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세계랭킹전 예선.
세계랭킹전 무대는 텍사스의 야외에 마련됐다.
S급들의 전투는 굉장히 위험하다. 자칫 주변 사람들이 휘말려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관중은 없다.
위이이잉.
대련장을 찍는 드론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대련장으로 사람이 올라왔다.
A그룹부터 시작해 F그룹까지 대결이 끝났다.
이제 G그룹 차례다.
대련 무대에 선우영이 올라갔다.
그의 앞에는 라우손이 있었다.
놈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번 대결에서 반드시 망신살 뻗치게 해주마.’
라우손은 다짐했다.
선우영은 놈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눈 밑이 시꺼멓다.
아마 자길 욕하는 기사를 읽으며 밤을 새웠나 보다.
‘컨디션이 나빠 보이네.’
스르릉.
선우영은 허리춤에서 용광검을 뽑았다.
라우손도 무기를 들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드론이 이번 대결을 전부 찍어 전 세계에 송출 중이었다.
삐이이익!!
드론에서 신호음이 들렸다.
시합을 알리는 소리.
타닷.
라우손이 선우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의 눈이 불타올랐다.
‘선우영!! 네놈을 무찌르고 이 원한을 풀겠다.’
라우손의 머리는 분노로 가득 찼다.
이곳저곳에서 비겁한 놈이라며 손가락질당하느라 잠도 못 잤다.
SNS도 비공개로 돌렸다.
하도 욕하는 트윗이 달려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시달렸다.
조국에서도 비난이 이어졌다.
겁쟁이라는 둥 아르헨티나의 수치라는 둥.
아무리 진실을 얘기해도….
‘젠장,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고독했다.
홀로 세상에 맞서는 느낌이다.
상황이 이쯤 흘러갔으니, 진실이 밝혀질 리 없다.
선우영과의 대결에서 이겨도 나쁜 놈이고.
패배해도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승리하는 나쁜 놈이 되겠다.’
그게 라우손의 결심이었다.
선우영은 놈의 공세를 지긋이 살폈다.
‘오, 품세가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S급 헌터라고 익혀온 기본기가 있는지, 감정에 치우쳐도 자세에 빈틈이 없었다.
검기도 굉장히 날카로웠다.
저렇게 기운이 다듬어진 걸 보면, 이번 대회를 위해 엄청나게 훈련해왔을 거다.
선우영은 허리를 숙였다.
부우웅.
라우손의 칼날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공세가 빗나갔다.
“쳇.”
놈은 혀를 찼다.
녀석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 공격에 나섰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지만, 선우영을 스치지도 못하고 빗나갔다.
선우영은 여유로웠다.
라우손의 검술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게 삼환검보다 몇 수 아래일 뿐이지.’
라우손은 요리조리 잘만 피해 다니는 선우영이 얄미웠다.
약이 바짝 올라 공격이 점점 거칠어졌다. 동작을 크게 가져가며 파괴력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가벼운 도발.
라우손의 머리에 시퍼런 핏줄이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솟았다.
분노가 이성을 지배했지만, 그래도 인정했다.
‘오냐, 네놈의 무예는 인정해주마. 하지만 이걸 보고도 웃을 수 있는지 보자!!’
라우손은 스킬을 사용했다.
녀석의 칼날에 이슬이 맺히더니, 이내 물이 생성되었다.
그게 칼날을 타고 빠르게 회전했다.
물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절삭력을 높인 기술이었다.
칼날을 휘두를 때마다 물방울이 튀었고, 무대 바닥은 물의 압력으로 인해 베어졌다.
선우영은 입을 오므렸다.
“오호?!”
물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공격 범위와 위력을 높이다니.
‘발상 좋은데?’
물만 생성하는 스킬로는 불가능한 공격방식.
분명 다른 스킬들이 보조하는 듯 보였다.
선우영은 허공으로 공중제비를 돌아 공세를 피해냈다.
