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히든카드는 많을수록 좋다.
케빈은 허공으로 뛰었다.
선우영은 여유롭게 그를 바라보았다.
스으윽.
놈이 허공에 착지했다.
정확히는 오러로 이뤄진 장판을 허공에 만들어 그곳에 착지했다.
선우영은 그 장면을 흥미롭게 봤다.
‘저건 결계?’
오러로 커다란 벽을 만들어 자신을 방어할 때 쓰이는 스킬이다.
그걸 발판으로 허공에 떠 있다니.
‘스킬 활용이 좋은데?’
역시 본선전부터는 상대가 만만치 않다.
케빈은 선우영을 내려다봤다.
그는 갑자기 합장했다.
‘무리해야 하는 기술이지만 어쩔 수 없군.’
스으윽.
선우영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직사각형 결계가 경기장을 감싸며 선우영을 가뒀다.
‘뭐지?’
선우영은 의아했다.
‘결계는 크면 클수록 만들고 유지하는데 오러가 많이 소모될 텐데?’
게다가 결계로 적을 가둔다니?
움직임을 봉인하려면 오히려 선우영의 덩치에 딱 맞는 크기의 결계만 만들면 된다.
이렇게 경기장을 가둘 정도는 필요 없다.
케빈은 숨을 길게 들이켰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식히며 집중력을 높여줬다.
그는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그러자 선우영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장을 가둔 결계.
그 내부에 오러로 만들어진 구슬이 생겨났다.
‘이번에는 [탄]?!’
오러를 구슬 모양으로 만들어 쏘는 기술이다.
그게 선우영의 앞을 둥둥 떠다녔다.
숫자도 엄청나게 많았다.
‘눈대중으로 세어봐도 대략 100개? 어쩌면 200개를 넘겼을지도 모르겠네.’
선우영은 슬슬 눈치챘다.
결계에 자신을 가두고 탄으로 공격하시겠다?
‘그래서 결계를 나의 크기에 맞춰 만들지 않았군. 탄을 생성할 공간도 필요했으니까.’
재미있다.
결계에 갇힌 채, 200개가 넘어가는 탄을 피해야 한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결계를 부수고 나가는 길뿐일 거다.
피휴웅.
탄이 선우영을 향해 일제히 움직였다.
생각보다 빠르다.
선우영은 용광검으로 탄을 쳐내며 신속히 이동했다.
제한된 공간을 이동하며 무수히 날아오는 탄을 막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동안 꾸준히 발전시킨 사자심왕이 아니었다면 진작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피휴웅.
탄들은 선우영이 결계 근처로 못 나가게 경로를 가로막았다.
‘이거 꽤 귀찮네.’
선우영은 혀를 찼다.
그는 탄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맹화를 쓰고 싶지만….
‘산소가 적다.’
결계가 대련장을 빈틈없이 감쌌다.
산소가 제한적이란 뜻.
맹화를 사용했다간 산소가 빠르게 고갈될 거다.
화염으로 원거리 공격을 날려 결계를 부수는 건 가능하겠지만, 탄이 구멍으로 나가는 걸 방해할 거고.
그 틈을 타서 케빈이 결계를 복구시키면 쓸데없이 산소만 소모된다.
선우영은 피식거렸다.
‘이런 방식으로 화염을 막겠다?’
머리 한번 좋다.
확실히 경력이 많아서 그런지, 전략은 저쪽이 좀 더 앞선다.
선우영이 맹화만 고집해 싸우면 십중팔구 패배할 거다.
하지만.
‘나한텐 맹화 이외에도 스킬이 있다고.’
선우영은 투명화를 썼다.
그의 모습이 돌연 사라졌다.
하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투명화?’
이해가 안 된다.
투명화는 모습을 감추는 스킬.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결계를 빠져나올 수 없다.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케빈. 그는 순간 머릿속에 어떤 가설이 떠올랐다.
‘설마, 투명화에 다른 스킬이 융합되어서…….’
만약 그게 텔레포트라면?!
그 순간.
케빈은 등 뒤에서 투기를 느꼈다.
아뿔싸 싶었다.
고개를 돌리자 선우영의 모습이 보였다.
