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잠깐 휴식.
주변에 뱀파이어의 시체가 널렸다. 흩뿌려진 피는 악취를 풍겼다.
1차 전투가 끝났다.
“아이고, 죽겠다.”
김철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강철 육체는 이곳저곳 긁힌 상처가 많았다.
스르륵.
육체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자 입었던 부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행히 근육이나 뼈까지 다치진 않았다.
그러나 피부가 잔뜩 긁혀있었다.
이곳저곳 시뻘건 생채기가 길쭉하게 났다.
“아오, 쓰라려.”
김철수는 상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몬스터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다쳐본 건 처음이었다.
‘A급 몬스터가 강하긴 하네. 보스급도 아닌데 이렇게 버거울 줄이야. 그래도 어느 정도는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간신히 자기 역할을 해냈다. 반대로 말하면, 발목을 잡을 뻔했단 의미다.
‘확실히 이런 녀석들과 계속 싸우면 실력은 늘겠네.’
강자와의 싸움은 실력을 늘려주니까.
선우영은 김철수에게 다가가 포션을 나눠줬다.
“이걸로 상처 좀 치료해요.”
“감사합니다.”
김철수는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했다.
포션을 뿌리자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흉터도 남지 않았다.
선우영은 정운에게도 포션을 줬다.
어깨를 가격당해 부상을 입은 정운은 포션을 뿌리며 신음을 흘렸다.
“크윽!!”
상처가 아물며 느껴지는 몸의 변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렇게 상처 입어본 적도 처음이다.
보통은 원거리에서 공격해 적들이 다가오기 전에 쓰러뜨렸다.
이렇게 근접전으로… 게다가 자신보다 더 강력한 상대와 싸워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전을 겪으며 성장하는 방식은 혹독했다.
‘그래도 선우영 아저씨가 제안하셨잖아! 분명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자신의 우상 선우영.
그가 제안한 방법이니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백영희는 부상이 없었다.
조용석도 정운이 지켜줘서 다친 곳이 없었다.
선우영은 휴식 시간을 줬다.
힘겨웠던 싸움이었으니,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모두에게 초코바를 하나씩 줬다.
두들겨 맞느라 체력이 많이 소모됐는지, 김철수는 초코바를 한 번에 3개나 씹어먹었다.
저 부상에도 식욕은 여전했다.
선우영은 한명 한명 살피며 다들 어떤 걸 깨달았는지 확인해봤다.
백영희는 걱정 없고.
김철수와 정운은 격한 싸움으로 오러와 육체가 강화될 것 같다.
조용석의 경우엔….
‘자기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정한 모습이군.’
미래의 조용석은 3가지 스킬을 전부 패시브 스킬로 익혀버린다.
선우영은 그게 좀 아쉽게 느껴졌었다.
버프 능력은 조용석이 강해질수록 효과가 늘어난다.
S급이 된 조용석의 버프는 패시브 스킬을 4~5개나 얻은 효과를 냈다.
덕분에 탱커가 딜을 하고, 딜러가 탱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도 조용석은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니 패시브 스킬을 익히는 건 아깝다.
게다가 조용석의 무예는 백영희 수준으로 뛰어나지 않다.
무술만 따지면 S급 중에서도 가장 약했던 인물. 그러니 차라리 원거리 공격 스킬을 익히는 게 더 유리하다.
버프를 주고 나면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이 계속 펼쳐지니 팀 전체가 수비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는 조용석도 원거리 공격 스킬로 싸우는 게 좋았다.
‘뭐 조용석도 그걸 깨우친 모양이네.’
선우영은 그의 표정을 살펴보고 그리 생각했다.
나중에 어떤 원거리 스킬을 익혀야 하는지, 또 원거리 교전법엔 무엇이 있는지 가르쳐줘야겠다.
그렇게 30분을 쉬었다.
선우영 일행은 포메이션을 유지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또 뱀파이어가 나타났다.
전투 양상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김철수는 몸을 강철로 변화시키고 뱀파이어들한테 도발을 써서 두들겨 맞았다.
김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오러를 사용해 몸을 가능한 강화시켰다.
회피가 아닌 방어에 집중해 급소를 보호하며 맷집을 앞세웠다.
