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스킬
선우영과 백영희의 대련이 다시 시작됐다.
타악!!
목검과 목검이 부딪쳤다.
선우영은 아까 느꼈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정신 집중. 정신 집중.’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한곳에 집중시켰다.
검에 의지를 담으려 했다.
자신이 무얼 할 건가.
‘백영희의 옆구리에 공격을 날린다.’
그걸 머릿속에 되뇌었다.
하지만 그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부우웅.
백영희의 쌍검술이 눈앞에서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그것도 굉장히 무시무시한 속도로.
정신 집중?
이 상황에서 그걸 길게 유지할 순 없었다.
선우영은 뒤로 물러났다.
백영희의 목검이 그가 있었던 자리를 훑으며 지나갔다.
선우영은 이를 악물었다.
백영희 정도 되는 고수를 상대로 그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방해받지 않는 상황에서 해도 될까 말까인데 말이다.
타앙!!
선우영은 백영희의 목검을 막아 세웠다.
그녀는 사정없이 그를 몰아붙였다.
“이런 난전 속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조금 전에 느낀 감각을 활용하셔야 합니다.”
“그게 말은 쉽죠!”
선우영은 진땀을 뻘뻘 흘렸다. 공세를 막기에도 버거웠다.
선우영은 반격도 해봤다.
하지만 백영희가 모든 공세를 막아버렸다.
첫 대련 때는 봐줬던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격이 날카로워졌다.
선우영은 방어와 회피에 전념했다.
도저히 집중력을 끌어올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없이 목검을 휘둘렀다.
생각이란 걸 못 했다.
아니, 할 틈도 없었다.
머릿속이 비워지자 반사신경이 조금 올라간 기분이었다.
위기 속에서 피어난 집중력.
선우영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앞으로 한발 뻗은 다리.
기울어진 어깨의 각도.
목검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목검에 의지가 담겼다.
옆구리를 노린다거나 머리를 노리겠단 정확한 목표가 아니었다.
좀 더 추상적이다.
‘이긴다.’
집착에 가까운 목표.
선우영의 목검이 백영희의 옆구리 앞에서 멈췄다.
“?!”
선우영은 놀라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됐다.
실전에서도 이 감각을 익혔다.
‘정말로 실이 잡아당기는 듯했어. 목표지점으로 실이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고!!’
두 번째 대련도 끝났다.
백영희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무래도 푈른의 다음 단계를 터득하신 모양인데요?”
“제가요?”
“네. 그 정도면 능히 S급 무예에 도달했다 봐도 무방할 거예요.”
선우영은 목검을 천천히 바라봤다.
그리고 허공에 휘둘러봤다.
아까처럼 검이 무언가에 잡아당겨진단 느낌이 들었다.
‘이 감각을 완벽히 터득했구나!!’
선우영은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예가 S급 수준에 도달했다. 오러의 총량이 S급에 도달하면 그도 승급시험을 치를 수 있다.
‘S급이 되면 후계자 경쟁에서 반드시 이길 거야.’
길드에 S급이 있느냐 없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니까 말이다.
“지도편달 감사합니다.”
선우영은 자신의 훌륭한 무예 스승 백영희에게 고개 숙였다.
“아니요. 선우영 부장님이 대단하죠. 그걸 하루 만에 깨우치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하하하, 검술 천재 백영희 씨한테 칭찬 들으니까 좋은데요?”
선우영은 껄껄 웃었다.
그는 목검을 제자리에 가져다 뒀다.
목적도 끝났으니 가볼까 한다.
뭐, 백영희랑 같이 식사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내일 평일 반의 교육 준비해야 하는 그녀에게 놀자고 권유할 수 없었다.
도장이 잘 되니 바빠 보였다.
선우영은 도장 문턱을 나섰다.
백영희는 대문까지 배웅해줬다.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맙다 인사하고 돌아서는 선우영.
그는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아, 백영희 씨.”
“네.”
“도장도 부활했는데 이제 스킬 익히실 건가요?”