‘젠장! 투명화와 텔레포트를 융합시켰었구나! 이런 낭패가 있나.’
서둘러 도망가려는 찰나.
퍼엉.
선우영의 주먹이 케빈의 안면을 때렸다.
“커억!”
비명이 터져 나오는 케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고꾸라졌다.
심지어 그가 발판으로 밟고 있던 결계가 부서졌다.
케빈은 추락했다.
얼굴이 얼얼하고 정신이 아찔했다.
‘고작 주먹 한 방인데….’
치명타를 맞은 기분이다.
선우영은 허공을 뛰어 케빈을 향해 더 빠르게 이동했다.
이번엔 발차기를 날릴 참이다.
케빈은 이를 꽉 깨물었다.
자신을 보호할 결계를 빠르게 생성시켰다.
선우영과 놈의 사이에 오러로 이뤄진 벽이 10개나 생겼다.
스걱-!!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무시무시한 위세를 자랑하는 용광검.
칼날이 결계를 베었다.
10개의 결계는 종잇장처럼 허무하게 잘렸다.
이제 케빈과 선우영의 거리는 손 뻗으면 닿을 정도가 되었다.
“큭!!”
케빈은 발악하듯 탄을 만들어 공격하려 했다.
퍼억!
물론 그 전에 선우영의 묵직한 발차기가 작렬했지만.
케빈의 입에서 단물이 튀어나왔다.
“웨에엑!!”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추락해 대련장 밖으로 떨어졌다.
선우영은 허공에 멈춰 섰다.
삐비삑.
드론이 시합이 끝났단 소리를 냈다.
케빈의 장외패.
몸도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선우영은 용광검을 검집에 넣었다.
케빈의 맹화 대처법은 확실히 괜찮았다. 하지만 투명화에 텔레포트가 융합됐단 걸 몰랐기에 패배했다.
‘뭐, 내 투명화 스킬은 대중들한테 공개된 적이 없었으니까.’
케빈도 잘 몰랐겠지.
투명화가 다른 스킬과 융합됐을 거란 추측까진 했을 거다.
그게 텔레포트라고 예상 못 했을 뿐.
선우영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주 여유롭게 말이다.
잠깐의 위기는 있었지만, 위험은 아니었다.
‘그럼 돌아가서 내일 있을 시합을 준비해볼까.’
그는 대련장을 빠져나왔다.
* * *
선수 숙소로 돌아온 선우영.
사람들이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본선 첫 경기마저 이겼다.
그것도 큰 위기 없이!
선우영이 의외의 활약을 할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 수준인 줄 몰랐다.
몇몇 기자가 선우영에게 다가왔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선우영 헌터님, 본선 첫 경기도 멋지게 장식했는데. 다음 경기에서도 자신 있으신가요?”
“다음 경기요?”
선우영은 선수 숙소 로비에 달린 모니터를 바라봤다.
세계랭킹 3위, 보르초크.
그가 상대편의 얼굴을 주먹으로 박살 내놓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오늘 60강이 끝나면.
‘30강에서 보르초크를 만나잖아.’
보르초크는 강기를 사용하는 탱커다.
오러가 부족해 검강과 호신강기를 동시에 쓸 수 없지만, 능숙하게 전환하며 상대를 농락하는 강자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케빈하고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니까.
선우영은 기자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보르초크랑 싸워서 이길 수 있냐는 소리 같은데.’
그는 슬쩍 미소를 보였다.
“제 목표는 랭킹 1위입니다. 그걸 위해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패기 있는 답변.
기자들은 신나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선우영은 문제 될만한 답변은 피하고, 재치 있게 답변했다.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기자는 선우영에게 인사했고, 그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끼이익.
선우영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살펴봤다.
수고했단 지인들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일일이 전부 답장해줬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 통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어~! 우영아!”
아버지가 통화를 받았다.
선우영의 아버지는 신나서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야, 너 대단하더라?”
“경기 보셨어요?”
“그래. 진짜 잘하면 세계랭킹전에서 우승하는 거 아니냐?”
“당연히 우승하죠.”
“짜식, 그래. 자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래도 자만하지 마라. 언제나 겸손해야 하는 법이야.”
