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듀란달의 주인2
듀란달이냐 물은 선우영.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네. 부르셨나요?”
순백의 외모처럼 말투 또한 부드러웠다.
듀란달은 선우영에게 사뿐사뿐 걸어왔다. 맨발이 초원을 밟을 때마다 주변에 단아한 민들레가 피어나 노란 꽃잎을 자랑했다.
그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선우영은 그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속으로 생각했는데.
“음~! 꿈은 아니에요. 설명하자면 제 의식 속으로 들어오신 겁니다.”
듀란달이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했다.
선우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의식 속으로 들어왔다니, 그러면 이곳은 전부 허구의 세상이 아닌가.
듀란달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제가 만든 나만의 세상이랄까요? 그래서 타인의 생각도 읽을 수 있죠.”
듀란달은 빙긋 웃었다.
실로 아리따운 웃음인지라 사뭇 사내들의 마음을 뒤흔들 파괴력을 지녔다.
하지만 선우영은 연인이 있는 몸.
맘이 떨리지 않았다.
다만, 듀란달의 정신세계에 들어온 이 상황이 신기했다.
선우영은 질문을 던졌다.
“근데, 나를 이곳에 왜 부른 겁니까?”
“에이, 이제 함께할지도 모르는 사이인데 반말하셔도 돼요.”
“나를 왜 이곳에 불렀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왜? 그냥 검 휘두르고 싸우면 되는 거 아니야?”
“여자의 마음을 그리 몰라서야! 나중에 여자친구한테 한 소리 들을지도 몰라요.”
“…….”
선우영은 듀란달에게 저런 말을 들었단 사실에 약간 어이가 없었다.
검이 무슨 여심을 논한단 말인가.
듀란달은 뺨을 부풀렸다.
“아, 방금 한 생각 너무해요. 그래도 정신체는 틀림없는 여자인데.”
“그래. 알았다. 이런 수다는 그만하고. 날 부른 이유부터 말해봐.”
“말했잖아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라고요.”
듀란달은 뒷짐을 지었다.
흉부가 강조되는 자세.
그녀는 씨익 웃으며 맑은 눈망울을 보여줬다.
요망한 구석이 있다.
“사이타나과 싸울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건 왜?”
“싸우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엮게 만들기는 싫어서요.”
“당연히 싸워야지. 녀석이 있는 이상 인류는 계속해서 침공당한단 얘기잖아.”
“그리 쉽게 결단할 게 아니에요.”
듀란달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이타나는 지구로 넘어올 생각이 없어요. 자신처럼 강력한 힘을 지닌 자를 강제로 차원 이동시키는 건 막대한 힘이 소모되니깐요.”
“그래서?”
“어나더로 넘어가 사이타나를 해치워야 하죠. 전혀 모르는 문명. 어쩌면 페일과 단둘이서 사이타나와 싸워야 할지 몰라요.”
“상관없어. 난 헌터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저 듀란달은 당신을 주인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은 특별한 힘을 가졌거든요.”
“스킬 융합하는 힘을 말하는 거야?”
“네.”
듀란달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선우영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그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스킬 융합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어요. 주인님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요!!”
듀란달은 팔을 양옆으로 활짝 펼쳤다.
선우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한한 가능성?”
“네.”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정도로 이 능력을 평가해주리라 생각지 못했다.
듀란달은 선우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 그리고 주인님이 가진 그 아이요. 육체는 완성되었지만, 정령의 가호가 깃들지 않아서 자아가 없어요.”
“뭐? 누굴 말하는 거야?”
듀란달은 뒤로 총총 뛰었다.
그러며 싱그러운 미소를 보여주고 손을 흔들었다.
“자자, 돌아갈 시간이랍니다.”
“그러니까, 누굴 이야기하는 거냐고. 육체는 완성됐는데 자아가 깃들지 않은 사람이라니?”
“사람 아닌데요?”
“뭐?”
“정말이지, 검은색 그 녀석 있잖아요!”
“설마??”
“그럼, 주인님 안녕!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다음에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몇 년 뒤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바이바이!”
선우영은 눈앞이 새하얗게 멀었다.
* * *
선우영은 새하얗게 멀었던 시야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눈앞에 보이는 건 병실.
그리고 페일.
자신이 쥐고 있는 듀란달이었다.
“!!”
페일은 감격한 표정으로 선우영을 바라봤다.
“역시나, 선우영 씨가 듀란달의 주인이 되었군요. 이럴 줄 알았습니다.”
페일은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선우영 씨와 함께하겠습니다. 같이 사이타나를 무찌릅시다.”
선우영은 눈을 껌뻑였다.
페일은 대답 없이 멍하니 있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선우영 씨?”
“아, 네-! 뭐라고 하셨죠?”
“같이 사이타나를 무찌르자고요.”
“당연하죠. 하하하.”
선우영은 웃음기를 보이며 자신의 허리춤에 찬 용광검을 바라보았다.
그는 듀란달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 육체는 완성됐는데, 정령의 가호가 깃들지 않아서 자아가 없어요.
- 사람 아닌데요?
- 검은색 그 녀석 있잖아요.
듀란달이 말한 ‘검은색 그 녀석’이 혹시 용광검을 말하는 걸까?
‘용광검이 한층 더 진화할 수 있다고?’
이건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사이타나를 쓰러뜨릴 때 큰 도움이 되겠지.
‘물론 정령의 가호란 걸 받아야겠지만.’
선우영은 이후에도 페일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각성자가 생기게 된 배경.
그게 설마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의 자극으로, 지구에서도 마나가 자연 발생하게 되며,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각성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더 많은 각성자가 생겨날 게 틀림없었다.
스킬석 또한 마나가 돌멩이에 오랜 시간 스며들어 생기는 물건이라고 한다.
