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회사 체육대회3
김철수는 부서 사람들을 데리고 고깃집에 도착했다.
“이모! 여기 소고기 와규 40인분 주세요!!”
그 말을 들은 고깃집 주인이 후다닥 달려와 넙죽거렸다.
“단체로 식사하러 오셨구나! 저쪽에 긴 테이블이 있으니까 따라오세요.”
주인장은 손을 삭삭 비볐다.
사람 40명이 충분히 들어가도 남을 테이블 자리에 선우영 일행이 앉았다.
샤샤샥.
주인장이 바쁘게 움직이자 테이블에 음식이 올라왔다.
찬거리가 올라오고.
고기가 내어졌다.
“음료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아, 술은 아닌 걸로. 그중에서 가장 비싼 걸 주쇼!”
“알겠습니다.”
주인장은 빠른 걸음으로 주방에 향했다.
선우영은 김철수의 맞은편에 앉으며 농담을 던졌다.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예이, 까짓거 얼마 한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끽해봐야 400만 원 나오겠죠.”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하긴, B급 헌터 정도면 400만 원은 우습겠지.
“그럼, 잘 얻어먹겠습니다.”
“사양 말고 맘껏 드세요!!”
김철수는 그리 말하며 목청껏 웃었다.
선우영은 간만에 고기 집게를 잡았다. 고기 굽는 실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부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막내 직원이 고기 집게를 가져가려 하자 선우영은 손사래를 쳤다.
“에이, 됐어. 고기는 내가 제일 잘 구워.”
옆에 있던 김철수가 맞장구쳤다.
“암, 그렇죠!! 부장님이 구워주셨던 고기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기억납니다.”
선우영은 히죽였다.
생각해보니 헌터 1팀에 있었을 때,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구워 준 적이 있었다.
그래, 분명 그때가 김철수를 동료로 꼬실 때였다.
“자자, 얼른 먹어. 먹고 힘내야 체육대회 이기지 않겠어?”
선우영은 고기를 구웠다.
숯불에 천천히 익히며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익힌 고기를 사람들 접시에 놓아줬다. 선우영과 한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젓가락을 들었다.
“!!”
“와-!”
선우영이 구워준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질렀다.
“맛있네요.”
선우영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백영희도 칭찬을 날렸다.
“제가 원래 고기 좀 굽습니다.”
선우영은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김철수는 푸하하 웃었다.
* * *
다른 부장급들은 점심 식사 겸 회의를 열었다.
식단은 도시락.
근처 가게에서 시켰다.
진태호가 치킨마요 덮밥을 한 수저 떴다.
“이대로면 헌터 5팀이 우승할 거야. 선우영 원맨팀 부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황태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신이 키웠던 이종호가 패배할 줄 몰랐다.
어쩌면 헌터 5팀은 부서들 중 최고가 아닐까 싶다.
임주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그녀는 속이 답답했다.
이것마저 패배하면 사실상 그녀의 부서는 후계자 경쟁에서 이룬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진태호가 그들한테 가까이 모이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가까이 모였다.
진태호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손등으로 입술을 가렸다.
“다음 종목이 뭔지 알아냈다.”
“뭐, 뭐라고?!”
황태석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아까 회장님과 김용대 부장님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그래서, 뭐래요?”
임주영은 더욱 가까이 귀를 들이밀었다.
진태호는 종목을 알려줬다.
“기마전.”
“……기마전? 초등학교 운동회 이후로 처음인데요?”
임주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태호는 숟가락을 덮밥에 꽂으며 중요한 정보를 흘렸다.
“잘 들어. 이번엔 1~5팀이 한꺼번에 참가하는 경기라더군.”
“네?”
“부장 이외에 모두가 참가하는 경기야.”
진태호는 이게 중요하다는 듯 검지를 보였다.
“소수 몇몇 뛰어난 인재가 아닌 차장부터 신입까지 모두의 실력을 보겠단 거겠지.”
