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스킬융합-135화 (135/200)

#135화 세계랭킹전

미국 텍사스.

그곳에 있는 곧게 뻗은 엠스빌 빌딩.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여러분. 오늘은 세계랭킹전이 시작하는 날입니다.”

엠스빌 빌딩에 모인 방송국 기자들.

카메라맨은 빌딩 내부를 찍으며 세계랭킹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생방송을 했다.

아직 대회가 시작된 건 아니다.

오늘은 대진표를 짜는 날.

선수들이 모여 파티를 즐기고 숙소에서 쉬는 날이었다.

기자들은 헌터들을 찍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가 S급 헌터들이다.

전부 세계에 내로라하는 강자였다.

“아, 저길 보십시오. 지난 세계랭킹전에서 3위를 차지했던 최강의 방패 보르초크입니다.”

기자는 그와 인터뷰하였다.

“보르초크 씨. 이번 세계랭킹전은 자신 있으십니까? 페일한테 승리하겠다고 선언하셨던데요.”

“당연한 걸 묻지 마라. 나는 보르초크!! 이 세상 최강의 방패다.”

보르초크는 우렁차게 소리쳤다.

거대한 몸집.

김철수보다 30cm는 커 보였다. 엄청난 거구였다.

거기다 수염도 덥수룩했다.

가만히 보면 어디 전설 속에나 나오는 백전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몸에는 많은 흉터가 있었다.

몬스터와 치열하게 싸웠단 증거.

그가 얼마나 경험 많은 헌터인지 알 수 있었다.

보르초크는 우승하겠단 말만 반복하며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자기 고집이 꽤 강해 보였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고.

이번엔 세계랭킹 2위 하메잔에게 기자들이 몰려갔다.

“하메잔 씨, 인터뷰 괜찮으십니까?”

“새로운 검술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하메잔은 여유롭게 웃었다.

그는 뒷짐을 쥐고 새하얀 건치를 보였다.

“하하하, 열심히 수련한 결과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검술이 더욱 상승했죠.”

“정말입니까? 그게 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건 시합에서 보여드리죠.”

하메잔은 비밀병기를 숨기듯 대답했다.

선우영은 벽에 기대어 무알콜 샴페인을 맛봤다.

“오, 이거 맛있는데?”

파티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음식이 많았다.

그걸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아마, 김철수가 왔으면 엄청나게 좋아했을 거다.

신용한 회장님은 은퇴를 앞두고 있어 이번 세계랭킹전에 참석하지 않았다.

크루그먼 길드 소속은 선우영뿐이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헌터들을 관찰했다. 다들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강자들 뿐이다.

얼마나 강할까?

그들은 어떤 검술을 쓸까?

그게 궁금하다.

게다가 하메잔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새로운 검술을 개발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게 어느 정도지? 나랑 비등한 정도의 실력인가?’

선우영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메잔의 별명은 많다.

낭만 검객.

사막의 최강자.

세계랭킹 No.2라는 타이틀 덕분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

기자들은 헌터들과 인터뷰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선우영에겐 다가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랭킹전 첫 참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선우영이 스킬 융합 능력자란 사실은 기자들도 알고 있다.

분명 강하다.

강해도 S급이 된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렇기에 다수가 이리 생각했다.

‘의외로 좋은 결과를 가져갈 순 있어도, 30위 안에는 못 들어가겠지.’

‘예선까진 통과할 거야.’

‘그래도 본선에서 활약하기엔 부족할걸.’

뭐, 아직 선우영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다.

스킬 융합으로 빠르게 강해진 선우영. 그에 대한 정보는 오늘 다르고, 내일이 달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가 반영될 걸까?

S급 헌터들도 자기들끼리 떠들었지, 선우영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다른 헌터들의 인터뷰를 다 마치고 다가온 한국 기자들이 전부였다. 선우영은 열심히 하겠단 말로 가볍게 인터뷰를 끝냈다.

그렇게 파티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끼이익.

문을 열고 어떤 남자가 등장했다.

짙은 잿빛 머리칼.

근엄한 눈빛.

허리춤에 찬 새하얀 검.

그가 나타났다.

이번 세계랭킹전의 주최자이자, 세계 최강자 페일!

파티로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단숨에 조용해졌다.

페일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단상의 뒤쪽 벽은 새파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페일를 바라보며 가지각색의 눈길을 보냈다.

이기고 싶단 투쟁심.

무한한 존경심.

최강자를 질투하는 눈빛.

페일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아니,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는 오로지 딱 세 사람만을 찾았다.

하메잔.

보르초크.

선우영.

그는 듀란달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네가 선택한 후보자 3명이다.’

그는 마이크 앞에 다가가 목청껏 소리쳤다.

“이번 세계랭킹전에 참가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판에 박힌 인사말.

페일은 그 외에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다 생략하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지금부터 세계랭킹전의 시작을 알립니다-!!”

단상의 뒤쪽 벽을 가린 파란 천이 아래로 내려가고.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헌터들의 이름이 쓰여 있는 전광판이 등장했다.

대진표를 추첨하는 기계가 단상의 바닥에서 올라왔다.

찰칵찰칵.

기자들은 이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페일은 공을 무작위로 뽑는 기계를 통해 대진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참가인원 600명.

10명끼리 그룹을 묶어 예선전을 펼친다.

한 그룹에 승자는 1명.

그렇게 60명까지 인원을 줄인다.

그다음이 본선.

1:1로 붙어서 토너먼트전을 갖고. 15명이 남았을 때, 패자 부활전으로 한 명을 더 뽑는다.

그 후 남은 16명이 계속 토너먼트전을 가져 최후의 승자를 가린다.

그 때문에 세계랭킹전은 대회 기간만 한 달이나 걸린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어야 차지하는 1등.

