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검강
선우영은 아버지에게 부탁해 오러 압축과 컨트롤에 대한 스킬석을 구했다.
대략 깨진 비용만 90억 가까이 됐다.
뭐, 지금의 선우영에겐 그리 아까운 금액은 아니었다.
선우영은 그걸 전부 흡수해 사자심왕과 융합시켰다. 덕분에 오러의 질이 확 상승되었다.
‘다시 한번 해보자.’
그는 크루그먼 길드의 지하 대련장에 홀로 있었다.
숨을 길게 들이켜고.
정신을 극한으로 집중해 검강을 만들었다.
극한으로 압축된 오러를 컨트롤해서 칼날에 엮이도록 만들었다.
칼날이 점점 선명하게 빛났다.
검강의 심오한 기운 때문에 대기까지 떨렸다.
그러나,
“큭!”
검강은 깨진 유리 파편처럼 부서지며 바스러져 사라졌다.
선우영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하도 답답해서 고개를 위로 올려 전등을 바라봤다. 백열전구가 새하얀 자신의 머릿속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오러의 압축.
컨트롤.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능력치를 늘렸다.
이만하면 충분히 되고도 남을 텐데, 무엇이 부족하기에 안되는지 모르겠다.
“오러의 총량이 부족한가?”
아니다.
지금까지 흡수한 스킬석만 몇 개인가?
오러 총량 늘리겠다고 어마어마한 양의 스킬석을 사자심왕과 융합시켰다.
“설마, 구닥다리 무협지처럼 깨달음이네 뭐네 하는 게 필요한가?”
선우영은 눈을 반쯤 감았다.
진짜 그런 거라면 좀 곤란하다.
‘어디 물어볼 때도 없잖아. 제기랄,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는데.’
뭐, 어쨌든!!
문제는 유지력이다.
집중력이 부족해서 유지력이 약한 걸까.
아니면 정신력의 문제일까?
‘에휴, 혼자 끙끙 앓아봐야 뭐하냐. 속병만 생기지.’
선우영은 대련장을 나섰다.
스마트폰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7시 30분이다.
대련으로 동료들을 훈련시키고, 남아서 개인 훈련하다 보니 어느새 이 시간이었다.
정운도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은 그림자 다루는 능력이 많이 늘어서 비행기로 만들어 타고 다녔다.
‘시간도 늦었는데. 간단하게 밥이나 때울까?’
선우영은 용광검을 칼집에 넣었다. 검강을 완성하지 못한 탓인지 오늘따라 기분이 별로였다.
맨얼굴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몰려드니, 선글라스를 꼈다.
그렇게 길드 정문을 나서는데.
“하, 제길.”
하다 하다 이젠 밖에 눈도 온다.
우산도 없고.
그냥 눈을 맞으면서 가야겠다.
기분이 별로라서 그럴까?
눈이 코트에 조금 쌓였을 뿐인데 어깨가 무겁다.
“이제 슬슬 봄인데. 뭔 눈이야.”
투덜거리는 선우영.
뜨끈한 국밥이나 먹을까 했는데, 하필이면 사람이 꽉 찼다.
다른 음식점들은…….
하이고, 여기저기 전부 만석이다.
“편의점에나 들어가서 커피나 한잔 마셔야지.”
삐로롱.
편의점에 들어가자 점원이 반겼다.
“안녕하세요.”
선우영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점원이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매했다.
점원한테 컵을 받고, 기계 버튼을 조작해 커피를 내렸다.
향기는 괜찮았다.
‘원두를 새것으로 썼나 보네.’
그리 생각하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맛은 뭐… 그냥 편의점 커피였다. 달달하지도 씁쓸하지도 않은 애매한 맛.
편의점은 항상 이런 식이다.
‘냄새만 좋았지, 맛은 애매하단 말이지.’
그러고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왔다.
반짝이는 머리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이었다.
옷은 회색이고.
나이도 지긋해 보이셨다.
‘스님?’
편의점에 갑자기 스님이 들어왔다.
스님은 자신처럼 커피를 시키고 의자에 앉았다.
