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회사 체육대회2
무기 대련에 출전하게 된 조용석.
제비뽑기 결과 그가 뽑혔다.
“내가 출전이라니.”
조용석은 대련장에 오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백영희 씨처럼 검술의 고수가 출전했으면 다 이겼을 텐데.’
왜 하필 자신이 뽑혔을까.
뭐, 어쩌겠나.
당첨을 뽑은 자기 손을 원망해야지.
‘여기서 패배하면 상금 30억이 날아가 버리겠지? 더군다나 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되잖아.’
어깨가 무겁다.
터벅, 터벅.
조용석은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최근에 오러 총량이 B급에 올라갔지만, 아직 승급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좀 불안했다.
오러의 총량은 높아졌지만, 전투 실력은 그대로였다.
게다가 자신의 주요 능력은 버프와 디퍼프.
혼자보단 여럿이 있을 때, 능력이 발휘된다.
‘꼭 이겨야 할 텐데.’
곧이어 상대편에서도 사람이 올라왔다.
헌터 4팀 이종호.
창술의 달인. 등급은 B급이었다.
조용석을 그를 살폈다.
‘나랑 똑같은 무기를 쓰네?’
이거 참, 똑같은 창술이면 저쪽이 좀 더 유리하지 않은가.
조용석은 살짝 위축됐다.
헌터 4팀의 부장 황태석은 이종호를 지긋이 쳐다봤다.
‘별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이종호는 헌터 4팀에서도 손꼽히는 딜러였다.
다만, 헌터 5팀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성격이 불같으니….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아마 대결은 이종호가 이기겠지. 현재 A급에 가장 가까운 녀석을 고르라면 저 녀석밖엔 없으니까.’
땡땡땡.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조용석은 오러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깃발을 만들어냈다.
타앙.
그걸 땅바닥에 꽂았다.
자기 자신에게 버프를 주고 이종호에게 디버프를 줬다.
조용석의 능력은 그가 강해질수록 향상되었다.
아마 이종호의 전투력이 많이 감소했을 거다.
조용석은 자세를 잡았다.
찌르기 자세.
반대로 이종호는 창대를 어깨에 기댈 뿐, 품세를 잡지 않았다.
‘뭐지?!’
조용석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종호는 자세조차 잡고 있지 않은데 어째서일까.
흉흉한 기분이 든다.
마치 늑대 한 마리가 눈앞에 있는 느낌이다.
그때였다.
“아, 새끼. 비실비실하네.”
이종호가 피식거렸다.
조용석을 향해 창날을 가리키며 목청껏 웃었다.
“버프 능력만 빼면 별거 없군.”
이종호는 기세등등했다. 조용석의 자세만 보고 그의 실력을 금방 판가름했다.
“창을 잡는 자세부터가 틀렸어.”
이종호는 드디어 창술의 자세를 잡았다.
조용석은 마른 입술로 침을 삼켰다. 창을 잡는 자세부터가 틀렸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타닷.
이종호가 조용석에게 달려들었다.
아주 기막힌 타이밍이다.
고작 몇 마디로 조용석을 흔들어 빈틈까지 만들어냈다.
“큭!!”
조용석은 움찔했다.
생각이 많아진 만큼 대처가 느려졌다.
타앙.
간신히 창대로 공격을 막았지만, 흐트러진 자세 때문에 몸이 휘청거렸다.
이종호는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휘릭, 부웅, 타앙.
창을 크게 휘두르며 강공을 이어갔다.
조용석은 간신히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사실 맞서 싸우고 싶지만….
‘그럴 틈이 없어.’
한번 빼앗긴 주도권을 다시 넘어오지 않았다.
계속 밀리고 또 밀렸다.
그러다 대련장의 끄트머리까지 몰렸다.
조용석은 아뿔싸 싶었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니.
벼랑 끝에 몰렸다.
조용석의 머리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뭘 생각할 틈도 없었다.
이대로 패배하는 게 아닐까 싶어 불안이 가중됐다.
휘이익.
이종호는 창을 앞으로 빠르게 내질렀다.
이대로면 진다.