지구는 마나가 자연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사이타나는 스킬석을 몬스터의 몸속에 집어넣어 강화재료로 사용하는데, 그 덕분에 강한 몬스터일수록 더 강력한 스킬석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선우영은 팔짱을 끼었다.
‘오늘 하루 정말 엄청난 정보들을 얻어가네.’
* * *
세계랭킹전이 끝나고.
선우영은 듀란달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조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저기 선우영이다!! 선우영이 도착했다!!”
찰칵, 찰칵.
사진기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공항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기자들이 모여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선우영 헌터님.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주셨군요.”
국무총리도 마중을 나왔다.
공항의 한쪽에는 기자회견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페일에게서 심각한 정보들을 들은 직후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결 편해졌다.
선우영은 기자회견장 단상으로 올라갔다.
방송 카메라가 그를 찍었다.
기자 중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든 국가의 기자들이 모여있는 듯했다.
그들로 공황이 붐볐다.
세계랭킹 1위가 된 선우영은 세계적 대스타가 되었다.
그는 씨익 웃었다.
세계랭킹전에서 우승하려 했던 이유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이제 그 결실을 수확할 때였다.
선우영은 마이크에 앞에 서서 기자들을 바라봤다.
기자들은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선우영 헌터님, 세계 최강자가 되셨는데 소감 한번 말씀해주시죠.”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되십니까?”
“응원해준 한국 국민들에게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여러 질문들이 왔지만.
선우영은 전부 무시하고 마이크를 두 번 두들겼다.
키이익-!!
마이크에서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쇠를 긁는 듯한 소리.
기자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신음성을 흘렸다.
기자회견장이 조용해졌다.
선우영은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선언했다.
“저는 크루그먼 길드를 국제 길드로 만들어, 앞으로의 시대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고작해야 한마디.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안 걸렸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인터넷은 국제 길드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기자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선우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먹잇감을 향해 돌격하는 늑대처럼 말이다.
선우영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선언을 마치자마자 기자회견장을 내려왔다.
국제 길드를 만들겠단 선우영의 포부를 들은 국무총리.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어떤 국가도 자국 헌터가 국제 길드를 만든다고 하면 대놓고 싫어할 거다. 하물며 그 인물이 세계랭킹 1위 헌터라면 더더욱 말이다.
국무총리는 선우영에게 다가갔다.
“선우영 헌터님.”
“네.”
“대통령님과의 만찬이 준비되어 있는데, 같이 청와대로 가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선우영은 그리 말했다.
공항 바깥에는 선우영을 태우고 갈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부르릉.
선우영이 탑승하자 차량이 도로를 달렸다.
그를 호위하겠다고 오토바이를 탄 경찰들이 차량의 상하좌우를 달렸다.
솔직히 선우영은 호위가 필요 없었다.
누가 그를 노리겠나.
그까짓 총이나 대포로도 죽지 않을 텐데.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보여주기식 호위. 내가 이만큼 주요 인물이란 걸,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단 거겠지.’
뭐, 나쁘진 않다.
이러한 특별 대우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만, 걱정되는 건 있었다.
‘자국 헌터가 국제 길드를 창설하는 걸 반기는 대통령은 없겠지.’
그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분명히 대통령이 무어라 말할 거다. 정치권에서도 이걸 트집 잡겠지.
‘뭐, 이때를 위해서 박정철 씨를 영입했지만 말이야.’
그라면 분명 잘해줄 거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떤 술수가 벌어질지 모르니,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대통령과의 만찬.
당장에 그 자리에서 분명히 이 얘기가 나올 거다.
‘껄끄러운 식사 자리가 되겠군.’
선우영은 그리 생각하며 차창 밖 풍경을 감상했다.
끼이익.
차량이 청와대에 진입했다.
선우영은 차량에 내리며 청와대를 바라봤다.
푸른 지붕.
여기에 대통령이 있다.
그리고 눈앞에는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다.
카펫 옆에는 좌우로 나란히 선 사람들이 있었다.
저쪽에는 음악대도 있다.
“…….”
선우영이 레드카펫을 밟자마자 음악대가 노래를 불렀다.
바이올린도 켜고, 피아노도 쳤다.
카펫의 좌우로 나란히 서 있던 사람들은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하늘 높이 겹쳤다.
선우영의 걸음에 맞춰서 말이다.
칼군무였다.
‘나 한 명을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했다고? 엄청나게 노력했구만.’
이 정도 되면, 부담스러워질 지경이다.
청와대로 입장한 선우영.
문 앞에는 대통령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하하하, 선우영 헌터님. 세계랭킹 1위가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덕분에 국격이 상승했습니다.”
세계 최강자가 된 선우영.
그 덕분에 증시가 올라가고.
게이트 관리가 잘 될 거라 판단한 기업들이 공장을 짓겠단 의사를 표명했다.
골칫거리였던 청년실업 해결.
경제 상승.
그러니 대통령 눈에 선우영이 어떻게 보이겠나.
하늘에서 떨어진 복덩이였다.
그렇기에 선우영이 국제 길드를 만들어 해외로 게이트 닫으러 다니는 게 싫었다.
대통령은 선우영과 식사 자리를 가지며 껄끄러운 첫마디를 꺼냈다.
“선우영 헌터님, 국제 길드 창설은 포기하시고, 국내 게이트 관리에 집중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선우영은 들으려 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역시나 이 얘기가 나온다.
선우영은 팔꿈치를 식탁에 올리며 손깍지를 꼈다.
그는 자기 의사를 또렷이 밝혔다.
“싫습니다.”
대통령은 속이 타는 표정으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덕담이 오가야 할 식사 자리.
그러나.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신경전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