황태석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이야기를 찬찬히 듣다 보니 진태호가 뭘 얘기하는지 알겠다.
“기마전에서 5팀을 가장 먼저 쓰러뜨리잔 소리야?”
진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순한 작전이지만 다음 종목이 뭔지도 모르는 5팀은 걸려들 수밖에 없지.”
임주영은 눈을 잠시 감았다.
이번 기마전에서 자신의 역할이 없을까 생각해봤다.
‘신용한 회장님은 부장 직급들을 감독으로 체육대회에 참가시킨다고 하셨어.’
선우영은 그걸 이용해 출전선수에게 조언까지 했다.
‘그 말뜻은….’
이번 기마전에서도 조언을 할 수 있단 얘기.
‘정확히는 지시를 내릴 수 있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싸울지 부장들이 정할 수 있다.
복싱과 무기 대련은 지시보다 출전선수의 능력이 더 중요했던 시합이다.
하지만 기마전은 다르다.
단체로 움직이기 때문에 협동이 중요하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대단해도 단체전에선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번만큼은 헌터 5팀을 이길 수 있겠네.’
임주영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 * *
점심시간이 지났다.
고기로 실컷 배를 채운 헌터 5팀이 대련장으로 돌아왔다.
“아, 든든하다!!”
김철수는 배를 툭툭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용석은 놀란 눈을 했다.
김철수는 소고기 와규를 5인분이나 해치웠다.
‘지난번보다 더 먹는데?’
어째 위장이 줄어들긴커녕 점점 늘어나는 모양새다.
헌터 5팀까지 모두 모이자 신용한은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 섰다.
“다들 든든하게 밥 먹었나?”
간간이 대답이 들렸다.
“네.”
“그렇습니다.”
신용한은 큰 목소리로 3번째 종목을 가르쳐줬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이번 종목은 기마전, 부장급 이외에 모두가 참석한다. 모든 부서가 한꺼번에 붙을 거니 각오하도록!!”
선우영은 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렸다.
쉽지 않겠다.
1~5팀이 대련장에 모두 올라가 승부를 내는 게 아닌가.
거기다 부장 이외에 직원들이 모두 참여한다니, 이건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협동력을 살피겠단 뜻이다.
신용한은 잊지 말라는 듯 소리쳤다.
“스킬 사용은 허용이네. 그러니 다들 작전 잘 짜서 싸워보게나.”
신용한은 그리 말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주변에 있던 김용대가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귓속말했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자네, 진짜 기마전으로 갈 거야?”
“당연하지.”
“내가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일부러 진태호한테 이번 경기가 기마전이라는 걸 왜 흘렸어?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신용한은 선우영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5팀이 종목 2개를 벌써 이겼어. 이대로면 쟤들이 우승이야. 슬슬 다른 부서들이 뭉쳐서 뭔가 대책을 짜겠지.”
“해서?”
“어차피 다른 부서들이 연합해서 5팀을 공격할 건데, 거기에 조미료 하나 더해준 것뿐이야.”
“…….”
김용대는 탐탁지 않단 눈빛을 보냈다.
신용한은 히죽였다.
“그래봐야 회의 시간 1시간 정도 더 가져갔다 수준밖에 안 돼.”
“뭐, 그렇기는 하지만…….”
김용대는 선우영이 불리하도록 상황을 조종하는 신용한의 속내가 궁금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신용한은 선우영의 기사를 인터넷으로 찾아볼 만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만큼 관심이 많고.
실력을 인정한단 의미일 텐데.
‘왜 지금은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 집어넣으려 하지?’
크루그먼 길드는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한다. 그런 사내 분위기 덕분에 중소길드에서 대형길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건 그 기조를 깬 조치였다.
곰곰이 생각하던 김용대는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알겠다.
신용한의 속내를!
‘후계 경쟁에서 선우영이 승리해 회장이 된다면…… 나중에 그게 맞느냐 따지는 사람이 나올지 몰라.’
김용대는 혀를 찼다.