‘그나저나 물이라….’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지 물을 사용하는 헌터랑 자주 붙는다.
불은 물을 이기기 힘들다.
하지만 선우영의 맹화는 여러 스킬들을 융합시킨 화염.
불꽃이 용광검을 휘감았다.
화르륵.
그는 화염이 칼날을 타고 라우손을 향해 쏘아졌다.
척력의 밀어내는 힘.
공기를 조종한 폭발력.
기름을 이용한 화력 증강.
거기다 저주 효과로 인해 상대방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큭!!”
고작 열기만 느꼈을 뿐인데, 라우손은 동작이 멈칫했다.
아프다.
몸을 난도질당하는 고통.
그게 라우손을 끊임없이 괴롭혀 검술의 섬세함을 확 떨어뜨렸다.
스킬의 위력도 잠깐이지만 주춤했다.
“타하아압!!”
놈은 기합을 지르며 고통을 어떻게든 견뎠다.
주춤했던 스킬의 위력이 다시 올라갔다.
라우손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염을 막아야 한다.
촤아악.
놈의 칼날에 타고 회전하는 물의 범위가 늘어났다.
그걸로 화염에 맞서려 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막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척력과 폭발력.
두 가지의 힘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물을 부숴 버리듯 분쇄했다.
흩어지는 물줄기.
비가 오듯 물방울이 떨어지며 주변이 온통 적셔졌다.
화염은 그 위세를 꺾지 않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 라우손을 향해 떨어졌다.
“으아아악!!”
라우손은 눈을 질끈 감고 팔목으로 얼굴을 가렸다.
저 화염은 못 막는다.
그리 생각했다.
피하고 싶어도 화염의 공격 범위가 넓다.
회피도 불가능.
이대로 온몸이 불살라지겠구나 싶었는데.
“……?”
느닷없이 화염의 열기가 수그러들었다.
라우손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러자 자기 턱을 겨누는 시커먼 칼날이 보였다.
“으어억!!”
라우손이 비명을 지르며 식겁했다.
선우영은 녀석의 얼굴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아주 강렬한 일격이었다.
놈이 볼썽사납게 뒤로 자빠졌다.
입술이 찢어졌는지 피까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선우영은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붙이며 쓰러진 녀석에게 다가갔다.
라우손은 벌벌 떨었다.
자기 실력으론 상대조차 되지 않는단 걸 깨달았다.
이토록 무력하게 패배해본 적은 하메잔과 승부를 겨뤘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라우손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선우영은 강하다.
괜히 기선 제압하려 했다가 일이 꼬였다.
경기 전에 선우영을 다치게 했단 소문이 나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도 창피했다.
경기에서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하고.
심지어 선우영한테 찍혔다.
‘X됐다.’
놈은 그리 생각했다.
“제가 잘못….”
라우손이 그리 말하려는 순간.
선우영은 놈에게 복수하듯 또다시 발차기를 날렸다.
“꾸에엑!!”
라우손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 빌어먹을 녀석!! 하늘 구경이나 실컷 해라. 하느님, 오늘 한 새끼 올려보냅니다.’
선우영이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하늘로 날아올라 반짝이는 별이 된 라우손.
30초 정도 지나자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떨어졌다.
놈은 얼굴이 땅바닥에 박힌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기절한 상태였다.
선우영은 그 모습을 보며 속 시원하단 표정을 지었다.
라우손은 앞으로 어마어마한 오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거다.
경기 전에 상대방을 다치게 만드는 비겁한 짓거리를 했는데, 그 추태를 부리고도 경기에서 졌다.
‘실력 없는 놈이 성격마저 더러우면 어떤 눈초리를 받는지 깨닫게 되겠지.’
향후 몇 년간은 계속 비난받을 거다.
인터넷에선 이번 패배에 대해 계속 이야기할 거고, 헌터들은 뒤에서 그를 욕할 거다.
이제부터 라우손의 앞길 가시밭길이다.
