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매콤한 주먹.
선우영의 모습에 암살자들은 식겁했다.
‘뭐, 뭐야?!’
‘짐꾼이 저렇게 강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남은 3명의 암살자들. 녀석들은 당황해 움직임이 굳었다.
선우영은 히죽였다.
녀석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암살자들은 악다구니 쓰며 선우영에게 검을 겨눴다.
“이, 이 새끼가!!”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선우영은 눈을 부릅뜨며 붕대로 감췄던 용광검을 뽑았다.
그는 암살자들의 질문에 대답해줬다.
“지금부터 나한테 먼지 나도록 처맞을 새끼들.”
선우영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암살자들은 용광검 특유의 흑색 칼날에 눈길을 빼앗겼다.
한눈에 명검이란 걸 알아봤다.
암살자 하나가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했다.
“저놈 죽으면 저 검은 내 꺼다. 알겠지?”
자기가 먼저 찜했으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동료들한테 말할 줄이야.
선우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놈이 당하는 걸 봤으면서 아직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믿다니, 멍청한 놈이다.
그런데 멍청함도 전염이 되는 걸까?
“야, 쫄지 마. 저 새끼 하나야.”
“해봤자 B급이겠지. 설마 A급이겠어?”
“맞아! 딱 보니까 남희찬이 데려온 경호원인 모양인데 그래봤자지.”
놈들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동시에 낯빛이 시퍼런 걸 보면, 지금 자기들이 뭔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모양새였다.
왜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겁을 너무 집어먹으면 아무 말이나 마구 튀어나오는 경우.
지금이 딱 그랬다.
선우영은 덤비라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가벼운 도발이었다.
암살자들은 머리에 화딱지가 앉았다.
“이 새끼, 넌 뒈졌어!!”
“죽어라!!”
암살자들이 달려들었다.
놈들이 검을 휘둘렀다.
선우영은 상체를 살짝 비틀어 공격을 흘려보냈다.
이번엔 선우영의 차례였다.
그는 용광검을 휘둘러 암살자들의 칼날을 모조리 베어냈다.
째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잘린 칼날이 허공을 돌아 땅바닥에 박혔다.
순식간에 3명의 무기가 못 쓰게 됐다.
“어?”
“어어?!”
암살자들은 주춤했다.
무기의 성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선우영은 콧방귀를 꼈다.
“암살자란 놈들이 입만 살아가지고, 어디 밥벌이나 하겠어?”
암살자들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놈들은 오러로 독액을 만들어 선우영에게 쏘았다.
마지막 비장의 카드였던 걸까.
독액에서 느껴지는 흉악한 독기가 코를 찔렀다.
선우영은 피하지 않았다.
독액이 그의 피부에 정면으로 맞았다.
암살자들은 입꼬리를 올렸다.
“꼴좋다.”
“독에 당했으니 살점이 녹아내리겠지.”
“우릴 무시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놈들이 돼지 멱따는 목소리로 추잡하게 목청을 높였다.
선우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부에 묻은 끈적끈적한 독액을 손등으로 털어낼 뿐이었다.
고통도 없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살점이 녹아내리긴커녕 아주 말짱했다.
“…….”
“…….”
암살자 일동은 침묵을 머금었다.
해독 스킬을 가진 선우영에게 이따위 독은 통하지도 않는다.
선우영은 놈들에게 기회를 줬다.
“더 싸울 거냐? 모든 범행을 밝히면 안 아프게 끝날 수 있다.”
암살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모든 걸 자백하면 자기들 인생은 끝이다.
감방에 갇힐 거고.
주민등록증에는 빨간 줄이 그어지겠지.
헌터 생활 마감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우자!!”
암살자 하나가 소리치며 선우영에게 달려들었다.
포기를 모르는 놈이다.
선우영은 용광검을 검집에 넣었다.
검을 휘둘렀다간 저 녀석들 죽는다.
어차피 저놈들의 무기는 제구실도 못 하는 상황이 아닌가.
선우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먼지나 게 팰 생각이다.
뭐, 그래도 위력은 조절하려 했다.
딱 정신을 잃지 않을 만큼만 때릴 참이다.
이두박근에 살짝 힘을 주고.
