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테러범.
토마시 라토.
그는 지하 1층 창고로 들어갔다.
가장 아래층을 부숴야 건물의 모든 층이 주저앉으며 부서진다.
그러면 이번 IMEP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놈은 주머니에서 기계 장치들을 꺼냈다.
시한폭탄이었다.
TNT 5kg짜리 폭탄이니 건물을 바치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부숴버리기 충분했다.
그걸 설치하려던 순간.
“야, 너 뭐하냐?”
그림자로 어둑어둑한 창고 끄트머리에서 소리가 들렸다.
토마시 라토는 흠칫 놀랐다.
놈은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냈다.
날카로운 날붙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우영이었다.
그는 토마시 라토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너, 뭐하냐고.”
“jak?!”
토마시 라토는 무어라 소리 질렀다. 횡설수설하며 적의만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선우영은 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폴란드 언어를 쓰는 듯한데…….
‘이래선 범행 동기도 모르겠네.’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뭐 동기야 아무렴 어떤가, 저놈이 폭탄을 설치하지 못하게 막으면 됐지.
선우영은 놈의 실력을 가늠해봤다.
단도를 쉰 자세가 어설프다.
풍기는 오러의 기운도 생각보다 미약한 편이고.
전투력 자체는 약해 보였다.
‘맨손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는데?’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그는 토마시 라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놈이 단도로 폭탄을 가리켰다.
다급한 표정으로 꽥꽥 소리 지르는데, 마치 욕하는 것 같았다.
제정신이 아닌 듯싶었다.
선우영은 움찔했다.
토마시 라토를 쓰러뜨리는 건 쉽지만, 녀석이 지금 당장 폭탄을 터뜨리면 곤란하다.
선우영은 알았단 듯이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양손을 올리면서.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란 의미였다.
토마시 라토는 얌전해진 선우영을 보자 단도를 허공에 휘두르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때였다.
선우영은 투명화를 썼다.
투명화와 융합한 텔레포트까지 써서 단숨에 토마시 라토의 앞으로 이동했다.
퍼억!!
그는 놈의 턱을 가격했다.
이빨이 옥수수 알갱이처럼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시뻘건 피와 함께 말이다.
토마시 라토는 눈이 까뒤집혔다.
뇌진탕이 일어나 그대로 자빠져 일어나질 못했다.
녀석은 쓰러지면서 폭탄을 놓쳤다.
선우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저거 폭탄이다.
미세한 충격에 폭발할지도 모른다.
“이런, 제기랄!!”
선우영은 얼른 손을 뻗어 시한폭탄을 손으로 낚아챘다.
혹여나 폭발할까 봐 몸으로 끌어안았다.
이러면 자신의 육체가 어느 정도 폭발력을 받아낼 테니까.
눈도 꼭 감았다.
하지만 시한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다행히 폭발할 정도의 충격은 안 입은 모양새였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자칫 터지기라도 했다면 이곳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죽었을 거다.
선우영은 움츠렸던 몸을 폈다.
그리고 토마시 라토를 날카롭게 째려봤다.
“이 새끼, 사람 힘들게 하는 재주가 있네.”
선우영은 조심스럽게 폭탄을 벽에 세워두고 토마시 라토의 허리를 걷어찼다.
가벼운 분풀이 이후.
선우영은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도 프라임 건물에서 테러범을 잡았으니 즉시 이 녀석을 이송하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우영의 이야기.
경찰들은 우르르 지하 1층 창고로 몰려왔다. 권총까지 장전하면서 말이다.
선우영은 혹여나 토마시 라토가 정신을 차릴까 봐, 몸을 제박했다.
양손을 붙잡고 등을 무릎으로 눌렀다.
경찰들은 서둘러 토마시 라토에게 은팔찌를 채웠다.
뒤이어 들어온 폭탄 전담반이 시한폭탄의 뚜껑을 열어 내부를 살폈다.