그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제법 많이 입었지만, 치명상이 될 상처는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낫다.
처음 전투에선 그냥 얻어맞았다면, 지금은 급소는 보호해 최대한 맷집을 앞세우겠단 전략을 취했으니까.
덕분일까.
백영희는 뱀파이어들을 쓰러뜨리는 게 한결 편해졌다.
이후, 뒤에서 또 뱀파이어들이 나타났다.
조용석을 지키겠다며 정운이 나섰다. 또 그림자를 갑옷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그림자를 퍼뜨렸다.
선우영은 조언을 던졌다.
“탱커처럼 싸우려 하지 말고, 검으로 싸워. 넌 딜러야.”
“넵.”
정운은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검으로 막았다.
역시나 힘에서 밀렸다.
발이 땅바닥을 끌며 뒤로 밀려나는데, 이번에도 선우영이 조원을 해줬다.
“힘으로 막지 마. 유연하게 공격을 흘려!!”
“넵.”
정운은 그의 조언대로 싸웠다.
덕분에 아까보다 훨씬 전투가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뱀파이어들한테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석을 향해 몇몇 뱀파이어들이 달려들었다.
정운이 황급히 땅바닥에 펼친 그림자로 창을 만들어 공격했지만, 놈들은 대다수 피해냈다.
쉐에엑.
녀석들이 조용석과 거리를 좁혔다.
조용석은 창을 휘둘렀다.
어차피 데미지를 못 준다는 걸 알았기에 방어와 회피에 중점을 뒀다.
그래도 상처를 몇 번 입었다.
어깨나 다리가 칼날에 베인 듯 찢어졌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백영희가 나사서 뱀파이어들을 쓰러뜨렸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무언가 반짝였다.
뱀파이어가 원거리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녀석의 손에 화염이 맺혔다.
조용석은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창을 던졌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원거리 공격 스킬이 없어서 창에는 오러가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날이 뱀파이어의 동공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녀석은 얼른 고개를 돌려 피했다.
현재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인원은 정운과 선우영뿐이다.
하지만 정운의 공격으로 타격을 주기엔 힘들다.
결국.
화르륵.
선우영이 화염을 쏘아 원거리 공격을 하려던 뱀파이어를 잡았다.
놈은 새카만 숯덩이가 되어 지상으로 추락했다.
선우영은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조용석을 바라봤다.
‘동체시력 좋네? 투창 던지는 실력도 괜찮고.’
뜻밖에 수확이었다.
선우영은 조용석이 익혀야 될 스킬 목록을 하나 정했다.
[오러 스피어]
오러로 만든 창.
듣기엔 별거 아닌 스킬이지만, 오러로 이루어진 창을 던져 공격할 수 있었다.
방금 조용석이 보여준 투창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러 스피어를 이용해 원거리 공격의 대가가 된 헌터가 미래에 있었다.
‘이탈리아의 창술 대가 피에르.’
그의 전투법을 따라 하면 조용석의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거다.
선우영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2차 전투가 끝났다.
“헉헉헉.”
백영희를 제외한 사람들은 녹초가 됐다.
피곤해서 움직이질 못했다.
며칠을 훈련해도 이번만큼 힘들진 않을 거다.
그들은 포션으로 부상을 다시 치료했다.
휴식을 취하며 다음 전투에 대비하려던 순간.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선우영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래도 보스 몬스터가 직접 등장한 모양이다.
뱀파이어의 왕.
드라큘라가 말이다.
붉은 옷을 입은 사내가 하늘에서 선우영 일행을 내려다봤다.
행색은 중세 귀족 같았다.
금발 머리.
새하얀 망토.
게다가 허리춤에는 검도 달렸다.
드라큘라의 뒤에는 뱀파이어 무리가 있었다.
대략 숫자가 40~50마리 정도?
꽤 많다.
선우영은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같이 싸우는 건 불가능할 거다.
‘뭐, 이번 게이트 훈련은 여기까지네.’
스르릉
선우영은 허리춤에서 용광검을 뽑았다.
다들 뱀파이어와 싸우며 조금씩이지만 성장한 모습이 보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나머지 몬스터는 자기가 처리하면 됐다.
“운아!”
“네.”
“이거 받아라.”