어깨를 뒤로 당겨.
아가리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적당히 때리려고 했는데, 순간 녀석들한테 당했던 굴욕이 떠올랐다.
퍼억!!
아, 실수했다.
주먹에 힘이 좀 많이 들어갔다.
아가리를 얻어맞은 암살자는 땅을 튕기며 뒤로 날아갔다.
땅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구덩이가 생겼다.
날아가는 추진력이 떨어질 때쯤, 안면이 흙더미를 쓸며 멈췄다.
놈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빨까지 부러져 어금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녀석은 피거품을 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암살자들은 투지를 잃었다.
너무 놀라 말도 못 했다.
“…….”
선우영은 남아있는 녀석들을 째려봤다.
“항복하면 저 꼴은 안 당한다.”
“에잇, 그걸 믿을 거 같냐!!”
암살자 하나가 돌연 남희찬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인질로 삼아 협박할 생각인 모양인데… 선우영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땅바닥에 발 도장이 찍힐 정도로 강하게 땅을 박찼다.
그 모습은 맹수와 같았다.
남희찬에게 달려가던 암살자.
놈은 등 뒤로 느껴지는 어두운 그림자에 공포를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선우영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으며 바로 뒤에 있었다.
퍼억!!
선우영은 이번에도 힘 조절을 못 했다.
남희찬은 인질로 잡으려 했던 녀석의 배때기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꾸에에엑!!”
녀석은 입 밖으로 쓴물을 쏟아내며 높이 치솟았다.
선우영은 놈이 어디까지 올라가나 구경했다. 만루 홈런처럼 아주 쭉쭉 올라가더라.
녀석은 곧이어 지상으로 추락했다.
선우영은 살짝 옆자리로 피했다.
그가 서 있었던 자리로 암살자가 떨어지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선우영은 경기를 일으키는 녀석의 등을 밟으며, 마지막 남은 암살자를 쳐다봤다.
“어때? 너도 덤빌래?”
“…….”
“말이 없네? 싸우겠다는 거냐?”
암살자는 어깨를 좁히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서워 죽겠단 표정이다.
선우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싸우겠단 거야? 아니면 항복하겠단 거야?”
“항복하겠습니다.”
“그럼 땅바닥에 대가리 박어.”
“네?”
“군대에서 하는 원산 폭격기 자세 취하라고!!”
“아, 넵!”
암살자는 곧바로 대가리를 땅바닥에 박았다.
선우영은 녀석의 몸에 올라타며 질문을 휙휙 던졌다.
“너네 암살범들이지?”
“넵.”
“누가 사주했냐?”
“남희찬의 여동생 남정설입니다.”
“그래, 그래. 솔직한 놈이구나. 너한테 상을 주마.”
“그게 뭡니까?”
“자수하고 광명 찾을 기회.”
선우영은 피식 웃었다.
암살자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남희찬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대단했다.
암살자 4명이 단숨에 선우영에게 제압당했다.
그뿐만인가.
놈들을 실컷 농락하더니 자백까지 받아냈다.
카메라로 전부 찍고 녹음했으니, 여동생이 절대 발뺌하지 못할 거다.
남희찬은 선우영에 대한 존경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굉장하군. 저게 선우영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남자였다.
앞으로 그와 자주 친하게 지내야겠다.
선우영은 기절한 암살자와 고분고분해진 암살자를 데리고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 * *
R길드.
한바탕 숙청의 바람이 불었다.
여동생이 후계자 자리를 얻기 위해 오빠를 죽이려 했으니까.
그녀와 관계된 사람은 모조리 잘렸다.
남희찬을 죽이려 했던 암살자들은 각성자 전용 감옥에 들어갔다.
R길드 회장 남궁근.
그는 위스키를 병나발로 마셨다.
믿기 힘들었다.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딸이 자기 오빠를 죽이려 했다니.
‘아니, 도대체 왜?’
자기가 딸에게 유산을 안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그 비싼 강남땅도 주겠다 했고.
현금도 준다고 했다.
길드 주식과 일부 금액만 남희찬에게 주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는 헌터로서 재능이 요만치도 없었다.
남희찬은 10년을 노력해 B급이 됐지만, 딸아이는 똑같은 10년을 노력해도 간신히 D급이다.