“휴, 다행히 아직 작동을 안 했네요. 구조도 옛날식이라 단순하고요. 금방 해체할 수 있겠습니다.”
천만다행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폭탄 전담반은 니퍼를 꺼냈다.
그러고는 무슨 줄을 자르더니 이걸로 끝이라고 말했다.
굉장히 손쉽게 끝났다.
선우영은 눈을 껌뻑거렸다.
‘이렇게 쉽게 해제할 수 있는 폭탄이었다고? 미래에선 이 폭탄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인들이 죽어서 난리였는데?’
선우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어쨌든 이걸로 기업인들이 죽을 일은 없어졌다.
사건 종료.
선우영은 송도 프라임 건물을 나섰다.
* * *
IMEP는 도중에 끝났다.
테러범이 있었으니, 계속할 순 없었다.
기업인들은 일시 대피했다.
각자의 호텔방으로 돌아가 사태 파악에 힘썼다.
이 소식은 뉴스 속보로 나갔다.
토마시 라토가 왜 테러를 일으키려 했는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 토마시 라토는 평소에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피해망상증이 있어 전 세계 기업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죽이려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망상증이 심해져 평소 복용해야 했던 약도 먹지 않았던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신질환자였다.
이상한 망상증에 빠져 IMEP에서 테러를 일으키려 했단 거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한 사람의 이름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 이번 사건 또한 선우영 헌터가 해결했습니다. 테러범을 잡아준 덕분에 경찰이 안전하게 폭탄을 제거했다고 합니다.
선우영은 다시 한번 유명세를 떨쳤다.
기자들이 그와 이야기해보고 싶다며 달려들었지만, 선우영은 취재를 거부했다.
귀찮았으니까.
간단한 경찰 조사만 받고 끝냈다.
테러범이 어떻게 지하 1층으로 올 줄 알았냐고 묻는 말에 한마디로 대답했다.
“화장실을 찾다가 실수로 길을 잃어버렸어요. 무슨 문이 있길래, 혹시 화장실이 있나 싶어 들어갔었죠.”
“네. 그래서요?”
“거기도 화장실이 아니길래, 여긴 화장실이 어딘가 싶어서 나가려는데……. 웬 놈이 들어오는 게 아닙니까.”
“그 녀석이 토마시 라토였나요?”
“네. 뭘 주머니에서 꺼내서 뭐 하느냐 물었더니 칼로 절 위협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압하고 봤는데, 자세히 보니 녀석이 들고 있는 물건이 폭탄이지 뭡니까.”
선우영은 술술 거짓말을 꺼냈다.
토마시 라토를 잡기 전에 미리 생각해둔 변명거리였다.
경찰은 그 말을 전부 믿었다.
여태까지 많은 사건을 해결해온 선우영이 아닌가.
더군다나 경찰들을 도와 범죄조직을 소탕한 경험도 있어, 경찰들은 그의 말을 믿어줬다.
그렇게 경찰 조사가 끝났다.
선우영은 집으로 돌아왔다.
“어휴, 피곤하다.”
토마시 라토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조사받느라 정신적으로 피로했다.
오늘 하루는 푹 쉬어야겠다.
선우영은 소파에 앉았다. 있다가 양념치킨 시켜서 닭 다리를 뜯어먹어야겠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군가 했더니 아버지다.
선우영은 수화기 그림을 터치해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너 테러범 잡았다며! 어디 다친 곳은 없냐?”
“저 S급 헌터입니다. 제가 다칠 일이 있겠어요? 걱정도 팔자 세요.”
“안 다쳤다니 다행이네.”
아버지는 그리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IMEP에 참석했던 기업가들이 너를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더라.”
“왜요?”
“식사라도 대접해서 감사 인사하고 싶다던데?”
“아, 그러면 서울에 있는 플라자 호텔로 오라고 하세요. 거기 식당이면 같이 식사하기 좋을 거예요.”
“그래 알았다.”
선우영은 통화를 끊었다.
