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하메잔 2
채앵 채앵.
선우영과 하메잔은 계속 전투를 이어 나갔다.
자객도 대부분 쓰러진 상태.
몇몇이 남았지만.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엔 역부족한 상태였다.
하메잔은 이를 악물었다.
‘제길, 선우영이 이렇게 강했다니. 내 예상을 뛰어넘었어!’
이게 아니다.
하메잔은 원하던 상황은 이게 아니다.
자객들과 선우영을 공격하여 급소를 맞추면 머릿수로 눌러버릴 참이었다.
그런데.
‘폭발하는 분신이라고?’
그런 스킬은 들어본 적도 없다.
아마 선우영이 스킬을 융합해 만들어냈겠지.
상황이 불리해졌다.
선우영을 여기서 죽이고, 묻어버릴 생각이었는데…….
‘그건 불가능하겠군.’
잘못 판단했다.
자신보다 약간 더 강하다고 생각해 자객과 함께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예상했거늘.
‘완전히 오판이었어.’
선우영은 자신보다 약간 더 강하단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페일과 동급일지도 모르겠군.’
자신을 유일하게 패배시킨 페일. 그 남자와 선우영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하메잔은 순간 울컥했다.
페일과 싸울 때도 항상 비겁한 술수를 썼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모든 함정을 정면 돌파했다.
상처 하나 없이.
한없이 고고하고 위대한 자태로.
그 모습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인물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신이 깃들어있는 듯한 검술과 실력.
그렇기에 페일이 싫었다.
그는 승리했음에도 자신의 술수를 눈감아줬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해볼 테면 더 해보라는 표정으로.
“제기랄!!”
하메잔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왜 하필 페일이 선우영과 겹쳐 보이냐 이 말이다. 왜 하필 지금!!
하메잔은 기합을 질렀다.
절대 패배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이 자리에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단 말인가.
세계랭킹 2위 자리를 빼앗기면.
권력과 힘이 줄어든다.
절대 안 된다.
하메잔은 최근에 깨달았던 검술 묘리를 사용했다.
모래폭풍이 불던 사막에서 훈련하여 얻은 깨달음이었다.
동시에 스킬도 발동했다.
그의 주변에 모래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래는 뭉치기 시작했다. 그 형상이 길쭉하다 싶었는데, 점점 검의 형상을 했다.
모래를 압축시켜 만든 검.
실로 날카로웠다.
선우영의 급소를 노리며 싸우기에 충분했다.
부우웅.
모래 검이 선우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쯧.”
선우영은 뒤로 뛰며 모래 검을 전부 피해냈다.
그러며 하메잔의 검을 상대했다.
상대하기 까다롭다.
모래 검에 신경을 쓰자니, 하메잔의 검이 매섭고.
그렇다고 녀석에게 집중하자니, 모래 검이 급소를 노려서 방해된다.
‘역시 세계랭킹 2위야. 보르초크랑은 다르네. 저주 효과로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정신력으로 전부 억누르고 있어.’
선우영은 다시금 분신을 만들었다. 그걸로 모래 검을 상대하게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분신들이 상대하기엔 모래 검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무려 10개가 넘었으니까.
필연적으로 최소 3~4개는 피해 가며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메잔의 검강도 강화됐고.’
자신이 검강에 맹화를 섞어 공격력을 높였다면.
저쪽은 모래와 검강을 섞었다.
카앙. 캉.
둘의 검강이 서로 부딪혔다.
하메잔은 눈을 부릅떴다.
“페일을 상대하기 위해 숨겨둔 비장의 능력을 여기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군.”
“아, 그러셔?”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근데, 어쩌냐? 이걸로는 페일은커녕 나도 못 이기겠는데?”
“값싼 도발이군.”
“도발인지 아닌지 이 상황이 끝나면 알겠지.”
선우영이 검을 휘둘렀다.
하메잔은 그 공세들을 막아내며 반격했다.
방어와 반격에 특화된 검술.
어찌나 유연하던지 칼날이 뱀처럼 휘어져 선우영의 목을 노리는 듯했다.