페일은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았다.

선우영은 대진표를 바라봤다.

그가 속한 그룹은 G그룹이었다.

“흐음.”

하메잔, 보르초크, 페일.

그들과 다른 그룹에 속해있었다.

대진표를 보면…….

‘30강에서 보르초크 만나고 15강에서 하메잔, 페일은 결승전인가?’

참 재미있게 짜인 대진표다.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대진표 발표가 끝나고, 파티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분위기가 날카롭다.

다들 자기와 싸울 상대를 노려봤다.

기자들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장면이야말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우니, 반드시 찍어야 했다.

선우영은 샴페인을 식탁에 놓았다.

뭐, 보르초크를 만나기 전까진 눈여겨볼 만한 상대는 없어 보였다.

쉽게 올라갈 듯싶다.

대회는 내일부터 시작이니, 오늘은 푹 쉬어야겠다.

그래야 컨디션 조절이 가능하니까.

그리 생각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순간,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쳤다.

정확히는 그쪽에서 부딪혀왔다.

선우영은 어깨를 일부러 부딪친 남자를 쳐다봤다.

‘이르헨티나의 S급 헌터, 라우손’

놈은 싱긋 웃었다.

“하하하, 이런 어깨가 부딪혔네요.”

“…….”

“아, 동양에서는 선후배 문화가 중요하다죠? 제가 업계 선배이니, 사과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후배님?”

라우손은 우아한 손짓과 함께 사과를 요구했다.

선우영은 눈을 부릅떴다.

‘저 새끼가?!’

남미 사람한테 기막힌 꼰대 발언을 듣게 될 줄이야.

예상도 못 했다.

선우영은 라우손이 왜 이러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기를 죽여보시겠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거렸다.

첫 참가라고 하지만, 선우영은 스킬 융합 능력자.

포텐셜이 높다.

그러니 어떻게든 기선 제압하겠단 게 아닌가.

라우손은 입꼬리를 올렸다.

“고개 숙이라고. 선배가 하는 말 안 들려?”

하, 이젠 반말이다.

저쪽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생각이 있다.

선우영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크윽!! 어깨가! 뼈가 부러진 것 같아!”

표정을 구기며 덜덜 떠는데, 진짜로 어딘가 다친 사람 같았다.

그 모습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까 라우손과 선우영이 부딪히던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선우영은 남들 다 들으라고 더욱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크아악!! 라우손이…… 내 어깨를……!”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눈초리가 싸하게 변했다.

그들은 라우손을 째려봤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예선전 상대를 다치게 한 거야?”

“허, 저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저런 놈들 때문에 헌터들이 욕먹지.”

라우손은 주변 말소리에 움찔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선우영의 기선을 제압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선우영을 공격해 쓰러뜨린 파렴치한이 됐다.

“아니, 잠깐만. 내 얘기를….”

라우손이 변명하려 하자 선우영이 더욱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내 어깨!! 의사 좀 불러줘. 포션이 필요해!!”

상황이 점점 재미있게 흘러갔다.

주체자였던 페일은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주체자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이었으니까.

“이게 무슨 짓이죠?”

페일이 직접 라우손에게 따져 물었다.

라우손은 움찔했다.

“아니, 그게….”

“내일 대결 상대를 시합 전에 다치게 하다니. 상당히 실망입니다.”

“그게 아니라….”

“변명은 됐습니다. 라우손 씨를 이번 대회에서 퇴출하겠습니다.”

“아, 안 됩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훈련을 견뎌왔는데!!”

“그럼 선우영 씨에게 사과하십시오.”

“네?”

라우손은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사과하라고?

가짜 연기로 자길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저 녀석한테?

“그건 못 합니다.”

“그럼, 이번 대회에서 퇴출하겠습니다.”

“…….”

라우손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약간 아랫배가 눌리는 기분도 느껴졌다.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식겁함이 동시에 그를 덮쳤다.

어쩔 수 없다.

라우손은 선우영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흡닌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를 꽉 깨무느라 발음도 이상하게 나왔다.

선우영은 사과를 받아줬다.

“아무리 제가 이번 대회에 첫 참가지만, 다음부턴 이러시면 안 됩니다.”

“…네.”

라우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선우영은 천천히 일어나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카메라에 찍혀 전 세계에 생방송 되었다.

그야말로 치욕이었다.

향후 몇 년간 라우손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할 거다.

터벅, 터벅.

선우영은 천천히 의무실로 걸어가며 아무도 모르게, 라우손에게 썩은 미소를 보여줬다.

더 열받으라고.

그 미소를 본 라우손은 눈이 시뻘게졌다.

‘이 망할 자식이!!’

놈은 다짐했다.

이번 G그룹 예선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선우영을 반드시 이기겠다고 말이다.

한편.

페일은 의무실로 걸어가는 선우영을 바라보았다.

사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기선을 제압하려고 라우손이 시비를 걸었고, 선우영이 연기해서 반대로 물 먹였다는 걸.

알고도 선우영을 도와줬다.

페일은 피식거리며 듀란달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재미있는 후보야. 선우영은….’

* * *

다음 날 아침.

선우영은 말똥말똥한 얼굴로 일찍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꺼내고.

끼이익.

창문을 열었다.

아침 공기가 제법 상쾌하다.

“기분이 좋네.”

탁자에는 오늘 자 신문이 올려져 있었다.

1면에 대문짝만하게 라우손의 추태를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놈을 아르헨티나의 수치라며 욕하는 이야기부터, 과거 이력까지 들추며 욕하는 기사도 있었다.

선우영은 흐뭇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캔 커피를 홀짝였다.

“라우손. 그 망할 놈을 예선전에 떨어뜨리러 가볼까.”

선우영은 캔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해맑은 웃음으로 용광검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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