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청문회
타악!!
대통령은 물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허허허.”
대통령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미소 짓는 입술과 다르게 눈은 웃지 않았다.
“국제 길드는 잠시 보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국내 게이트도 많고, 또 A급 게이트도 늘어나는 추세가 아닙니까.”
“아니요. 무슨 말씀을!! 국제 길드 창설은 시대의 흐름입니다.”
“어째서죠?”
“전 세계적으로 A급 게이트가 늘어나고 있으니, 이젠 게이트를 닫는데 버거운 국가들이 나올 겁니다.”
“그곳까지 전부 닫겠단 말씀은 이해합니다. 사업적으로 충분히 탐내실 만하죠. 하지만…….”
“아뇨, 아뇨.”
선우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중요한 사실을 콕 짚어 이야기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국제 길드를 창설하시겠단 겁니까? 해외의 게이트를 닫아 돈을 버실 생각이 아니시라뇨?”
“저는 세상을 위해 게이트를 닫으려 합니다.”
대통령은 입을 다물었다.
마저 말하라고 손짓하며 경청했다.
선우영은 의견을 밝혔다.
“게이트의 발생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 어쩌면 S급 게이트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구심점이 될만한 조직이 필요합니다.”
“…….”
지극히 냉철한 의견.
정말 필요한 내용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대통령에겐 전부 변명으로 들렸다.
‘S급 게이트가 나타나면 그때 대처해도 될 것이지, 지금 준비하겠다고? 저것도 변명이라고 한 건가. 속 보이는군.’
대통령은 선우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A급 게이트를 닫아 돈을 버는 게 진짜 목적이라고 여겼다.
대통령은 고심했다.
‘선우영은 어떤 식으로 구슬려야 하지?’
돈을 줘야 하나?
‘아니야. PS웨펀의 자금력은 상당하다. 거기다 포션 사업을 곧 시작한단 정보도 있어. 돈이라면 넘쳐나는 양반이 선우영이야.’
돈 이외에 줄 수 있는 것.
‘스킬석?’
돈이 많은 선우영이라면 그걸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심지어 정부에선 이미 매달 7개를 주고 있는 실정. 선우영이 스킬석에 아쉬워할 만한 이유가 없다.
‘세금도 이미 낮춰준 상태고.’
자기 임기 동안 세금을 낮춰줬으니, 이 또한 협상카드로 안 먹힌다.
‘골 아프군.’
나중에 각 부처 장관과 비서실장을 데리고 회의 좀 해야겠다.
대통령은 식기를 들었다.
“하하하, 이거 식사 중에 너무 일 얘기만 한 거 아닌가 싶군요.”
“괜찮습니다. 원래 밥 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는 거죠.”
선우영은 그리 대꾸했다.
워낙 급작스럽게 국제 길드를 창설하겠다 발표했고.
또 금방 식사 자리가 마련됐으니.
‘대통령도 협상카드가 부족해서 지금은 물러나겠단 거군.’
선우영은 그걸 금방 알아챘다.
아마도 내일!
내일부터는 아주 시끄러워질 거다.
국제 길드 창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청문회까지 열릴 수 있을 테니까.
‘하긴, 미래에서도 그랬지.’
페일이 국제 길드를 창설하려 하자, 미국 정부가 온갖 난리를 다 피웠다.
한국도 똑같이 나올 거다.
‘각오해야겠어.’
선우영은 나물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오늘따라 입맛이 썼다.
* * *
대통령은 참모진과 회의를 열었다.
선우영을 어떻게 설득해, 국제 길드 창설을 포기하게 만드느냐.
딱히 답이 안 보였다.
이익을 제시해 그만두게 하는 방법은 막혔다.
그건 모두가 인정했다.
대통령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한민국에 나타난 A급 게이트를 우선적으로 크루그먼 길드에게 주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랬다가, 다른 길드와 마찰이 생기면 더 골치 아프다.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니까.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당은 반응 어때?”
“침묵 중입니다.”
“그래?”
“뭐만 하면 무조건 반대하던 야당이 조용한 걸 보면, 그쪽도 국제 길드 창설에 반대하는 모양입니다.”