최악의 경우엔 후계 경쟁에서 패배한 부장급들이 길드를 떠날 수 있다.
그러니, 완벽한 승리가 필요했다.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하면 감히 누구도 따질 수 없을 테니까.’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선우영이 그런 결과를 낸다면 부장급들도 그가 회장이 되는 걸 인정할 거다.
김용대는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이야, 참 웃기네.’
이렇게 생각해보니, 신용한은 선우영한테 애정을 쏟고 있었다.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 떨어뜨린단 건가?’
선우영한테 계속 시련을 줘서 그가 성장할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하여튼, 신용한답다.
‘은퇴까지 결정했으면서 저 성격은 변하질 않네.’
김용대는 피식 웃었다.
한편.
선우영은 부서 사람들을 모아 작전을 모의했다.
그가 먼저 운을 뗐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연합해서 우리를 공격할 겁니다.”
조용석이 팔짱을 끼며 선우영을 바라봤다.
“쓰읍, 그거 큰일이네. 선우영 부장님, 어떡하실 겁니까?”
선우영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할지 고심했다.
동료들의 특징을 잘 이용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상대편이라면 누구부터 노릴까? 자기라면 틀림없이 조용석부터 노린다.
‘버프 능력이 까다로우니까.’
조용석의 버프는 그가 강해질수록 효과가 높아진다.
지금 수준이라면….
‘패시브 스킬을 두 개 정도 익힌 효과가 나올 거야.’
헌터가 기본적으로 익힐 수 있는 스킬의 개수는 5개다. 그런데 버프 능력이 있으면 패시브 스킬 2개를 더 익힌 효과가 나온다.
그러니 무조건 조용석을 지켜야 한다.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또 상대방을 어떻게 공격하느냐.
그걸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그 결과.
“쓸만한 방법이 있는데?”
선우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대련장에 사람들이 올라갔다.
각자 머리에 띠를 둘렀다.
부서마다 띠의 색깔이 달랐다.
1팀은 빨간색.
2팀은 주황색.
3팀은 노란색.
4팀은 초록색.
5팀은 파란색.
기마와 기수를 정하고 다들 준비를 끝냈다.
땡땡땡.
시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2~4팀은 작전대로 임시동맹을 맺었다.
파죽지세였던 5팀의 기세를 꺾기 위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숫자는 이쪽이 더 유리했다.
쪽수가 많으니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어? 뭐야 저건?”
“이게 무슨?!”
기마전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5팀은 무작정 싸우지 않았다.
진형을 이룬 채 대련장의 정중앙에 모여 있었다.
한가운데 조용석과 정운이 있고.
다른 부서 사람들이 방패처럼 그들을 둘러쌌다.
그 모습은 틀림없는 방진이었다.
조용석과 정운은 내부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조용석은 깃발을 꺼내 높이 들었다.
아군에게 버프를 걸고 적군에게 디버프를 걸었다.
“쳇, 전원 공격!!”
“어차피 쪽수는 우리가 더 많아-!!”
2~4팀 헌터들이 소리쳤다.
어찌나 우렁차게 말하던지 아주 쩌렁쩌렁했다.
놈들이 5팀에게 달려들었다.
양상은 서로 비슷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버프로 강해진 5팀은 적절히 방어했고, 디버프로 약해진 다른 팀들은 숫자로 불리함을 때웠다.
진태호와 황태석 그리고 임주영.
그들은 저 진세를 어찌 뚫을까 천천히 상태를 살폈다.
분명히 뭔가 허점이 있을 거다.
아무리 진세를 이뤘어도, 숫자 차이가 크면 이길 수 없으니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허공에 시커먼 물체가 갑자기 치솟았다.
형체를 사람과 비슷했는데.
어째 불안한 느낌이 든다.
선우영은 드디어 작전 시작이란 듯이 히죽였다.
‘가라 정운아! 너의 그림자로 이 불리한 판국을 전부 뒤집어엎어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