선우영은 그 공세를 피했다.
삼환검의 보법 덕분에 유연한 몸놀림을 보여줬다.
“이 자식!!”
하메잔은 이를 악물었다.
뭔가 이상했다.
선우영이 자신의 움직임을 간파한 듯이 움직인다.
그도 그럴 만했다.
선우영은 지동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스킬이 아닌 오러를 이용한 기술.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지동은 큰 도움이 됐다.
검술 실력만 따지면 하메잔이 선우영보다 약간 우위에 있다.
그 격차를 지동이 메워줬다.
하메잔은 자신의 공격을 회피하는 선우영이 페일과 더욱 겹쳐 보였다.
그 순간.
선우영의 모습이 사라졌다.
‘투명화?!’
하메잔은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모래바람의 미세한 변화를 파악해 선우영의 공격을 간파할 생각이었다.
그 순간.
우측의 모래바람이 묘한 변화를 보였다.
모래가 무언가에 부딪히듯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저기구나!!’
하메잔은 선우영의 움직임을 추측해냈다.
채앵.
하메잔은 가까스로 칼날을 막아냈다.
하지만 선우영은 곧바로 그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모래바람으로 대략적 위치를 파악해낸 건 칭찬할만했다. 하지만 투명화 상태의 공격을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해 방어가 한 박자 늦었다.
“커헉!!”
하메잔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강을 사용하느라 호신강기를 쓰지 못했다.
덕분에 제대로 상처를 입었다.
복부가 화끈거리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하메잔의 검강도 덩달아 약해졌다.
선우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부우웅.
촤아아악-!!
용광검이 하메잔의 몸통을 갈랐다.
핏물이 하늘로 솟구쳤다.
엄청난 출혈량.
하메잔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본 자객들.
대다수가 당하고 소수만 남았던 그들은 하메잔을 버려두고 도망쳤다.
“크으윽!!”
하메잔은 피를 토해냈다.
선우영은 그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봐라. 네가 부른 자객들 의리 없이 도망치는 거. 힘과 권력만 좇은 결과가 겨우 이거다.”
“…….”
“도와줄 동료 하나 없는 신세. 그게 바로 네가 걸어온 길이야.”
“이, 이 자식!”
하메잔은 손을 파르르 떨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싸우고 싶지만, 부상이 심각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졌다.’
하메잔은 손에서 검을 놓았다.
역시나 선우영이 페일과 겹쳐 보이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선우영은 하메잔의 처분을 고심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음?”
선우영은 고개를 젖혀 위를 바라봤다.
하늘에서 반짝이던 무언가가 지상으로 빠르게 하강했다.
선우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페일?’
콰과광.
페일이 땅바닥을 부수며 착지했다. 거대한 구덩이가 생길 정도로 위협적인 착지였다.
선우영은 페일을 바라봤다.
왜 그가 등장한 걸까? 모든 사건이 다 끝난 이 시점에 말이다.
페일은 조용했다.
그는 쓰러진 하메잔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하메잔 씨. 이런 만행을 저지르실 줄이야. 선우영 씨를 습격할 줄은 몰랐습니다.”
“…….”
“지금부터 하메잔 씨를 세계랭킹전에서 퇴출하겠습니다. 물론 오늘 일으킨 물의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겁니다.”
“하하하, S급 헌터인 나를 법이 심판한다고? 우습군. 며칠 복역하다가 풀려나겠지.”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선우영 씨에게 피해보상은 하셔야 할 겁니다.”
하메잔은 침묵했다.
그러며 페일에게 적의를 보였다.
“젠장. 네 녀석만 꺾었다면 최고의 권력을 손에 넣었을 텐데.”
페일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권력과 힘에 대한 집착은 꾸준하군요. 제가 당신이 파놓은 함정을 겪고도 내버려 둔 이유가 뭔지 압니까?”
“…….”
페일의 말투가 돌연 변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건 네놈이 어떤 일을 해낼 후보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어.”
페일은 매서운 눈총을 보냈다.
거슬리면 언제든 없애버리겠단 듯이 말이다.