“네, 네.”
선우영은 잔소리를 흘려버리듯 대충 대답했다.
“그나저나 아버지.”
“왜?”
“제가 케빈하고 시합하기 전에 내기를 하나 했거든요.”
“내기?”
“이 시합에서 이기면 케빈의 철광회사에서 30% 싼 가격으로 구매하기로 했거든요.”
“30%? 아니 그렇게나 싸게 판다고?”
“네. 그것도 5년이나요.”
선우영의 말에 아버지는 목소리 음정이 높아졌다.
“5년이라니?! 야, 그 정도면 남는 이익이 얼마냐?”
“엄청 남겠죠.”
“네가 아주 큰 건 하나 물어왔구나. 장하다, 장해!”
“하!! 당연하죠. 전 세계가 주목하는 S급 헌터 아닙니까.”
“얌마, 사람이 겸손….”
“능력에 비해 겸손히 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포션 사업은 어때요?”
선우영은 아버지의 잔소리가 쏟아지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포션 제작에 성공했다. 갈라시안 약초도 대량으로 재배하는 데 성공했고.”
“오, 그거 다행이네요.”
“아마 다음 달쯤엔 판매가 가능할 거다.”
“돈 엄청 벌리겠죠?”
“당연하지. 무기보다 더 돈 되는 사업이 포션 사업인데.”
“가능하면 자금 모아주세요. 나중에 반드시 쓸 일이 있을 테니까.”
“아니, 뭘 하려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선우영은 통화를 끊었다.
국제 길드를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곳저곳에서 투자금을 약속받았지만,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 돈을 더 모아두는 게 옳았다.
선우영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었다.
삑.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60강이 끝나고 내일 있을 30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 이래저래 선수들의 특징과 활약상을 이야기하면서 누가 다음 경기에서 이길지 예측하는 방송이었다.
그들은 먼저 페일을 첫 번째로 뽑았다.
그가 30강 전에서 당연히 이길 거라 말했다. 그 주장에는 선우영도 동감이다.
‘세계최강이니까.’
다음은 세계랭킹 2위 하메잔.
그의 상대는 브라질의 S급 헌터였다.
하메잔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니, 그 또한 30강 전에서 이길 거라 말했다.
그리고 선우영과 보르초크.
둘의 대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워낙 예측하기 어렵단 듯이 이래저래 말이 많아지는 MC와 게스트들.
보르초크는 세계랭킹 3위.
선우영은 스킬 융합 능력자.
MC와 게스트들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그래도 보르초크가 이기겠죠. 아무리 선우영이 대단해도 호신강기를 쓰는 보르초크를 이기긴 힘들 거예요.”
저렇게 말했다.
듣고 있던 선우영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호신강기는 자신도 쓸 수 있다.
‘대회에서 쓸 비장의 무기라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다들 이야기하지 않고 함구했다.
이번 대회에서 히든카드로 쓰고자 비밀에 붙였다.
덕분에 남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투명화 텔레포트도 그렇고, 히든카드가 많으니 시합에서 제대로 써먹을 순 있어서 좋네.’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방송은 이윽고 선우영이 했던 인터뷰를 화면에 내보냈다.
랭킹 1위가 목표이며, 보르초크를 이기겠단 인터뷰 내용이 고스란히 나갔다.
패기 있는 출전자.
딱 그런 모습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이런 개XX 이건 또 뭐 하는 XXX야!!”
엄청난 욕설.
어찌나 목청이 크던지 쩌렁쩌렁하게 울려 숙소에 울려 퍼졌다.
“선우영 이 새끼가!! 감히 날 이기겠다고?”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
아무래도 보르초크인 모양새다.
그도 선우영과 똑같은 방송을 보고 있었나 보다.
선우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저렇게 다혈질이야? 인터뷰로 도발한 것도 아니고,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선우영은 텔레비전을 껐다.
보르초크가 다혈질에 고집이 센 양반인 건 알고 있다.
‘설마, 자기 기분 나쁘다고 내 숙소로 찾아오진 않겠지? 그런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데 말이야.’
똑똑똑.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얘기 좀 합시다!”
우렁찬 목소리.
다름 아닌 보르초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