커피를 호호 불며 호로록 마시는데,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지었다.
날이 추워서 몸 좀 녹이러 왔나 보다.
선우영이 생각 없이 반들반들한 머리를 쳐다보자 스님이 머쓱했는지 말을 걸었다.
“커피가 참 맛있죠?”
“아, 네. 커피가 맛있네요.”
선우영은 순간 아차 싶어서 얼른 대답하고 정면을 바라봤다.
스님은 커피를 홀짝였다.
맛없는 커피였는데도 흐뭇한 표정으로 드셨다.
정말 해맑은 미소였다.
스님은 느닷없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젊은 분께서 뭐가 그리 고민이 많으십니까?”
“예?”
선우영은 눈을 껌뻑였다.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는데 혹시 표정이 드러난 걸까?
스님은 커피를 홀짝였다.
“비록 깨달음이 부족한 스님이지만, 젊은 분의 고민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선문답이에요?”
“허허허,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혹시 돈 받으세요?”
“본 스님은 젊은이 돈이나 탐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부처님 뜻을 따르고자 할 뿐이죠.”
“그게 뭔데요?”
“서로 사랑하라.”
선우영은 스님의 말씀에 피식 웃었다.
나쁜 사람 같진 않고.
그냥 오지랖이 넓은 사람 같았다.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제가 헌터인데, 익히고 싶은 기술을 익히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러시군요.”
스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우영은 있는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놨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라서 자기 속마음 밝힐 수 있는 상황이.
“그 기술이 익혀지지 않으니까 답답하네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할 땐 오히려 생각을 가라앉히십시오.”
“네?”
“어떻게 하느냐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간혹 마음이 이끄는 대로, 혹은 이치에 따르는 마음으로 행해보십시오.”
“그것도 부처님 가르침입니까?”
“아뇨, 이건 스님의 인생관입니다. 물아일체의 ‘아’을 깨닫는 방법이랄까요?”
“네? 물아일체의 ‘아’가 무슨 뜻입니까?”
“나 자신을 아는 것. 나 자신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
선우영은 알 듯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스님은 빙그레 웃었다.
“나를 깨닫고 자연을 깨달아 하나가 되는 경지, 그게 물아일체입니다.”
선우영은 뭔가 힌트를 얻은 기분이었다.
호로록.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신 스님.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좋은 성취가 있길 빌겠습니다.”
스님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선우영은 커피가 든 종이컵을 흔들며 생각에 잠겼다.
종이컵이 흔들리자 커피도 좌우로 흔들렸다.
흔드는 걸 멈추자 커피의 진동도 멈추며 잔잔해졌다. 거기엔 오로지 선우영의 모습만이 비쳤다.
오로지 자신만이 있었다.
거기엔 흔들림도 복잡한 심경도 없다.
선우영은 커피를 확 들이켰다.
벌컥, 벌컥.
커피를 단숨에 삼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시 크루그먼 길드로 돌아가 대련장에 홀로 섰다.
숨을 길게 들이켰다.
폐로 들어가는 공기가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스르릉.
선우영은 허리춤에서 용광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강을 만들었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시도해봤다.
만들겠단 염원은 담았지만, 자신의 오러를 강제로 조종하지 않았다.
압축된 오러를 내버려 두며.
그저 원했다.
검강을 만들고 싶다고.
자신의 오러가 흘러가는 흐름을 따랐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다.
압축되었던 오러가 의지에 반응하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조종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으로 바랐을 뿐이었는데 뭔가가 변한다.
칼날에 엮이는 오러.
그게 지금까지와 달랐다.
어렵게 하나하나 엮는 게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걸으려 하듯 자연스럽게 됐다.
선우영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검강을 바라봤다.
자연스럽다.
여태껏 유지하지 못하고 깨지고 사라졌던 검강.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유지하는 게 숨 쉬듯 자연스럽다.
선우영은 검을 휘둘렀다.
검강을 유지하며 삼환검술을 펼쳤다.
검강이 가진 강대한 기운에 대기가 흔들리고 강력한 에너지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의지.