어쩌다 보니, 세계적인 기업가들과 함께 식사할 자리가 마련됐다.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는데.
이거 기회 같다.
선우영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국제 길드 창설에는 굉장히 많은 돈이 깨진다. 만약 기업들에게 투자받아낼 수 있다면 한결 숨통이 트일 거다.
그러면 국제 길드 창설의 속도가 더 빨라질 거다.
‘간만에 옷 좀 차려입어야겠네.’
선우영은 드레스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값비싼 양복을 입었다.
향수를 뿌리고, 반짝이는 은색 손목시계를 찼다.
그다음 세면대로 갔다.
왁스로 머리 좀 간단하게 만졌다.
마지막으로 구두.
세련된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그럼 가볼까!”
선우영은 문을 나서며 재킷을 입었다.
* * *
플라자 호텔.
그곳에는 룸 형식으로 된 양식당이 있었다.
선우영과 만난 기업인들은 총 20명.
전부 이름만 말해도 알 수 있는 브랜드 기업들이었다.
선우영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백발의 노인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우영 씨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다른 기업인들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이 은혜는 갚겠습니다.”
선우영은 껄껄 웃었다.
“괜찮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니 고개 숙이지 마세요. 자자, 이러다 음식 식겠습니다. 어서 들죠.”
선우영은 그리 말했다.
굉장히 부드러운 말투에 기업인들은 호감이 생겼다.
큰 공로를 세웠는데 겸손하다.
게다가 S급 헌터가 아닌가.
거기다 PS웨펀을 세운 대표이니 사업수완도 좋다고 봐야 했다.
그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스테이크를 썰고 레드와인으로 입맛을 돋웠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 타임이 됐다.
과일과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기업가들이라 그런지 주로 돈 되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우영도 이야기에 잘 참가했다.
그러다,
“제가 요즘 하고 싶은 사업이 하나 있습니다.”
슬슬 국제 길드에 대한 운을 띄웠다. 사업이란 이야기에 기업가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거 비밀 이야기니까, 여러분만 알고 있어 주십시오.”
“어디 가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은인인데 당연히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선우영은 슬쩍 미소 지었다.
그는 본론을 꺼냈다.
“제가 크루그먼 길드를 국제 길드로 만들려고 합니다.”
“네?!”
“국제 길드라니….”
“그거 페일이 추진하려 애쓰는 사업이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기업가들은 흥미를 보였다.
국제 길드에 관한 이야기는 꽤 화젯거리였다.
선우영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해마다 발생하는 게이트의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증가율이 계속된다면 여러 국가에서 헌터가 부족해 게이트를 닫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기업가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들 공감한단 분위기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적은 나라는 그만큼 땅값이 비싸고, 공장이 몰려드는 추세다.
지금은 그 상황이 격화되는 중이다.
선우영은 목청을 높였다.
“헌터가 적은 나라는 게이트를 닫는데 힘드니, 국제 길드가 나서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의 보상도 얻는 거죠.”
기업가들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경제력은 좋지만 헌터가 부족해 허덕이는 나라도 봤던 만큼 공감이 갔다.
게다가 게이트가 잘 관리되어야 무역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게이트 브레이크를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상당한 손해도 감수할 나라는 넘칠 정도로 있었다.
선우영은 마지막으로 자기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국제 길드를 만들려면 자금력이 많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 이 사업에 투자해주신다면, 제가 게이트를 닫는 일에 한 몸 바치겠습니다.”
기업가 중 한 명이 식탁을 탕 때렸다.
아주 속 시원하단 듯이 말이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돈을 아껴서야 되겠습니까.”
“저도 투자하지요. 제가 볼 적엔 국제 길드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우리 기업도 투자하겠습니다. 게이트 때문에 입은 무역피해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기업가들은 모두 투자하겠다 소리쳤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우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금도 생겼으니, 좀 무리를 하더라도 국제 길드를 더 크고,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