일촉즉발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종호의 키를 넘겨서 공중제비를 돌아!”
조용석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이 목소리…!!
틀림없는 선우영의 목소리다.
조용석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이종호의 공격이 그의 무릎을 스쳤다.
조용석의 바지가 찢어졌다.
하지만 아무런 부상 없이 공격을 피해냈다.
타닷.
조용석은 이종호의 뒤로 착지했다.
그러자 보였다.
이종호를 공략할 방법들이!!
‘녀석의 등 뒤가 무방비하다. 지금이 기회야.’
조용석은 투지를 불태웠다.
타닷.
이번엔 그가 이종호에게 달려들었다.
“멈춰!!”
이번에도 선우영이 소리쳤다.
조용석은 그의 말을 듣고 돌격을 도중에 멈췄다.
부웅.
이종호의 창끝이 밑에서 위로 휘둘러졌다.
조용석은 식겁했다.
만약 그대로 달려들었다면, 저 공격에 턱을 적중당해 쓰러졌을 거다.
‘빈틈이 있다고 봤는데.’
아니었다.
이종호는 일부러 빈틈을 보여 함정을 파놨다.
조용석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 대련장의 정중앙에서 놈을 째려봤다.
이종호는 혀를 찼다.
“쯧.”
그는 신용한 회장을 바라보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선우영 부장님께서 계속 자기 편에게 조언해주시는데…… 이거 반칙 아닙니까?”
“부장급은 감독으로 참여하라 했네. 감독이 조언하는 건 반칙이 아니지.”
“…알겠습니다.”
이종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 있는 조용석이 거슬리고, 그 뒤에 있는 선우영도 싫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난 B급이 되는데, 10년이나 걸렸어.’
근데 저게 뭔가.
선우영은 입사 6개월 차에 B급이 되나 싶더니, 어느새 A급이 됐다.
눈앞에 있는 조용석은 또 어떻고?
‘저 자식도 오러 총량만큼은 B급이라던데…… 역시 재수 없어.’
선우영은 이제 직장 상사가 됐고, 조용석은 곧 같은 직급이 된다.
그게 분하고 부러웠다.
질투가 샘솟았다.
갑자기 재능있는 녀석들이 들어오더니 자신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용납 못 해.’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노력이 재능을 이기지 못한단 말인가?
그걸 인정할 수 없다.
이종호를 창을 꽉 움켜쥐며 투지를 불태웠다.
놈은 말로 조용석에게 말을 걸었다.
“조언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 창피하지도 않나!!”
“…….”
조용석은 침묵했다.
선우영의 조언이 있어서 위기를 모면했다.
의심이 갔다.
자신의 실력이 사실은 별거 없는 게 아닐까?
그의 눈살이 떨렸다.
이종호는 조용석을 삿대질했다.
“결국 선우영 부장님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헌터 생활 연명하는 놈이잖아!”
이종호는 다시 한번 그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이번엔 창끝이 조용석의 턱에 명중했다.
“컥!!”
입술이 찢어진 조용석.
핏물을 흘리며 뒤로 나뒹굴었다.
정신이 어질했다.
턱을 가격당한 탓에 현기증이 올라왔다.
시야가 흐릿했다.
물체가 두 개, 세 개로 흔들려 보였다.
흔들리는 마음처럼 세상도 흔들려 보였다.
‘이대로 패배하나?’
그런 생각이 들 때, 흔들렸던 시야가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변에 걱정하는 헌터 5팀 사람들이 보였다.
힘내라고 응원하는 김철수.
일어나라는 정운의 외침.
백영희는 아직 역전의 찬스가 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전부 귓가에 닿지도 않았다. 현기증 때문에 소리마저 안 들렸다.
정신이 멍했다.
그러다 선우영을 발견했다.
팔짱을 낀 모습.
응원의 한마디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만큼은……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해줬다.
믿고 있겠다고. 넌 그 정도로 쓰러질 만큼 나약하지 않다고.
조용석은 피식 웃었다.
그래. 기억났다.
‘내가 왜 선우영 부장님을 따르고 있는지.’
그의 조언 때문이 아니다.