선우영은 포션이 든 가방을 정운한테 던졌다.
정운은 서둘러 그걸 받았다.
“그걸로 부상당한 사람들 치료 좀 해줘라. 알겠지?”
“네. 아저씨.”
선우영은 빙긋 미소를 보여주고 허공을 뛰었다.
드라큘라를 없앨 생각이다.
화르륵.
그는 맹화를 쏘았다.
시뻘건 불꽃은 저주 효과로 뱀파이어들에게 고통을 선사했다.
“크어억.”
“크아아악!!”
뱀파이어들이 고통에 신음했다.
놈들의 왕이었던 드라큘라 역시 아픔에 몸부림쳤다.
곧이어 화염이 뱀파이어들을 불살라 모조리 죽여버렸다.
남은 건 드라큘라뿐이었다.
선우영은 용광검을 휘둘렀다.
드라큘라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순간에도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맞섰다.
스걱-!!
그러나 용광검의 예기는 보통이 아니다.
드라큘라의 검은 상대도 안 됐다. 칼날이 두 동강 나서 잘렸다.
놈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나 보다.
용광검은 드라큘라의 팔목을 가차 없이 절단시켰다.
놈은 서둘러 뒤로 날아갔다.
이를 악물고 죽어버린 부하들의 시체를 바라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불타버린 뱀파이어 시체에 미세하게 남았던 피가 허공으로 떠올라 드라큘라를 향해 날아갔다.
피는 드라큘라의 잘린 손에 달라붙었고.
퍼억!
놈의 손이 도마뱀 꼬리처럼 돋아났다.
“흡혈 스킬.”
선우영은 그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드라큘라는 저런 방식으로 부상을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한 번에 놈을 죽이는 게 중요했다.
“크르윽!!”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드라큘라가 선우영에게 화염올 쏘았다.
뭐, 그래 봤자였다.
이딴 화염으로는 선우영에게 아무 위해도 될 수 없었다.
선우영은 진짜 화염이 뭔지 보여줬다.
용광검에 화염이 맺혔다.
선우영은 자신을 날아오는 불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용광검으로 불꽃을 가리켰다.
그가 자신의 화염을 쏘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폭발력을 지닌 화염.
드라큘라가 쏜 불꽃을 역으로 집어삼키고 놈을 향해 날아갔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불로 만들어진 파도가 하늘에서 밀려드는 듯했다.
“크아악!!”
드라큘라는 어마어마한 범위의 화염에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불타버렸다.
화염이 주변을 휩쓸고 사라졌을 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커먼 물체가 하늘로 떨어졌다.
모든 몬스터가 죽었다.
선우영은 숯덩이가 되어 떨어지는 드라큘라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뭔가 반짝였다.
그는 드라큘라 시체에 다가갔다.
첫 번째로 마석이 보였다.
A급 보스 몬스터답게 굉장히 커다랬다.
굉장히 비싸 보였다.
두 번째로 보인 건 스킬석이었다.
[흡혈]
죽은 생명체의 피를 흡수하여 부상을 회복시킨다.
제법 괜찮은 게 걸렸다.
위급 상황에서도 몸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스킬이 아닌가.
‘이거 참. 동료들 훈련 시키러 왔다가 오히려 내가 더 강해졌네.’
선우영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드라큘라를 처치하고 얻은 스킬을 흡수했다.
그걸 [사자심왕]과 융합시켰다. 그 결과 흡혈은 패시브 효과로 바뀌었다.
이제 시체만 충분하다면 부상 걱정은 할 필요 없겠다.
뭐, 포션으로 부상을 치료할 수도 있지만. 전투가 한창인 상황에서는 포션을 쓸 수가 없으니 [흡혈] 스킬이 더 나았다.
선우영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우와, 대단해요. 아저씨.”
정운이 눈을 반짝였다.
김철수와 조용석은 입을 턱 벌렸다.
“선우영 부회장님. 역시 대단하시네요. 저 몬스터들을 금방 해치우시다니.”
“이제 이걸로 훈련 끝났습니까?”
조용석이 묻자 선우영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이십니까? 아직 두 군데 더 가야 합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단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조용석과 김철수 그리고 정운의 표정이 시퍼렇게 질렸다.
훈련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