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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스킬융합-117화 (117/200)

#117화 댁이 왜 여기 있슈?

선우영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사람.

그 인물은 가면을 써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우영은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틀림없는 듀란달이었으니까.

선우영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면의 사나이를 바라봤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세계랭킹 1위 헌터, 페일.

가면의 사나이는 바로 그였다.

페일은 절대로 듀란달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않는다.

언제나 품에 끼고 산다.

선우영은 어째서 그가 여기에 있을까 생각해봤다.

‘페일도 이번 토벌전에 참가했다고?!’

게이트 등장 시기가 바뀌더니 상황마저 많이 달라졌다.

본래는 참가하지 않는 게 미래였다.

선우영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원래 이 시기엔 페일이 일본에 자주 왔었지. 국제 길드 창설에 도움을 달라고 말이야.’

미국 정부를 설득해달라.

그걸 위해 일본에 왔다가 이번 토벌전에 참가했나 보다.

‘가면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이번 토벌전에 참가한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나 보군.’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미국 정부가 국제 길드 창설에 반대하는 처지니, 페일이 이번 토벌에 참여하려면 신분을 숨겨야 했을 거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선우영을 보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일까?

“막사로 가서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페일이 선우영에게 제안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펄럭.

그들은 아무도 없는 막사로 들어갔다.

페일은 오러를 뿜어냈다.

그걸로 막사를 감사 소리가 새어 나가는 걸 막았다.

필시 비밀 얘기하겠단 행동.

선우영과 페일은 의자에 앉았다.

공기가 무겁다.

선우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고작 대면만 하고 있을 뿐인데, 이 정도 압박감이라니.

‘과연, 세계 최강이란 건가.’

페일은 선우영을 바라보며 한마디 툭 던졌다.

“젤리.”

“네?”

“인벌 여왕에게서 젤리를 얻지 않으셨습니까?”

선우영은 정수리에 벼락이 꽂히는 감각을 맞보았다. 설마 여기서 로열젤리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로열젤리를 얻기 위해 온 건가?!’

이상하다.

로열젤리가 육체를 강화한단 사실은 미래에서 밝혀지게 된다.

현재는 아니다.

그런데 현재의 페일이 이걸 노린다?

이유가 뭘까.

혹시나 로열젤리가 가진 효능을 알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미래에서나 밝혀진 로열젤리의 효능을 어떻게 지금 알고 있냐고!!’

그걸 모르겠다.

순간, 선우영은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미래에선 쓰시마에서 얻은 로열젤리가 행방불명된다.

미래의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그걸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쓰시마에 있었어야 할 로열젤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게 말이 되는가?

A급 신종 몬스터의 시체 부산물은 돈이 된다.

신종 사업에 쓰일 재료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로열젤리 또한 챙겼어야 옳다.

이 또한 신종 몬스터한테서 얻은 부산물이니까 말이다.

그러함에도 미래의 한국과 일본 정부는 로열젤리를 챙기지 않았다.

앞뒤가 안 맞는다.

선우영은 생각을 뒤집었다.

안 챙긴 게 아니다.

‘미래의 일본과 한국……. 양국이 로열젤리를 챙겼지만, 페일이 비밀 거래로 가져갔다?’

미래에 페일이 비밀 거래를 통해 한일 양국에게서 로열젤리를 가져갔다면?

비로소 말이 맞는다.

비밀 거래이니, 한국과 일본은 로얄젤리의 행방을 묻어야 한다. 그러니 언론 발표에서는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페일이 그 정도로 로열젤리를 원하다니.’

선우영은 고심했다.

페일이 자신을 따로 만나 로열젤리의 행방을 물어보는 걸 보면, 자기가 가지고 있단 걸 눈치챈 듯하다.

‘하지만 주기 싫어.’

로열젤리는 자신이 인벌 여왕을 쓰러뜨리고 얻은 당당한 소유물이다.

아무리 최강의 헌터가 달라고 한들 쉽게 줄 수 없다.

“죄송하지만 젤리에 대해선 모릅니다.”

일단 발뺌부터 해봤다.

가면의 눈구멍이 틈새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

선우영은 순간 숨이 멎었다.