하나의 세계.
선우영은 삼환검술의 마지막 초식을 펼치고 빙긋 웃었다.
‘검강을 완벽하게 익혔군.’
강기를 육체에 두르면 호신강기.
무기에 두르면 검강.
검강을 습득한 시점에서 호신강기도 습득했다고 봐야 했다,
물론 호산강기와 검강을 동시에 사용하려면 어마어마한 오러가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선우영에겐 오러는 차고 넘쳤다.
‘이번 세계랭킹전에서 어쩌면 페일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는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는 검강을 풀고 용광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선우영은 포르쉐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붉은 차가 도로를 질주했다.
끼이익.
빨간 신호에 걸려 잠깐 정차했다.
그는 라디오를 틀었다.
헌터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라디오 방송을 틀었다.
‘오늘은 뭔 뉴스가 있으려나?’
주로 헌터들의 연애 생활이나 사생활을 내보내는 방송이니.
‘또 누구가 누구랑 사귀었네, 이런 내용 나오겠지.’
그리 생각했건만.
라디오 방송은 굉장히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 세계최강의 헌터 페일! 페일이 드디어 세계랭킹전 날짜를 발표했습니다.
- 날짜는 4월 21일. 장소는 미국의 텍사스. 경비 비용은 하리온 길드에서 전액 부담한다고 합니다.
- 앞으로 두 달 정도 남았네요.
- 초청장은 한 달 뒤, 3월 14일에 보낸다고 합니다.
선우영은 핸들을 꽉 쥐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세계랭킹전은 전 세계 S급들에게 초청장을 준다.
이 대회의 참가 조건이 S급이니까.
당연히 자신에게도 세계랭킹전 초청장이 올 거다.
‘기대되는걸?’
도로 신호등에 초록 불이 바뀌고.
부르릉.
선우영은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
* * *
하리온 길드.
페일은 홀로 의자에 앉았다.
책상에 펼쳐진 노트.
그는 거기에 무언가를 사각사각 적기 시작했다.
펜이 천천히 움직였다.
페일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아쉬움. 한탄.
괴로움. 자괴감.
그러한 감정들이 글씨체에서 묻어나왔다.
“…….”
그는 노트를 서랍에 집어넣었다.
듀란달을 들고 발코니에서 밤하늘을 구경했다.
끼이익.
누군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페일은 상대를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달을 구경하며 자신의 듀란들을 꼭 쥐었다.
방에 들어온 인물은 미국의 헌터 협회장, 토마스 손 허튼.
그는 페일에게 다가갔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두들겼다.
“페일.”
“무슨 일이시죠?”
“이번 세계랭킹전 자신 있겠지?”
“……저는 그저 진정으로 절 이길 사람을 기다릴 뿐입니다.”
“또 그 소리군.”
토마스 손 허튼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토마스 손 허튼은 팔짱을 꼈다.
“자네는 절대로 패배해선 안 돼. 이미 미국의 상징이 된 사나이니까.”
“저한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텐 중요해!!”
토마스 손 허튼은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 때렸다.
넓은 방으로 소리가 울렸다.
페일은 무심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토마스 손 허튼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하고 있겠지? 우리는 자네를 위해 뒤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단 사실을.”
“그 대가는 충분히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것도 부족해.”
“미국을 S급 헌터가 가장 많은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위상을 높여드렸죠.”
“그랬지.”
“마석을 이용한 사업도 제가 가르쳐드렸죠, 덕분에 미국은 큰돈을 벌었고요.”
“그랬지.”
“그러니 이제 일일이 찾아오시는 건 그만뒀으면 합니다.”
“안 되지, 안 돼.”
토마스 손 허튼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씨익 웃었다.
“잊지 말게나. 미국 정부는 자네가 게이트에서 나왔단 사실을 숨겨주고 있다고. 우리가 나서지 않았다면 자네는 지금쯤 실험체 신세를 면치 못했을 거야. 잊지 말게.”
“…….”
“앞으로도 우리가 시키는 일에 따라주게. 게이트의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