대통령은 입을 삐쭉였다.
“사사건건 시비 걸던 놈들이 이럴 땐 조용하군.”
“방해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처리하란 말이겠죠.”
“지네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손 안 대고 코 풀겠단 심보는 여전하군.”
비서실장은 침묵했다.
정치판에서 구르고 구른 대통령. 그는 단번에 야당의 심보를 알아냈다.
뭐, 이건 나중 일이다.
대통령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중요한 건, 선우영이 국제 길드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건데….”
“매력적인 카드가 없습니다.”
“민심은?”
“국제 길드 창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그래? 그거 잘 됐군.”
대통령은 입꼬리를 올리며 간사한 눈빛을 띠었다.
방도가 방금 하나 떠올랐다.
“청문회를 열어야겠군.”
대통령의 꾀는 간단했다.
자신이 국제 길드 창설을 반대하며 나설 경우, 선우영과 관계가 완전히 틀어질 수 있다.
그건 좋지 않다.
세계랭킹 1위와 관계가 틀어지면 여러모로 치명적이니까.
하지만 청문회를 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모인 자리. 야당, 여당 할 것 없이 모두가 모이는 자리지.’
대통령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현재 야당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당 대표가 추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그걸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청문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할 거야.’
그러니 청문회 자리에서 강하게 나갈 거다.
선우영에게 강력한 어조로 국제 길드 창설 반대 의견을 피력하겠지.
‘그럼,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되고.’
야당은 지지율 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우영에게 맞서고, 이내 관계가 틀어질 거다.
‘최고의 시나리오야.’
똥은 야당이 뒤집어쓰고, 자신은 가만히 앉아서 사건이 해결되길 기다리면 된다.
‘이번엔 내가 손 안 대고 코를 풀어보자고. 응? 맘에 드나, 권은혜.’
대통령은 청문회가 정말 기대됐다.
* * *
선우영은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서 방해가 들어올 텐데…. 슬슬 박정철 씨가 나서야 할 때가 왔군.’
선우영은 박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해외에서 인재들을 모은 뒤, 다시 한국에 귀국한 상태였다.
전화를 받은 박정철.
“선우영 부회장님. 기자 회견 잘 봤습니다. 이제 계획대로 움직이면 되는 겁니까?”
“네. 아마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우릴 물어뜯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해결해보겠습니다. 선우영 부회장님은 제가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가시면 됩니다.”
“참 듬직하군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우영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접속해 뉴스를 살펴봤다.
선우영이 세계랭킹 1위를 달성했단 뉴스는 2등으로 밀려났다.
현재는 국제 길드 관련 내용이 1등이다.
댓글을 확인해보니 예상대로다.
다들 싫어했다.
왜 다른 나라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이야기부터, 선우영이 욕심이 많아 해외 게이트까지 노린단 낭설까지.
심지어는 게이트 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국가들과 이미 협약이 끝났단 추측성 기사도 있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민심이 안 좋네.’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또 다른 긴급 속보가 떴다.
국제 길드와 관련하여 청문회를 연다고 한다.
날짜는….
‘일주일 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까지 모두 참석한다고 한다.
‘엄청난 격전지가 되겠네.’
저들의 주장을 논파하지 못하면, 국제 길드 창설이 한동안 어려워질지 모른다.
‘뭐, 박정철 씨가 맡겨달라고 했으니 믿어야지.’
선우영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부르릉.
그를 태운 택시는 도로를 질주했다.
* * *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박정철은 사무실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가방에 넣었다.
그다음 거울 앞에 섰다.
정장 차림.
고급정장이라 제법 귀티가 났다.
박정철은 넥타이를 고쳐매고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는 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1시.
청문회 시작인 2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박정철은 밖을 쳐다봤다.
바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었다.
국제 길드에 대해 취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경비원들은 그들을 막느라 진땀을 흘렸다.
박정철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엄청나게 많네.’
선우영이 워낙 대단한 사건들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보니, 이제는 이런 광경이 익숙해질 지경이다.
‘경비원들이 불쌍해질 지경이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뭐, 오늘은 선우영을 대신해 자신이 청문회에 참석하는 날이다.