강력한 압력에 의해 몸이 짓눌리는 기분.

오장육부가 터질 듯한 감각.

이게 세계 최강이 뿜어내는 살기란 말인가.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페일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단 듯이 굴었다.

“인벌 여왕은 두 마리. 그중 제가 처리한 녀석한텐 젤리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당신한테 있단 뜻이겠죠.”

“크윽!!”

선우영은 대답 대신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못 드립니다. 저도 이게 필요하거든요.”

여유만만하게.

이런 상황에도 자신답게.

도발적인 웃음기를 보이며 말했다.

페일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이상 험악한 태도는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더욱 위압을 가하려는 페일.

그 순간.

페일의 허리춤에 찬 듀란달에 기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우웅우웅.

검이 의지를 갖고 있듯 공명하기 시작했다.

“뭣?!”

페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치 이 상황을 예상치 못했단 듯한 반응.

선우영은 어렴풋이 봤다.

가면 눈구멍 사이로 보이는 페일의 눈동자를!

그건 당혹감, 놀라움, 충격.

그리고 아주 미세한 기대감이었다.

페일의 살기가 누그러들었다. 선우영을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허억.”

선우영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페일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돌연 차분한 어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선우영 씨.”

“왜요? 또 한 번 해보시려고요?”

선우영 해볼 테면 해보란 눈빛을 보였다.

페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젤리는 필요 없어졌으니, 선우영 씨가 가지십시오.”

갑자기 태도가 바뀐 페일.

선우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갑자기 저럴까?

아까는 못 가져가서 그렇게 난리더니, 이제는 그냥 가지고 있으란다.

선우영은 듀란달을 쳐다봤다.

‘듀란달이 소리를 내며 공명하니까, 페일의 태도가 바뀌었어.’

마치 검에 설득당한 마냥!!

‘도대체 듀란달이 뭐길래, 페일이 생각을 바꿨지?’

보통 비범한 검이 아닌 듯했다.

동시에, 페일이 자신과 같다는 느낌을 얻었다.

자신이 용광검을 처음 얻었을 때랑 상황이 비슷하다.

검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상황과!

‘……?’

선우영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페일이 세계 최강자다.

그런 그가 듀란달한테 인정받지 못했단 느낌이…… 마치 검이 의지가 있는 생명체처럼…….

‘뭐야? 그게 말이 되나?’

그러고 보니, 듀란달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미래에서도 제작자는 미상이다.

페일도 세계 최강이란 타이틀만 빼놓으면 알려진 정보가 없다.

과거사가 없단 말이다!

마치 어느 순간 느닷없이 튀어나온 듯한 인물.

그게 ‘페일’이란 사람이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페일이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아무도 안 믿지만 말이다.

“그럼, 선우영 씨. 저는 가보겠습니다.”

페일은 막사를 나섰다.

선우영은 비틀거리며 막사의 받침기둥에 기대어 그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바람의 검객으로 유명한 배동건.

그가 페일의 앞길을 막아섰다.

“…….”

“…….”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배동건은 허리춤에 찼던 검을 뽑았다.

“이렇게 만나는 건 오랜만이군. 세계 랭킹전 이후 오랜만이야.”

“…….”

“처음 대회에서 만난 날. 그렇게 굴욕적으로 패배해본 적은 처음이었지.”

“그래서?”

“매일 같이 그때를 떠올리며 맹훈련했다. 나와 이곳에서 승부를 겨루자.”

“승부는 뻔하다. 넌 날 못 이겨.”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는 법이지.”

“결과를 봐야 직성이 풀리겠단 건가. 이해가 안 되는군.”

페일은 그리 말했다.

주변에 있던 헌터들은 그 둘의 대결을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배동건의 칼날에 오러와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는 정신을 집중했다.

지난번 세계 랭킹전에서 그와 싸웠던 기억을 더듬었다.

S급 헌터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배동건.

하지만

페일을 만나고 그 자부심이 부서졌다.

단 일격.

고작 단 일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승부조차 안 됐다.

그래서 이를 갈고 수련했다.

다음 세계 랭킹전에선 반드시 설욕하겠다고 말이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실력이 부쩍 늘었다. 이 정도면 페일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타닷.