선우영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삐삑!!
대련을 촬영하던 드론이 승자의 이름을 불렀다.
[승자, 선우영.]
한편.
TV 중계로 그의 시합을 관전했던 다른 헌터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 시합을 통해 알았다.
선우영이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와, 추하다. 라우손.’
그 난리를 쳐놓고 패배한 라우손의 모습이 우스웠다.
한국은 선우영의 활약에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한국의 S급 헌터들은 여태껏 세계랭킹전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예선 통과만 간신히 하는 수준.
그 이상의 성과는 아무도 거두지 못했다.
그랬기에 선우영의 활약상은 한국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댓글]
댕댕이 : 선우영 만세!!
집사 : 이번에야말로 30위 안으로 들어가 보자.
빠빠토토 : 진짜 대단하다. 라우손이 전날에 선우영을 일부러 부상 입혔다는데. 그러고도 이기네. 너무 멋있는 거 아님?
한국 뉴스는 선우영의 승리 소식을 전하느라 바빴다.
크루그먼 길드 시람들이 그 이야기에 다들 기뻐했다.
신용한은 목청껏 웃었다.
‘하하하, 내가 후계자 하나는 잘 선택했군. 말년에 인복이 터졌어!!’
그의 입이 귀에 걸렸다.
김철수와 조용석.
둘은 선우영의 시합을 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렇지!! 역시 선우영 부회장님이야!! 저런 놈은 상대도 안 된다니까.”
“이야, 통쾌하네. 라우손이라는 녀석, 경기 전날에 우리 부회장님을 다치게 했다면서요!! 아주 나쁜 놈이라 생각했는데, 묵사발 내놓으니까 속이 시원하네요.”
백영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수와 조용석의 의견에 동감했다.
“선우영 부회장님이 원래 강하시죠. 라우손 녀석,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덤비다가 저렇게 됐네요.”
그녀의 말에 정운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백영희 누나 말처럼 선우영 아저씨는 최강이라고요!”
정운은 마치 자기가 경기에 나가서 이긴 것처럼 어깨를 딱 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 * *
페일은 선우영의 경기를 보고 빙긋 웃었다.
맘에 든다.
‘네가 정한 후보자 답구나.’
페일은 듀란달에 손을 얹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며 의자에 일어섰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아주 거대한 그림이었다.
한 벽면을 다 차지할 정도였다.
세로만 2M.
가로는 10M 가까이 됐다.
페일은 그림을 손으로 쓸며 그리움에 사무친 표정을 지었다.
“나의 고향.”
“나의 가족.”
“나의 동료들.”
그림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입고 있는 의복은 중세시대를 떠올리게 했으며, 설화 속에나 나오는 드워프와 엘프, 심지어 오크도 있었다.
그림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풍경이 달라졌다.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시작으로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흘러갔다.
인물들의 모습도 그에 맞춰 변했다.
의복이 달라지고.
명절이라도 지내는지 다 같이 모여 음식은 나눠 먹는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겨울에는 하늘을 향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장면도 그려졌다.
실로 경건해 보였다.
페일은 그림을 따라 걸었다.
뚜벅, 뚜벅.
그의 걸음이 멈췄다.
맨 마지막에 그려진 풍경은 불타는 세상이었다.
어느 종교를 상징하는 듯한 문양이 부러져 땅바닥을 굴러다녔다.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도 맨 마지막에 가서 변했다.
좌절, 분노, 슬픔, 허탈감.
마치 모든 걸 놓아버린 듯 멍한 표정을 짓는 인물도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 파멸이 도래한 모습.
그리고 불타오르는 세상 속에서 실루엣만 언뜻 보이는 드래곤.
그 드래곤이 저런 끔찍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페일은 고개를 떨구며.
쿵.
그림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이 애달프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페일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흐느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아주 슬프게.
그러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그림 속에 그려진 레드 드래곤을 바라보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사이타나. 반드시 너를 죽여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