정부 측에서 대리 출석을 허락해줬다.
세계랭킹 1위 헌터가 부탁했으니, 그 정도는 들어줬다. 청문회 사상 유례가 없는 부탁이긴 했지만.
박정철은 크루그먼 길드를 나섰다.
세단을 몰고 지하 주차장을 나왔다.
기자들이 차창을 향해 소리쳤다.
“박정철 씨, 선우영 부회장님을 대신해 청문회에 참석하는데, 어떤 사이입니까?”
“국제 길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 하실 말씀 없나요?”
“선우영 부회장님은 지금이라도 선택을 돌이킬 생각 없으십니까? 말씀 좀 해주십시오.”
박정철은 모든 질문을 무시했다.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도로를 질주했다.
기자들은 차량을 따라 몇 걸음 뛰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곧장 청문회 장소에 있는 동료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정철이 그쪽으로 갔다.”
“너희도 얼른 준비하고 있어.”
“이번 청문회는 분명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할 거야. 국제 길드 관련 내용이잖아!!”
그들은 목청이 높아졌다.
이윽고.
국회 정문으로 박정철이 등장했다.
기자들은 그에게 달려가 질문을 던졌지만, 박정철을 묵언 수행 중인 스님처럼 입을 꾹 닫았다.
모든 질문을 무시하고 청문회 장소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숙한 분위기가 박정철의 어깨를 콱 눌렀다.
공기가 무겁단 게 이런 걸까.
정치계에 몸담은 양반들답게 제법 무게 잡을 줄 안다.
박정철은 문을 닫았다.
밖은 기자들 때문에 소란스러운데, 문을 닫자마자 주변이 확 조용해졌다.
안과 밖이 다른 세상 같았다.
박정철은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책상에 올려뒀다. 거기서 서류를 꺼내며 모든 준비를 끝냈다.
드디어 청문회가 시작됐다.
야당 정치인 한 명이 초장부터 강력한 공세를 펼쳤다.
“도대체 국제 길드를 창설하겠단 이유가 뭡니까? 해외로 돈 벌러 나가겠다, 이거 아닙니까?”
박정철은 여유롭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게이트를 닫지 못해 고통받는 국가들을 돕기 위해 국제 길드를 창설하려는 겁니다. 의미를 그런 식으로 곡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누가 국제 길드의 진짜 목적성을…….”
“저기요, 의원님. 아무리 국제 길드 창설이 싫으셔도, 그런 식의 정치 프레임 씌우기는 좀 그렇습니다.”
“뭐라고요? 정치 프레임??”
의원은 발끈했다.
박정철은 바로 받아쳤다.
“저희 쪽 주장을 무시하고, 계속 추측성 이야기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럼, 국제 길드 창설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걸 증명해보십시오.”
“그건….”
야당 의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박정철은 이겼단 듯이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 선우영 부회장은 국가로부터 스킬석을 매달 7개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년의 여성 목소리.
야당 대표 권은혜였다. 그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게 진짜입니까, 박정철 씨?”
“네. 선우영 부회장님께서는 국적을 옮기지 않는단 조건으로 스킬석을 제공 받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국제 길드가 창설되면 선우영 부회장님도 해외로 나가시겠죠?”
“네.”
“어쩌면 해외에서 장기 거주할지도 모릅니다.”
“예. 상황에 따라 그렇겠죠.”
“이거 결과적으로 꼼수 아닙니까? 해외로 국적 못 옮기니까, 국제 길드 핑계로 한국을 떠나려는 게 아닐까 우려되는군요.”
권은혜가 돌연 표정을 바꿔 날카롭게 치고 들어왔다.
박정철이 주도하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전문가들과 국회의원들은 승기를 잡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논조로 물고 늘어져 선우영의 국제 길드 창설을 반대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이미 이겼다.’
‘이 계약을 근거로 국제 길드 창설을 막을 수 있겠군.’
‘과연, 권은혜 당대표다! 저런 주장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다니.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인물다워.’
정치인들은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박정철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본인 딴에는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한 모양새인데…….’
이걸 어쩌나.
‘나는 이미 그런 질문이 올 걸 예상하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