배동건이 고속으로 이동했다.

바람과 함께 움직이며 칼날을 휘둘렀다.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자세.

칼날의 궤적이 실로 날카로웠다.

그러나.

타앙!!

배동건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 입이 턱 벌어졌다.

선우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페일은…….

“손가락으로 칼날을 막아냈어?!”

선우영은 중얼거렸다.

맙소사.

똑같은 S급이 맞는지 의심이 들 만큼 대단했다.

한 차원이 다르다.

배동건은 무릎을 꿇었다.

“내 공격을 맨손으로??”

충격이다.

지난번 대결에선 페일은 듀란달을 썼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맨손으로 막았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격차였다.

배동건은 허파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지난번 대결은 체면치레라도 할 수 있게 봐줬단 건가. 이번엔 아니고?’

몸에서 힘이 탁 빠졌다.

두 번 다시 그에게 도전해보겠단 패기가 안 생겼다.

페일은 무릎 꿇은 배동건을 바라보더니 돌연 막사 쪽에 있는 선우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음 세계 랭킹전.”

“?”

“거기서 뵙도록 하죠.”

“!!”

선우영은 페일이 자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놀랐다.

S급 헌터 배동건.

그보다 자신을 더욱 신경 쓰고 있단 의사 표현이었으니까.

곧이어 페일은 배를 타고 쓰시마 섬을 나갔다.

인벌들의 숫자는 많이 줄었다.

한국과 일본 헌터들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배에 올라탄 페일.

그는 듀란달의 손잡이에 손바닥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선우영. 그도 네가 택한 후보 중 하나란 거냐?”

* * *

며칠 뒤.

선우영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쓰시마 섬에 있는 인벌들을 모조리 퇴치했다.

김철수는 군대 밥이 아닌 식당에서 밥 먹자고 엄청 떠들었다.

군대 밥이 맛없긴 했다.

뭐, 그래서 선우영 일행은 간만에 뷔페에 갔다.

거기서 실컷 먹었다.

그리고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선우영과 정운.

정운은 씻고 침대로 올라가 곯아떨어졌다.

엄청 피곤했나 보다.

선우영은 로열젤리를 꺼냈다.

영약처럼 몸을 강화해주는 효과를 지닌 젤리.

그걸 입 안에 넣고 삼켰다.

꿀꺽.

맛은 약간 달달했다.

선우영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가부좌를 틀었다.

그냥 먹고 끝내면 안 된다.

오러를 순환시켜 로열젤리의 효과가 근육에 잘 스며들도록 작업해야 한다.

“후으읍.”

선우영은 숨을 길게 들이켜고 오러를 계속 순환시켰다.

그러자 변화가 나타났다.

몸이 끈적거린다.

피부 밖으로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선우영은 계속 집중했다.

근육에 무언가 스며지듯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점점 맑아진다.

오러의 순환도 점점 빨라지며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효과를 냈다.

선우영은 눈을 떴다.

로열젤리가 제대로 흡수됐다.

근육이 증대됐다.

오러의 순환이 더욱 빨라지며 육체를 강화하는 효과가 증대됐다.

그게 끝이 아니다.

피부에 시커멓고 끈적한 액체가 묻어있었다.

몸을 탁하게 만든 노폐물이 빠지고, 그 공간을 근육과 오러가 채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로열젤리의 효과?!’

굉장하다.

순식간에 강해진 기분이 든다.

오러와 육체.

기본 피지컬의 향상됐으니, S급에 한 걸음 가까워졌을 거다.

선우영은 씨익 웃었다.

“그럼 샤워나 해보러 갈까?”

몸에서 빠져나온 노폐물은 지독한 악취를 뿜어냈다.

더러운 탁기였으니 당연했다.

선우영은 그걸 모조리 씻어내고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었다.

그리고 쇼파에 앉아 앞일을 생각해봤다.

쓰시마 섬에 나타난 인벌.

본래 미래보다 3년이나 앞당겨졌으니, 다른 사건들도 더욱 빠르게 일어날 거다.

‘그러면 그 사건도 조만간 일어날지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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