익힐 수 있는 스킬의 개수마저 적었다.
아들은 성과를 내는데, 딸은 성과도 못 냈다. 그러니 후계자로 아들을 삼았다.
그래도 최대한 유산을 공평하게 나누려고 노력했다.
토지나 현금은 딸아이 쪽에게 더 많이 줬다.
“그런데 왜 욕심을 부려서….”
속이 탄다.
아들은 딸을 용서할 수 없다고 경찰에 넘겼다.
어떻게 말리지도 못했다.
암살까지 주도했다는데, 그걸 어떻게 봐주라고 한단 말인가.
딸아이는 당연히 유죄를 받았다.
증거가 너무 확실했다.
녹화된 테이프와 녹음본. 거기다 암살자들의 자백까지.
빼 올 방법이 없었다.
남궁근은 재판 전에 딸을 만났었다.
오빠한테 잘못했다 빌고 어떻게든지 감형받아보라 얘기해봤는데….
자기가 왜 그래야 하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였던 딸이었는데, 결국 이런 사고까지 치고 말았다.
‘아이고, 머리야.’
남궁근은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다.
이 이야기가 퍼지면 길드 주가가 내려간다. 일단, 기자들한테 돈을 쥐여주고 사건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게 조치했다.
남궁근은 전화로 아들을 불렀다.
“희찬아.”
“네, 아버지. 말씀하세요.”
“이젠 네가 회장 해라. 난 이만 은퇴하련다.”
“…알겠습니다.”
무거운 적막이 주변을 휩쓸었다.
이로써, 남희찬은 R길드의 회장 자리를 정식적으로 계승했다.
* * *
크루그먼 길드 회장 신용한.
그는 인사과에 요청해서 부서별 성과를 확인해봤다.
그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호오?”
감탄사와 함께 턱을 문지르는 신용한.
마침 옆에 있던 김용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그래?”
“이것 좀 봐.”
“성과표? 어디 보자, 누가 이기고 있어?”
“선우영.”
김용대는 모니터에 있는 성과표를 유심히 살폈다.
생각보다 의외였다.
“재미있네? 선우영의 부서는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니 재미있지.”
신용한은 만족스러운 웃음기를 보였다.
그러다 순간 미간이 꿈틀거렸다.
“음?”
신용한은 마우스 휠을 굴려 성과표의 다음 페이지를 확인했다.
“흐음….”
이번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김용대는 고개를 갸웃했다.
“또 왜?”
“이거, 좀 맘에 걸리는데?”
“어디?”
신용한이 모니터 속 글자를 손으로 짚었다.
그걸 찬찬히 살피던 김용대도 팔짱을 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이었나?”
선우영의 헌터 5팀.
분명 성과 경쟁에서는 이기고 있다.
문제는…….
“성과 대부분을 선우영 혼자서 해냈어.”
김용대도 혼잣말을 흘렸다.
신용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우영의 실력은 대단했다. 부장 중에서도 가장 뛰어날 거다.
하지만 헌터 5팀의 다른 직원들은 성과가 평범하다.
아니, 살짝 아래다.
이래서는 부서라고 부르기 민망했다.
선우영 원맨팀이지.
김용대는 숨을 길게 내쉬고,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쩌겠어. 헌터 5팀이 생긴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인원도 부족하고 신입사원들 가르칠 시간도 필요하겠지.”
신용한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뭐가?”
“이건 후계자 경쟁이야. 복합적으로 성과를 평가해야지.”
“그래서?”
“얼마나 직원들을 성장시켰느냐? 어떤 동기부여를 줬는가? 그건 직장 상사의 중요 업무야. 그러라고 월급을 더 주는 거라고.”
“그건 그렇지.”
김용대는 수긍했다.
그게 맞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이끌어주는 건 옳은 현상이다.
물론, 대부분의 직장에선 안 그런다. 아랫사람이 올라오면 짓밟으려고 하지.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하는 크루그먼 길드의 직장 분위기.
그것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신용한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참에 재미있는 경쟁을 시켜볼까?”
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김용대는 가늘게 뜬 눈으로 움찔했다.
“또 뭘 하려고? 너 그런 얼굴 할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거 아냐?”