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넌 누구지?
하메잔의 습격 사건 이후.
세계랭킹전은 계속 진행되었다.
선우영은 연전연승을 이어 나갔다. 강기를 쓰는 사람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선우영의 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보르초크에 이어 하메잔까지 쓰러뜨린 그의 실력은 이미 최정상급이었다.
아직 결승에 올라갈 사람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선우영과 페일이 결승전에 맞붙을 거란 분위기가 팽배했다.
선우영은 숙소 로비를 걸었다.
오늘도 대전상대를 이기고 돌아오는 길이다.
‘사람이 많이 줄었네.’
패배한 사람들이 숙소를 나간 탓일까.
사람으로 꽤 북적였던 곳이 이제는 텅텅 빈 느낌이다.
‘오늘은 4강전.’
자신이 이겼으니, 내일은 결승전 진출이다.
선우영은 숙소 로비 모니터로 페일의 싸움을 지켜봤다.
“얼마나 잘 싸우는지 보자.”
선우영은 벽에 등을 기댔다.
모니터 속 페일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검강으로 승부를 단숨에 마무리 지었다. 상대편이 뭘 해볼 틈도 안 줬다.
‘봐주질 않네.’
선우영은 승부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페일은 준결승까지 올라온 상대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쓰러진 그를 놔두고 대련장을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온 페일.
그는 선우영과 마주쳤다.
이제 이곳에 있는 선수는 그들 뿐이었다.
페일은 선우영에게 눈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
선우영은 페일에게 지나가는 말로 질문을 던졌다.
“게이트에서 나온 남자.”
페일은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 선우영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뜻이죠?”
“아뇨. 그냥 인터넷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나서요.”
선우영은 능글맞은 웃음을 보였다.
페일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치 대답을 피하듯 자기 방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선우영은 턱을 문질렀다.
‘게이트에서 나온 남자. 그것도 진짜인가? 만약 그렇다면 페일과 몬스터는 무슨 관련이지? 듀란달은 또 어디서 구한 무기고?’
의문이 자꾸만 쌓여간다.
베일에 싸인 페일의 정체를 밝히고 싶다.
‘뭐, 결승전에서 이기고 페일한테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네.’
후보자는 뭐고.
정말로 게이트에서 왔는지.
듀란달은 누가 만들었으며.
왜 자길 쓰러뜨릴 사람을 찾는지도.
* * *
숙소로 돌아온 선우영.
그는 용광검의 상태를 살폈다.
이가 나간 곳이 있는지 봤는데, 역시나 한 군데도 없다.
말끔하다.
선우영은 용광검에 기름칠했다.
내일 있을 결승전에 만전을 기하고 싶었다.
그다음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페일과 싸우는 상상을 했다. 그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검강과 호신강기를 쓰는 페일.
그와 검을 맞댄 자신.
페일은 불과 바람 그리고 번개를 쏘며 자신을 위협한다.
서둘러 피해 보지만.
번개를 피하지 못해 직격당하고 만다.
페일이 자신에게 돌격한다.
서둘러 투명화로 모습을 감추고 페일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
서로 상처를 입은 채 난타전에 들어간다.
그렇게 50합을 주고받은 끝에…… 페일이 자신을 쓰러뜨리고 승리한다.
선우영은 감았던 눈을 떴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대련에서 자신이 패배했다.
49합까진 비등했다.
50합에서 패배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페일보다 못한 건 딱 하나야.’
검술.
페일의 검술은 백영희와 동급이다.
선우영보다 높았다.
페일을 이기려면 지금보다 검술 실력을 높여야 했다.
선우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백영희의 쌍검술을 대부분 터득했지만, 완벽하게 익혔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딱 한걸음이 모자랐다.
그것만 채운다면 페일과 싸워 이길 수 있을 거다.
선우영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는 백영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자기야, 오늘 하루 잘 지냈어?”
선우영은 먼저 백영희의 안부를 물어봤다.
백영희는 피식 웃었다.
