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말레이시아.
선우영은 동료들과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왔다.
길드에서 일주일 휴가를 받았다.
정운, 백영희, 조용석, 김철수.
자신까지 합쳐 5명과 함께했다.
김철수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콧노래를 불렀다.
흥이 넘쳤다.
정운은 비행기 안에서 과자를 먹으며 투덜거렸다.
“난 선우영 아저씨 옆에 앉고 싶었는데.”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조용석이 피식 웃으며 더 먹으라고 과자를 줬다.
“자, 먹어라.”
찌이익.
정운은 과자봉지를 까서 빼빼로를 씹어먹었다.
조용석과 김철수.
그 둘은 백영희와 선우영의 관계를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단둘이 앉을 수 있게 유도했다.
선우영의 옆자리에 앉고 싶다던 정운을 달래서 자기들과 앉도록 만들었다.
백영희는 여행이 기대됐는지 팸플릿을 살폈다.
말레이시아의 유명 관광명소가 어딘지 읽어보며 뜨거운 녹차를 한 잔 마셨다.
선우영은 의자에 기댔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을 제안한 사람은 선우영이었다.
‘쓰시마 인벌 토벌.’
그 사건이 3년 정도 일찍 벌어졌다.
그러니 다른 사건들도 본래보다 일찍 터질 가능성이 있었다.
선우영은 그게 염려되어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동료들도 설득해서 데려갔다.
쓰시마에서 고생했으니, 해외 여행 가서 신나게 놀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다들 좋아하며 동의했다.
특히나 선우영과 자주 해외여행을 다녔던 정운이 제일 반가워했다.
이젠 해외여행에 맛 들인 듯싶다.
그렇게 선우영 일행은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드디어 항공 밖으로 나왔다.
김철수는 기지개를 켰다.
“드디어 도착이다.”
내내 비행기에서 가만히 있는 게 고역이었는지 허리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조용석은 번역기 어플을 쓰며 버스 노선을 알아봤다.
“아, 이거 타면 됩니다. 이거 타고 쭉 가면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네요.”
선우영 일행은 버스에 올랐다.
부르릉.
버스 기사는 액셀을 밟았다.
정운은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처음엔 나무가 울창했는데, 가면 갈수록 건물과 번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8번째로 높다는 트윈타워가 가장 눈에 띄었다.
길거리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형성된 국가이다.
중국인. 말레인. 인도인. 원주민.
그 외에도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다.
당연히 믿는 종교도 다 다르다.
그중에서 이슬람교 사람이 많았다.
터번을 쓴 현지인들이 종종 보였는데, 정운은 그게 신기했는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끼이익.
버스가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선우영 일행은 예약했던 호텔로 걸어갔다.
뭐, 당연히 좋은 곳으로 골랐다.
높게 뻗은 호텔.
무려 5성급이다.
넓은 라운지가 눈에 띄었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복도도 보였다.
선우영 일행은 각자 예약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굉장히 넓었다.
이 정도면 5성급 호텔이란 명성이 아깝지 않다.
선우영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만약 자신의 예상대로 게이트의 발생이 빨라졌다면, 이곳에도 신종 A급 게이트가 발생한다.
그것도 꽤 잡기 어려운 몬스터가 나타난다.
문제는 말레이시아 헌터들이 이 게이트를 닫지 못했단 것이었다.
말레이시아는 헌터의 숫자가 적어서 한 번 닫는 데 실패한 A급 게이트는 자국의 힘으로 닫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해외 길드를 모집해 게이트를 닫는다.
그 게이트에 들어가겠단 경쟁이 치열했다.
또한 이번 신종 A급 게이트에서 제법 탐날만한 스킬석이 하나 나온다.
선우영은 그걸 얻고 싶었다.
그리 사색에 잠긴 순간.
텔레비전은 느닷없이 정규 방송을 멈추고 뉴스 방송을 전하기 시작했다.
선우영은 스마트폰 번역기 어플을 사용했다.
아나운서의 말이 한국어로 번역됐다.
-방금, 쿠알라룸푸르에 A급 게이트가 나타났습니다. 말레이시아 각지 헌터들이 모여 A급 게이트를 닫기 위해 나섰습니다.
선우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역시나 예상처럼 저 게이트가 일찍 나타났다.
텔레비전에는 말레이시아 헌터들이 도열하며 게이트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아마 자국에 있는 모든 헌터를 동원해 이번 게이트를 닫을 생각인가 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군대까지 동원됐다.
아나운서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국 A급 헌터들 몇몇이 다른 게이트를 닫다가 큰 부상을 입어 이번 토벌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해전술로 게이트를 닫으려 한다 했다.
선우영은 혀를 찼다.
거기 몬스터를 어떤 식으로 잡아야 하는지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도 안 믿을 거다.
거기다 말레이시아 헌터들이 실패할 거라 말해도 무시당할 게 뻔했다.
‘미래에서 온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 이런 식으로 욕이나 먹을 게 뻔해. 게다가 어떻게 신종 몬스터 공략법을 아느냐 따져 물으면 해답할 말도 없고.’
그간 쌓은 명성이 있으니 들어서는 주겠지만, 분명 헛소리 취급당할 거다.
선우영은 팔짱을 꼈다.
지금은 자기가 나서도 아무런 효용이 없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해외 길드를 모집해 게이트를 닫으려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 *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한 저녁이 됐다.
말레이시아 총리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자국의 헌터와 군대를 보냈지만, 게이트를 닫는 데 실패해버렸다.
총리는 각 부처의 장관을 불러 회의했다.
“신종 A급 게이트를 어떻게 할 건가?”
