에서 용암이 솟구치고 암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끔찍한 광경.
그야말로 자연재해였다.
정운은 빠르게 그림자를 조종해 사람들을 구조했다.
갈라진 땅바닥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붙잡아 위로 올리고, 사지가 찢긴 사람들의 팔다리를 가져와 붙이며 포션으로 치료했다.
하지만 모두를 구할 순 없었다.
정운은 갈라진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구해줘야 한다.
근데, 이미 그림자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느라 움직일 수 없다.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손은 닿지 못했다.
그렇게 아래로 떨어진 사람은 용암에 삼켜졌다.
김철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탱커다.
저 공격을 막아내는 게 자기 일이었지만, 할 수 없었다.
너무 강력하다.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간 공격을 막기는커녕 자기 몸만 반 토막 날 게 분명했다.
밸페고르는 그 광경을 보고 시큰둥했다.
별 반응이 없었다.
저게 당연하다 여기는 듯했다.
“내 부하들이 이깟 놈들한테 당하고 있었다니, 한심한지고.”
벨페고르는 죽은 몬스터들을 보며 혀를 쯧쯧거렸다.
꼭 자기까지 나서야겠냐는 표정.
헌터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똥 덩어리에 모인 파리를 보는 듯했다.
선우영은 이를 까드득 갈았다.
뱃속 아래에서부터 분노가 들끓어 얼굴에 핏줄이 잡혔다.
타닷.
그는 벨페고르를 향해 돌격했다.
검강을 앞세워 녀석의 목을 베어내려 했다.
따악.
벨페고르가 중지와 엄지를 부딪쳐 소리를 냈다.
그러자 붉은 피처럼 보이는 액체가 생성되었다.
그게 선우영을 향해 쇄도했다.
칼날처럼 말이다.
선우영은 그걸 검강으로 막아냈다.
공세가 묵직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졌다.
타앙!!
선우영은 검을 비스듬히 세워 붉은 액체를 흘려보냈다.
턱을 괴고 있던 벨페고르.
녀석은 반쯤 감았던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인간이 이 공격을 막아?”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는지, 입꼬리가 아래로 쭉 처졌다.
‘저 녀석이군. 내 부하들을 도륙 낸 녀석의 정체가. 이거 귀찮게 됐어. 아주 귀찮게 됐어.’
벨페고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순간.
지상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걸 목격했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벨페고르는 실드를 사용했다.
동그란 구체 모양의 실드가 벨페로그를 완전히 감쌌다.
타앙-!!
실드에 칼날이 부딪혔다.
벨페고르는 아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오-! 너는?!”
벨페고르는 자신을 공격해온 두 번째 인물을 알아봤다.
“페일!!”
놈이 페일의 이름을 불렀다.
벨페고르는 이 녀석 살아있었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설마,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이 빌어먹을 자식!!”
페일은 억하심정이 담긴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
사이타나의 군단장 중 하나.
벨페고르는 페일과 다른 차원에서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벨페고르는 비웃었다.
“항상 선봉에서 싸우다 어느새 쥐새끼처럼 도망치던 녀석이… 설마 이 땅으로 도망쳤을 줄은 몰랐군.”
“닥쳐라.”
“그래. 네 고향 어나더가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해줄까?”
벨페고르는 비아냥거렸다.
그러다.
페일의 검을 보고 눈가를 움찔거렸다.
“음? 네놈이 쓰던 그 이상한 검은…… 듀란달은 어디 있지?”
페일은 씨익 웃었다.
마치 승부를 뒤집을 카드를 얻은 사람처럼 말이다.
“듀란달은 자신의 주인을 찾았다.”
“하하하. 그깟 칼날 따위가 주인을 찾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우리는 모든 차원을 지배할 것이다. 이 세계도 포함해서 말이지.”
벨페고르는 비웃었다.
그 얼굴은 당연한 것을 말하듯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때였다.
부웅.
무언가가 자신의 앞으로 휙 날아왔다.
콰지직.
실드에 금이 갔다.
벨페고르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자신의 실드가 깨질 것처럼 점점 금이 퍼져나갔다.
맙소사.
자신의 실드를 부수는 존재라니.
‘도대체 어떤 공격이지?’
벨페고르는 실드를 부수고 있는 물체를 쳐다봤다.
“듀란달?!”
새하얗고 청순한 기운을 뿜어내는 칼날이 보였다.
페일이 사용했을 때와 달랐다. 그 위력이 몇 배는 더욱 강력해졌다.
벨페고르는 칼날을 따라 시선은 움직였다.
그의 눈길이 향한 끝에는.
선우영.
선우영이 있었다.
벨페고르는 그를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놈은 도대체 뭐냐!!”
선우영은 눈을 부릅뜨며 사나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네놈들을 죽일 사람이다!!”
그 외침은 폭발하는 화염처럼 압도적인 위압감을 선사했다.
쨍그랑.
벨페고르의 실드가 깨졌다.
벨페고르의 눈이 놀라움으로 큼직하게 뜨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