“그냥 똑같지. 자기 보고 싶어 죽겠다.”
“나도.”
“결승전 꼭 이기고 돌아와! 자기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마침 그것 때문에 전화했는데.”
“왜?”
“페일의 검술 실력이 대단하잖아. 혹시 조언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꽤 어려울 텐데.”
백영희는 걱정된단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마지막 경지에 대해 자세히 풀어 설명해줬다.
“마지막 경지는 상대방의 검술을 읽어내고 그 흐름에 자신의 흐름을 얹는 경지야.”
“좀 더 쉽게 이야기해줘.”
“상대방의 호흡, 자세, 검술을 파악해 거기에 역으로 받아치는 거야.”
“역으로?”
“쉽게 말해 상대의 검술을 역으로 이용해 반격하는 거지.”
“복잡하네.”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백영희는 응원의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도 자기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난 믿고 있어.”
“그래. 고마워. 나중에 또 통화하자.”
선우영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용광검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페일의 검술을 떠올리며.
부우웅.
용광검을 휘둘렀다.
‘상대의 검술을 역으로 이용하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선우영은 고심했다.
‘적의 공세를 흘려보내는 건 이용하는 게 아닐 텐데.’
그는 몇 시간이고 계속 검을 휘둘렀다.
그동안 상상 속 페일에게 계속 패배했다. 그게 만약 실전이었다면 선우영은 100번도 넘게 큰 상처를 입었을 거다.
“후우.”
선우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상상 속 페일과 대결을 펼쳐봤다. 깊게 찔러 들어오는 상상 속 페일.
선우영은 아무 생각 없이 칼날의 면으로 공세를 막았는데, 순간 어떠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상 속 페일의 칼날.
이걸 추진력으로 삼으면 어떨까?
선우영은 칼날의 면을 비스듬히 세워 공세를 막으며, 동시에 그 반동을 이용한단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선우영은 순간 깜짝 놀랐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완벽한 궤적이 그려졌다.
상상 속 페일은 머리가 베여 쓰러졌다.
‘설마, 이게……?’
선우영이 노려야 할 다음 경지였던 걸까.
실마리를 잡은 그는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계속 연습해나갔다.
탁하고 깨치니까, 나머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익혀지고 이치와 원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저 멀리서 페일이 지켜봤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선우영, 검술이 한 단계 발전했구나.’
과연 그는 자신을 이길 수 있을까? 듀란달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까?
페일은 듀란달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 * *
다음날.
결승전 당일이 되었다.
선우영은 아침을 먹고 대련장으로 갔다.
대결 시작은 오전 11시.
지금은 오전 9시 30분이다.
선우영은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했다.
남은 시간 동안 집중력을 극대화시켜, 만발의 준비를 할 생각이다.
“후우. 후우읍. 후우.”
선우영은 숨을 고르며 몸속의 오러를 순환시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오전 11시가 됐다.
페일이 대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허리춤에는 듀란달이 채워져 있었다.
휘익.
그는 대련장으로 휙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선우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가부좌를 틀었던 선우영은 눈을 천천히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일과 선우영.
둘은 서로를 하염없이 쳐다봤다.
하늘에는 드론이 날아다니며 영상 찍을 준비를 끝냈다.
삐이익.
시합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르릉.
스르릉.
선우영과 페일은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들은 검강과 호신강기를 사용하고,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채챙.
채앵.
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검강의 무시무시한 위력 때문에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어 주변 풍경을 바꿔 놓았다.
대련장 바닥이 부서지고 갈라졌다.
더 이상 발 디딜 틈도 없다.
타닷.
선우영은 하늘로 치솟았다.
허공을 뛰어다니며 화염을 쏘았다.
페일은 공격을 피했다.
그 또한 허공을 뛰었다.
선우영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페일.
완전히 부서진 대련장을 벗어나 둘은 하늘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콰과광.
둘의 이동속도가 얼마나 빠르던지 소닉붐이 일어나고, 벼락 치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충격파 탓에 주변에 있던 나무가 부러졌다.