장관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실패할 줄은 그들도 몰랐다.
총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긋이 장관들을 바라봤다.
“어떤 식으로 실패했는지 알 수 있나?”
“군인들한테 카메라로 신종 A급 게이트 내부를 기록하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영상이 있으니 한번 보시죠.”
총리와 각 부처 장관들은 모니터에 띄워진 영상을 확인했다.
다들 초조한 마음으로 봤다.
모니터에 띄워진 환경은 사막.
사방이 모래로 덮여있으며 무더워 보이는 태양이 내리쬐었다.
저쪽에는 신기루도 보였다.
입자 고운 모래가 바람을 타고 움직였다.
겉보기엔 평범한 사막.
헌터들과 병사들이 조심조심 사막을 걸었다.
곧이어 땅바닥이 흔들리더니 바닥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몸체.
팔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시커먼 눈동자와 거대한 입이 보였다.
모습은 지렁이를 닮았다.
몬스터는 헌터들과 군인들을 상대로 싸웠다.
입을 쩍 벌리는데 입속에 송곳 같은 이빨이 잔뜩 자라나 있었다.
그게 입의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 쪽에도 촘촘하게 자라 있어 뭘 삼키든 박살 낼듯했다.
한 장관이 넋을 놓고 영상을 확인했다.
“소설에서나 보던 데쓰웜 같군.”
땅바닥에 숨어있다 밖으로 튀어나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특징이 데쓰웜과 너무 비슷했다.
총리와 장관들은 계속해서 모니터 영상을 분석했다.
헌터들은 데쓰웜 10마리를 쓰러뜨릴 때쯤, 후퇴를 결정했다.
이미 피해는 막심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총리는 혀를 찼다.
“쯧. 겨우 10마리 잡고 끝인가.”
그는 숨을 길게 내쉬며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지었다.
회의실 분위기가 무거웠다.
총리는 게이트 방어부 장관에게 의견을 물었다.
“자네가 볼 적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정도면 자국 헌터들만으로 해결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해외 길드를 끌어들여 게이트를 닫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역시 그럴 수밖에 없나.”
총리는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능한 빨리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길드를 골라야 했다. 땅속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괴물이 풀려나와 국민들을 습격할 걸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때였다.
헌터 영입 부처 장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 진중한 시기에 말이다!
화들짝 놀란 헌터 영입 부처 장관은 얼른 신호음을 껐다.
이 분위기에 하필 연락이라니.
그러자 끈질기게 또다시 통화가 걸려 왔다.
헌터 영입 부처 장관은 하는 수 없이 통화를 받았다.
회의 중이니 전화하지 말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는 수화기로부터 들려온 소식에 입술을 멈칫거렸다.
“알았네. 그러면 일단 그 사람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연락처와 숙박시설을 확인해주게.”
헌터 영입 부처 장관이 통화를 끊었다.
그는 곧장 총리에게 보고했다.
“총리님!!”
“뭔가?”
“지금 말레이시아에 선우영 헌터와 그 일행들이 왔답니다.”
“선우영…?”
총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다.
답답했던 헌터 영입 부처 장관이 얼른 소리쳤다.
“스킬 융합!! 그 능력을 가진 헌터가 동료들과 함께 말레이시아에 관광하러 왔다고요!”
“뭐야!!”
총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정도로 대단한 헌터가 지금 말레이시아에 와 있다니!!
이건 기회다.
재무 장관은 서둘러 의견을 꺼냈다.
“국민들의 불안은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빨리 신종 A급 게이트를 닫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선우영 헌터와 접촉해야 합니다.”
“그래. 그렇군.”
“또한 게이트 공략에 실패했던 우리 말레이시아 헌터들도 선우영 헌터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그게 좋겠군.”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둑어둑했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모든 장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선우영 헌터와 접촉해 협상에 들어간다. 다른 업무는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 당장 선우영 헌터를 만나!!”
“알겠습니다.”
* * *
선우영은 크루그먼 길드에 연락했다.
말레이시아 헌터들이 게이트를 닫는 데 실패했으니, 곧 해외 길드를 모집해 게이트를 닫으려 할 거다.
그 사실을 신용한 회장에게 알렸다.
“선우영이, 그 얘기가 정말인가?”
“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해외 길드를 모집해 이번 게이트를 닫으려 할 겁니다.”
“자네가 거기에 지원하고?”
“네. 분명 말레이시아 정부는 게이트를 한시라도 빨리 닫고 싶어 할 겁니다. 가장 빨리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헌터를 원하겠죠. 저와 제 팀원들 능력이라면 충분히 닫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용한은 잠시 침묵을 머금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선우영에게 지시했다.
“반드시 말레이시아에 나타난 신종 A급 게이트를 자네가 닫게. 그러면 공로를 인정해 길드 차원에서 보상을 주지.”
“넵.”
“그리고 게이트를 닫게 되면 말레이시아 총리와 한번 만날 수 있게 자리도 주선해주게.”
“알겠습니다.”
선우영은 통화를 끊었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신종 A급 게이트를 닫자고 설득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신종 A급 게이트가 있는데, 어떻게 편히 관광할 수 있겠나!
선우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선우영은 용광검을 허리춤에 찼다.
이제 말레이시아 총리를 만나 자기 팀이 신종 A급 게이트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면 된다.
그때였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누구십니까?”
선우영이 묻자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 신분을 밝혔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선우영은 입꼬리를 올렸다.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자신에게 접촉해왔다.
‘신종 A급 게이트를 닫아달라고 찾아왔군. 굳이 내가 가서 들어가게 해달라 설득할 필요가 없겠어.’
끼이익
선우영은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