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효과적인 활용법
다음날.
크루그먼 길드에 출근한 선우영.
그는 자기 자리에 앉으며 슬쩍 백영희를 바라봤다.
그들은 슬며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서류를 살피며 일에 들어갔다.
선우영은 여느 때처럼 할당된 게이트를 직원들에게 배분했다.
헌터 5팀은 활기차게 일하러 나갔다.
대다수가 일하러 나가고.
B급 헌터 몇몇만이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선우영은 커피를 마시며 서류를 살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선우영은 길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난간에 기대어 또 커피를 마셨다.
끼이익.
옥상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뒤돌아보니 백영희였다.
그녀는 선우영의 옆자리로 다가왔다.
“오늘 날씨 춥네요.”
백영희는 그리 말했다. 말할 때마다 입김이 나왔다.
“그러게요. 백영희 씨.”
“…….”
백영희는 뚱한 표정으로 선우영을 바라봤다.
선우영은 아차 싶었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가 배시시 웃었다.
“미안, 둘이 있을 땐….”
“둘이 있을 땐?”
백영희는 닦달하듯 눈매를 가늘게 떴다.
선우영은 끊어진 말을 이었다.
“둘이 있을 땐 ‘자기야!’라고 부르라 했지.”
백영희는 피식거렸다.
그렇게 됐다.
둘은 정식적으로 커플이 됐다.
선우영이 사귀자고 고백했고, 백영희는 수락했다. 달이 아름답게 뜬 밤하늘에서.
한 폭의 그림 같은 날이었다.
백영희는 그와 팔짱을 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선우영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 안에 남은 커피 향이 오늘따라 달콤하게 느껴졌다.
* * *
오후 6시가 됐다.
선우영은 주섬주섬 코트를 입고 퇴근 준비했다.
백영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퇴근 준비했다.
그들은 함께 복도를 거닐며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선우영 부장님.”
“네. 백영희 씨.”
“업무 관련해서 약간 궁금한 점이 생겨서요. 혹시 이번 주말에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선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백영희가 업무 관련으로 주말에 만나자 했겠는가.
절대 아니다.
그런 건 업무시간에 물어봤겠지.
저건 일종의 핑계다.
주말에 데이트할 핑곗거리 말이다.
단둘이 있을 때 따로 데이트 약속 잡아도 될 텐데, 그걸 참지 못하고 저렇게 돌려서 물어본다.
어떻게 보면 귀여웠다.
‘뭐, 사내 연애라서 대놓고 애정행각 보이기도 좀 그렇지.’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대놓고 ‘우리 사내 연애합니다.’ 티를 내면, 아무래도 주변 시선이 따가울 거다.
백영희가 어떠한 성과를 냈다고 치자, 거기에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도 상사가 애인을 편애한단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특히나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는 길드 분위기상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사내 연애는 들키지 않는 게 좋다. 그런 이유로 비밀 연애 중이다.
복도를 거닐던 선우영과 백영희.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쳐다봤다.
‘오, 둘이 같이 퇴근하네.’
‘드디어 사귀나?’
‘데이트하러 가나?’
사실 다들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백영희와 선우영이 연애한다는 찌라시 기사가 몇 번 퍼진 전례가 있지 않은가.
단둘이 붙어만 있어도 사내 연애 중이네 싶었다.
사내 연애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었다.
선우영이 백영희를 편애해, 업무 보상이 불공정하단 이야기가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헌터 5팀에서 선우영 다음으로 성과를 내고 있었으니까.
이미 다들 백영희의 검술 실력을 알고 있다.
그 뛰어남을 두 눈으로 봤는데, 누가 바보처럼 그딴 문제를 제기하겠나.
오히려 백영희한테 삼환검 배우는 게 이득일 거다.
“자자, 우린 일하러 가자고!”
“할 일이 산더미야.”
선우영과 백영희를 보던 사람들은 다시 일하러 돌아갔다.
몇몇 노총각 사원들이 부럽단 표정으로 선우영을 바라봤지만 말이다.
* * *
선우영은 집으로 돌아왔다.
일거리가 없었던 정운은 오늘 집에서 쉬고 있었다.
선우영의 조언으로 휴가를 냈다.
정운은 소파에 앉아 수학 숙제를 풀었다.
“운아.”
“네.”
“공부 잘하고 있냐? 학교 선생님께 전화가 오던데. 과학이랑 수학 성적이 심각하다고.”
“….”
정운은 움찔했다.
공부 중에 제일 싫은 게 과학이랑 수학이었다.
너무 어렵고 복잡했다.
차라리 영어나 국어는 외워버리면 끝이지.