“하메잔, 후보자 자격이 없어진 너는 더 이상 봐줄 필요가 없다. 앞으로는 행동 조심해라.”
하메잔의 눈동자가 떨렸다.
페일이 보내는 살기가 목을 옥죄여 숨쉬기도 힘들었다.
삐용, 삐용.
곧이어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구급대원들이 몰려왔다.
자객들과 하메잔은 병원으로 이송되고.
페일은 선우영에게 기자회견 자리를 만들어줬다.
선우영은 사건의 경위를 전부 밝혔다. 하메잔이 자객을 동원해 자신을 습격했단 걸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덕분에 세간은 확 뒤집혔다.
떠오르는 신성 선우영.
그를 짓밟기 위해 세계랭킹 2위 하메잔이 자객과 함께 습격했다.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설마, 하메잔이 그딴 더러운 술수를 쓸 줄 아무도 몰랐으니까.
미국의 연방 경찰이 움직였다.
하메잔은 병원 치료가 끝나는 대로 재판이 넘겨지기로 했다.
그리고 도망친 자객들은 미국 정부 소속 헌터들이 체포하기로 결정됐다.
* * *
기자회견이 끝나고.
선우영은 페일이 있는 숙소로 찾아갔다.
똑똑똑.
페일은 문을 열어줬다.
“선우영 씨. 제 방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나눌 말이 있어서요.”
“들어오시죠.”
선우영은 페일의 방으로 들어갔다.
안은 꽤 넓었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그림.
굉장히 커다란 그림이 벽에 장식되어 있었다.
다른 세상을 그린 듯한 풍경이 보였는데, 점점 뒤로 갈수록 그림이 맘에 안 들었다.
처음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뒤로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맨 뒤에는 세상의 파멸이 그려져 있었다.
‘드래곤?’
그림의 맨 마지막에 그려진 드래곤의 실루엣.
저건 뭘 의미할까?
페일은 탁자를 가리켰다.
“선우영 씨, 여기 앉으세요. 금방 차를 내오겠습니다.”
“아, 네.”
“커피 좋아하시나요?”
“네.”
페일은 냉장고에서 커피를 가져왔다.
차가운 캔 커피였다.
선우영은 커피를 마시고 한마디 툭 던졌다.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저와 하메잔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등장하셨는데,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뭘요?”
“하메잔이 저를 습격하려 했단 걸요.”
“아니요. 우연히 산책하다 발견했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미리 조치했겠죠.”
선우영은 이상함을 느꼈다.
하메잔을 쓰러뜨리자마자 페일이 나타난 게 맘에 걸렸다.
놈이 자신을 습격할 걸 알고도 방치한 느낌.
그런 기분을 받았다.
선우영은 산책하다 우연히 현장을 목격했단 페일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우연히 현장을 목격했다면, 사건 진위부터 파악하려 했겠지. 나타나자마자 하메잔이 날 습격하려 했단 걸 알고 있단 듯이 행동하지 않았을 거야.’
페일의 속내를 모르겠다.
사건이 벌어지도록 방치해놓고.
그게 끝나니까, 자신이 사건을 밝히고 하메잔을 법적으로 심판할 수 있게 도와준다.
‘뭐지? 이 자식, 내 편이야 아니면 적이야?’
도통 모르겠다.
마치, 자신과 하메잔 중에 누가 더 강한지 확인하려 했단 느낌이 팍팍 들었다.
선우영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후보자는 뭘 의미합니까?”
“예?”
“하메잔에게 경고할 때…… 어떤 일을 할 후보자라서 봐주고 있었단 듯이 말씀하셨는데. 혹시 그 후보자에 저도 들어갑니까?”
“아.”
페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캔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네. 선우영 씨도 후보자입니다.”
“세계랭킹전은 후보자끼리 싸워서 최후에 남은 후보자를 가리는 게 목적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세계랭킹전과 후보자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까?”
“저는 그저… 절 쓰러뜨릴 사람을 찾을 뿐. 세계랭킹전에는 그 이상의 목적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