헌터 생활을 연명하기 위해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
‘아직 짐꾼이었던 시절에…. 나조차도 헌터를 포기하려 했던 그 시기에.’
선우영은 말해줬다.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그 한마디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조용석은 창대를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상금이나 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된단 사실 따윈 잊어버렸다.
이제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선우영이 자신을 믿어준다.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승패는 나중 일이었다.
이종호는 이를 부드득 갈며 창으로 그를 겨눴다.
조용석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직 자신의 깃발을 꺾이지 않았다.
버프와 디버프는 여전하다.
‘속도와 힘은 내가 유리해.’
그렇다면,
‘정면 대결이 아닌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싸워야겠군.’
조용석은 해답을 찾아냈다.
이종호는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결과가 달랐다.
조용석은 옆으로 움직여 달려드는 공세를 피했다.
그리고 창대로 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보인다.
이종호의 창술은 야생마처럼 직선적이고 저돌적이다.
그렇기에 정면에서 대결하면 이기기 힘들다. 이렇게 옆으로 회피하며 반격하는 게 최선의 수다.
한 대 얻어맞은 이종호.
“큭?!”
아프다.
옆구리가 쓰라렸다.
“이 자식!!”
이종호는 창을 휘둘러 반격했지만, 조용석은 또다시 옆으로 이동해 회피했다.
동시에 똑같은 공격을 성공시켰다.
이종호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놈은 점점 불안해졌다. 마음이 조급해지며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크아아악!!”
이종호가 발악처럼 들리는 기합을 터뜨렸다. 그리도 또다시 조용석에게 달려들었다.
겉보기에 기세는 좋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창술이 거칠어져서 공세를 읽어내기 쉬웠다.
품세에 날카로운 맛이 없다.
조용석은 이종호의 공격을 피하며, 계속 반격을 가했다.
퍼억, 퍽.
이종호는 계속해서 얻어터졌다.
악으로 깡으로 버텼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퍼어억!!
강렬한 일격이 작렬했다.
조용석은 창끝으로 이종호의 턱을 가격했다.
녀석의 몸이 붕 떠올랐다.
조용석은 그 상태에서 앞발을 내밀며 재차 창을 휘둘렀다.
창대가 이종호의 목을 쳤다.
놈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굴러 대련장 아래로 떨어졌다.
장외패.
조용석의 승리였다.
이종호는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내가 졌어?!’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신용한이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승자, 헌터 5팀!”
조용석은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선우영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주먹을 부딪쳤다.
선우영은 조용석에게 수고했단 눈빛을 보냈다.
김철수는 그들과 어깨동무했다.
“하하하, 처음엔 조마조마했네. 어쨌든 이겨서 다행입니다. 물론 저는 조용석 씨가 이길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죠!”
“진짜요? 거짓말 같은데?”
조용석이 농담을 던지자 김철수가 의도적으로 몸짓을 크게 가져갔다.
마치 장난치듯이 말이다.
“아니, 조용석 씨!! 제가 얼마나 조용석 씨를 믿고 있는데요?! 그렇게 심한 말 하기 있기? 없기?”
“그럼, 오늘 점심 쏴요.”
“좋습니다! 오늘 우리 부서 점심은 내가 쏜다~!!”
김철수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헌터 5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후에도 무기 대련은 쭉쭉 이어졌다.
첫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조용석은 막힘없이 다음 대결에서도 이겼다.
그리해서 이번 대결도 헌터 5팀이 우승을 가져갔다.
신용한은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자자, 슬슬 시간도 12시가 되었으니, 점심 먹고 합시다.”
그렇게 식사 겸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김철수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꺼내며 헌터 5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소고기 먹으러 갑시다.”
“우와아아!!”
그들을 고깃집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헌터 2팀, 3팀, 4팀의 부장들은 점심시간에 서로 모였다.
“이봐, 이러다 헌터 5팀이 모조리 우승할 기세야. 어쩔 거야?”
“이번 체육대회. 틀림없이 우리가 직원들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확인해보는 자리일 거예요.”
“이것도 후계 경쟁이란 거겠지.”
“그래서 말인데, 다음 종목에서는 힘을 합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