페일은 선우영과 검을 맞대어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단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겨우 하루 만에 검술이 많이 늘었습니다. 저랑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는데요?”
“좋은 스승이 있어서 말이죠.”
선우영은 대꾸했다.
페일보다 검술이 아래였던 선우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막상막하의 검술을 선보였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60합이 넘어가도록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누구 하나 상처 입지 않았다.
서로의 흐름을 읽고 이용하니, 승부가 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파지직.
페일은 번개를 쏘았다.
선우영은 황급히 옆으로 고개를 돌려 공격을 피했다.
‘큰일 날 뻔했네.’
페일의 손가락에 스파크가 튀자마자 반응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직격당했을 거다.
페일은 거리를 두고 계속해서 번개를 쏘았다.
선우영은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번개를 피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기 바빴다.
페일이 손가락에 맺힌 스파크를 유심히 보고 미리 움직여야 날아오는 번개를 회피할 수 있었다.
화르륵.
선우영은 맹화로 반격했다.
페일은 화염의 방향을 읽어내듯이 쉽게 피했다.
선우영은 화염을 조종해 페일을 쫓아가도록 만들었지만, 녀석은 스킬로 물을 만들더니, 검강과 함께 사용해 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스걱-!!
페일은 검강과 합쳐진 물을 이용해 선우영이 쏜 화염을 베어냈다.
불꽃이 갈라지듯 꺼지며 자취를 감췄다.
그 순간.
페일에게 빈틈이 생겼다.
선우영은 그의 집중력이 흔들린 순간을 이용해 투명화를 썼다.
스르륵.
그의 모습이 세상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페일은 뒤늦게 눈치채고 서둘러 대처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한발 늦은 상태였다.
“크윽!!”
페일은 순간 뒤에서 기척을 느꼈다. 서둘러 몸을 뒤로 뺐지만, 선우영한테 왼쪽 어깨를 베였다.
치명상까진 아니었다.
그래도 검을 휘두르기 어려울 정도는 됐다.
거기다 투명화랑 융합된 출혈 스킬 덕분에 5분간 치료할 수 없었다.
페일도 반격에 나섰다.
번개를 난사하여 선우영을 맞췄다.
“큭!!”
선우영은 신음성을 흘렸다.
호신강기 덕분에 버텼지만, 아니었다면 벌써 쓰러졌을지 모르겠다.
번개를 맞은 탓에 투명화가 풀렸다.
페일은 선우영을 향해 검강을 휘둘렀다.
선우영도 재빠르게 대처했다.
맹화와 검강을 합쳤다.
그의 검강이 태양처럼 밝은 섬광을 보여줬다.
타앙-!!
선우영과 페일의 검강이 또다시 부딪쳤다.
페일은 용광검을 노려봤다.
‘듀란달의 공세를 이렇게까지 버티는 검이라니.’
참 대단한 검이다.
선우영은 페일의 복부를 걷어찼다.
“큭!”
페일은 뒤로 쭉 밀려났다.
아픔에 신음했다.
‘지금까지 날 이 정도로 몰아붙인 도전자는 없었는데.’
이런 위기는 처음이다.
“헉헉헉.”
선우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건 페일도 마찬가지.
세계랭킹전에서 처음으로 지친 모습을 보여줬다.
선우영은 다시금 검술 자세를 잡았다.
“대단하네요.”
“그쪽도 대단하군요.”
“피차일반 다음이 마지막 일격이 될 듯싶은데, 내기나 하나 합시다.”
“내기?”
“내가 이기면 모든 질문에 거짓 없이 대답해주기. 어떻습니까?”
선우영이 말하자, 페일은 껄껄 웃었다.
“그거 재미있군요. 받아드리죠.”
페일과 선우영.
둘은 서로에게 돌격하며 마지막 일격을 주고받았다.
채앵.
칼날이 서로 부딪히고.
최후의 승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