수학과 과학은 응용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풀기가 힘들었다.
“그, 그래도 아저씨! 과학이랑 수학 숙제는 다 했다고요.”
정운은 주춤거리며 변명했다.
선우영은 소파에 앉아 정운이 풀어놓은 수학 문제를 살펴봤다.
“흐음.”
그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결정했다.
‘운이는 반드시 문과로 보내야겠어.’
신속한 판단력이었다.
자기가 봐도 정운은 수학에 재능이 없었다.
본인도 싫어하는 듯했고.
‘뭐, 수학이랑 과학 공부시키자고 휴가 쓰게 한 건 아니지.’
선우영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운아.”
“네.”
“가서 훈련하자. 너도 이제 슬슬 B급 헌터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
그 말에 정운은 눈을 반짝였다.
정운의 목표가 뭔가?
선우영처럼 멋진 헌터가 되는 거다.
“아저씨, 빨리 훈련하러 가요!”
“기다려. 잠깐, 준비 좀 하자.”
선우영은 방으로 들어가 목검 두 자루를 챙겼다.
오늘 종합적으로 평가해볼 셈이다.
정운의 전투 방식.
그림자 운영법.
그리고 삼환검 도장에서 배운 검술까지 전부 말이다!!
“그럼 가자, 운아.”
그들은 포르쉐를 타고 인적이 드문 산속에 도착했다.
선우영과 정운은 차량에서 내렸다.
“운아, 목검 받아라.”
선우영은 정운에게 목검을 건네줬다.
그리고 뒤로 총총 뛰었다.
정운과 거리를 벌리고 힘껏 외쳤다.
“전력을 다해서 덤벼. 죽일 각오로!! 알겠지?”
“예? 그렇지만….”
정운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죽일 각오로 싸울 맘은 없었다.
선우영은 오러를 뿜어냈다.
그 기세가 매우 사나웠다. 대기를 할퀴듯 사방팔방 매섭게 퍼져나갔다.
“!!”
정운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자신을 압박해오는 선우영의 오러가 무겁다.
관절이 삐꺽거리는 느낌이다.
선우영은 뿜어내던 오러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이제 죽일 각오로 덤빌 수 있겠지?”
“넵.”
정운은 깨달았다.
자기가 죽일 각오로 덤벼도 선우영한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단 걸 말이다.
정운은 자신의 그림자를 불러냈다.
처음은 원거리 공격이다.
그림자를 검의 모양으로 바꿔 쏘았다.
대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그림자! 그 소리가 굉장히 날카로웠다.
선우영은 검기로 맞대응했다. 그림자를 쳐내서 튕겨내고 뒤로 이동했다.
그림자의 사정거리를 알고 싶었다.
얼마나 뒤로 움직였을까.
곧이어 그림자가 더 이상 뻗어나가질 못했다.
딱 여기까지가 공격 범위였다.
선우영은 정운과 떨어진 거리를 눈대중으로 재봤다.
‘대충 700~750미터.’
여기까지가 정운한테 멀어질 수 있는 그림자의 이동범위.
‘속도는 어떠려나.’
선우영은 무릎을 굽히고 장딴지에 힘을 줬다.
정운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 기분을 뭐라 해야 할까.
호랑이가 땅을 박차기 직전 보이는 살기 어린 눈빛.
그걸 본 기분이 들었다.
‘선우영 아저씨랑 싸우는 사람들은 전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역시 대단하다.
기세 하나만으로 이렇게 떨리게 만들다니.
자신의 우상다웠다.
뻐엉.
선우영이 땅을 박차고 정운을 향해 달렸다.
정운은 서둘러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하지만 선우영의 속도보다 느렸다.
10걸음 정도 느리다 싶었는데, 점점 차이가 벌어졌다.
선우영은 힐끗 그림자를 쳐다봤다.
‘B급치고 빠르군.’
정운의 그림자 능력은 굉장히 강력하다.
비록 자신보단 느렸으나, 이 정도면 B급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속도였다.
선우영은 허공에서 빙글 돌아 자신을 쫓아오는 그림자를 저 멀리 튕겨냈다.
“큭!!”
정운은 신음을 흘렸다.
그림자가 자신과 멀어졌다.
이렇게 되면 선우영과 검술 대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선우영은 정운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타악!
정운은 순간 한쪽 무릎이 굽혀졌다.
공격이 묵직하다.
받아내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선우영은 정운이 생각보다 버거워하자 살짝 힘을 뺐다.
그리고 계속 목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검술을 테스트 해봤다.
“…….”
선우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평범하다.’
근접전 재능은 C급 수준?
이 상태로 승급시험을 보게 할 순 없다.