“스킬은….”
백영희는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선우영이 삼환검으로 활약해준 덕분에 도장이 급성장했다.
이젠 한국 1등 도장이다.
삼환검의 명예도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
백영희는 S급 헌터가 되어 도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목적이었다.
근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선우영은 손을 흔들었다.
“뭐, 천천히 생각하세요. 내일 일터에서 봅시다.”
“네.”
백영희도 손을 흔들었다.
선우영이 떠나고.
그녀는 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도장도 부흥했고, 내가 원했던 목표를 이뤘는데. 이제 뭘 하지?’
헌터를 계속할 이유가 사라졌다.
스킬을 익히지 않겠다 각오한 이유도 없어졌다.
“….”
그녀는 도장 문을 닫고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자기 발이 보였다.
훈련한다고 이곳저곳에 굳은살이 박였다.
‘난 왜 헌터를 계속하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떠오르는 건, 처음 선우영을 만나 지금까지 겪어왔던 추억들이었다.
선우영은 그녀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백영희는 과거를 회상했다.
도장을 배신한 장주원.
그 녀석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았다.
그걸 허물어준 게 선우영이었다.
덕분에 찬 바람만 불었던 가슴속이 조금은 따스해졌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도 선우영이다.
옆에서 오러 총량 올리는 방법이나 오러를 이용한 기술들을 가르쳐줬다.
장주원에게 복수하도록 힘을 보태준 인물도 그였다.
선우영이 없었으면 장주원에게 복수하지 못했을 거다.
또 그가 삼환검으로 활약해준 덕분에 도장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확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도 선우영이고.’
그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곁에 선우영이 있었다.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결국 내가 헌터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는…….’
백영희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내일은 스킬석이나 구하러 가볼까?”
백영희는 나지막이 중얼거려다.
* * *
다음날.
선우영은 크루그먼 길드로 출근했다.
길드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헌터 5팀은 다들 기가 살았다.
한껏 어깨가 올라갔다.
거기다 30억 상금은 공평하게 배분한 덕분에 각자 1억 좀 넘은 용돈이 생겼다.
큰돈이 들어와서 그런지 다들 무기가 바뀌어 있었다.
다들 명품 무기였다.
그러다 보니 약간 품평회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요번에 좀 무리해서 PS제품을 구매했지, 어때 괜찮지 않아?”
“오, 대단한데?”
“성능은 어때? 끝내줘?”
“비싸도 그 값을 하더라. 다른 무기들이랑 비교가 안 돼.”
선우영과 박인혁이 세운 무기 회사는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메이커가 되었다.
이걸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 많았다.
어떤 사람은 PS웨펀의 무기를 SNS에 올리며 자랑했다.
선우영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내 부서 직원들이 PS웨펀 고객이 될 줄이야. 이건 생각지 못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는 오늘 책상에 올라온 서류를 살폈다.
5팀에 떨어진 게이트 목록.
지난번보다 약간 숫자가 늘었다.
게다가
‘우리 부서로 오고 싶단 헌터들이 있네?’
5팀으로 부서 이동을 희망하는 헌터들의 목록도 보였다.
대략 20명 정도였다.
‘다들 경력도 나쁘지 않네? 쓸만하겠어.’
선우영은 그들을 전부 받아들이기로 했다. C급들도 많으니 제법 쏠쏠하게 부서 성과를 내줄 거다.
그는 서류에 싸인하며 결제했다.
그다음 자기 부서 헌터들에게 게이트를 배분해줬다.
뭐, B급이 나설만한 게이트는 별로 없었다.
‘C급 게이트 한 개는…….’
조용석에게 줬다.
“조용석 씨, 이번에 승급시험 한번 보시죠. 오러 총량도 B급 수준이고. 체육대회에서 활약하시는 걸 보니까 무예도 걸맞은 수준이시던데.”
“네. 안 그래도 조만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선우영 부장님!!”
조용석은 자신감에 찼다.