선우영은 총평가를 내렸다.
‘그림자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은 봐줄 만하다. 아니, 솔직히 원거리 공격만큼은 B급 최고 수준이야.’
장점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잘 보였다.
‘근접전에 너무 취약한데?’
돌이켜보니 정운이 근접전투를 벌이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몬스터가 나타나자마자 그림자가 해치웠으니까.’
아무리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헌터라도 최소한의 근접전은 배워둬야 한다.
하지만 정운은 아직 그 부분이 부족했다.
이걸 어떻게 가르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평범한 검술 재능을 키우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텐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림자 능력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낫겠지.’
선우영은 정운에게 소리쳤다.
“운아, 왜 그림자를 효율적으로 쓰지 않아!! 그림자를 근접전에서도 활용해봐!”
정신 차리라고 꾸지람 좀 줬다.
그림자 능력의 최대 이점은 모양과 부피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걸 이용하면 부족한 근접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정운은 선우영의 말에 머리를 굴렸다.
‘그림자를 근접전에 활용해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정운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방법을 한번 써보자.’
정운은 그림자를 자신에게 불러들였다.
그리고 뒤로 뛰어 선우영과 거리를 벌렸다.
그림자가 정운의 육체와 맞닿았다.
스멀스멀.
그림자의 형태가 바뀌었다. 정운의 전신을 감싸며 갑옷의 형태로 변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림자는 부피를 키우며 땅바닥으로 퍼져나갔다.
먹물을 뿌린 듯 주변 토지가 전부 시커멓게 변해갔다.
“그럼, 갑니다!”
정운이 선우영을 향해 뛰었다.
그 속도가 빨랐다.
선우영은 목검으로 일격을 막았다.
‘제법 머리를 썼군.’
그림자의 단단한 강도를 이용해 갑옷처럼 육체를 보호했다.
거기다 그림자의 속도는 빠르다.
그걸 이용해 육체의 가속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육체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선우영은 그러함에도 여유롭게 정운의 공격을 받아 쳐냈다.
“운아, 근접 공격에 너무 치중했어. 원거리 공격 방식은 아예 포기한 거니? 그럼, 불리할 텐데.”
“이건 어떠세요?!”
정운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쿵 찍었다.
땅바닥으로 퍼져나갔던 그림자가 꿈틀거리더니 변하기 시작했다.
피슛, 피슛.
땅바닥을 덮었던 그림자에서 시커먼 가시가 치솟았다.
그 길이가 선우영의 상체만 했다.
타닷.
선우영은 그 검은 가시를 피해냈다.
‘흐음, 그림자를 지면에 퍼뜨려 가시 모양으로 공격한다?’
공격 반경이 넓었다.
‘운이 녀석, 제법 머리를 썼는데?’
검술은 평범하지만, 그림자로 만든 갑옷이 그걸 보충시켜주고도 남았다.
거기다 지면에서 가시를 만들어 공격한다.
근거리와 원거리 공격이 전부 가능했다.
변칙적인 공격.
단단한 방어.
둘 다를 가졌으니, B급 승급시험에 보내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선우영은 모든 가시를 피해내고 정운의 앞에 다가갔다.
“히야압!!”
정운이 목검을 휘둘렀지만, 선우영은 그걸 가볍게 피하고 맨손으로 그림자 갑옷을 때렸다.
쨍그랑.
투구처럼 정운의 머리를 감쌌던 그림자.
그게 깨졌다.
드러난 정운의 얼굴은 눈이 큼지막해져 있었다.
정확히 그림자만 깨뜨렸다.
정운에겐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았다.
힘 조절이 아주 섬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고했다, 운아.”
선우영은 정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정도면 B급 승급시험을 봐도 괜찮을 거다. 잘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조언해주신 덕분에 이런 방법들이 떠올랐어요.”
정운은 그림자를 거둬들이며 웃었다. 하얀 건치가 보일 정도로 말이다. 자신이 강해졌단 사실이 어지간히도 좋았나 보다.
그때였다.
삑삑삑.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 소리는 재난 문자가 왔을 때 나오는 소리였다.
곧이어.
빼이이이이이.
기다란 소음이 귓가를 찔렀다.
이건 정부가 헌터들에게 비상 소집을 요청할 때 쓰는 알림음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선우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에게 온 문자를 확인해봤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이, 이건?!”
큰 사건이 벌어졌다.
미래에서도 꽤 유명했었던 사건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이 왜 지금 일어났지?’
미래에서 벌어졌던 시기와 맞지 않았다. 연도가 틀렸다.
‘왜 3년 뒤에 일어날 일이 지금 벌어지는 거야!!’
미래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