선우영은 그가 당연히 승급시험을 통과할 거라 믿었다.
체육대회에서 B급 헌터 이종호를 이겼으니, 조용석의 실력도 B급이라 봐야 했다.
“그럼, 승급시험 다녀오겠습니다.”
조용석은 어깨를 딱 폈다.
자신감에 차서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선우영은 문득 정운이 떠올랐다.
오러 총량이 B급에 도달했지만, 아직 어려서 승급시험에 보내기가 불안했다.
‘나중에 따로 단련시켜서 전투기술 좀 가르쳐야겠다.’
선우영은 그리 생각했다.
만약 정운까지 B급이 되면 부서 성과가 더욱 상승할 거다.
뭐, 앞으로 할 일은 정해졌고!
서류를 책상에 놓고 고개를 들자 백영희가 보였다.
고개만 살짝 돌리면 바로 보이는 자리라서 그녀가 자주 눈에 들어왔다.
“흐음.”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선우영은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걸까?
선우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백영희의 옆으로 다가가 모니터를 훑어봤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스킬을 익혀볼까 하는데 어떤 걸 익힐지 고심이 돼서요.”
“스킬이요?!”
선우영은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어제 스킬 익히겠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길래 안 익힐 줄 알았다.
본래 미래처럼 그저 검술만 고집할 줄 알았다.
그런데 스킬이라니?
“검술만으로 S급 헌터가 되시려는 게 아니었나요?”
“아뇨.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깐요. 도장은 이전보다 훨씬 대단해졌고. 점점 발전 중이죠. 경찰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만큼 고정 수입도 꼬박꼬박 들어오고요.”
“안정화됐다는 겁니까?”
“네.”
백영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미래가 바뀌었다.
오로지 검술만으로 활약하던 미래와 다르게 백영희는 스킬을 익히는 길을 선택했다.
선우영은 묘한 기대심이 피어올랐다.
‘오러 기술과 검술. 그 두 가지로 검제의 칭호를 얻었던 백영희야.’
분명 미래에는 그랬다.
만약 그녀가 거기에 스킬까지 익힌다면?
‘얼마나 강해지는 거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미래에 검제라 불리던 시절보다 더 강해질 거란 것이었다.
백영희는 다시 눈살을 찡그리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민을 털어놨다.
“근데, 어떤 스킬을 익히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러면 저랑 같이 스킬석 구매하시러 갈래요? 백영희 씨 덕분에 검술 실력이 늘었으니, 제가 몇 개 사드릴게요?”
“정말요?”
“네. 말씀만 하세요.”
“그럼, 비싼 걸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각오하세요!”
백영희가 장난기 서린 표정을 지었다.
선우영은 지갑에서 블랙카드를 꺼내며 자신만만하게 굴었다.
“PS웨펀 대표의 자금력을 보여드리죠.”
백영희는 키득키득 웃었다.
선우영은 그녀를 보며 정말 성격이 변했단 걸 새삼 다시 느꼈다.
미래의 그녀는…….
아니,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사람과 벽을 쌓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지금은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듯 차가웠던 모습이 사라졌다.
자주 웃게 됐다.
그게 봄날에 피어난 꽃봉오리 같았다.
‘저렇게 웃으니까 귀엽네.’
선우영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스킬을 익히기로 결심했으니, 최선을 다해 도와줘야겠다.
스킬 구성은 중요하다.
어떤 스킬을 익히느냐에 따라 전투방식이 확 달라지기도 하니까.
백영희의 경우엔 검술에 도움이 되는 걸 익히는 게 나을 거다.
‘어디 보자, 미래의 백영희가 익힐 수 있었던 스킬의 개수가 몇 개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선우영은 그녀에게 직접 물어봤다.
“백영희 씨, 익히실 수 있는 스킬의 개수는 몇 개인가요?”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보였다.
겨우 두 개일 리는 없고.
“아, 12개요?”
“아니요.”
선우영은 눈을 껌뻑였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